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시대 대기업의 진화
베넷 해리슨 지음, 최은영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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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일부를 대충 읽었던 것이 10년 전이다. 그 때만 해도 별 재미없는 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나니 이 책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대기업의) 행위가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동을 어떻게 직접적으로 만들어 내는가의 문제인 행위자의 구조화-구성적 역할에 대한 탁월한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또 흔히 분리되어 다루어지는 서로 다른 스케일을 지닌 구조들의 변동이 이 단일한 행위의 분리불가능한 구조적 효과로서 설명된다. 곧 세계경제의 변동(초국적 네트워크 생산체계의 출현)과 일국 노동체제 변동(노동시장의 분절)이 lean and mean한 기업조직을 추구하는 대기업의 유연화 전략을 통해 훌륭하게 매개 연결된다. 지은이 베넷 해리슨 (1943-1999)은 경제학, 경영학, 정치학, 지리학, 사회학 등 개별 분과학문의 연구업적을 가히 르네상스 학자적이라 할만한 포괄적 통찰력을 통해 종합하여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글로벌-로컬 넥서스 연구의 훌륭한 전범이다.

2.
피오르와 세이블이 쓴 The Second Industrial Divide를 비롯하여 일련의 저작들은 1970년대까지 자본주의의 지배적 경향으로 나타났던 자본의 집적(concentration)과 집중(centralization)을 통한 독점대기업의 발전 추세가 유연적 생산 방식을 갖춘 소기업 집단의 발전으로 역전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이 저작들에서는 대량생산 대중소비의 시대가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변모하면서 대기업이 그 규모가 야기하는 경직성으로 인하여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멸종해가는 공룡처럼 그려진다. 그러므로 중소기업 중심의 지역 클러스터를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 좌우파 모두에게 주목받았다. 이는 지방정부를 집권했던 서구 사민주의 정당들의 “진보적 지역주의(progressive localism)”의 정책적 필요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국가 간의 공생 관계를 비판하면서 경제의 자유방임을 옹호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도 부합한다. 베넷 해리슨의 이 책은 이런 주장들에 대한 실증적 비판이다. 피오르와 세이블이 그들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제3 이탈리아 “The Third Italy”의 경우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벤처 기업의 혁신적 성격의 본보기로 예시되는 실리콘밸리의 경우를 실증적으로 검토한다. 소기업 옹호론이 대부분 “유연성(flexibility)”에 주목하지만, “소기업은 후발주자의 역할을 할 뿐 선도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또 “유연성의 추구는 개별 기업의 신속한 대응과 이윤 증대를 가능하게 하는 반면, 더 많은 사람들의 고용안정성을 해치고 임금을 삭감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최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정치 허무의식을 강화시킨다” (32). 소기업 육성론은 유연적 생산의 이러한 어두운 면을 외면한다.

