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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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핍진성이란 문학 용어를 싫어한다. 독자들이 설득될 만한 개연성을 못 만들어냈다고 한국에서는 비난할 때 주로 쓰기 때문이다이 문제에서 가장 골치 아픈 요소는 독자. 어떤 독자는 설득되고 어떤 독자는 설득되지 않는다. 뛰어난 거장의 작품도 어떤 독자에겐 두껍고 길기만 한 시시한 이야기로 남는다. 어떤 작품은 이해하기 어려운데도 걸작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실제로 우리는 핍진성을 잣대로 오뒷세이아일리아스, 돈키호테를 평가해 걸작이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경우는 공감을 넘어 작가가 구축하는 세계가 독자의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은진의 장편소설 날짜 없음에서 공감되는 상념, 아름다운 문장들은 많았지만 내 상상을 깨주는 것은 얻을 수 없었다.

그로테스크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담으려 한 시도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인물들이 그 속에 제대로 어우러져 있지 않았다. ‘그게온다는 흉흉한 세상에서 종말이라는 메타포가 무색하게 그들은 그저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없는 작가의 한계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회색인이나 폭도들은 엑스트라로 왔다 갔다 할 뿐 연인이 살고 있는 컨테이너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작가가 독자에게 느끼게 하려는 위협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그런 식으로 이 연인의 공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작가는 종말의 순간에 있는 연인이란 설정을 사랑해 보호만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심하게 다툰 날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서운한 문장들을 주고받게 되는지, 연애가 좀 더 깊어질 때는 어떤 놀라운 문장들이 상대방의 몸을 타고 탄생하는지, 갑작스럽게 권태가 찾아오는 순간에는 무슨 문장들로 그 지겨운 시간들을 버텨야 하는지 모르는 순진한 연인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세계의 무시무시하고 힘겨운 얼개들과 씨름하며 풀어 보려는 의지는 읽히지 않는다.작가의 말에서 고통과 절망 속에 홀로 백지 위에 서 있다고 말하는 일종의 작가의 폐허 의식이 그대로 반영되기만 했다. 그러나 폐허를 뚫고 나오는 소설들은 얼마나 많았는가.

주인공 해인이 마지막 의식으로 남자의 단추를 달아주고 그걸 홍 할머니나 옛 여자 친구가 칭찬하듯 바라봐 주는 설정은 습작생들이나 하는 전형적인 클리셰다. 그 단추는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을 때 가장 빛날 수 있다. 독자가 이걸 알아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작가의 노력이 이 소설에는 너무 드러난다. 진수와 반(半)의 죽음도 코스 음식처럼 차례차례 등장한다. 진부하게 말하는 죽음, 진부하게 닥쳐오는 종말. 종말을 잘 모르기 때문에 분위기로만 덮으려는 수많은 묘사들.

 

종말보다 소설 때문에 나는 괴로웠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핍진성을 따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밖에 없겠다. 지극히 공감하는 독자는 설득될 만한 소설이고, 이 세계에 빠져들지 못하는 독자는 스쳐 지나가게 되는 글로 이뤄진 세계’일 뿐이라고.핍진성 문제가 아니다. ‘세계와 정면 승부하려는 노력은 없는 관찰적이고 자기 충족적인 한국문학의 오래된 문제이다. 물론 세계와 부딪히길 원하지 않는 것도 작가의 자유다. 일개 독자인 내가 이랬어야 했다 저랬어야 했다 어쭙잖은 훈수를 두고 있다는 것도 안다. 미안하면서도 작가가 백지를 이기려면 이걸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자낙스를 씹어 삼키는 심정으로 이 아픈 리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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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5-12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핍진성이라는게 설득력 또는 개연성의 정도 쯤으로 이해하는데요. 뭔가 피박받는 느낌이 드는 어감나서 별로 선호하지 않더라구요....그러고 보니 핍진성으로 따지만 판타지 문학은 형편없게 되나 봅니다....

