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숨 : EXHALATION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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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 년 뒤의 미래에서 당신들에게 이 경고를 전송하고 있다. 이것은 백만 초 범위의 네거티브 딜레이 회로가 통신 장치에 장착된 이후 처음으로 도착한 장문의 메시지다. 다른 문제들을 다룬 다른 메시지들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메시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설령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의미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이며, 이 거짓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명의 존속은 이제 자기기만에 달려 있다. 어쩌면 줄곧 그래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자유의지가 환상인 이상, 누가 무동무언증에 빠지고 누가 빠지지 않을지 또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예측기가 당신에게 끼칠 영향을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는 굴복할 것이고 누군가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내는 이 경고는 그 비율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일을 한 것일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ㅡ<우리가 해야 할 일>

이런 생각은 동물원 사육사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에 동물 쪽을 선호한다는—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애나는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한다. 동물과의 비非성적인 관계는 정상으로 보면서 왜 성적인 관계는 그럴 수가 없을까. 동물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한정된 동의는 동물을 애완용으로 기르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데, 왜 그들과 섹스를 하기에는 충분치 못한 것일까. 이번에도 애나는 개인적인 불쾌감에 근거하지 않은 반박 논리를 찾을 수가 없다. 불쾌감이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ㅡ<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깨끗이 용서하고 모두 잊어버려라"라는 말도 있듯이 이상화된 우리의 관대한 자아에게는 그런 충고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에게 이 두 행위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용서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어느 정도 망각을 해야 한다. 과거의 심적 고통을 더 이상 생생하게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을 유발한 행위를 용서하기도 더 쉬워지고, 그 결과 해당 기억 자체가 덜 중요해지는 식으로 말이다. 과거의 당신을 격분케 했던 악행도 반추의 거울에 비춰 보면 용서할 만한 것으로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심리적 피드백 고리가 존재한다."
ㅡ<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과학은 우리의 아픔을 경감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게 과학에 투신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는 반박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진리를 탐구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과학은 진리의 탐구만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과학은 의도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줄곧 진리와 의도가 동일한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주여, 저는 이제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저를 두렵게 합니다.
ㅡ<옴팔로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택이 무의미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그들이 취하는 모든 행동이 그들이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평행우주의 존재에 의해 상쇄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의사 결정은 양자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고전역학적 현상임을 지적했고, 따라서 선택한다는 행위 자체가 우주를 새로운 갈래들로 분기시키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갈래의 평행우주를 형성하는 것은 양자 현상이고, 각 갈래에서의 개인의 선택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프리즘이 개인 행위에 수반되는 윤리적 책임을 무효화시킨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ㅡ<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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