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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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하루 종일 집밖에 안 나가고 햄릿을 읽었다.

오늘(2020. 11. 15.) 종영하는 OCN 드라마 "써치"의 원형이 햄릿였던 것이다.

햄릿에서는 갑옷을 입고 무장한 선왕의 유령이 써치에서는 타겟, 그러니까 일종의 좀비로 나타난다. 햄릿과 용동진 병장은 둘 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유령/타겟을 목격한다.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는 전 남편을 독살한 남편 동생 클로디어스와 재혼하여 살며 햄릿으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케 하고 "존재할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유명한 고민을 하게 만들지만, 용병장의 어머니는 용동진을 자신의 동생에게 입적시키고, 용병장이 끝까지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나온다. 

따라서 햄릿에서는 친삼촌이 법적 아버지이지만, 써치에서는 외삼촌이 법적 아버지이다.

햄릿에서는 끝에 다 죽어 버린다. 

써치에서는 그럴 리 만무할 것이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것이고, 비중 없는 배역 몇이 죽겠지..

비극을 보기 힘든 시대다.

적어도 TV 드라마에서는... 현실에는 차고 넘치는 게 비극인데...

제2막 제2장

폴로니어스: ... - 무엇을 읽고 계십니까, 저하? What do you read, my lord?
햄릿: 말, 말, 말. Words, words, words.
폴로니어스: 내용이 무엇입니까, 저하? What is the matter, my lord?
햄릿: 네 용이 나타났어? Between who?
폴러니어스: 읽고 계시는 내용 말입니다, 저하. I mean, the matter that you read, my lord.
햄릿: 험담일세. - P70

제3막 제1장
햄릿: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건 - 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 - 아, 그게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잠 속에서 무슨 꿈이,
우리가 이 삶의 뒤엉킴을 떨쳤을 때
찾아올지 생각하면, 우린 멈출 수밖에 -
그게 바로 불행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이유로다. - P94

제3막 제2장
배우 왕: ... 결심이란 기껏해야 기억력의 노예일 뿐, Purpose is but the slave to memory;
태어날 땐 맹렬하나 그 힘이란 미약하오. Of violent birth, but poor validity;
그 열매가 시퍼럴 땐 나무 위에 달렸지만, Which now, like fruit unripe, sticks on the tree;
익게 되면 그냥 둬도 떨어지는 법이라오. But fall unshaken when they mellow be.
우리들이 자신에게 빚진 것을 잊어버려
못 갚는 건 정말이지 피할 수가 없는 거요.
격정 속에 우리들이 자신에게 제안한 건
그 격정이 사라지면 결심조차 없어지오.
슬픔이나 기쁨이나 격렬하면, 행동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그 자체가 소멸되오.
기쁜 마음 광분하면 슬픔 마음 통탄하고,
별것 아닌 사건으로 슬픔 기쁨 엇갈리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아니하며, 사랑조차
운에 따라 바뀌는 건 이상할 것 하나 없소.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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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 캄보디아에서 박정희를 보다 유재현 온더로드 3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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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캄보디아는 이미지의 파편, 정보의 조각일 뿐이었다. 가까이는, 아마 1년도 더 된 일인 것 같은데, **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봤던 인상적인 사진과 글들이었다. 그 전에는 앙코르와트 사원이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화양연화였다. (왕가위도 좋고, 장만옥, 양조위도 좋아하지만, 이 영화는 난 참 별로였다. 서사가 너무 약하다. 글쎄요즘 다시 본다면 어떨지사랑에는 서사보다는 격정과 이미지가 더 중요한 것일텐데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걸 보면 화양연화를 봤을 때보다는 나이가 먹은 것인가? 모르겠다.) 그리고 기억의 아주 먼 저 편, “킬링필드”…

이 책은 이런 캄보디아의 동떨어진 이미지들을 지식과 연결시켜주었다. 6개월 동안 프놈펜에서 머물면서 찍은 사진들과 짧막한 글들을 통해 현재 캄보디아의 독재자 훈센과 정희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킨다.

