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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비 출판사의 글쓰기 이벤트에 응모한 글입니다.

내게도 다독(多讀)의 한때가 있었다. 2년 2개월의 군 복무 시절이었는데, 무얼 해도 눈치가 보이는 이등병 때부터 전역을 하루 앞둔 내무실에서까지 책을 읽었다. 군 복무 기간 내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주워 담으려는 듯, 무던히 읽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때 읽었던 정치경제학 분야의 150여 권 책들은 머리에도 마음에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온라인 독서 블로그에 장구한 독서후기를 올리지 않았더라면, 기억을 복원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들이 나의 책읽기 습관에 대해 남긴 물음표가 적지 않았다. 그 물음표와 느낌표를, 나와 다르지 않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책을 어떻게 읽는가. 방법론에 대한 발언은 많다. 서점에 발걸음하시면, 책읽기 습관을 제시하거나 책읽기 편력을 드러내는 많은 책들을 만나실 수 있다. 방송과 신문에 눈길을 주셔도 된다. 새로 나온 책, 많은 독자들에게 선택받은 책, 매 시기 사회적 이슈를 안고 다시 나온 책까지, 다듬어진 말과 글로 알려준다. 나 역시 구독하는 일간지에서 책 소개 지면을 즐겨 읽는다. 꾸준히 서점에 들러 관심 있는 코너를 둘러보며, 출판사와 서점의 메일링리스트 이메일도 잊지 않고 확인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친절한 정보, 좋은 습관도 어떤 독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 자신의 욕구로 걸러내지 않은 정보는, 양적·질적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우리는 많은 독자들이 뚜렷한 기준 없이 베스트셀러를 선택하거나, 출판 트렌드에 휩쓸리는 것을 목격한다.

사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독서신화’를 주입받아 왔다. 아이가 태어나면 무턱대고 전집과 백과사전부터 구입한다. 학교에서는 어떠한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학창시절의 숱한 독후감 대회는 물론, 대학입시와 논술시험을 위해서도 책읽기를 강요받는다. 책상머리에 명문대에서 선정한 권장도서 100권 목록을 붙여놓고, 고전과 씨름한다. 신문을 펼쳐들면, 준수한 외모를 갖춘 작가들의 스틸 사진이 시선을 끌며, 책 한권 구입하러 서점에 들르거나 온라인 웹사이트에 방문했다가 열등감을 자극하는 책 제목들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이 매 해 잊지 않고 찾아온다. 이쯤 되면, 책읽기는 행위 자체만으로 인정받는 것 같다.

독서를 둘러싼 훌륭한 사회적 인프라를 ‘신화’라고 비방하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읽는가’와 ‘어떻게 읽는가’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읽기를 신화화하고 책에 대한 정보를 홍수처럼 쏟아내는 사회에서, 자신의 솔직담백한 책읽기 욕구는 희석되어 발견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읽는가’이다. 그 욕구에 따라, ‘무엇을 읽는가’와 ‘어떻게 읽는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숱한 방법론들은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것도 선택적으로 필요해진다. “책을 많이, 잘 읽어야 한다“는 당위명제 아래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많은 정보와 습관들은, 결국 독자의 지적 에너지를 허비하게 할 것이다.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책읽기’는 책을 선택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특정 형태의 지적 결과물을 산출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유효하다. 나는 이것을 ‘독자 주도적인 책읽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욕구의 발견‘이라는 알쏭달쏭한 작업을 돕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겠지만, 이 방법들이 또 하나의 준수해야 할 ’습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 시도해 볼만한, ’선택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덧붙인다.