AgalmA 2017-05-12 19:34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판타지 문학은 작품 내부의 구조가 설득력있게 돌아가면 현실보다 더 강력하죠.
불특정 독자를 얼마나 납득시키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 구조가 얼마나 탄탄하게 지어졌는가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문학동네 시인선 86
김상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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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기대치를 가지고 책을 펼친다. 시집을 고를 때 내 기준은 이렇다. “한 번 떠오른 뒤엔 돌이킬 수 없는 생각”(구애)을 시인이 잡아내 “소리치며 멀어지는 슬픔과 기쁨에 무능한 너 그를 죽도록 기다리는 능력”(그렇다고 치자」)으로 내 눈길을 사로잡길 바란다. 그들이 기네스북 기록 경신을 하는 기인도 아닌데 너무 높은 기대치일까. 귓불을 긁는 정도로 하향할 의향 없다. 책이란 형식 특히 시집은 글쓴이의 일방적 연설이다. 내가 놀라거나 감동하거나 욕하거나 시집을 던져버리거나 하는 그 모든 건 시인에게 달려 있다. 내 의사 표현은 시집에 대한 평가로 한정된다. 더 노력한다면 맘에 드는 시를 외워 낭송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누구를 위해, 어디에서…… 오늘은 노력해서 다만 리뷰를 쓰기로 한다.

작품이 작가에게 귀속되지 않고 다양한 담론을 양산한다는 상호텍스트성은 시에 적용되기 어렵다. 시집의 큰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의 목소리가 시를 압도하며 탄생해야 이 세계에 겨우 존재할 자리를 얻기 때문이다. 하나 마나 한 대화나 한탄과 수다 같은 시를 집중해 읽을 사람은 없다. 시와 시인은 우리의 기대를 통과해야 한다. 상호텍스트성을 체감하며 소설을 읽는 독자 또한 얼마나 되겠나. 비평가가 여러분 이 메커니즘은 사실 이렇습니다!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

 

교묘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시체에는 없는 그것”(영혼)이라 말하는 김상혁 시인의 은밀한 포부가 맘에 든다. 이 시집을 해설한 조강석 평론가는 그의 자세를 이렇게 평가한다. 감정의 자발적 유출(정조情調)을 독자에게 인계하는 대신 정황과 사건을 창조하고 판단하는 것을 인계하고 있다고. 이 시집 제목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라는 상징적 의미처럼 그것은 어떤 세계로의 초대이다. 즉 이야기이다.

 

전통적으로 서정시의 세계가 서정적 자아나 시적 화자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정서의 질료로 온전히 환원될 수 있다고 여겨져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듣는 눈과 말하는 귀에는 환원의 기능이 없다. 그리고 환원이 없으면 축소나 과장이 없다. 듣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규모와 전말이 일정한 스스로의 목적에 부합하는 행위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시집에서 이런 사정을 가장 잘 형용하는 것은 아마도 이야기라는 말일 것이다. …… 세계가 감정의 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 속에서 독립한다. 모든 사물과 사건과 사태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제 그것은 정서적으로 매개될 필요가 없다.” 조강석

 

 

정서를 이야기 형태로 환전한 김상혁의 시들은 교묘하게 건조하다. 그래서 지겹다말하고 있어도 그 지겨움의 감정은 독자에게 덕지덕지 스며들지 않는다. 이야기의 다른 곡조인 휘파람처럼 도착한 지겨움이라 오히려 귀 기울이게 된다. “지겨움을 지긋지긋하게 겪고 있는 시인과 독자인 나는 모종의 공모 상태에 빠진다.

 

 

나의 여름 속을 걷는 사람에게

 

 

여름으로 오는 길에 너는 죽은 새, 봄의 검은 웅덩이, 깨진 울타리의 조각들, 다음해 봄까지 잠들어 있으려는 자의 조용한 손을 밟으며 왔다. 그렇지만 지겹다! 새든, 봄이든, 울타리 속 꿈이든 다…… 그런 너의 마음은 나만 안다

 

여름에서 도망치는 길에 너는 죽은 새를 더욱 뭉갠 일, 깨진 웅덩이와 울타리를 다시 깨뜨린 일, 꿈속의 비명을 꿈 바깥으로 꺼낸 일을 괴로워한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 유령이 있다면 너는 삶과 유령 사이에 있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에 넌 웃음이 많다……

 

너무 사랑이 많다. 그렇지만 지겹다! 여름이 풀을 키우고, 풀이 끝없이 퍼지다가 너의 생각을 뒤덮고, 그러다 불붙은 생각이 기쁨이 되었다가 결국 우리의 꿈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우리 그릇에 똑같이 밥을 채우는 것이 다……그런 너의 마음은 나만 안다.