"위대한 박정희는 남한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살아있고 건재하다. 중국공산당을 훈육한 박정희에 대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자들은 경의를 표하고 있다. … 그 중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서도 특출하게 박정희유훈을 실현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적극적이다. … 2006 7월에서 그 해 12월까지 6개월 동안 프놈펜에 머물면서, 나는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박정희 시대의 인간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캄보디아의 훈센 개발독재라는 부활한 박정희 시대가 풍기는 비역하고 참혹한 냄새를 통해 내 자신이 관통했고 우리 모두가 관통했던 그 시대의 벌거벗은 실체를 더듬을 수 있었다. 박정희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인간의 얼굴과 체온이 그곳에 있었다." (11-12)

지은이 유재현이 훈센의 캄보디아에서 한국의 6-70년대 박정희와 그 시절의 인간의 데자부를 보았다면, 유재현의 글을 보면서 얼마전 서평을 썼던 조희연의 책을 연상하게 되었다. 유재현이 훈센을 보면서 박정희를 떠올리는 것은, 조희연역사적 박정희현재적 박정희와 대면시키겠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하여서, ‘개발동원체제라는 개념을 통하여 그러한 체제 성격 – “이런 체제는 사회를 군대식으로 조직화해서 성장효과를 극대화하고, 독재자를 근대화의 영웅으로 만든다” (조희연, 2007: 13) – 이 남한의 박정희 정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유재현의 이 책은 마치 조희연의 주장을 알고서 뒷받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박정희에 대한 세계의 유명한 독재자들 (북한의 김정일,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싱가포르의 리콴유)과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그들의 찬양을 싣고 있다 (80-81).

유재현박정희 신드롬의 연장 속에서 이명박을 해석한 것도 흥미롭다. 스승이 제자를 두어 후대를 예비하는 데, 첩첩산중에 유폐되었다거나 하는 비상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혈육을 적제(適弟)로 삼는 우둔한 짓은 멀리하는 법이다. 근친교배란 열성유전자밖에는 보장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후대를 위해 천릿길이라도 헤매야 하는 법인데, 예컨대 무림의 세계가 그렇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혈육에게 심심풀이로 무공을 전수하는 경우에도 진정한 제자는 어느 날인가 어느 곳에서 흘러들어온 까까머리가 차지하게 마련이다. 무림의 국민교육헌장에 명시된 철칙 조항이다. 누가 박정희의 신실한 제자인가? 이명박이다 (9).

이명박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캄보디아 훈센 총리 경제고문의 직함을 갖고 있다고 한다 (58). 캄보디아 한국 교민지에 실린 말에 따르면 훈센은 죽은 사람 중에서는 박정희,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는 전두환을 제일 존경한다고 한다 (80).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내일 저녁, 그는 아마 웃고 있을 거다. 그가 이명박이든, 캄보디아의 훈센이든, 전두환이든, 지하의 박정희든 말이다.

캄보디아가 어떤 나라인 지 알고자 하는 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권해주고 싶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게 지식이 아니라, 네이버의 지식인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정보 쪼가리라면 이 책은 좀 머리가 아플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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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0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0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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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운명이란 이런 삶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아니, 이 책의 주인공 신길만의 삶은 너무도 기가 막혀 그 말을 붙이는 것도 망설여진다. 읽는 내내, 정말 이런 삶이 가능했을까 궁금했다. 나찌 군대에 복무한 조선인, 신길만.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군에서, 소련군으로, 독일군으로, 끝에는 미군의 포로로, 군인과 포로의 신분을 번갈아 가며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여, 또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소련으로 넘겨져 처형당하는 한많은 인생 여정. 조정래의 소설은 늘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시공간 속에서 있었을 법한 삶을 탁월하게 그려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없는 얘기를 꾸며낸 것 같지는 않았다.

 

나의 이 의문은 책 뒤의 해설을 읽으면서 쉽게 풀렸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미군에게 붙잡혔던 동양인 독일군 포로의 사진에 대해 언급하는 해설은 이 인물에 대한 추측이 몇 년전 부터 인터넷에서 유행하였고, 결국은 방송사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노르망디의 코리안

 

몇년전 방영되었던 SBS 스페샬 2부작 노르망디의 코리안을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풀렸지만, 이 소설에 대한 감탄은 반감되었다. 처음에 사진만 보았을 때에는, 어떻게 저 한 장의 사진을 갖고 한 권의 장편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역시 조정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소설을 너무 쉽게 쓰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코 폄하할 마음은 없다.

 

조정래는 조정래다. 약소 민족의 한, 민초들의 고생스러운 삶, 정겨웠던 농촌 고향과 남겨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남자들의 음담까지도 예전과 똑같다. 역사를 이렇게 탁월하게 형상화할 재주가 있는 이가 또 누가 있을까? 그런데 늘 되풀이되는 주제들이 이제 좀 불편하다.

