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없는 대안 원자력 발전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22
신부용 지음, 황주호.이임택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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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모두는 2003년 여름에 시작되어 한해가 넘도록 지속되었던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하 방폐장) 유치 반대 시위를 기억하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부안 사태', 혹은 '부안 민란'이라고 지칭했을 정도로,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정부와 부안군민 사이의 갈등은 깊었고 격렬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군민들이 모여 촛불시위와 상경집회를 벌였고, 정부와 부안군청을 향한 분노는 전․의경들과의 마찰로 번져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2004년 1월 정부가 주민투표법을 공포한 이후로도 1년 여간 계속되었다. 결국, 새로운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 갈등은, 농사를 짓거나 구멍가게를 하던 평범한 시민 43명이 구속되고, 지역 공동체가 분열하는 상처로 계속 이어졌다.

부안의 갈등은 이제 일단락 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들 사이에 핵과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방폐장 설치를 둘러싼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1990년 안면도, 1995년 굴업도를 비롯해 20여 년간 무려 8차례나 시도했으나 실패한, '숙원의 국책 사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니, 상처가 아물어가는 지금이야 말로, 허심탄회하고 진지하게 핵과 원자력, 그리고 에너지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시기이다.

이런 노력에 갈등의 두 주체였던 정부, 국민과 더불어 에너지 전문가들의 참여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어떤 지역에 방폐장을 설치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현재 전체 에너지 소비의 15%에 불과한 원자력 발전의 향후 전망과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이며, 그에 앞서 "핵과 원자력 발전은 안전한가? 그리고 필요한가?"라는 국가의 에너지 전략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부용 박사의 <대안 없는 대안 원자력 발전>이 놓여진 자리가 이곳이다. 저자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지선정위원으로 활동한 분으로서, 전문적 지식과 더불어 일선의 경험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방폐장 설치의 첫 번째 쟁점은 시기였다. 국책사업을 20여 년간 미뤄왔던 정부에게도, 하루  아침에 방폐장 유치 결정을 접한 부안군민들에게도 시기 문제는 절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안군 내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은 논외로 하더라도, "방폐장 설치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찬성측과 반대측의 의견은 달랐다.

하지만, 시기와 관련한 문제를 살피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우선, 에너지란 공기와 같아서, 우리에게 너무나 가깝고도 먼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루도 전기나 석유와 같은 에너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에너지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은 월말의 사용료 고지서를 받아볼 때가 고작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기 이전의 에너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전기와 석유는, 우리가 사용하기 쉽게 가공한 최종적 형태의 에너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너지가 어디로부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우리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1차 에너지는, 45%가 석유, 24%는 석탄, 원자력과 LNG가 각각 12%와 14%, 물이 나머지 1%를 차지하고 있다. 한눈에 석유와 석탄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석유와 석탄 같은 1차 에너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자원들을 거의 대부분 수입하고 있으며, 그중 석유의 수입량은 세계 4위에 달한다.

