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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2008.03.07)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는 6일 “출범 이래 지난 2년 동안 위원회가 진상을 규명한 의문사 43건 가운데 5건(11.6%)은, 폭행치사(타살) 사건을 군에서 단순 사고나 병사 등으로 은폐·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해동 군의문사위 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남창동 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출범 두 돌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위원회는 600건의 진정을 받아 148건을 종결했으며, 이 중 진상규명된 것은 43건”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의문사위는 이 밖에 25건을 기각하고, 9건을 각하했으며, 6건에 대해선 진상규명 불능 결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진정이 취하된 사건은 65건이었다.

군의문사위가 폭행치사로 새롭게 밝혀낸 5건은 1951년 숨진 국민방위군 박술용씨 사건과 69년 송창호 일병 사건, 69년 노상서 이병 사건, 58년 김재영 이병 사건, 82년 정민후 하사 사건 등이다.

군의문사위는 또 진상규명된 43건 가운데 25건(58.1%)에서 구타와 가혹행위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사망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과거 군 수사기관은 이들 43건 가운데 8건에 대해서만 인권침해와 사망의 연관성을 인정한 바 있다. 군의문사위 조사에서 확인된 군내 구타 및 가혹행위는 야전삽자루나 곡괭이 자루 등으로 때리기, 발로 가슴 걷어차기나 온몸 짓밟기, 주먹으로 가슴 때리기, 한강철교, 반합뚜껑에 머리 박기, 케이(K)2 소총 가늠쇠에 머리 박기, 성추행 등이었다.

이 위원장은 “위원회 조사결과 거의 모든 자살 사건에서 구타나 가혹 행위 또는 과중한 업무 부담 등 부대 내적인 원인으로 자살에 이르게 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를 근거로 일부 공무 관련 자살의 경우에도 유가족이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의문사위는 2006년 발족해 올해 말까지가 활동 시한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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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1792년 가을, 혁명의 화염에 휩싸인 프랑스의 국민 공회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를 채택했다. 영국은 동아시아로의 경제적 침투 기반을 다지고자 정객 조지 매카트니(1737∼1806)를 대사로 위촉하여 중국행을 명했다. 러시아의 통상 요구에 부닥친 일본의 에도 막부는 영주들에게 연안 방어 강화를 명하여 유럽인들의 도전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했다.

세계가 요동쳤던 바로 그때, 조선의 통치자들은 무엇에 몰두하고 있었을까? 1792년 10월19일, 국왕 정조는 신하들을 불러 과거 답안지에 패관소품(稗官小品-중국 소설의 문체)을 이용하면서 경전류의 우아한 문체를 멀리하는 일부 지식인들을 지탄하고 중국 소설 수입 금지를 명했다. 이옥(1760∼1815) 등 문단의 이단아들의 벼슬길을 막을 ‘문체 반정’은 그렇게 예고됐다. 세계가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와 있었던 시점에 중국 소설 문체의 ‘악영향’을 국정의 핵심 문제로 삼은 정조에게 조선의 공용어로서의 한문의 수명이 100여년밖에 남지 않았음을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뛰어난 국왕이었던 그도 ‘성현의 어문’인 한문이 영원토록 세계의 중심적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전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어 몰입교육과 ‘오렌지’ 발음을 갖고 열변을 토하는 대한민국 국정 책임자들을 보면서 필자는 패관소품 문체의 퇴치에 올인했던 200여년 전의 국왕을 떠올려본다. 특정 제국이 영원하리라는 맹신과 어리석음으로 나라를 그르친 적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또다시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려 한다. 몰입교육을 논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볼 것이 있다. 과연 영어가 ‘공부의 중심’이 돼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문제다. 일부 특수 직종(학자·기자·외교관 등)을 제외한 다수에게 외국어가 필요한 것은 교역 등 회사에서의 대외 업무 수행과 외국여행 때일 것이다.

무역부터 보자. 2007년에 한국은 영어가 통하는 미국(12.3%), 영국(1.8%), 독일(3.1%)보다는 중화권인 중국(22.1%), 대만(3.5%), 홍콩(5.0%)에 약 2배 더 많은 물건을 팔았다.

외국여행도,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중국과 일본 여행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미국으로 간 이들은 7.2%에 그쳤다.

작년 입국자 통계를 봐도 중국·대만(21%)과 일본(35%)은 미국(9%)과 비교해서 한국 관광산업에서 훨씬 더 중요한 존재다.

‘실용주의적’ 시각으로 외국어 수요를 파악하면 학교에서는 앞으로 제1외국어를 중국어로 바꿀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학술·기술·국제정보망의 주요 언어로서의 영어의 영향력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이나, 중국어 구사 인구(12억여명)가 영어 구사 인구(약 3억4천만명)에 비해 거의 4배 가까이 된다는 점이나, 구매력 기준으로 계산되는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2026년쯤에는 미국을 능가할 전망이어서 결국 이 우위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권에서는 중국어가 공용어로 통할 상황이 그보다 훨씬 이른 약 15∼20년 안에 올 것에 대비하면서 영어 몰입교육보다는 영어와 중국어 교육 사이의 균형과 효율성을 논해야 한다.