 

이 소설이 펼쳐지는 20세기에서 가장 야만적이었던 시대를 거쳐 민족주의는 전지구적으로 확립되었다. 민족은 강자의 논리였지만, 또 동시에 그것에 저항하는 약자의 논리이기도 했다. 비교적 짧은 몇 년동안 목숨 보전을 위해 3개국의 군복을 입어야 했던 신길만의 인생은 약소민족의 비애를 표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목숨 앞에 민족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민족해방슬로건도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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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3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7-06-1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 저도 그 문제를 좀더 생각해보긴 해야 해요.. 국제결혼율이 15%에 육박하는 세상에 주변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 '민족' 담론은 참으로 짜증나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도 일본국적과 분단된 남북한 국적 모두를 거부하며 '조선'이라는 민족적을 유지하면서 차별을 감수하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을 보면 '민족' 문제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거든요. 민족해방 구호 없는 '반미'를 고민할 때입니다. 오늘이 미선 효순 5주기이군요.

2007-06-14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7-06-15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 이 리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니 의외인걸요.. 어쨌든 그 다큐멘타리는 꽤 잘 만든 것 같더라구요. 감사합니다. ^^

rosa 2007-06-1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까 말까 망설이다 서점에 서서 봤는데요. sbs스페셜 탓인지 별로 감흥이.. --; 오랜만에 시내 나가서 책 뒤적이는 재미는 좋았습니다. ^^

에로이카 2007-06-1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osa님 그러셨군요. 그 다큐멘터리를 봤다면, 이 책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알라딘 덕인지, 요즘은 서점에서 책을 뒤적일 일이 전혀 없군요. 더운 여름 즐겁게 보내시기를.. ^^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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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로 강박, 불안감 등을 안고 산다. 때로는 그 강박과 불안감을 야기하는 사태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혹은 단순히 싫어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대상에 몰입함으로써 위안감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해야할 일을 미루면서 딴 일에 몰두한다고 해도 삶의 궤도를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원래 그 해야할 일, 진도가 나가야 하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그 몰입의 성과가 주는 위안이란 금새 초라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이 정작 해야할 일은 다른 대상에 몰입해 있는 순간에도 나의 뒤통수를 끊임없이 „“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대체적인 몰입 행위가 끝이 났을 때에도 그 눈길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면 다른 몰입대상을 찾게 될 것이고, 이러한 강박회피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친 강박과 불안에 시달리는 것도, 그 반대의 강박-불안로부터의 지나친 회피도 어느 정도가 넘어서면 정신질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질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다소 주관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 불안함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정도로까지 발전할 경우, 대체로 의사들은 정신질환 판정을 내리는 것 같다. 물론 정신질환이 아니라 성격이상인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과 생활하는 게 힘들 수 있고,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약물 치료가 가능한 것은 확실히 정신질환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정신질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점프할 수도 있겠다.

 

비타민 주사라는 위약(placebo) 처방만으로 환자들을 진료하는 이라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공중그네]는 이 애매한 경계에 있는 환자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도 일종의 유사-정신질환을 갖고 있고, 자신의 불안함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그 불안의 근거를 회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름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 내에서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던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신감을 잃게 되고, 이라부를 찾아온다. 환자들이 보기에도 별로 미덥지 못한 이라부는 환자들의 전문 영역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보이며, 아이 같은 순진무구함과 열정으로 도로 표지판에 장난낙서를 하고, 공중그네에 도전하며, 소설을 쓰겠다고 난리를 친다. 이라부는 환자가 갖고 있는 것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그들에게는 없는 것(자신감, 즐거움,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움)으로 충만하다. 분명 저자는 독자들이 이라부가 아닌 환자들에게 감정이입할 것을 예측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 환자가 갖고 있는 것 (전문성)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난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의 좌절을 마주하기가 싫기 때문에 그 불안과 강박을 회피하는 쪽을 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문득 든 생각은 이거다. 불안과 강박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선택해보면 어떨까? 그것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문제는 하기 싫은 일상의 과제에 전력하는 것을 선택했을 때 그것이 불안과 강박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들자신감, 성취감, 도전정신, 즐거움을 갖는 것 같다. 그래.. 그래보자..

 

책은 재미있다. 그렇다고 별 대단한 내용이 있거나 그렇지는 못하다. 책을 읽고 나서는 나오키상이 그렇게 대단한 상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까지 했다. 지하철에서 시간 떼우며 읽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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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7-06-08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박회피, 저 부르셨어요? ㅎㅎ '공중그네' 리뷰마저도 에로이카님이 쓰시니 진지한 레포트가 되네요.^^ 그래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재미를 되찾으신 게 좋아보여요!

