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섬 - 1집 망원동로마니
신나는 섬 노래 / 망원동로마니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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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처음 알게 되어 구입했는데, 곡들이 그림 같음. 때론 신나고, 때론 슬프고... 듣다 보면 촛불 공연 때 수화하시던 분의 흥겨운 몸짓이 계속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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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Malo) 5집 - This Moment
말로 (Malo)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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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곡들이지만, 말로가 부르니 색이 확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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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바다 - 칼 슈미트의 세계사적 고찰
칼 슈미트 지음, 김남시 옮김 / 꾸리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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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칼 슈미트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Governing by Debt에서 라자라토는 슈미트가 정의한 노모스의 세 가지 뜻 – appropriation, distribution, and production – 에 주목하면서 자본주의의 국면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밝혔는데, 그 논의가 흥미로워 슈미트의 국역서들을 찾아보았다. 1995년에 대우학술총서로 출간된 『대지의 노모스』(최재훈 역)는 라자라토가 인용하는 책 말미의 부록을 누락하고 있었다. 살짝 실망하여 다른 책들을 보다가 읽게 된 책이 바로 『땅과 바다: 칼 슈미트의 세계사적 고찰』(꾸리에)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42년에 출판되었다.

  먼저 구어체로 쓰인 문체가 특이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슈미트가 딸에게 이야기해주는 형식을 한국말로 옮긴 것이었다.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제목을 갖고 있지 않아서 목차만 보고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고대의 과학적 사상과 구약의 신화에서 추출된 개념들을 통해서 서양사를 직조하는 슈미트의 안목이 탁월하다.

 

1.

  “인간은 땅의 존재라는 말로 시작되는 책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이오니아 자연철학 시대의 4원소 -, , 공기, 로부터 시작하여, 욥기(40-41)에 나오는 LeviathanBehemoth를 차용하면서 19세기 말까지의 세계사를 양자간의 투쟁, 곧 대양(권력)과 대륙(권력) 간의 투쟁으로 흥미진진하게 해석한다.

  1000년경부터 지중해를 지배했던 베네치아, 브로델이 말하는 장기 16세기에 해당되는 시기에 가장 앞선 조선기술과 고래잡이를 했던 네덜란드(6), 16세기 후반부터 사략선을 앞세워 가톨릭 세계권력인 스페인을 결국 격퇴하는 대양 주름잡이영국(7-9)까지 오늘날 세계체계 연구자들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라고 부르는 국가들의 등장이 바다의 제패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서 영국은 이전의 대양 권력들과는 달리 전지구적 차원에서 공간혁명, 곧 공간에 대한 인간의 관점과 척도, 준거뿐 아니라 공간 개념의 내용 자체를 변화시키는 혁명을 성취한다(10, 72). 그 이전의 알렉산더 대제의 정복, 1세기의 로마 제국 확장, 십자군 전쟁이 문화적 전환과 동반된 공간의 확장을 초래하였다면, “로마 제국의 멸망, 이슬람의 확산, 아랍과 터키의 침략은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유럽의 육지화와 공간의 수축을 야기했(11, 77).

  16-17세기의 신대륙 발견과 세계 일주는 진정한 의미에서 처음으로 완벽한 지구적 규모의 공간혁명을 발생시켰다. 이제 지구가 둥글며 태양을 공전하고, 우주는 별들이 무한한 공간 속에서 중력의 법칙 덕에 인력과 척력이 서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는 추론이 확고부동한 경험이자 실체적 사실로 자리매김된다. 이로부터 이전까지는 낯선 관념이었던 비어있는 공간을 인식하고, 자신과 세계가 그 빈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12, 81-3). 새로운 공간 개념의 등장은 중세 고딕 예술이 르네상스 회화의 원근법에 의해 대체되는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2.

  슈미트는 13장에서 모든 질서란 결국 공간의 질서라고 하면서, 근본적인 질서, 노모스를 각주에서 짧게 정의한다. 14장부터 그는 유럽이 신대륙을 (원주민으로부터 강제로) 취득하고, 나눠갖기 위해 서로 싸우는 과정 속에서 노모스의 세 가지 의미 취득, 분배, 생산과 소비 가 적극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한다. 소위 신대륙의 발견 이후의 역사를 종교전쟁으로 폭발한 기독교 정복자들 간의 갈등,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 사이의 세계투쟁뿐만 아니라, 땅과 바다, 흙과 물이라는 원소의 대립과 연결시키는 그의 논의는 매우 흥미롭다. 그는 이러한 대립을 진정한 동지-적의 대립이라는 정치적인 것에 관한 그의 대표적 논의와 연결시킨다.