시기의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에너지 자원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이상, 한국의 에너지 전략 역시, 세계 에너지 상황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에너지 확보 경쟁이야말로, 석탄과 석유 자원의 고갈 정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석유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으며 중동에서 두 차례의 전쟁을 일으켰고, 중국 역시 러시아와 합심해 중동에서의 석유 확보에 들어갔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장들까지 나서서 시베리아, 아프리카 할 것 없이 세계 방방곡곡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세계 4위에 달하는 한국의 석유 수입량은 단지,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70%가 총성 없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머지 30%만이 우리 스스로 개입할 여지가 있다. 이것이 바로, 30%의 절반(14%)을 차지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원자력 발전의 시기 문제는, 단지 원자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 전략에 관한 문제이며, 해외 의존 비율을 줄여 좀 더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청정에너지․그린에너지와 같이 '환경 친화적' 이라는 수식어를 독차지하고 있는 에너지 발전 역시, 환경의 영역에서 벗어나, 에너지 공급 전략이라는 큰 맥락 안에서 함께 논의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두번째 쟁점은 안전성이었다. 안전성은 시기 문제 보다 더 뜨거웠던 쟁점이자 중요한 쟁점이었다. 부안군민들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에 대해서 불신하고 있는 것이 무시하지 못할 사실이었고, 여기에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과 1986년 구(舊)소련의 체르노빌과 같은 원전사고의 기억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물론, 국민들의 여론이 절대적 다수라 해서 그것이 곧바로 올바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불신이 전적으로 무지로부터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 원자력 발전은 방사능 누출 위험이 있으며, 폐기물은 방사능이 약한 것조차도 최소 300년을 관리해야 하며, 수명이 다한 발전소를 폐기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란 드럼통에 새겨진 검은색의 방사선 심벌마크가 주는 인상과 달리, 그것은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핵의 변화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우리 생활과 극단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방사선의 강도이며, 우리는 이미 일상적으로 약한 강도의 방사선을 쬐고 있다. 우리는 방사선의 강도를 인위적으로 조정해 X선, CT 촬영에서와 같이 의료 보조용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갑상선 치료, (방사성 물질인) 라돈 목욕탕, 등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방사선을 이용하는 기관은 전국에 걸쳐 2,500여개에 달할 정도이다.

물론, 원자력 발전에는 의료용 이상의 강도가 사용되며, 높은 강도의 방사선은 신체에 여러 가지 악영향과 더불어 사망에 이르게 할 위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의 원료로 사용되는 순도 2~5%의 우라늄235 그 자체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터질 수가 없다. 이는 마치 맥주와 같이 알코올 함량이 낮은 술에 불이 붙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따라서, 스리마일 섬이나 체르노빌과 같은 원전사고에서도 사고의 원인이 된 것은 원료 자체가 아니라, 원료를 발전하는 원자로의 결함이며, 흔히 오해하는 바와 같이, 방사선에 과다 노출되어 사망한 이들에게서 유전에 따른 기형출산과 같은 사고는 없었다는 것이 공식적인 조사 발표이다.

이렇듯 쟁점이 되었던 '시기'와 '안전성'의 문제는, 좀 더 면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나무를 석탄이, 석탄을 석유가 대체했듯이, 원자력이 석유를 제치고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떠오를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원자력 역시, 19세기와 20세기를 풍미했던 석탄 석유가 그러했듯이, 과거의 에너지원이 가진 단점을 보완하면서 더 높은 효율을 제공하는 기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원자력 에너지의 광범위한 이용과 특성을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기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개발했고 이용하는 사회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같은 기술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에게 이득이 될 수도 손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원자력 발전이라는 인류가 발명한 기술을 한국 사회의 소통 구조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저자 역시, 방폐장 설치를 둘러싼 논의 구도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타국의 에너지 경영 사례들과 반핵운동의 사례들을 인용하고 있다.

저자는 스웨덴의 사례를 강조하고 있는데, 한국과 같이 지하자원이 부족하고 동시에 공업국이라는 점에서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스웨덴에서는 탈(脫)원자력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대체에너지가 개발될 때 까지는 한시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운용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화력과 대규모 수력 발전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 현재 50%를 원자력이 40%를 수력이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국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정당과 국민 사이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국민들은 고비용의 청정에너지 사용에 따르는 비용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사회적 갈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들은 스웨덴의 사례를 인용하고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GDP를 비롯한 양국의 경제적 능력은 물론이며, 국가 예산의 쓰임새를 비롯한 국민 복지의 차이가, 스웨덴과 한국을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조건들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민들이 국가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청정에너지 사용에 따르는 고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의식수준과 더불어 우선적으로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당이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해 정책으로 입안, 시행하는 것은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한국 정부 역시, 오랫동안 원자력 발전의 안정성과 보완대책을 강구해왔다면, 원자력 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민들의 가치관과 에너지 발전은 한가지만을 선택하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며, 그러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의사소통 채널을 마련하고, 저자와 같은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권장해주어야 한다.