그렇다고 해리슨이 대기업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무 변화 없이 여전히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대기업이 그러한 어려움들을 타개하기 위하여 어떻게 스스로 변화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중 없는 집적” (concentration without centralization, 국역판에서는 “이심화된 집중”으로 번역)으로 요약할 수 있는 네트워크화된 생산이 해리슨이 내리는 답이다. 소기업 발달론이 주목하는 한 측면, 곧 대기업의 집적된 경제력(concentrated economic power)이 유연성이 요구되는 시기에서는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든 이유 자체는 옳지만, 이로부터 대기업이 쇠퇴하리라는 전망을 도출해내는 것은 틀렸다는 것이다. 곧 소기업 발달론이 주목하는 생산단위의 탈집중(decentralization of production units)은 소기업과 마찬가지로 유연화를 추구하는 대기업에도 나타나며, 이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기제이다. 곧 상이한 규모의 기업들, 정부기관들 간의 거래 및 제휴 네트워크 안에 권력은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또 각각의 상이한 부문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부 역시 더욱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대기업은 이 “집중 없는 집적”을 통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한다. 해리슨에 따르면, 1970년대말 80년대 초에 분명해진 대기업의 부활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소를 통해 이루어졌다: (1) “린 생산전략”을 통한 중심-주변 기업간의 네트워크 조직의 발전, (2) 정보화로 가능해진 노동자에 대한 효과적 통제, “적시 공급”, 그리고 표준화, (3) 초국적 대기업 간의 전략적 제휴, (4) 고임금 노동자의 능동적 협조 유도 (34-37). 이러한 기제를 통해 대기업의 특권적 지위는 공고화되었다. 그러나 이 유연적 생산은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곧 네트워크 내의 핵심-주변 (core-ring) 간 노동시장의 분절을 심화시킴으로 계급간 불평등뿐만 아니라, 노동계급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이상이 1장에 정리되어 있는 이 책 전체의 개관이다. 2부(2-5장)에서는 제3이탈리아와 실리콘밸리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소기업은 기술혁신의 선도자도 아니고 주된 일자리 창출자도 아니라고 비판한다. 또한 거기에도 국가, 초국적 자본, 금융 대기업은 주요 행위자로 등장한다. 사실 1장부터 5장까지는 사례 중심의 서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그래서 오히려 다소 지루할 정도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주도한 “지구적 네트워크 생산체계의 등장”을 다루는 3부, 특히 변화한 세계경제의 동학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기업의 대응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개념적 장치들을 소개하는 제6장은 읽는 이의 신경이 팽팽해질 정도로 집약적이다.

1980년대 초반 대처, 레이건, 콜의 집권 이후 선진국의 거시정책 상의 변화로 명백해진 신자유주의적 흐름이나 이에 대한 (프랑스) 좌파의 학문적 비판인 조절이론 모두 1970년대의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기존 대량생산체계의 위기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 점에서는 이 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위기를 타결하기 위하여 대기업은 어떻게 변모하였는가? 위기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기업간 경쟁의 대폭적 증가를 갖고 왔고, 대기업들은 이에 대해 기업간 네트워크 창출로 대응하였다. 이는 기업의 유연성 추구의 결과였다. 기업들은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수직적 분산(vertical disintegration)”을 통해 이전까지의 노사(labor-capital) 간의 내부 고용 관계를 발주자와 하청자(customer-supplier) 간의 외부 하청관계로 전화하는 한편, 자본간 경쟁은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s)라는 이름으로 경쟁자간 협력(cooperation between rivals)이라는 형태를 띠게 되면서 네트워크 생산체계를 창출하였다 (222-231). 이것이 지은이가 책 전체를 통해 반복하는 “탈집중화된 집적”의 과정이었다. 네트워크 생산체계의 등장은 다양한 모습을 띠고 나타났으며, 이것의 기원 역시 지역마다 상이하다. 7장에서는 일본과 유럽의 경험을, 8장에서는 미국의 경험을 반추한다. 이어 9장에서는 네트워크 생산체계의 부산물인 노동시장의 분절이 야기하는 불평등 증가를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4부의 10장에서는 정책적 함의를, 11장은 영어 2판의 저자 후기 (1997년)를 싣고 있다.

3.
이 책은 이 책의 출판 (1994년) 이후에 나온 마뉴엘 카스텔의 네트워크 사회 3부작 (1권이 1996년에 출판)보다 훨씬 재미있다. 네트워크 기업의 출현을 정보화 기술의 변천에 세세한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제도적 다양성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유연적 생산의 어두운 면에 큰 주의를 기울인다. 한편 출판 직전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나왔던 성과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통합적인 학문적 성과로 발전시켰다. 국역된『마이클 포터의 국가경쟁우위』, 제임스 워맥 등이 쓴 『생산방식의 혁명』, 데이빗 고든 등의 『분절된 노동, 분할된 노동자』뿐만 아니라, 번역되지 않은 스토퍼, 디큰 등의 경제 지리학적 연구, 제레피의 상품연쇄 분석 등 각개약진해온 개별 학문 연구들이 이 책에서 종합된다. 이를 통해 학제간 연구를 넘어 그야말로 단일학문적 성과를 도출한다.

