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보내줘
어디로?

어디든.. 여기 아닌데로

이 사람, 이렇게 보내는 걸로 뭐가 해결됐어?
아직은.. 아무 것도.

그런데, 꼭 보내야 했어?
아직이라고 말했잖아. 아직은 몰라.

그럼, 언제쯤이냐고 친구는 묻는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어쩌면 끝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먼저 간 친구는 말했다.
그 다음이 문제야,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는지. 그걸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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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주무시죠?

전 김규항의 글을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진중권, 강준만과 섞여 그저 글 잘쓰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는 왜 불온한가>를 읽고 그의 블로그에 틈틈히 들리면서, 그의 글이 놋빛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몇 해 전에 글 팔기에 진력이 나서 대중매체에 글쓰기를 포기하고, 이제는 어른들을 상대로 한 글쓰기에도 진력이 나서 어린이 잡지를 만들고 있다고 해요. 직설적이지만 겸손하고, 겸손하지만 자신을 낮추지 않는, 삶의 태도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이 글은 이미 적지 않은 이들이 좋다며 가지려는 글입니다. 저 역시 그 중 하나이지요. 작년 말 서울로 올라올 기한을 정해두고 도서관에 들락거리다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전 이 글을 읽으면서, 그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혀왔던 것이, 바로 외로움이었다는걸 알게됐습니다.

사실 그 때 잠깐 오해도 있었지요. 난 그 외로움을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으로 무언가를 버리겠다 다짐했던 바로 그 때,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서울에 올라오면 버리고 간 짐들이 그대로 남아있지 않을까 못난 기대도 했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버려진 짐들이 너무나 낡고 닳아있다는걸 알았습니다. 먼지를 닦아내고 닳아진 부분을 조심히 메웠어요. 변명 같지만, '내가 잘못했어' 라는 용서는 아니었습니다. '그 때는 좀 심했지.' 라는 반성과 비슷했어요. 집착하거나 매달리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을 해요. 내가 달고사는 외로움이라는건, 근래 몇 년을 떠나서 아주 오래 전 부터, 별 감흥 없던 대학 생활의 시작, 아니 고등학교 시절의 막바지 부터였다구요. 여기까지가 제가 생각하는 진실입니다.

저도 제 외로움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전 늘 딴 짓을 합니다.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 위아래 몇 개 되지도 않는 주머니에 몇 번이고 손을 집어넣는건데, 부끄럽게 빈 손을 꺼냈을 때는 이미 헤어질 시간이곤 했습니다. 나중에 놀러오시면 안그러려구요.

편지 잘 읽으시고,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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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편지
김규항

단아. 아빠는 지금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에 와 있다.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아저씨 집이야. 일 때문에 왔지만 “날씨가 죽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둘이 술만 먹고 있다. 아빠는 즐겁다. 갈수록 사람들은 빠르고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시간만 좋아한다. 그러나 아빠는 이런 아무 것도 아닌 시간, 느리고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시간이 참 좋다.

술을 먹다 단이가 생각났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말하는 단이 얼굴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아빠는 그럴 때 담담한 체 하지만 속으론 아주 많이 기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기 생각’을 ‘옳은 생각’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 아빠는 단이가 아빠의 잘못을 들추어내길, 그래서 아빠가 잘못을 인정하길 기대하곤 한다. 기대는 점점 더 잘 이루어지고 있다.

단이는 단이 이름을 닮았다. ‘丹’(붉을 단). 처음 그 이름을 지었을 때 좋다는 사람이 없었다. 칭찬은커녕 “이름이 그게 뭐야?” “배추 단이냐 무단이야?” 따위 놀리는 말만 가득했다. 그런데 단이가 이름과 합쳐지면서 확 달라지더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말은 아빠가 억울할 만큼 빨리 나왔다.

아빠도 아빠 이름을 조금 닮았다. 단이는 아빠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아니? 홀 규에 늘 항, ‘늘 홀로’라는 뜻이다. 아빠는 어른들이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아빠는 이릴 적부터 왠지 그 이름이 좋았다. 지금도 그렇다. 아빠가 외롭냐고? 그래 아빠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단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꼭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사람은 외롭지 않아도 생각은 외로울 수 있단다.

이오덕 할아버지를 기억하니? 아빠가 누구보다 좋아했던 분이지. 아빠는 그분을 돌아가시기 오년 전쯤부터 사귀었다. 할아버지는 워낙 훌륭하게 사셨기에 그 뜻을 따르는 이들이 참 많았다. 그분이 아빠 글을 읽고 연락을 해오자 아빠도 한달음에 만나러 갔다. 그분을 사귀면서 많은 걸 배웠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분은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너무나 외로워하셨다.

아빠는 그분의 외로움이 그분의 올바른 삶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단아. 올바르게 산다는 게 뭘까? 아빠 생각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삶’이다. 사람들은 지난 올바름은 알아보지만 지금 올바른 건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가장 올바른 삶은 언제나 가장 외롭다. 그 외로움만이 세상을 조금씩 낫게 만든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서나 늘 그렇다.

예수님은 가장 외롭게 죽어갔다. 아무도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을 죽인 힘세고 욕심 많은 사람들뿐 아니라 따르고 존경한다는 사람들에서 오히려 더 많았다. 그 후 2천년 동안도 그랬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다. 예수님은 ‘2천년의 외로움’이다.

단이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으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아빠보다 더 많을 거다. 하지만 단이의 거짓 없는 성품과 행동이 단이를 외롭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단이가 외롭길 바라지 않지만 단이가 올바르게 산다면 단이는 어쩔 수 없이 외로울 거다. 단이가 외로울 거라 생각하면 아빠는 마음이 아프다.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든 고통스럽기 때문이야. 단이가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이 편지를 기억하면 좋겠다.