저자가 비판해 마지않는 반핵운동 단체 및 환경운동 단체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사법처리 운운하기 보다는, 끌어안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국가 에너지 전략의 로드맵은 정부와 시민단체, 국민과 지방자치단체까지 광범위하게 토론하는 과정 속에서 도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옛 격언이 있다. 치열해지는 국제사회의 에너지 경쟁에 패배해 암흑천지가 될 것이라는 극단적 위기론 보다는, 합리적인 의사소통 구조 속에서 국민적인 에너지 경영의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것이야 말로, 2003년의 부안과 같은 국가적 갈등을 줄이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에너지 선진국이 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 저자의 노력이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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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학자로 살다
타까기 진자부로오 지음,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서, 다소 벅찬 나머지 책을 가슴에 꼭 안고 있었습니다.
누렇게 뜬 속지와 단정한 표지가 더욱 정겹게 느껴집니다. '녹색평론사'의 책을 더 구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생태주의에 대한 호기심

세살 터울의 누나가 한명 있습니다. 누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했죠.
그녀의 석사시절, 밤낮 없이 연구실에 매여 얼굴 보기도 힘들더니만, 졸업과 함께 엄청난 양의 책과 논문, 보고서, 팜플렛, 등을 가져왔습니다. 그것도 잠시 자리를 비운 제 방에.

떡 하니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니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그림이나 사진이 많은 자료들이라 가끔 들춰보는데, 지난 번엔 꽤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냈습니다.

<시민과학자로 살다>
내용을 확인했을리 만무하고, 이번에도 제목에만 눈독을 들인 셈입니다. 고질병이죠.
누렇게 뜬 속지와 꾸밈이 많지 않은 책 표지에는, 책의 저자 타까기 진자부로오의 활동사진이 있습니다. 그가 반핵집회에서 연설을 하는 장면이죠.

사실, 환경문제, 혹은 생태주의에 대한 제 문제의식은 대략 이랬습니다.
" 흔히, '환경'이라 하면 꽤나 가치중립적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것 역시도 경제논리 - 정확히, 경제개발논리 - 와의 한판 싸움에 분명 얽혀있는데, 경제논리를 비껴갈 수 없는 환경이 제시하는 카드가 바로 '반(反)개발' 혹은 '생태주의' 이다. "
뭐 대충 이런 식이었죠. 정말 대충.

그런데, '생태주의'는 경제라는 괴물과 싸우기에는 너무 약해보였습니다.
그래서, 전역한 민관이 친구가 올렸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 - 나중에 알았지만, '녹색평론사'에서 낸 책이더군요. - 독서후기에도, 맥빠진 코멘트(comment)를 주절거렸던겁니다.

더구나, 생태주의에 대한 비관에는,
'생태주의'가 제게 하나의 이미지(image) 혹은 선입견으로만 존재한다는 챙피함까지 섞여 늘 제 자신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이만하면, <시민과학자로 살다>는 눈독을 들일만 했던거죠.

정작 중요한 소개가 늦었는데,
이 책은, 97년 '바른생활상(RLA)'를 수상한 일본의 반핵활동가 - 그는 스스로를 '시민과학자'라고 부릅니다. - 타까기 진자부로오씨(이하 타까기)의 자서전입니다.
당연하게도 그의 자서전에서 원자력, 혹은 반(反)핵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제가 제목을 그리 선택한 데에는, '반핵'보다 '시민과학자 타까기'의 삶에 더 깊이 감명한 탓이겠지요.

# 과학자가 세상을 만나다

그의 성장기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망과 함께 시작됩니다. 소위 '전후(戰後) 민주주의' 시기죠.
얼마 전 어떤 칼럼니스트는 독도 문제에 대해 얘기하면서, 일본의 민주주의 - 이는 전후 민주주의와 같습니다. - 가 '제 스스로 이루어 낸 성과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라고 논평했는데, 타까기씨가 바로 그 시대에 성장했습니다.