4.
이 책에서 해리슨이 묘사하는 초국적 기업의 진화과정은 한국 재벌의 초국적화 과정과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책이 출판될 당시 한국 재벌은 초국적화의 걸음마를 막 떼고 있을 시점이었다. 그러나 Fortune지가 올해 발표한 2010년 세계 500대 기업에는 한국 대기업 14개[삼성전자 (22위), 현대자동차 (55위), SK 홀딩스 (82위), 포스코 (161위), LG 전자 (171위), 현대중공업 (219위), GS 홀딩스 (237위), 한전 (270위), 한화 (320위), 삼성생명 (332위), LG 디스플레이 (439위), 두산 (488위), 삼성 C&T (491위), 한국가스공사 (497위)]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한국 기업들 중 공기업이 민영화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자본집중과 자본집적의 병행을 통하여 이 위치에 이르렀다. 1997년 경제위기 직후 단행된 재벌간 빅딜은 M&A를 통해 동일 시장 내에서 경쟁자를 제거하는 효과를 갖고 온 자본집중의 대표적인 예였다. 외주하청의 증가라는 현상은 분명히 나타나지만, 이것이 자본집중의 완화를 갖고 오지는 않았다. 특히 현대 자동차의 경우는 최종상품 생산업체(현대-기아 자동차)가 후방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산업분야에 직접 진출하여 계열사(현대 모비스, 캐피코, 현대하이스코)를 설립함으로써 수직적 계열화가 더욱 심화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중소부품업체와 한보철강 등을 인수하면서 커왔다. 또한 전방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금융업계에서도 신흥증권을 인수하여 HMC투자증권을 설립한다. 이는 그 전까지는 사업체 공정 내부에서 생산되는 부품을 외부에서 구매조달하게 된다는 의미에서의 자본의 탈집중(decentralization)과는 상반되는 내부화 과정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재벌의 진화과정의 특수성과 경로의존성은 이 책에서 대기업 진화의 주요경향으로 상정된 “집중 없는 집적” 과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1970년대까지 법인자본주의 시대의 미국 대기업 모습과 여전히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5. 훌륭한 번역, 하지만 옥의 티 “이심화된 집중”?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명의 역자가 참여한 번역이라는데, 전반적으로 술술 잘 읽히는 훌륭한 번역이다. 또한 책의 제목인 Lean and Mean을 한국어로 번역하지 못한 것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이 말은 정말 영어로는 아주 쉽지만, 한국어로는 번역하기 지극히 힘든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요 개념인 concentration without centralization을 “이심화된 집중”으로 번역한 것은 문제가 좀 심각하다. 지리학 전공자들의 번역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아마도 “이심화”란 용어가 decentralization을 번역해서 한국 지리학계에서 통용되는 jargon인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단지 번역어가 보편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국지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경제학계를 중심으로 기존에 상대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통용되는 어휘체계와 충돌한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곧 경제학 분야에서는 concentration은 집적으로 centralization은 집중으로 번역한다. 이는 단순히 비슷한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시물을 갖고 있는 개념적 배타성을 유지해야 하는 단어들이다. 곧 자본의 집적(concentration)은 개별 자본의 축적의 진행으로 인한 성장을 가리키고, 자본의 집중(centralization)은 자본 간 합병을 통해 자본의 덩치가 커지는 것을 뜻한다. 지은이가 concentration without centralization이라는 개념을 택한 것은 곧 현재의 대기업 네트워크의 역사적 특정성을 “집적은 유지되지만 집중의 추세는 역전되었다”는 데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옮긴이들이 선택한 역어 “이심화된 집중”은 집적(concentration) 개념을 “집중”으로 오역하고, (상대적 보편성을 띠고 통용되는 집중(centralization)의 파생어인) 탈집중 (decentralization 혹은 without centralization)을 “이심화”로 국지화 시켜 버린다. 그러므로 “탈집중화된 집적”, 혹은 “집중 없는 집적”으로 국역하는 것이 보다 옳다고 생각한다.

번역 문제에 대한 언급은 언제나 그렇듯 옮긴이들의 값진 노력의 성과를 깎아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이 훌륭한 책이 한국에서도 그 값어치에 걸맞는 주목과 대우를 받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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