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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제목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작가 이름은 생소했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확실하게 '오가와 요코'라는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소설이 서점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이다. 이유는 뭘까. 일본 소설이 우리 소설과 비교해서 좀더 다양한 소재가 뒷받침하는 가운데 밀도 높은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 같다. 이 소설도 그런 맥락에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17년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후, 기억을 80분밖에 지속하지 못하는 희귀한 병을 얻은 한 수학자와 그를 돌보러 집에 드나드는 파출부 '나' 그리고 그녀의 아들 루트. 이 세 사람이 만드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수학 관련 대화 내용이나 박사가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이 나오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떠오르는 부질없는 생각이 뭔고 하면 나도 저런 식으로 숫자를 만나고 수학을 배웠더라면, 아마도 수학을 이 정도로 싫어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박사의 의식 속은 온통 숫자와 수식의 세계로 가득 차 있다. 세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습에서 '진짜' 인간애를 보여준다. 대단한 장치 없이 억지없이 과장없이 따뜻하게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이야기. 좋은 느낌, 좋은 감상을 준 소설이다.
신선한 소재로 참신한 재미를 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재미도 있으면서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소설이었다. 적당하게 두루두루 만족을 주는 이야기라서 읽는 내내 즐거웠고 흡족한 마음으로 책 읽기를 마칠 수 있었다. 기억이라는 것이 소멸해도 박사와 그녀와 루트가 함께한 기억은 영원한 기억으로 의식 속에서나 가슴 속에서 언제나 함께 할 기억일 테다. 비록 박사의 기억이 온전하진 않더라도 마음을 나눈 시간들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