" 나의 체험적 인상에서 말하면 국가나 공권력, 제도 등이 교육의 전면에 거의 나타나지 않던 시대에 선생들도 신헌법 하의 민주교육에 대해서 당혹스러워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게 오히려 학생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묘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

책이 그의 자서전이니 만큼, 성장기에 대한 언급은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지만,
그의 성장기는 유독, 이후 그의 삶의 우여곡절을 대변하는 인상을 주고있습니다.

그는 이런 혼란상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데에 익숙해지고, 동시에 약간의 반골기질을 보이게 되는데,
이는 공교롭게도 그를 수학에 - 혼자서 몰두할 수 있는 -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후에 수학을 포기하고 화학을 선택한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일본원자력사업 주식회사'에 취직하면서 다시 한번 청개구리 성향 - 전적으로 그의 표현을 빌릴 때 - 을 보이게 되는데,

'일본원자력사업 주식회사'는,
그에게 여러 면에 있어서 실험실의 핵이 아닌, 현실의 핵과의 만남을 주선하게 됩니다.

뭐 저도 잘 알고있는 것은 아니고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수준입니다만,
여기서 일본의 원자력산업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익히 알려져있다시피, 일본은 45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두 차례 원폭을 당하면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국가이죠.
일본인들에게 '핵'이란 어떤 것일지 대략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일본에서 원자력 산업, 즉 에너지로서의 원자력 이용이란, '에너지' 보다는 '원자력'에 강조점이 찍혀있었을 겁니다.

타까기씨가 '일본원자력산업 주식회사'에 취직한 61년은,
일본이 전후에 원자력산업을 막 시작하고 있을 즈음이었죠. 그리고, 동아시아의 개발모델에서 흔히 보여지듯, 게발시기 산업이란 정치적 의도나 금융자본의 의도가 앞서가며 시작하기 마련입니다.

평범한 과학도의 갈등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의 흥미는 방사성물질의 방출이나 오염에 관한 것이었고, 그 결과 역시도 "방사성물질의 거동은 복잡해서 아직 모르는 게 많다. 더욱 기초 연구를 충실히 하지 않으면 않된다." 뭐 이런 류의 것이었는데, 전후 개발의 에너지원을 구상하고 있는 회사의 입장은 그와 달랐던 겁니다.

# 과학자가 세상과 갈등하다

후에 언급되지만, 그는 이 때 까지만 해도 '원자력 반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다만, 회사 - 그것도 익히 알려진 일본형 기업 - 와의 갈등을 참지 못했고, 결국 전직을 하게 되는데, 그는 좀 더 학문 중심적인 대학의 부속 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그는 토오꼬오대학 부속기관인 원자핵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마음껏 연구를 하는데,
다시 한번 갈등에 부딪히게 됩니다. 연구를 위해 바다와 산의 고암석을 찾는 도중, 진흙과 암석 일부에서 세슘-137 이라는 '죽음의 재' 성분을 검출한 것입니다.
그가 직접 발견한 '죽음의 재'는, 당시 일본 사회를 두드리던 공해문제 - 미나마따병, 이따이이따이병, 요까이찌 천식 - 와 함께 그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 특히 나에게 인상이 깊었던 것은 기업측이 데이터를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과 미나마따병을 비롯한 많은 공해 문제의 원인조사에 참가한 과학자들이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풍토병이나 바이러스설 같은 가설을 세워 기업측을 옹호하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중략) 이 일이 자기의 문제가 되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중략) 내가 과학자이기 때문에 갖게 된 이해관계를 이미 무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자 집단에 귀속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이해관계에 서있었다면, 원체험에 입각하여 어디까지난 자립된 개인의 입장을 관철하기로 했던 너의 의지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는가. "

그는 피난처와 같았던 원자핵연구소를 떠나, 토오꼬오 도립대학 이학부의 조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 여담이지만, 조교수 승진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고 고백하네요.