 

그렇지만 네가 밟은 것, 밟아서 더 깨뜨린 것, 더 깨뜨려 흩어진 것, 그런 지겨운 것이 죽은 새, 웅덩이, 부서진 울타리, 뒹구는 손을 덮어준다. 풀과 꿈을 키워준다. 다가올 여름과 지나간 여름 사이 슬픔이 있다면 너는 오늘과 슬픔 사이에 있고 싶다.

하지만 넌 너무 기쁨이 많다. 그런 너의 마음은 나만 안다. 

 

    

 

 

그런 너의 마음은 나만 안다.”는 저 문장처럼 나는 시인의 마음을 내가 공감하게 만들지 말고 내 마음을 시인이 점성술사처럼 읽어내라는 요청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이기적인가. 문학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대개 이렇지 않나. 교묘하게 객관적인 거리를 둔 김상혁의 이야기 방식은 그래서 퍽 성공적이다. 시인과 내가 풍경을 같이 보고 있는 기분이다. “슬픔도 구질구질하게 값싼 공감을 요구하지도 않고 남루하지 않게 거기 있다.

 

    

 십일월

 

 

자네의 그림에는 풍경과 생각이 섞여 있어 언덕을 그리고 나면 떠오르는 소리를 거기에 색으로 입히지 어제의 붉은 언덕을 오르던 사람이 오늘의 검은 언덕을 내려가는 식이라네 왜 석양을 바라보는 일은 눈을 감는 일보다는 항상 덜 슬픈가

 

십일월에 내리는 눈에는 비가 섞여 있어 잠을 자고 나면 꿈의 차디찬 들판을 달리던 가슴에 식은땀이 흐른다네 오늘 우산도 없이 현관문을 두드리던 사람이 내일도 꼼짝없이 눈속에 서서 벌벌 떨어야 하는 식이지 누구나 화가 앞에서 발가벗을 용기를 가진 건 아니라네

 

시도 때도 없이 달아오르는 얼굴을 도저히 그림에 담을 수 없어 자네가 그린 초상은 끝내 엉망으로 칠해지곤 하지 하지만 무슨 차이가 있겠나 눈뜨지 않으면 사람의 고백이란 한낱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발 같은 것을

 

나는 자네 그림이 감춘 것에 대해서라면 정말 모르는 게 없었지 붉은 내 얼굴 뒤에서 비가 온다거나 검은 풀밭 속에 눈이 휘몰아치는 식이었다네 왜 세계의 윤곽을 그리는 일은 색으로 세계를 뭉개는 일보다는 항상 덜 슬픈가

 

요즘 다른 화가 앞에서 옷을 벗으며 나는 십일월만을 그리던 자네가 실은 그 누구보다 더 십일월에 몸서리쳤다는 사실을 깨닫네 하지만 무슨 차이가 있겠나 마음이 붉은색이든 검은색이든 사람이 떠나면 한낱 꿈속의 달리기 같은 것을

 

 

 

 

우리가 힘겹게 살아낸 삶은 대개 익명으로 사라질 뿐이지만, 세계가 윤곽 속에 뚜렷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윤곽은 우리의 시선 속 편린 같은 것이고 우리 모두는 뭉개짐의 연속 속에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시는 그걸 언어로 잘 그려낸 그림 같아 한참 머무르며 바라봤다. 시인도 나도 이런 풍경,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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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05-05 0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괜찮아서 한번 보고 싶다 생각한 시집입니다 언젠가 보겠죠 쓰는 건 재미없는 제 이야기일 듯... 시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언제나 감상문을 쓴다 생각하기에...