아빠는 아빠 책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었다. “그러나 내 딸 김단이 제 아비가 쓴 글을 읽고 토론을 요구해올 순간을 기다리는 일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아빠는 정말 그 순간을 기다린다. 지금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단이도 술을 좋아하게 될 거다. 내 딸아, 너의 외로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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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의료보험 2종 신세가 대학병원에 가면 의사나 간호사나 한 끗 차입니다. 똑같단 말입니더. 그 사람들 내 같은 사람 절대 인간취급 안해 줍니다. 경찰들은 한 수 더합니다. 틱틱 반말은 우습고요, 쪽방촌 사람들을 완전 좆으로 봅니다. 내 마, 그때 콱 죽어뿔고 싶고 서러버진다 이겁니다. 내 몸이 아파서 우는 거 같지요? 천만에요! 마음이, 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아서…”

2004~2005년 사이에 전국에서 기초생활수급자가 제일 많이 발생한 지역은 대구였다. 장롱 속에서 숨진 아이가 발견된 곳도 대구였다. …2007년 현재 우리나라 기초생활수급자는 150만 가구, 의료수급자는 180만 세대,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빈곤층만도 200만명에 이른다. …전체 국민의 15퍼센트가 암보다 더 무서운 생계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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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목은 「관료 장관과 정치인 장관」입니다. '행세와 구체적 실천' 이라는 제목은 제가 따로 뽑은 것이구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최장집 교수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지만, 일간지 칼럼이라 더 살가운 느낌입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직업적인 활동가로 규정했을 때, 늘 제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했던 그 느낌을 말이죠. 이 글을 늘 거울 삼아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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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관료 장관과 정치인 장관
 
지난주 다시 장관 몇 사람이 바뀌었다. 몇몇 언론이 개각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두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목을 끌진 못했다. 이로써 2003년 봄 참여정부 출범 당시 19개 행정부처 장관 중 넷이었던 관료 출신은 정권 마지막 해 열 사람까지 늘어났다. 단정할 자신은 없으나, 현직 장관 열 사람 중 5년 전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것이 장관직의 결격 사유가 될 수는 없다. 또 관료집단을 개혁의 ‘주체’인가, 아니면 개혁의 ‘대상’인가 따위의 흑백논리로 단순하게 재단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의문은 생긴다. 참여정부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 역대 민간정부가 초기에 한결같이 경계하고 배제하고 싶어했던 관료집단이, 나중에 보면 다시 국정운영의 중심으로 약진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떠들썩한 선거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바뀌고 새로운 집권세력이 기세등등하게 정권을 접수하고, 이념적 색채나 노선도 다른 것 같은데, 막상 장관들을 보면 앞선 정부에서 고위직으로 활약했던 그 얼굴 그대로인 연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한 것일까,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일까?

이는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진정한 의미의 집권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다른 민주국가에서의 집권은, 군림하거나 통치하는 ‘행세’가 아니라,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담당하는 구체적 실천으로 나타난다.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정치적 이념과 지향을 구체적 정책에 반영하기 위하여 집권세력은 행정 현장으로 뛰어든다. 그들의 집권은, 외곽에서 추상적 거대담론으로 행정부처를 원격 조정하는 게 아니라, 행정부처 수뇌부에 직접 소매 걷고 들어가 직업관료들과 함께 미시적 사항을 일일이 챙기면서, 공부하고 부딪치고 싸우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정치적 실천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정치인들은 이런 의미의 집권을 ‘거북’해 하는 것 같다. 역대 민간정부 집권세력들에게 통치하고픈 의욕과 열정은 있었을지 모르나, 통치에 필요한 능력과 경험과 자세는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대통령 부근이나 국회에 머물며 행정 관료들의 보고를 듣고 훈계하고 지시하는 것을 선호했지, 근무강도가 엄청나고 책임질 일이 많은 행정부 그 자체의 일원이 되겠다는 노력이나 의지는 없었다. 간혹 장관으로 기용된 사람들도, 그것을 경력과 경험관리 차원의 ‘외도’로 받아들였고, 계기만 생기면 장관직에서 벗어나 먼저의 지위로 돌아가기에 바빴다. 행정부 일에 관심은 많으나 직접 빠져들어 자신이나 위험부담 의지는 없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행정 관료에게만 맡길 수도 없었던 집권세력은, 결국 청와대 기구를 늘리고 각종 위원회와 기획단을 만드는 것을 돌파구로 삼았고, 거기에서 만든 수많은 ‘로드맵’을 행정부에 던졌다.

야당 역시 집권세력의 행정부 진출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참여정부에서의 ‘코드 인사’ 시비가 전형적인 보기다. 그들은 대통령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정치권 인사의 행정부 진출을 배제함으로써 대통령의 통치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그만큼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함으로써 앞으로 자신들에게도 부담이 될 나쁜 관행을 만들었다.

차기 대통령은 ‘정말로 집권’하기 위해 정치인을 장관으로 임명하면 좋겠다. 다만, 그들은 피나는 노력을 통하여 관료집단을 실력과 인격으로 장악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정치인들로 행정과 정치가 일체가 된 집권구조를 만드는 일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중요한 과제다.

이윤재 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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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한겨레신문사 방문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출입구 쪽 수십 계단을 올라온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인터뷰 장소로 온 저자 김도현씨. 역시 몸에 밴 운동가였다. "오면서 계단에 '몸이 불편하신 분'이 아니라 '계단 이용이 불편하신 분'으로 고쳐야 한다. 엘리베이터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으면 몸이 불편할 리 없다."

(인터뷰/'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차별에 저항하라' 펴낸 김도현 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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