한문을 절대 신성시하고 고전 문체를 벗어나는 일까지도 일탈로 간주해 앞을 보지 못했던 조선 사대부 못지않게 지금 한국 사회 귀족들은 자신들의 문화자본인 영어를 국가적 물신으로까지 만들려 하고 있다. 실사구시 정신이 결여된 그들의 언어관은 자연스레 도래할 동아시아 시대에 역행하고 우리의 미래를 그르칠 뿐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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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08-02-15 한겨레)

- 1950.09.27 서천등기소사건: 북조선노동당 지시로 우익인사 240여명 살해
- 1980년대 초 김기삼 씨 사건: 월북한 형의 지시로 간첩행위 → 조작사건으로 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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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1970~80년대 국군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가 수사한 일부 재일동포 간첩 사건이 조작됐거나 조작됐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위원장 이해동)는 12일 ‘재일동포 및 일본 관련 간첩조작 의혹사건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직접 조사한 4개 간첩 사건 가운데 77년 김정사 사건은 간첩행위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고, 81년과 86년 각각 발표된 이헌치, 김양기 사건은 조작 개연성이 높다”며 “81년 김태홍 사건만 실제 간첩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정사 사건은 서울대에 유학중이던 재일동포 김씨가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간부 겸 대남공작지도원인 임계성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한 혐의로 보안사에 체포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과거사위는 “김씨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한 정황이 뚜렷한데다, 유일한 증거인 영사증명서도 재일 중앙정보부 요원이 법적 공문서 형식을 가장해 보내온 것으로 드러났다”며 “고무·찬양은 있었지만, 간첩행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헌치·김양기씨는 재일 공작지도원의 지령으로 국내에 침투해 국가기밀을 탐지한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7년형을 선고받았다. 과거사위는 “이씨는 보안사에 불법구금된 뒤 1심 선고 때까지 4개월 이상 가족도 만나지 못했고, 김씨는 보안부대 지하조사실에 43일간 불법구금됐다”며 “불법체포와 구금, 고문 등 강압에 의해 조작됐을 개연성이 높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이들 사건에서 당시 안기부가 피의자에 대한 불법연행과 불법구금, 불법도청, 망원 활용 등을 일상적으로 자행했다”며 “피의자들이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안사가 조사를 하고 마치 안기부가 사건을 조사해 송치한 것처럼 안기부 수사관의 명의를 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과거사위는 이종수 사건등 보안사가 수사한 12개 사건에 대해서는 소송기록 등 관련 서류를 통한 조사를 했지만 간첩조작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로 ‘12·12 쿠데타와 5·18 민주항쟁’, ‘10.27 법난’ 등 과거사위의 8개 진상규명 사건 조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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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국정원 과거사위는 칼858기 폭파사건이 북한 대남공작 조직의 공작원 김현희·김승일씨에 의해 이뤄졌으며, 안기부가 사건을 사전에 인지·기획·공작했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제기된 의혹만 350건인 이 사건 관련 문서 15만여쪽, 관련자 93명을 조사한 결과다.

그러나 과거사위는 안기부가 1987년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선거 전 김현희씨를 압송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하는 한편, 김씨의 진술만 듣고 서둘러 수사결과를 발표해 의혹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또 이를 위해 내무부·안기부 등 10개 정부기관이 동원됐으며, 김씨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김씨의 사면이 추진됐다는 사실도 밝혔다. 과거사위는 “실체가 명백한 사건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경우 불필요한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다시는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활동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국정원에 촉구했다.

과거사위는 안기부 개입 의혹의 주요 근거였던 △김현희 화동사진 △북한 출신 여부 및 행적 △폭약의 종류·양 등을 규명했다. 과거사위는 1972년 평양 남북조절위원회 당시 화동이 김현희라는 사실을 당시 일본 공산당 기관지 평양 특파원으로부터 사진을 전량 확보해 확인했다. 또 안기부가 임의로 추정했던 폭약은 ‘콤포지션’ 계열일 가능성이 높으며, 폭약을 숨긴 라디오가 정상 작동했던 점을 고려할 때 당시 발표된 350g보다 적은 양이 사용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기획 자작극’의 당사자로 지목됐던 안기부는 ‘혐의’를 벗었지만 △블랙박스 등 잔해수거를 통해 사고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점 △김현희씨와 당시 수색을 지휘한 대한항공 사장의 거부로 이들을 면담조차 하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됐다. 칼858기 폭파사건은 지난 7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에서도 조사 개시 결정이 내려져, 다시 한번 정부 차원의 판단을 남겨놓고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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