시를 봤을 때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 거 좋아해요 여기 담긴 시가 그렇게 보이는가봅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 책을 보고 떠올리는 그림도 사람마다 다르듯이... 어쩐지 그건 꿈같기도 해요


희선

AgalmA 2017-05-05 14:41   좋아요 3 | URL
저는 오히려 제목이 그닥 끌리지 않았어요^^; 시들 제목 보고 읽어봐야겠다 싶었죠. 큰 기대하지 않고 읽어서 그런지 의외로 좋은 시집이었습니다.
성장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데, 한국 시단에 워낙 성추문 사건이 많아 이 시인도 그런 일로 연루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는 언어 중에서도 단연 회화적이죠. 회화의 사조들처럼 다양한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요.

yureka01 2017-05-05 07: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확 달아오르는 시집 리뷰....읽고 그 지겨움에 빠져들고 싶네요.뻔하지 않는 낯선 은유의 시계로.^^.
오랜만에 시집 리뷰 만나는 이 아침에 삶의 윤곽을 뭉개고 싶은 시간.ㅎㅎㅎ 이런 리뷰는 이달의 리뷰 당선작으로 추천...^^.

AgalmA 2017-05-05 14:17   좋아요 2 | URL
요즘 어수선한 분위기라 시집에 손이 잘 안 가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시를 읽고 싶기도 합니다.
삶의 윤곽을 뭉개고 싶은 시간ㅎㅎ yureka01님 댓글도 시적이십니다^^

yureka01님이 시를 아끼시는 맘 잘 알죠^^

겨울호랑이 2017-05-05 0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게 십일월은 ‘무채색의 시간‘으로 생각됩니다만, 시인은 십일월을 붉은 색, 검은 색의 강렬한 시간으로 생각하는 것 같네요. 아마 경험의 차이겠지요... 제가 갖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시(詩)의 매력이라 생각되네요.^^:

AgalmA 2017-05-05 14:43   좋아요 3 | URL
제가 생일이 11월로 넘어가기 바로 전이라 제 나름의 이미지가 있는데요. 그 때의 붉은색은 말라버린 붉은 단풍이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요.
시는 글로 읽는 그림 같아서 휴식처럼 물처럼 찾게 됩니다^^
 
오규원 시전집 2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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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감옥》(1991),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 소리》(1995),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 동시집 나무 속의 자동차》(1995)로 묶여 있다. 시 외엔 편집 의도라든지 해설 등 어떤 부연 자료도 없는 부실한 전집 구성이다. 한국 시단의 큰 시인이라 섣불리 종합평을 넣기 어려워서 였을 수도 있지만 이건 좀.

시집 4권을 다 구비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격면에서 구매하기 괜찮은 시집이겠으나 시 해설 등으로 시의 이해를 원하는 독자들은 각각의 시집을 사는 것을 권한다. 오규원《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 시집에서는 정과리 평론가가 무려 58페이지에 달하는 해설을 썼다-_-; 

 


전집 구성이 한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오며 발전상을 보는 의미도 있겠고 그 정서에 공감하는 독자에겐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나는 좀 짚고 싶은 게 있다.
80~90년대 한국 시집에서 흔히 느끼게 되는 단점들을 이 시집에서도 역시 발견한다. 그 시대 특유의 자의식이라든지 '월남치마, 비디오 가게, 롯데 목캔디, 둘코락스, 옥경이...' 같은 시대성 묻어나는 단어들과 표현들이 그때를 넘어 지금까지 유효하게 작동하는가 하면 내겐 그것들이 낡아 보인다. 당시의 핍진성은 담았을지 몰라도 현대성 혹은 보편성으로 살아 숨 쉬는가에 대해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단점 때문에 요즘은 시든 소설이든 의도가 아니라면 특정한 시대나 경향을 드러내는 고유명사나 명칭을 잘 쓰지 않는다. 표현이 좀 객쩍은데 베스트셀러 시인;인 기형도 시만 봐도 그걸 최대한 배제한 걸 볼 수 있다. 기형도 시의 인기 비결 중 하나다.
또 오규원 시인의 다른 단점으로 '여자', '아랫도리' 같은 성적 표현과 연결도 전형적인 남성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최근의 성폭력 사건 아니더라도 '대상화된 여성'은 요즘 남성 시인들 시에서도 여전하다.