  16-18장은 홉스봄이 19세기 3부작을 통해서 다룬 영국 헤게모니의 등장과 성숙 과정의 핵심을 압축적이면서 속도감 있게 서술한다. 영국의 대양 취득, 이에 기반한 자유무역 제국주의, 그리고 산업혁명이 다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땅과 바다의 원소적 관계도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왜인지 아니? 거대한 물고기였던 리바이어던이 이제 기계로 변신했기 때문이야. … 기계는 바다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켰지. 대양 권력의 위대함을 불러내던 대담무쌍한 인간의 힘이 이전까지의 의미를 잃어버렸지” (119-120).

 

그리고 그는 이 산업혁명이 영국 세계권력의 비밀이었던 진정한 해상적 실존의 핵심을 타격하였다고 한다.

  19-20장은 미국과 독일 같은 후발 산업화 국가의 추격 과정, 2차 산업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루는데, 이 때 등장한 공군력은 땅과 바다에 이어 새로운 차원을 점령한다. 무기, 교통수단, 척도, 규범 등에서 또 한 번의 공간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는 흙과 물에 이어 공기 혹은 불이라는 새로운 원소의 등장으로, 혹은 리바이어던과 베헤모스에 이어 세 번째 거대한 새가 등장했다고 특징지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16-17세기에 진행된 공간혁명만큼 혹은 그보다 더 파급력이 큰 공간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영국의 바다 취득의 토대가 사라지고, 당시까지의 대지의 노모스 역시 사라지고, 인간 실존의 변화된 척도와 관계들이 새로운 노모스를 강제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세계의 종말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는 노모스 자체의 종말이 아니라, 낡은 노모스의 사멸과 새로운 노모스의 등장이라는 것이다.

 

3.

1981년에 쓰여진 후기에서 슈미트는 가족의 삶이 경작지인 땅을 필요로 하듯, 산업은 외부로 부흥하기 위해 바다를 필요로 한다는 헤겔의 『법철학 요강』 247절을 인용하면서, 눈 밝은 독자들은 243-246절이 맑스주의를 통해 전개되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 책이 247절을 전개시키려 했다는 것을 발견하리라고 이야기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헤겔의 『법철학』을 찾아보았다. 『법철학』은 1820년에 출판되었고, 360절로 되어 있는데, 본론은 법/권리, 도덕, 인륜의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3부 인륜은 가족, 시민사회, 국가로 이루어져 있다. 슈미트가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32장 시민사회의 뒷부분에 해당된다. 243절은 시민사회에서의 부의 축적과 노동자 계층의 소외, 예속, 궁핍을, 244절은 노동자계급의 자존감 상실과 천민으로의 전락, 그리고 반대편의 부의 집중을, 245절은 빈곤 구제를 위한 공적 개입과 자율적 시민사회의 원리 간의 대립, 그리고 생산물의 과잉과 소비의 부족, 곧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이야기한 상업공황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후의 절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확장과 식민지의 건설로 이어진다.

  오래 전 읽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의 내용은 이제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법철학』 자체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내 생각에, 슈미트는 『법철학』의 243-246절이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예비하고 있다면, 247절은 맑스가 『자본』 저술 전에 계획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던 세계시장과 식민지에 관한 저술 계획을 예비한다고 보는 것 같다. 슈미트는 맑스가 계획만 했던 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를 리바이어던이 물고기에서 기계로 바뀌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전지구적 공간혁명과 노모스의 교체로 서술한 것이다.

 

4.

