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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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수상작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해도 될 글을 이미상 「하긴」의 해설을 쓴 김녕 평론가(「내/네 뜻대로 되어라」)에게서 발견했다.

 

“무언가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모든 갈등의 기본적인 뼈대이다.”(p353)

“분명한 건,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최우선시된 나’라는 괴물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이미 집어삼켜서 자기애로 치환시켰으며 이후로도 얼마든지 더 그럴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86세대라는 익숙한 비난의 대상에 집약시켜 각자 자신으로부터 추방하더라도, 그것은 죽지 않을 것이다.”(p357)

 

 

그렇다. 각각의 소설은 인물들의 실패, 차갑든 뜨겁든 관조하든 세밀하든 자기애와 자기비판이 혼연일체를 이룬다.

 

 

이미상 「하긴」은 하긴 하는데 온통 부조리로 가득한 86 세대 한 아버지가 딸을 대학생으로 만들려다가 한강 공원 공중화장실의 임신 테스트기 천사로 만든 풍자 풍속극이다. ‘새로운 폐단을 배태·답습하는 모순적이고 퇴행적인 기득권층……진보에 대한 유토피아적 꿈……엘리트의 선민의식……왜곡된 우월감과 의무감, 그리고 은근한 멸시를 중핵으로 하는 통제와 특권 행사의 욕망’(p354, 김녕)의 문제가 “대의명분이 대입명분으로 수렴”(p334)되는 한국 사회에서 그 세대만 해당되지 않을 거란 걸 시사한다.

 

한국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도 우리의 생각은 속지주의(屬地主義) 자장에 있다. 백수린 「시간의 궤적」은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위해 파리로 온 두 한국 여성의 녹록지 않은 타국의 삶과 그들이 평생 감내해야 할 상실을 말한다. ‘나’가 선택한 새로운 삶은 기대와 다르다. 프랑스인과의 결혼으로 새 삶이 펼쳐졌지만 '나'는 태어날 아이가 “언젠가 나의 모국어조차 아닌 언어로 나를 증오한다고 말하고 떠날”(p179) 것을 예감하며 타국에서 영원히 이방인으로서 느낄 공포를 떨칠 수 없다. 결혼 전 '나'와 파리 주재원이었던 언니의 폭우 속 우정은 기억 속에서는 빛나지만 현실의 빗속에서는 고독을 마주 보게 하는 거울로 남는다. 비가 그쳐도 다시금 올 것이기에 슬픔도 그러할 것이다.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88년생 게이 소설가 ‘영’은 보수주의·가족주의·기독교에 갇혀 있는 엄마, 학생운동·민족주의·이데올로기(흔히 NL)에 갇혀 있는 12살 연상의 동성 연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열망을 결코 충족할 수 없다. 영은 “영영 용서할 수 없을 것”(p89) 같아 하면서도 “그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다”(p88)고 우주적 자장 속에 모두를 모은다. 이것은 단순히 ‘긍정’이나 ‘열린 결말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나를 분석하고 치유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모두가 필요하다. 모두가 어디까지인지는 각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정영수 「우리들」에서 정은과 현수가 자신들의 외도의 목격자이자 동조자이자 죄책감을 함께 나눌 동조자로 ‘나’를 필요로 했듯이 ‘나’도 연경과의 관계 설명을 위해 그들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사랑과 희망을 쉽게 동치(同値)하지만 그것이 어긋났을 때의 결과와 감정은 우리를 성장시키기보다 백치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같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과가 명확히 해석되지 않는 이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설명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는 변주를 우리는 계속 겪어야 한다.

 

 

김봉곤 「데이 포 나이트」 도 그런 고심이 역력하다. “어째서 나는 지금 이곳에 있고, 그곳에 없을까? 그건 공간과 시간을 치환하거나 섞어 생각해버리는 내게 자주 찾아오는 질문이었는데, 결국 시간이 흘-렀-다, 는 단순한 답이 정말 답이기도 해서 음,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지금도 좋아, 같은 준비된 대답을 매번 처음인 듯 내게 말해주었다. 물론 그것은 결론에 가까운 것이었지 답은 아니었고, 답 없는 것,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나는 질리지도 않고 반복했다.”(p279)