우선, 평소에 자신만의 책읽기 목록을 만들어두면 좋다. 단, ‘읽고 싶다’라는 감정에는 허수가 많으므로, 약간의 검증장치(?)를 도입한다. 관심 분야를 정했으면, 해당 분야에서 알고 싶거나 얻고 싶은 것들을 짧게 기록해 덧붙이는 것이다. 이제 여러 통로를 통해 접하는 책 관련 정보들은 자신이 만든 목록을 기준으로 재분류하고, 새로운 관심 분야가 생기면 목록을 새로 추가하여 관리한다. 직접 서점에 발걸음해서, 주도적으로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다만, 신중하게 고른 책을 목록에 넣을 때는, 마찬가지로 이 책을 통해 해당 분야의 무엇을 배울 것인지 구체적인 메모를 덧붙인다.
이렇게 완성된 책읽기 목록은 주변의 독서신화와 정보의 바다에서, 자신의 관심과 욕구를 돌보는 ‘나침반’의 역할을 할 것이다.

둘째, 책을 고를 때는 제목보다 서문을 꼼꼼히 읽는 것이 좋다. 서문을 읽는 것은 독자와 작가 사이의 첫 번째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사변적으로 쓰여 진 서문도 많지만, 서문은 일반적으로 작가의 집필의도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독자에게 ‘왜 읽는가’가 중요하듯이, 작가가 ‘왜 썼는가’를 드러내는 서문은 중요하다. 독자는 서문을 읽음으로 해서, 이 책이 자신의 책읽기 욕구와 부합하는지 확인할 수 있고, 주도적인 책 고르기를 할 수 있다.

셋째, 독서전기를 써보자. 흔히, 독서후기를 강조하지만, 이 책을 왜 읽으려는지, 무엇을 배울 것인지, 읽기 전에 쓰는 것이 좋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독자는 작가가 차려놓은 순서와 텍스트를 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준비되지 않은 독자는 작가에게 끌려가기 쉽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을 통해 작가와 1차적인 의사의 합치를 이뤘지만, ‘주제’만큼 ‘대화의 방식’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읽기 목록을 작성하고 서문을 읽는 것이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독자의 주도권을 지켜준다면, 독서전기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독자의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글쓰기가 부담스럽다면, 굳이 정식화된 문장을 갖추는 데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짧은 메모라 하더라도 반드시 위계적 구조를 갖춘 글쓰기가 필요하다. 생각은 표현의 과정을 통해서 명확하게 정리되기 때문이다.

넷째, 완독(玩讀)·정독(精讀)에 대한 의무감을 잠시 내려놓고, 발췌독을 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책읽기는 기본적으로 쌍방향 소통이 아니다. 한 명의 작가로부터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향한 일방향 소통이다. 작가가 개별의 독자가 원하는 것만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독자 역시 모든 책을 정독하고 완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책의 목차를 찬찬히 살피면서,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살펴 선택적으로 읽는다.
물론, 발췌독은 특정 분야의 책읽기에만 사용될 수 있고, 자칫 작가가 전달하려는 맥락을 놓칠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독자들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책읽기의 본질은 작가와 독자의 대화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대화를 나누는 수단이며 매체일 뿐이다. 따라서, 독자 주도적 책읽기는 책의 불완전한 매체적 특성을 보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주도적이라는 것은, 관계의 우위 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뜻한다. 책을 선택하고, 읽고, 얼마간의 지적 성장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독자 스스로 자신의 욕구에 더욱 충실한다면, 책읽기가 더욱 즐거워지지 않겠는가. 모든 독자들의 즐거운 책읽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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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름나라 기금, 입간판 건은 민주주의를 상기시킨다. 형님은 "열흘이면 끝났을 문제를,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다."며 그것의 원인으로 내 미천한 '연륜'을 탓했는데, 일이 지지부진해진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것이 경험의 부족에서 나오는 판단 착오는 아니라는 것이 내 고집이다.

비민주주의적인, 그러니까 체계와 절차, 합의 같은 것을 무시한 방식은 빠르고 신속하다. 하지만, 그 방식은 거칠고, 그로 인해 누군가를 소외시키기 마련이다.
민주주의적인 방식은 느리고 불편하다. 모두가 모여야 했고, 토론은 매끄럽지 않았으며, 합의를 게시하고 확인하고, 의견을 기다리며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형님과 같이 두 가지 방식을 효율성의 관점에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두 방식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는 방식과 해결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불확실하고 예측불가능한 문제점들이, 후자는 확실하지만 예측가능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전자는 임기응변으로, 후자는 제도의 힘을 빌려 해결해야 한다.