  당분간 슈미트나 헤겔을 읽을 여유는 없을 것 같다. 『땅과 바다』를 읽은 성과라면, 슈미트가 이해하는 노모스의 세 가지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appropriation을 『땅과 바다』와 이전에 번역된 『대지의 노모스』 두 권 모두에서 취득으로 번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Appropriation은 보통 전유라는 일상에서는 잘 안 쓰는 말로 번역하는데, “취득이라는 말이 더 쉽게 다가오지만, appropriation에 함축되어 있는 강제성의 측면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땅과 바다』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또 아는 만큼 보이는 책인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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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을 다 읽기도 전에 오역 때문에 짜증나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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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인간- 인간 억압 조건에 관한 철학 에세이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지음, 허경.양진성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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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통치- 현대 자본주의의 공리계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허경 옮김 / 갈무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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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리차드 세넷 지음, 조용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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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capitalism을 신자유주의로 번역해서 애덤 스미스를 신자유주의자라고 버젓이 번역해 놓은 가관인 책. 잘 읽히는 오역으로 점철되어 있음. 그래서 더 나쁨.
민주주의 살해하기- 당연한 말들 뒤에 숨은 보수주의자의 은밀한 공격
웬디 브라운 지음, 배충효.방진이 옮김 / 내인생의책 / 2017년 6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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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격 없는 번역자들의 명작 망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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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시대 대기업의 진화
베넷 해리슨 지음, 최은영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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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일부를 대충 읽었던 것이 10년 전이다. 그 때만 해도 별 재미없는 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나니 이 책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대기업의) 행위가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동을 어떻게 직접적으로 만들어 내는가의 문제인 행위자의 구조화-구성적 역할에 대한 탁월한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또 흔히 분리되어 다루어지는 서로 다른 스케일을 지닌 구조들의 변동이 이 단일한 행위의 분리불가능한 구조적 효과로서 설명된다. 곧 세계경제의 변동(초국적 네트워크 생산체계의 출현)과 일국 노동체제 변동(노동시장의 분절)이 lean and mean한 기업조직을 추구하는 대기업의 유연화 전략을 통해 훌륭하게 매개 연결된다. 지은이 베넷 해리슨 (1943-1999)은 경제학, 경영학, 정치학, 지리학, 사회학 등 개별 분과학문의 연구업적을 가히 르네상스 학자적이라 할만한 포괄적 통찰력을 통해 종합하여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글로벌-로컬 넥서스 연구의 훌륭한 전범이다.

2.
피오르와 세이블이 쓴 The Second Industrial Divide를 비롯하여 일련의 저작들은 1970년대까지 자본주의의 지배적 경향으로 나타났던 자본의 집적(concentration)과 집중(centralization)을 통한 독점대기업의 발전 추세가 유연적 생산 방식을 갖춘 소기업 집단의 발전으로 역전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이 저작들에서는 대량생산 대중소비의 시대가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변모하면서 대기업이 그 규모가 야기하는 경직성으로 인하여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멸종해가는 공룡처럼 그려진다. 그러므로 중소기업 중심의 지역 클러스터를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 좌우파 모두에게 주목받았다. 이는 지방정부를 집권했던 서구 사민주의 정당들의 “진보적 지역주의(progressive localism)”의 정책적 필요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국가 간의 공생 관계를 비판하면서 경제의 자유방임을 옹호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도 부합한다. 베넷 해리슨의 이 책은 이런 주장들에 대한 실증적 비판이다. 피오르와 세이블이 그들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제3 이탈리아 “The Third Italy”의 경우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벤처 기업의 혁신적 성격의 본보기로 예시되는 실리콘밸리의 경우를 실증적으로 검토한다. 소기업 옹호론이 대부분 “유연성(flexibility)”에 주목하지만, “소기업은 후발주자의 역할을 할 뿐 선도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또 “유연성의 추구는 개별 기업의 신속한 대응과 이윤 증대를 가능하게 하는 반면, 더 많은 사람들의 고용안정성을 해치고 임금을 삭감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최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정치 허무의식을 강화시킨다” (32). 소기업 육성론은 유연적 생산의 이러한 어두운 면을 외면한다.