오규원 시인은 도시성으로 시를 쓸 때보다 자연 속에서의 관찰이 더 돋보이는 시인이다. 자연에 대한 흔한 관조가 아니라 회화적인 구조와 언어 속에서 의미를 톺아보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규원 시인의 독특한 인식적 세계관이 극명히 드러난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

 

여자의 치마 속에서 무슨 일인지
공기가 몇 번 몸을 부풀린다
이 길에서는 소리가
고요의 한구석이다
길에 고인 물속에서 새 그림자 하나
다시 길 위로 급히 오른다
새는 어느 허공에 묻혔는지 보이지 않고

- <처음 혹은 되풀이>



바람이 불어도 절은 뒤에 있는
하늘에 붙어
흔들리지 않는다

- <절과 나무>


비가 온다, 대문은 바깥에서 젖고 울타리는 위서부터 젖고 벽은 아래서부터 젖는다
비가 온다, 나무는 잎이 먼저 젖고 새는 발이 먼저 젖고 빗줄기가 가득해도 허공은 젖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시도 젖지 않는다

- <비> 전문



사루비아를 땅에 심었다 꼿꼿하게
선 그 위에 둥근 해가 달라붙었다
사루비아 옆은 여전히 비어 있다
모두 길이다

- <사루비아와 길> 전문

 

 

 

 

대개 시를 감상적으로 음미하거나 해석하기 쉬운데, 오규원 시인의 눈은 카메라만큼 즉각적이고 냉철하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상처란 무시무시한 내면성이다‘를 빗대어 보면, 인식이 뼈대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오규원 시인의 시는 무시무시한 세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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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3-26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규원 저, <현대시작법>을 재밌게 읽었던 때가 있었어요.

1) ‘월남치마, 비디오 가게, 같은 말들을 장점으로 생각하면 그 시절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는 점이겠고(저는 비디오 가게, 라는 말이 반갑네요.)
단점으로 생각하면 시대에 뒤떨어져 잘 와닿지 않음이 되겠네요. - 공감 부족.

지인 중 수필집을 낸 분이 말하기를, 수필도 바로바로 발표해야지 묵혔다가 책으로 내면 이 시대와 맞지 않는 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분은 수필마다 글 끝에 그 글을 쓴 해를 기록해 놓잖아요.

2) 그러니까 시대(현재와 과거)와 세계(동양과 서양)를 초월한 보편적인 느낌이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글을 써야겠군요.

유익한 것 얻어 갑니다.

AgalmA 2017-03-26 20:40   좋아요 0 | URL
<현대시작법> 공부 많이 되는 책이죠^^

시대상은 시가 아니어도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작업이 있죠. 시에서 특히 그걸 다룰 땐 재료의 나열 이상이 되어야 문학적 성취를 낳을 수 있을 겁니다. 상당히 피곤한 일이지만 그런 철저한 의식없는 취사선택이 느껴질 때 글에 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때라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그러한 때를 잘 포착한 작품들이 인기받기도 했죠. 기성사회의 것들을 적극 가져온 유하시인 시집도 그랬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 시집이 지금도 시효성이 여전한가에 대해선...

하루키가 감성팔이라고 깎아내리지만 그가 만드는 공간, 감정의 영역들 보면 보편성을 끌어내는데는 참 실력자라는^^

희선 2017-03-28 0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를 많이 보거나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여성 시인은 남성을 나타내는 시가 덜한 것 같은데 남성 시인은 그런 걸 자주 쓰는 듯해요 시도 쓰는 사람 자유니 그럴 수도 있지, 해야겠군요 그걸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도 하겠습니다 그때를 사는 사람은 알아듣는다 해도 그때가 지나면 오래된 것이 되는 게 있죠 쓸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 아주 하지 않는 건 아니겠네요 책을 읽고 쓰는 것도 시간이 지났을 때 보면 그때와 맞지 않는 것도 있어요 그 시간이 길지도 않은데 그렇군요