에로이카 2007-06-0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나어릴때님도... 새삼 반갑네요.. 쓰다보니 좀 이상한 글이 되어 버렸어요.. 이런 책을 읽은 것은 하도 오랜만이라.. 앞으로는 자주 보겠지요..
 
영화로 읽는 세기말의 역사 - 밀레니엄총서 1
신채호 지음 / 바다출판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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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의 우상이었던 가수는 오랜만에 들고온 앨범에서 노래했다. “언제나 영화처럼.” 지금은 끊임없이 반복되던 이 구절 외의 다른 가사들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가사가 끊임없이 반복되어도 노래는 끝나기 마련이다. 사실 언제나 영화처럼살고 싶다는 꿈은 영화도 노래처럼 결국은 끝나고 만다는 사실에 기반해있다. 내게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기준은 아주 단순하다. 영화가 끝나고,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떠나지 못하는 영화는 좋은 영화고, 그렇지 않은 영화는 그냥 그런 영화다.

 

이 책에는 아주 오래전 극장에 그렇게 끝까지 앉아 모든 게 다 끝나고 환해지는 조명에 서둘러 눈물을 훔쳐야 했던 추억의 명화들이 나온다. 그러나 영화에 관해 말하지만, 영화평론서가 아니다. 사실 난 영화평론가가 쓴 영화평론들은 별로 재미가 없다. 그들은 영화의 여러 장치, 각본의 꼼꼼함, 배우들의 연기에 관해 평하고, 때로는 친분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뒷얘기들을 전한다. 이 책에 그런 얘기는 없다. 심지어 어떨 때 영화란 그저 얘기의 삽화일 뿐이다.

 

또 영화평론들은 스포일러거나 반대로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 역력하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영화평론은 영화에 대해 말해야 하지만, 그 짜고치는 고스톱판에 엉덩이를 밀어넣으려면 영화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면 안된다.

 

이 책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CF성 평론이 아니다. 때로는 스포일러일 수는 있어도 간략한 줄거리만을 전한다. 결코 영화에 대해 주제넘게 떠들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평론가들의 몫일 뿐그저 영화가 보여준 만큼을 갖고 세상의 얘기를 전한다. 이 책은 역사책이다. 열한개의 영화가 다루어지고, 그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역사를 담담하고 간결하게, 하지만 깊이있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푸른연>, <로메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포레스트 검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간디>, <더 파워 오브 원>,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인도차이나>, <오피셜 스토리>.

 

<포레스트 검프>를 제외하고는 다 묵직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후까시 잡기 좋아하는 감독들의 영화와 달리 얘기가 꼬여있지 않고, 말하는 바가 명확한 영화들이다. 지배와 착취, 그리고 그로 인한 희생과 그에 대한 저항의 얘기들이다. 이런 숙연한 영화들을 떠올린다면, “언제나 영화처럼이라고 노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은이는 말한다. “영화는 끝났다. 그러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파워 오브 원>은 주인공이 아프리카너는 아니지만, 어쨌든 백인이라는 당시 나름대로의 삐딱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참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수용소에서주인공 PK의 지휘에 맞춰 수천명의 흑인들이 노래하는 씬은 지금도 마음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아쌈멤마 얌멤메 아쌈멤마 얌멤메, 림보람보 림보람보 아리예 아리예뭐 이런 가사의 그 노래는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지만 그 자체로 영혼의 울림이었다. 영화는 PK가 옥스포드대로의 진학을 포기하고, 흑인해방운동에 뛰어든다는 내용으로 끝이 난다. 이 책은 그 이후 만델라의 당선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고단한 역사를 돌아본다. 역사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되지만, 그 영화의 시작 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영국인과 아프리카너’, 서로 다른 두 백인 집단 간의 갈등에 대해 들어본 바도 없었는데, 이 책은 그 갈등의 역사적 기원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초기 팽창과정과의 연관 속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들은 종종 십여년의 세월을 건너뛴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노인이 된다. 이 책은 그 건너뛴 십여년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준다. <인도차이나>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 밥티스트 옆에 있던 갓난 아이 에티엔느는 다섯살 때 할머니를 따라 프랑스로 가는데, 10년 후 다 큰 청년이 되어 등장한다. 그리고는 제네바 협정에 베트민 정부 대표로 온 생모 까미유를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않는다. 이 책의 지은이는 영화에서 건너뛰어버린 시절의 살아있는 역사를 들려준다. 나치 독일에 유린당한 주권과 국토를 회복하기 위해 끈질긴 저항을 펼쳤던 프랑스라 할지라도, 2차대전 종전 이후까지 인도차이나에서는 여전히 제국주의의 면모를 바꾸지 않았다. 마치 오늘날의 이스라엘처럼 당시의 프랑스는 자신의 피해에 민감하고, 가해에 무감한 양심마비 제국주의 국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베트남에 대한 더러운 전쟁을 중지하라는 시위가 벌어졌고, 미국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은 디엔비엔푸 최후 결전에서 아작이 나고 베트민에 항복하고 만다.  