그렇다고 해리슨이 대기업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무 변화 없이 여전히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대기업이 그러한 어려움들을 타개하기 위하여 어떻게 스스로 변화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중 없는 집적” (concentration without centralization, 국역판에서는 “이심화된 집중”으로 번역)으로 요약할 수 있는 네트워크화된 생산이 해리슨이 내리는 답이다. 소기업 발달론이 주목하는 한 측면, 곧 대기업의 집적된 경제력(concentrated economic power)이 유연성이 요구되는 시기에서는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든 이유 자체는 옳지만, 이로부터 대기업이 쇠퇴하리라는 전망을 도출해내는 것은 틀렸다는 것이다. 곧 소기업 발달론이 주목하는 생산단위의 탈집중(decentralization of production units)은 소기업과 마찬가지로 유연화를 추구하는 대기업에도 나타나며, 이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기제이다. 곧 상이한 규모의 기업들, 정부기관들 간의 거래 및 제휴 네트워크 안에 권력은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또 각각의 상이한 부문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부 역시 더욱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대기업은 이 “집중 없는 집적”을 통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한다. 해리슨에 따르면, 1970년대말 80년대 초에 분명해진 대기업의 부활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소를 통해 이루어졌다: (1) “린 생산전략”을 통한 중심-주변 기업간의 네트워크 조직의 발전, (2) 정보화로 가능해진 노동자에 대한 효과적 통제, “적시 공급”, 그리고 표준화, (3) 초국적 대기업 간의 전략적 제휴, (4) 고임금 노동자의 능동적 협조 유도 (34-37). 이러한 기제를 통해 대기업의 특권적 지위는 공고화되었다. 그러나 이 유연적 생산은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곧 네트워크 내의 핵심-주변 (core-ring) 간 노동시장의 분절을 심화시킴으로 계급간 불평등뿐만 아니라, 노동계급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이상이 1장에 정리되어 있는 이 책 전체의 개관이다. 2부(2-5장)에서는 제3이탈리아와 실리콘밸리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소기업은 기술혁신의 선도자도 아니고 주된 일자리 창출자도 아니라고 비판한다. 또한 거기에도 국가, 초국적 자본, 금융 대기업은 주요 행위자로 등장한다. 사실 1장부터 5장까지는 사례 중심의 서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그래서 오히려 다소 지루할 정도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주도한 “지구적 네트워크 생산체계의 등장”을 다루는 3부, 특히 변화한 세계경제의 동학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기업의 대응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개념적 장치들을 소개하는 제6장은 읽는 이의 신경이 팽팽해질 정도로 집약적이다.

1980년대 초반 대처, 레이건, 콜의 집권 이후 선진국의 거시정책 상의 변화로 명백해진 신자유주의적 흐름이나 이에 대한 (프랑스) 좌파의 학문적 비판인 조절이론 모두 1970년대의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기존 대량생산체계의 위기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 점에서는 이 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위기를 타결하기 위하여 대기업은 어떻게 변모하였는가? 위기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기업간 경쟁의 대폭적 증가를 갖고 왔고, 대기업들은 이에 대해 기업간 네트워크 창출로 대응하였다. 이는 기업의 유연성 추구의 결과였다. 기업들은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수직적 분산(vertical disintegration)”을 통해 이전까지의 노사(labor-capital) 간의 내부 고용 관계를 발주자와 하청자(customer-supplier) 간의 외부 하청관계로 전화하는 한편, 자본간 경쟁은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s)라는 이름으로 경쟁자간 협력(cooperation between rivals)이라는 형태를 띠게 되면서 네트워크 생산체계를 창출하였다 (222-231). 이것이 지은이가 책 전체를 통해 반복하는 “탈집중화된 집적”의 과정이었다. 네트워크 생산체계의 등장은 다양한 모습을 띠고 나타났으며, 이것의 기원 역시 지역마다 상이하다. 7장에서는 일본과 유럽의 경험을, 8장에서는 미국의 경험을 반추한다. 이어 9장에서는 네트워크 생산체계의 부산물인 노동시장의 분절이 야기하는 불평등 증가를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4부의 10장에서는 정책적 함의를, 11장은 영어 2판의 저자 후기 (1997년)를 싣고 있다.

3.
이 책은 이 책의 출판 (1994년) 이후에 나온 마뉴엘 카스텔의 네트워크 사회 3부작 (1권이 1996년에 출판)보다 훨씬 재미있다. 네트워크 기업의 출현을 정보화 기술의 변천에 세세한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제도적 다양성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유연적 생산의 어두운 면에 큰 주의를 기울인다. 한편 출판 직전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나왔던 성과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통합적인 학문적 성과로 발전시켰다. 국역된『마이클 포터의 국가경쟁우위』, 제임스 워맥 등이 쓴 『생산방식의 혁명』, 데이빗 고든 등의 『분절된 노동, 분할된 노동자』뿐만 아니라, 번역되지 않은 스토퍼, 디큰 등의 경제 지리학적 연구, 제레피의 상품연쇄 분석 등 각개약진해온 개별 학문 연구들이 이 책에서 종합된다. 이를 통해 학제간 연구를 넘어 그야말로 단일학문적 성과를 도출한다.