잠시 숨을 돌리며 말씀드리자면, 일전에 구입했던 <일본 근대의 풍경>을 미리 읽어두지 않은 것이 몹시 애석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지형을 풍자하는 '386세대' 라는 조어가 30대, 80년대 학번, 60년생과 같이 시대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듯이,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 세대라는 타까기씨를 이해하기에는 그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60년대 일본의 시대상을 이해하는게 필요했습니다.

한국의 60년대 역시도 4ㆍ19 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일본의 60년대 역시도, 베트남전 반대, 오끼나와 반환과 같은 사회적 사건 뿐만 아니라, 미나마따병, 이따이이따이병과 같은 공해문제, 학생운동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중 나리따 공항 건설에 반대했던 농민들의 운동이었던 '산리즈까 투쟁'은, 위에서 언급한 '죽음의 재'사건, 문필 미야자와 켄지와 더불어 타까기씨의 원체험을 이루는 세가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 그것은 그야말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거대한 입을 벌리고 덤벼드는 불도저는 문자 그대로 국가권력 자체였고, 그 앞에 맨몸으로 자기 농토를 지키려고 싸우는 농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서있는 나 자신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어느 편에 서있는가. 심정적으로는 농민들 편이었지만, 실제로 나는 국가권력이라는 거대 시스템 측에 속해있는 게 아닌가. "

"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을 우리의 과학으로 만들 수 있는가?' 이 말을 읽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이 말은 1926년 켄지가 시작했던 라스찌진협회에서 만든 모임 안내서에 들어있는 말로서, 켄지가 농민들에게 한 강연의 제목이었다. "

# 과학자가 시민과학자가 되다.

세상과 갈등하는 과학자 타까기는 잠시 독일 막스-프랑크 핵물리연구소에 외래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자기 자신을 돌보는데,
이때 호르크하이머, 하버마스와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저작을 탐독하고, 독일의 신학ㆍ철학자 출신의 활동가들과 여러차례 토론을 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비판'이라고 하면 우리 자연과학자들을 무엇보다 논문의 계산착오나 기껏해야 논리적 정합성을 확인하는 정도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근원적인 비판은 우선 인간의 관심을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가를 문제 삼고, 그러한 관심을 전제로 인식이 나아가는 과정을 성찰하는 것이다. 그러한 성찰 없이 객관성이라는 명분만 가지고 측정 데이터 등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이다. "

그가 깊은 도움을 받았다고 회고하는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은 역사학자 에리히 프롬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맥을 같이 합니다. -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에리히 프롬 역시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원이었습니다.

과학의 객관성 내지는 과학자로서 가치중립적인 위치를 지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은,
그가 독일생활을 정리하고 '원자력자료정보실(이하 자료실)'을 세우며, 소위 '시민과학자'로 자신을 정립한 이후에도 그에게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자료실은 타까기씨가 이후 일본의 원전 연구자들과 함께 설립한 단체인데, 이후 반핵운동 과정에 정보실이 역할을 맡으면서, 그는 이 단체를 공동으로 설립한 과학자들과 '단체의 중립성'에 대해 갈등하게 되는거죠.

자료실의 원로인 다께따니 선생은,
" 과학자에게는 과학자의 역할이 있고 주민운동에는 운동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자네, 시계를 쇠망치 대신으로 쓰다가는 시계만 망가뜨리게 되고 결국 시계도 쇠망치도 안된다. " 라고,

타까기씨는,
" 자료실은 어떻든간에, 저 개인은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를 거부합니다. 적어도 쇠망치가 될 수 있는 시계가 되고 싶습니다. 시계가 망가지더라도 최소한 쇠못의 역할만이라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 라고 입장을 밝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반원발신문> 이라는 일본의 반핵운동 소식지 편집에 그가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타까기씨는 자료실과 반원발신문 모두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건강을 몹시 해치게됩니다.

# 과학자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또 잠깐 숨을 돌려보죠.
일전에 옛 친구들이 그리워 싸이월드에서 사람찾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박OO'를 검색하니 백명이 넘는 사람이 나왔지만, 한명한명의 미니홈피를 둘러보며 그 친구를 찾아봤습니다.