 

한편, 1950년대 말 흐루시초프 시대에 기숙사 생활을 하던 세 명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얘기로 시작하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20년 정도의 세월을 건너뛰고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중년을 맞이하는 지를 보여준다. 일찌감치 사람좋은 농부와 결혼했던 이는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고, 젊은 시절 수영영웅이었던 남편은 알콜 중독자가 되었고, 미혼모였던 이는 신분상승의 바늘구멍을 뚫고 공장의 관리자가 된다. 영화에서 생략된 이후의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의 시기는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환멸의 연속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부업을 해야 했고, 결근이 잦았으며, 근무를 땡땡이치고 상점에 갔다. 모든 소비재가 부족했지만, 보드카는 언제나 풍족했고 알콜 중독이 큰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이 깝깝한 사회주의 혁명의 후퇴 과정을 지은이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 이 책만 봤다. 원래 한 챕터만 보려고 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반나절만에 다 봤다. 마침 몇몇 영화들은 영화음악 씨디를 갖고 있어서, <원스 어폰 어 타임>이나 <포레스트 검프>를 틀어놓고 그 영화와 관련된 역사얘기를 보니, 영화도, 음악도, 글도 근사했다. 그러고 보니 괜찮은 올드팝들로 채워져있는 <포레스트 검프> 씨디는 아주 오래동안 듣지 않았었다. 5년 전 크리스마스 즈음에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었는데, 그 때 운전할 때 들었던 음악이었다. 영화음악 씨디가 없는 경우에는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을 들었다. <천지인>을 들으면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읽었는데, 역시나,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장인 <오피셜 스토리>를 읽을 때에는다소 뜬금없긴 했지만,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 아마도;;) 스페인어 씨디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틀어놓았다.

 

어제, 그제, 연이틀 술먹고, 오늘은 반나절 동안 이 책만 봤다. 한량같이 지내는 와중에 이 책이라도 보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사실 1998년에 출판된 책이고, 제목도 근시안적이기 이를 데 없는 세기말의 역사고, 별로 잘 팔리지도 않는 것 같은데, 알맹이는 꽉 차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죽음과 사랑, 억압과 희망의 20세기 이야기인데, 이 부제가 책 내용을 더 잘 반영하는 것 같다. 지은이가 뭐하시는 분인 지 모르겠지만, 부디 다른 영화 얘기들도 좀 이렇게 써주시라겉만 삐까리번쩍한 영화평론들은 이제 쫌 짜증나고 지겹다        (2006.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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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7-05-1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쌈멤마 얌멤메 아쌈멤마 얌멤메, 림보람보 림보람보 아리예 아리예”??
에로이카 님 기억력이 참 비상하군요.
영화 <파워 오브 원> <모스크바는 눈물을...> 등 저도 재밌게 본 영화들이네요.
저자 이름 보고 다짜고짜, '단재 신채호 선생이 영화 이야기를?' 했다니까요.
리뷰 제목 심플하면서도 좋습니다.^^

waits 2007-05-15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와 무관하게 "언제나 영화처럼" 시절 전인권의 풋풋함이 새삼 아련하게 떠오르네요.
책 읽으시면서 나름 분위기 많이 잡으신 것 같은...^^ 재밌게 생긴 책 알려주셔서 감사!

에로이카 2007-05-15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기억력이 비상한 게 아니라,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OST를 구입해서 갖고 있거든요. 그 노래 제목이 Rainmaker였나 뭐 그랬어요. 그 노래가 참 좋기도 했지만, 수많은 흑인 수용자들을 백인 꼬마가 지휘하는 모습을 그렇게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어요. 그래도 좋은 영화이지요. 심플은 무슨요... 저도 로드무비님처럼 담백하면서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나어릴때님.. 내가 좋아하는 전인권은 딱 고 때까지인 것 같아요. 노래에 한해서는... 하긴 다른 것들 때문에 좋아했던 것은 아니고 노래 때문에 좋아했던 거니까... ㅎㅎ 읽는 책에 따라 다르긴 한데, 이런 책 읽을 때에는 음악도 들어야지요... 꼴에 폼생폼사거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