희선

AgalmA 2017-03-28 00:59   좋아요 1 | URL
김수영 시인은 ‘시인은 자기 시의 장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모든 작가도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100% 알 수 없습니다. 다 쓰고 나서 확인은 할 수 있겠지만 그때 그는 독자 입장이죠. 이미 달라지는 겁니다. 또한 그것을 읽는 2차 독자도 있습니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읽어낼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죠. 그렇다고 독자가 결정자냐? 누구도 그렇다고 말할 순 없을 겁니다.
시인도 시대를 사는 인간이기에 시대성을 피할 순 없을 겁니다. 100년이 지나도 독자에게 다가오는 시는 그래서 희귀한 거죠.

21세기컴맹 2017-03-30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잎의 여자
늘 그리운 😗😳

AgalmA 2017-03-30 16:19   좋아요 1 | URL
그 시 김승옥 <겨울여자> 스러운 데가 있어요ㅎ. 1989년 변진섭 ˝희망사항˝도 비슷한 맥락으로 흐르는가 싶지만 작사가가 노영심 씨였다는 게 다른 변주를 가능하게 했죠. 엔딩에 여성의 목소리를 끼워 넣었으니까요. ˝여보세요 날 좀 잠깐 보세요 희망사항이 정말 거창하군요
그런 여자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
누구나 상대를 일정 부분 대상화해서 보는 걸 피하긴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얼마나 직시해보려 노력하는지는 글을 통해 드러나죠. 너무 늦지 않게 제 부족함도 깨닫길 바라죠.

21세기컴맹 2017-03-30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리 늘 성실히 써주심 미안해서 댓글 쉬이 못 남겨요
모두가 추억거리가 되었습니다.
해바라기 모두가 사랑이예요, 처럼
 

「어느 기차역, 노숙자는 낡은 시집을 읽으며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면 무심코 눈길을 주었다.

나는 염치 불구하고 시집 제목을 훔쳐보았다.

<불가능에게로>

시인의 이름은 너무 희미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기차는 철로에 앉은 비둘기들을 몰아내며 들어왔고 비둘기들은 도시의 눅눅한 하늘로 흩어졌으며 나는 기차를 탔다. 차창 너머로 보랏빛 시집 제목이 보였다. 내 목적지인 것 같았다.」

허수경 시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뒤표지에 있는 글이다. 이 시집도 보랏빛이다.

강화로 가는 막차를 타기 1시간 전에 나는 이 시집을 빼 들었다.

이 시집을 다시 읽을 시간이 지금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간다고 말은 했지만 강화로 가고 있다는 걸 지금 실감하듯이.
˝안 하고 싶습니다˝ 란 말을 뱉어놓고 나는 목적지를 정한 건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고자 한 목적지가 정확하게 이것이었을까. 깜깜한 바깥을 내 속처럼 바라보고 있다.

밤이고, 길 위이며, 매 순간 낯선 사람 낯선 공간을 스쳐 지나간다. 이 이동은 누구도 기억할 필요 없는 나에게서 나에게로 가는 길이다.

오늘은 「포도나무를 태우며」시가 유독 밟힌다. 이 시의 표현을 빌자면, 나라는 존재는 미래에 죽은 나를 위한 음복 같다.

김포를 지난다. 자정 전엔 도착할 것이다.
내리기 전에 더 더 시를 읽자.
시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지만 지금을 구할 수는 있다.


포도나무를 태우며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알아볼 수 있어 너무나 사무치던 몇몇 얼굴이 우리의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죽였다면 나는 살아 있습니까
어느 날 창공을 올려다보면서 터뜨릴 울분이 아직도 있습니까


그림자를 뒤에 두고 상처뿐인 발이 혼자 가고 있는 걸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포도나무의 시간은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습니까
그 시간을 우리는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의 시간이라고 부릅니까


지금 타들어가는 포도나무의 시간은 무엇으로 불립니까
정거장에서 이별을 하던 두 별 사이에도 죽음과 삶만이 있었습니까
지금 타오르는 저 불길은 무덤입니까 술 없는 음복입니까


그걸 알아볼 수 없어서 우리 삶은 초라합니까
가을날이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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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15 20:16   좋아요 1 | URL
비둘기가 있다면 적어도 운치있는 공간이지 않을런지? 기계장치들로만 가득한 역은 더 을씨년스러울 거 같은데요.

