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전작품이 그럴테지만 이 소설도 프로이트가 분석하기 좋아했을 작품. 꿈속 전이 같은 장면 전개, 성적 몽상 등. 이것과 더불어 만나는 여성마다 연애 분위기가 되는 것은 홍상수 영화와도 매우 흡사하다. 지금에서는 매우 흔하지만 카프카의 이런 플롯은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파혼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여성관에 따른 여성 캐릭터는 전근대적인 게 흠이다.
기묘함이 진지한 상황과 함께 인물의 우스꽝스러움을 유발하는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참 유사한데 결과적으로는 부조리한 우화가 되는 게 카프카의 변별점이자 주 특징.
K는 홀의 끝 쪽에서 들려오는 째지는 듯한 외침 소리에 방해를 받았다. 그는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손을 눈 위쪽에 갖다 댔다. 햇빛에 반사된 공기가 희뿌옇게 되어 눈이 부셨기 때문이다. 문제의 인물은 바로 그 세탁부였다. K는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는 순간 그녀가 소란의 장본인이리라 짐작했다. 이번 일의 책임이 그녀에게 있는지 아닌지 여부는 분명치 않았다. K는 다만 한 남자가 그녀를 문 쪽 구석으로 끌고 가 끌어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비명을 지른 것은 그 여자가 아니라 그 남자였다. 남자는 입을 헤벌린 채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 주위로 작은 원을 그리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근처의 회랑에 있던 사람들은 K가 조성했던 심각한 회합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깨진 것을 몹시 기뻐하는 것 같았다. K는 당장 그리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 일었다.
두 사람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K는 여전히 문간에 서 있었다. 여자가 그를 속였다고, 그것도 예심 판사에게 가봐야 한다는 말로 속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심 판사가 다락방 같은 곳에 앉아서 기다릴 리는 없었다. 아무리 오래 노려본들 계단이 그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때 K는 다락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조그만 표찰이 붙어 있는 것을 알아채고 얼른 그리로 가서 어린애처럼 졸렬한 글씨체로 쓰여 있는 글을 읽어 보았다. 〈법원 사무처 계단〉. 이 셋집 다락 층에 법원 사무처가 있단 말인가?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시설은 아니었다. 그리고 피고의 입장에서 볼 때 법원이 가난하여 극빈자들이 쓰레기 같은 넝마를 버리는 이런 곳에 사무처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이튿날이 되어도 K의 머릿속에서는 감시원들 생각이 떠날 줄 몰랐다. 일을 하려고 자리에 앉아 있어도 도무지 집중이 안 되어서 일을 끝내기 위해 어제보다 조금 더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귀가 중 다시 그 창고 같은 방 앞에 이르자 그는 습관처럼 문을 열어 보았다. 그가 예상했던 캄캄한 어둠 대신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자 당혹스러웠다. 모든 것이 어제저녁 그가 문을 열었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문가 바로 앞쪽에 있던 서식 용지들과 잉크병들, 회초리를 손에 든 태형 형리, 옷을 완벽하게 차려 입고 있는 감시원들, 선반 위의 촛불. 그리고 감시원들은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K는 얼른 문을 홱 닫고 주먹으로 쾅쾅 두드렸다. 그렇게 하면 문이 더 굳게 닫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거의 울상이 되어 사환들에게로 달려갔다.
「당신은 이 법정과 이 법정에서 자행되는 사기 수법을 꿰고 있군요.」 K가 말했다. 그러면서 자꾸만 밀착해 오는 그녀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이러니 참 좋아요.」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서 편하게 몸을 고쳐 앉으며 치마를 펴고 블라우스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러더니 양손을 그의 목에 두르고서 매달리며 몸을 뒤로 젖혀 오래도록 그를 쳐다보았다. 「만일 내가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를 못 도와주나요?」 K가 떠보는 투로 물었다. 여자 조력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꼴이군. 스스로 놀라며 그는 생각했다. 처음엔 뷔르스트너 양을, 그다음엔 정리의 마누라를 그리고 이제는 이 조그만 여자 가정부를 말이야. 이 여자는 말할 수 없이 나를 원하는 것 같군. 원래부터 자기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꼴 좀 봐! 「네.」 레니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당신을 도와줄 수 없어요. 당신은 내 도움을 원치 않는 것 같군요. 관심조차 없어요. 당신은 정말 고집불통에다 남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아요.」 잠시 뒤 그녀가 물었다. 「혹시 애인은 있나요?」 「없소.」 K가 말했다. 「그럴 리가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 사실은 있어요.」 K가 말했다. 「없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사진까지 갖고 다녀요.」 그녀가 자꾸만 졸라 대자 그는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서 몸을 구부린 채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스냅 사진이었다. 뱅뱅 도는 춤을 추던 끝자락에 찍은 엘자의 사진이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보면 법원에서 인정한 변호사는 없는 셈이고, 법정에 변호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볼 때 모두 엉터리 변호사일 뿐이다. 이런 사실은 변호사라는 직업 전체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K가 앞으로 법원 사무국에 가게 되면 사실 확인을 해볼 겸 변호사실에 한번 들러 보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아마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그들에게 배정된 좁고 천장이 낮은 방 자체가 이미 법원이 변호사들에 대해 갖고 있는 경멸의 빛을 보여 준다. 그 방엔 천장에 나 있는 작은 들창 하나를 통해서만 빛이 들어온다. 그 들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려면 바로 들창 앞쪽에 있는 굴뚝 때문에 연기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고 얼굴까지 그을리는데 그마저도 천장에 너무 높이 달려 있어 먼저 동료 하나를 구해서 그의 등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그 방의 마룻바닥에는 ─ 이런 형편없는 상황을 알려 주는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자면 ─ 벌써 1년이 넘게 구멍이 하나 나 있다. 사람 몸 하나가 빠질 정도는 아니지만 다리 정도는 빠지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이다. 변호사실은 다락의 2층에 있어서 누군가의 다리가 빠지면 그 사람의 다리가 다락방 1층의 천장에 달랑달랑 매달린다. 그곳은 바로 의뢰인들이 기다리는 복도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변호사들 사이에서 치욕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행정 관청 쪽에 불평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그렇다고 변호사들이 자기 돈으로 변호사실의 뭔가를 변경하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변호사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되도록 변호사의 개입을 배제하고, 피고가 모든 것을 직접 떠맡도록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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