4.
이 책에서 해리슨이 묘사하는 초국적 기업의 진화과정은 한국 재벌의 초국적화 과정과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책이 출판될 당시 한국 재벌은 초국적화의 걸음마를 막 떼고 있을 시점이었다. 그러나 Fortune지가 올해 발표한 2010년 세계 500대 기업에는 한국 대기업 14개[삼성전자 (22위), 현대자동차 (55위), SK 홀딩스 (82위), 포스코 (161위), LG 전자 (171위), 현대중공업 (219위), GS 홀딩스 (237위), 한전 (270위), 한화 (320위), 삼성생명 (332위), LG 디스플레이 (439위), 두산 (488위), 삼성 C&T (491위), 한국가스공사 (497위)]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한국 기업들 중 공기업이 민영화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자본집중과 자본집적의 병행을 통하여 이 위치에 이르렀다. 1997년 경제위기 직후 단행된 재벌간 빅딜은 M&A를 통해 동일 시장 내에서 경쟁자를 제거하는 효과를 갖고 온 자본집중의 대표적인 예였다. 외주하청의 증가라는 현상은 분명히 나타나지만, 이것이 자본집중의 완화를 갖고 오지는 않았다. 특히 현대 자동차의 경우는 최종상품 생산업체(현대-기아 자동차)가 후방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산업분야에 직접 진출하여 계열사(현대 모비스, 캐피코, 현대하이스코)를 설립함으로써 수직적 계열화가 더욱 심화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중소부품업체와 한보철강 등을 인수하면서 커왔다. 또한 전방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금융업계에서도 신흥증권을 인수하여 HMC투자증권을 설립한다. 이는 그 전까지는 사업체 공정 내부에서 생산되는 부품을 외부에서 구매조달하게 된다는 의미에서의 자본의 탈집중(decentralization)과는 상반되는 내부화 과정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재벌의 진화과정의 특수성과 경로의존성은 이 책에서 대기업 진화의 주요경향으로 상정된 “집중 없는 집적” 과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1970년대까지 법인자본주의 시대의 미국 대기업 모습과 여전히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5. 훌륭한 번역, 하지만 옥의 티 “이심화된 집중”?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명의 역자가 참여한 번역이라는데, 전반적으로 술술 잘 읽히는 훌륭한 번역이다. 또한 책의 제목인 Lean and Mean을 한국어로 번역하지 못한 것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이 말은 정말 영어로는 아주 쉽지만, 한국어로는 번역하기 지극히 힘든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요 개념인 concentration without centralization을 “이심화된 집중”으로 번역한 것은 문제가 좀 심각하다. 지리학 전공자들의 번역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아마도 “이심화”란 용어가 decentralization을 번역해서 한국 지리학계에서 통용되는 jargon인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단지 번역어가 보편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국지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경제학계를 중심으로 기존에 상대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통용되는 어휘체계와 충돌한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곧 경제학 분야에서는 concentration은 집적으로 centralization은 집중으로 번역한다. 이는 단순히 비슷한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시물을 갖고 있는 개념적 배타성을 유지해야 하는 단어들이다. 곧 자본의 집적(concentration)은 개별 자본의 축적의 진행으로 인한 성장을 가리키고, 자본의 집중(centralization)은 자본 간 합병을 통해 자본의 덩치가 커지는 것을 뜻한다. 지은이가 concentration without centralization이라는 개념을 택한 것은 곧 현재의 대기업 네트워크의 역사적 특정성을 “집적은 유지되지만 집중의 추세는 역전되었다”는 데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옮긴이들이 선택한 역어 “이심화된 집중”은 집적(concentration) 개념을 “집중”으로 오역하고, (상대적 보편성을 띠고 통용되는 집중(centralization)의 파생어인) 탈집중 (decentralization 혹은 without centralization)을 “이심화”로 국지화 시켜 버린다. 그러므로 “탈집중화된 집적”, 혹은 “집중 없는 집적”으로 국역하는 것이 보다 옳다고 생각한다.

번역 문제에 대한 언급은 언제나 그렇듯 옮긴이들의 값진 노력의 성과를 깎아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이 훌륭한 책이 한국에서도 그 값어치에 걸맞는 주목과 대우를 받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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