진정한 문제점은 우리가 후자를 선택했다는 것이 아니라, 후자를 선택하고 이용할 만한 능력이 부족했다는 데에 있다. "정모를 하면서 오히려 추진동력을 잃어버렸다."는 형님의 지적은 이 대목에서 아주 올바르다. 합의에 대한 존중은 의식적이어야 가능하고, 합의에 대한 실행은 준비되어야 가능한데, 우리는 이 부분을 놓쳤다.

그런데 막상 이 얘길 꺼내기는 귀찮아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버렸다. 뭔가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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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종종, 썰렁한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의도에서 던지는 "농담인데 왜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래." 라는 타박에는, '농담'은 비정치적인 것이고 따라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언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첫째,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언사 같은 건 원래 없으며,
둘째, 농담이란 의례 보편적인 언사에 비해 좀 더 정치적이며,
셋째, 가장 재밌는 농담은 정치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농담이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속마음은, 꿈과 농담에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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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공간의 논쟁을 즐겨하는 이들 중 일부는 상대의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채 반박이란걸 펼치는데, 종종 장광설을 늘어놓기 일쑤다. 그들이 쓴 글을 읽고 있으면, 제 분에 못이겨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해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나는 것이다.

너그러운 이들은 이들의 글쓰는 태도나 예의를 하나하나 지적해주지만, 별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행태란,
결국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식으로 제 할 말만을 내뱉으려는,
아니면 제 말재주 혹은 글재주를 뽐내고 싶은,
그것도 아니면 타인의 글을 읽고 괜히 제 찔리는 구석을 어떻게든 무마해보려는,
그런 일차원적인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지, 애초에 소통 혹은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소통을 원하지 않는 바에야, 대꾸할 필요도 없겠지만, 저희들 자유대로 쓰는 글을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저희들의 일차원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타인의 글을 재료로 삼는 점을 지적해야겠지만.

(덧붙이자면, 이런 이들 중에도 상급이 있고 하급이 있다. 아시다시피, 상급은 아전인수 격으로 글을 인용해놓고 제 할 말만 잔뜩 늘어놓는 위인들이지만, 하급은 독해 자체가 엉망이어서 물꼬를 틀 능력도 없는 이들이다.)

- 대학 시절, 공활이나 빈활이 '봉사 활동'이 아닌 '연대 활동'이라는 것을 알고 후배들이 종종 봉사와 연대의 차이에 대해서 물어보곤 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 답하기를 좋아했다.

"봉사가 남을 위한 것이라면, 연대는 우리를 위한거겠지."

물론, 묵묵히 봉사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자연스레 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봉사를 연대라고 떠벌이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전자ㆍ후자 모두 너무 극소수라, 전자는 간헐적으로 언론에 보도될 뿐이고, 후자 역시 '연대'라는 가치가 아예 사라지는 요즘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칼럼니스트는 "뽐내기 위한 봉사인들 어떠랴" 라고 말 할 정도 였으니까.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인들 역시, 간헐적으로 봉사하거나, 연대할 자신이 없어 봉사를 갈등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봉사니 연대니 운운하면서 제 자신을 드러내기에 바쁜 이들은 최고의 목불인견.

말이야 어찌됐건, 이들의 행동이 곤경에 처한 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오히려 이들이 이런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는 겸양을 떨면서, 한편으로 제 자신의 성정에 대해서는 추켜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봉사는, 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줌과 동시에 불편한 제 자신의 마음을 달래려는 것인데, 이들은 애써 후자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 마음을 포장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제 욕심만큼 인정받지 못했을 때에는, 슬쩍 발을 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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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배웠다는 어떤 이들은 논쟁한다. 가치가 중요한건 알겠지만, 배고픈 세상에 가치 같은건 필요없다나.

ㅎㅎ 이명박의 '경제성장 747' 슬로건은 가치가 아니고, 권영길의 '무상의료 무상교육', 금민의 '사회주의'가 가치고 이념이라는건 넌센스다.

당신, 좀 멍청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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