백명이 넘는 사람 중에서 그 친구를 찾는 방법이란,
그 친구의 '이름'일 수는 없었던거죠. 가장 인기있는 사진을 제외한다면, 취미며 특기부터 시작해서, - 절친했다면 - 그 친구의 필체와 생각들을 기억하는 것이 그 친구를 찾는 방법일겁니다.

그 많은 '박OO' 앞에는, 사실 보이지 않는 수식어가 있는거죠.

타까기씨는, '시민'이라는 수식어를 '과학자'에 덧붙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표현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모든 과학자들이 보이지 않는 수식어를 붙이고 다니는겁니다. 타까기씨는 그것을 드러내보였을 뿐이구요.

비약하자면, 타까기씨가 걷어내고자 했던 보이지 않는 수식어란,
'일본원자력산업 주식회사' 였고, '죽음의 재' 였으며, '산리즈까' 였을겁니다.

과학자는 과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수식어를 붙인 과학자들을 싫어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수식어를 바꾸는 과학자들을 용납할 수 없었던겁니다.

# 이후의 문제. 그럴싸한 스펙트럼(spectrum)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볼께요.
" 이미 과학자나 기술자가 되어있었던 사람들의 경우, '학문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세가지 방향의 대응을 했다. 하나는 과학자나 기술자라고 하는 전문가 자체를 특권적인 존재로 보고 그러한 특권을 스스로 버린 사람들이다. 둘째는 체제 내에 머물러 모순과 싸운다는 입장이었다. 세번째 입장은 체제 내의 지위를 버리고 자립적인 과학ㆍ기술을 지향했다. (중략) 현대의 과학기술은 연구개발을 위해서 거대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회 비판적인 일을 하더라도 일정한 조직적 배경이 없으면 안된다고 당시는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세번째 길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

과거에 대한 회고 치고는 참으로 그럴싸한 스펙트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답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첫째는 갈등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식어) + 대명사'를 갖게 될 것이고, 둘째는 마음고생을, 셋째는 꽤나 허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짐작할 따름이죠.

타까기씨는 셋째를 선택했고,
마지막장에는 그가 시민과학자로서 자신을 정립한 이후의 활동들에 대한 회고가 담겨있습니다.
'돈과 생명의 싸움', '주민들에게 배우다', '무시와 유혹', '괴롭힘'과 같은 소제목들은, 셋째 역시 둘째 못지 않은 마음고생을, 아니 더한 마음고생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진심

" 진지한 마음으로 하면
십중팔구 이루어진다
진지한 마음으로 하면
무엇이든지 재미있다
진지한 마음으로 하면
누군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 "

타까기씨가 친구 K씨 부부로 부터 선물받아 걸어둔 액자의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일본 나가노현의 안라꾸지 주지스님의 글이래요.

정작 눈독을 들인대로 생태주의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핵이 없는 사회를 반드시 실현시키고 싶다'는, 진지한 마음 하나로 살아왔다는 타까기씨.

그의 진심이,
대학생 타까기, 공무원 타까기의 가려진 수식어를 밝혀냈다면 너무 감상적인가.

# 보태어

말씀드린 '수식어' 얘기를 하느라, 놓친 부분들이 많이 있어 아쉽습니다.

우선, 원자력에 대한 부분.
책을 통해 옅본 일본의 원자력산업도 그러했지만, 한국의 원자력산업은 어떠한지요. 중앙집권적인 성격을 가진 원자력산업을 비롯해서, 거대 테크놀로지와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서로를 허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환경 인종주의'. 즉, 원자력시설 입지가 인구 과소지역에 편중되는 문제, 방사성 폐기물이 타국ㆍ타민족에게 전가되는 문제, 등은 다시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태주의'에 대해서.
갈등의 대치선이 명확한 경제논리에 익숙하다보니, 자꾸 둔감해지는 것 같아요. 책을 제대로 골라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기회가 된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련의 저작도 둘러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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