폭주하는 자본의 기차를 우린 타고 있는 걸까요, 쫓기고 있는 걸까요.

2017-03-16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7-03-14 2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읽는중으로 등록만 해놓고 아직 다 넘기질 못했어요..아이고..사는게 참 역겨울 때 시로 진정시키고 싶은데 쉽게 또 이게 잘 안되더군요...

AgalmA 2017-03-15 20:19   좋아요 2 | URL
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단순히 시간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죠~_~ 마음의 여유, 제반 지식, 이해의 폭...따지자면 끝도 없을 듯^^;

[그장소] 2017-03-15 0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래의 나를 위한 음.복. 같.다. 라니...
너덜 너덜 목없는 빨래 ㅡ
내가 당신을 죽였다면 나는 살아있습니까 ㅡ
그림자를 뒤에 두고 상처뿐인 발이 혼자 ㅡ
그걸 알아볼 수 없어서 우리 삶은 초라합니까 ㅡ

아 , 아 정말 기막히게 좋다!! 이 시 ㅡ 포스팅 ~^^

AgalmA 2017-03-15 20:21   좋아요 1 | URL
이광호 평론가가 저 시를 분석하며 「빙하기의 역」 시로 넘어가는 글도 참 좋죠^^ 언젠가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계셔서 맞아 맞아 하며 또 읽음^^

[그장소] 2017-03-15 23:34   좋아요 1 | URL
오오 ㅡ 빙하기의 역 ㅡ 그 말은 같은 시인 ㅡ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과 ㅡ 연결되는 것 같아요! 이런 연계되는 시들 ..크흣 넘 좋아!!^^♡♡♡

서니데이 2017-03-15 0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화에 다녀오시나요?? 아니면 다른 의미인가요?? 주말부터 따뜻해졌어요. a님도 좋은하루되세요.^^

AgalmA 2017-03-15 20:23   좋아요 2 | URL
짧은 마실 왔어요^^ 볕이 좋더군요. 집이 아니라 더 많이 움직이게 되는 것도 재밌고요.

cyrus 2017-03-15 0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어려웠던 시집이었습니다.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낯선 느낌. 이러면 리뷰로 정리하기가 힘들어요. ^^;;

AgalmA 2017-03-15 20:25   좋아요 2 | URL
허수경 시인 특유의 에두르는 정서에 에두르는 표현 때문에 시적 안개가 많죠^^ 독자 각자가 자유롭게 걷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굳이 리뷰로 정리하고 싶진 않더라는.
 

존 윌리엄스와 오에 겐자부로를 섞어놓은 느낌.
표지와 너무도 다른 담담한 문체. 조근조근 얘기하면서 어떤 충격적인 과거 이야길 펼쳐 놓으려고 이러시는가 기대와 함께 두려워지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과거를 덮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니 ‘척하는 삶‘이 맞긴 한데, '척하는 삶'이란 표현을 조롱투로 쓰는 걸 생각할 때 작가가 이것도 염두에 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인상적이긴 한데 표지가 작품 홍보에 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할까. 나부터도 그랬다. 다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삐뚤어진 태도를 보일 수 있고, 심지어 충격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보여 주는 모습 중 무엇이 진정하고 핵심적인 것인지, 또 무엇이 어느 모로 보나 비정상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입장에서도 쓸데없이 되풀이해 생각하기보다는 빨리 잊어버리는 편이 좋은) 순간적인 실수인지 아닌지를 분별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나 나름의 경험을 통해 그래야 함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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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8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8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7-03-08 16:57   좋아요 0 | URL
척하는 삶 ㅡ 음음 그래요 . 딱 그 표현이 맞겠네요 . ^^

2017-03-08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