영화에서 낮을 밤으로 바꾸는 필터 ‘데이 포 나이트’는 현실에서는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가 H 선생과 묘한 메일을 나누지만 아직 사랑이 아니고 될 가능성도 묘연하다. 종인 선배와의 잠자리는 폭력이지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의 근접과 교환과 시간들은 사랑으로 변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 걸까. “나는 내가 아는 만큼만 보이는 걸까? 내 수준에 맞는 만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몰라서 불행해지는 걸까? 알고 싶었다.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싶었다. 내가 그만두지 않으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뿐이었다.”(p303) ‘나’는 “종인 선배의 무언가를 더 알기 위해, 기억해 캐내기 위해, 혹여라도 이해하기 위해, 애써 또 하나의 필터를 만들어 내게 덧씌우고 싶지 않았다. 그를 더는 알고 싶지 않았다.”(p305) 이 말은 우리의 앎이 열망, 기억, 필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설명된다. 눈을 가리는 것들,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들을 가려내고 발견하려면 정말 많은 것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것을 발견하고 물러난 정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의지ㅡ“나는 …… 그동안 …… 나는 이제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p219) ㅡ만큼은 가장 강경한 소설이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이다. “생계를 위한 일을 하거나 우는 시간을 빼고 나면 내게 남는 시간이 별로”(p224) 없는 서울을 떠나 ‘나’는 엄마-고향으로 왔고,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p206), “너 진짜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p225)라고 말하는 공격적인 언어의 세계가 아니라 공기나 휘파람 소리 같은 몽골 음악 ‘흐미’, 동네 아이들의 무용한 잡담, 시시하지만 서로를 살피는 엄마와의 대화가 마음을 채우는 세계다. 죽어도 알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신경쓰면서 없는 시간에도 ‘죽느냐 사느냐’로 고민하던 공간을 벗어나 ‘붕어빵이냐 옥수수냐’ 하는 것만 결정하면 되는 공간으로의 이동이 회복의 유예 시간일지 바틀비적 방랑으로 계속될지 현재로서는 모호하다. 이주란의 다른 단편에서도 이 전환의 얘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작가가 극단적으로 감행한 이 휴식과 거부의 방법론은 비슷한 고민에 있는 독자들에게 대리 체험의 공감과 위안을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이주란의 소설은 리얼 버라이어티 방송의 소설 버전 같아 신선함을 주기도 하는데, 조용조용 자기 챙김의 과정이 독자를 매료시킨다.

 

 

김희선 「공의 기원」은 영국인 수병으로부터 축구공을 얻은 조선 소년이 고된 삶 속에서 축구선수가 되지 못한 실패부터 축구공의 기계 생산 시스템 도입으로 현대인이 노동에서도 축출되는 미래의 삶도 조망한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서사의 중첩으로 “문명이 만들어낸 나쁜 것과 좋은 것들이 온통 한데 뒤섞여 있는”(p123) 시대의 반복도 재현한다. ‘나쁜 것과 좋은 것들이 온통 한데 뒤섞여 있는’ 것은 시대나 이야기만도 아니고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 조선 소년이 자신의 증조부였다고 말하는 박흥수가 축구공의 시초인 토마스 굿맨사를 사들여 증조부가 만들고 싶어 한 완벽한 축구공을 만들 기계를 도입한 것이 ‘멋진 신세계’로 완결되지 않듯이.

 

타인이 “내 삶을 지연시키는 존재”(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p88)로 생각되기 쉽고 “외로운 마음의 온도”(같은 소설, p24)가 우주의 밀도만큼 느껴지는 요즘이다. 우리는 ‘늘 하던 걱정… 그 걱정들을 정말 그만하고’(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p221) 싶다. “(나의 무의식이 조심스럽게 기억의 지뢰밭을 헤쳐 선별해낸) 가장 안전한 추억”(정영수 「우리들」, p246)만 떠올리며 그리움과 외로움에 허우적대며 평생 살 수는 없어 하면서 그리 살고 있다. 우리는 ‘나’만으로 치유될 수도 살 수도 없다. 김녕 평론가의 말처럼 “나의 소중함이 무사유적 자기애로 치달았을 때의 내적 파탄의 풍경. 그것은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황무지다.”(p358) 우리는 서로에게 미지의 존재이지만 서로를 보듬는 우주라는 것을 더 자주 자각해야 한다. 외계 생명체도 살기 싫은 지구가 되는 건 비극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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