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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헤르만 개정판도 속속 등장~ 다른 책 <여름별장 그 후>도 좋습니다. 독일 현대 단편소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작가 중 하나.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한다면 꼭 읽어보셔야 할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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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5-03-2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작가분도 속속들이 잘 아시네요, 혹시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세요?

AgalmA 2015-03-28 18:02   좋아요 0 | URL
죽기 1시간 전에 정할 생각입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면 애석할 일이겠지만^^;
현재까지 부동의 여지가 없는 작가는 칼비노입니다. 빨리 읽어버리기 아까워서 일부러 안 읽은 책을 남겨두는 작가^^

네오 2015-03-28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칼비노요,, 그의 테마는 모르겠네요, 저의 만신전은 허빈 멜빌이지요, 이 유리같은 멘탈의 세계에서 나침반역활을 한다고나 할까요, 굉장히 남성적소설을 좋아해요, 유키오나 포크너같은~

AgalmA 2015-03-29 05:08   좋아요 0 | URL
멜빌과 포크너는 저도 좋아합니다.
제가 칼비노를 좋아하는 이유는, 누구보다 확장되어 있는 작가적 세계관입니다. 그의 책을 다 읽지 않았으니 뭐라고 더 말씀드릴 수 없겠네요.

cndwottl 2020-11-27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레이먼드카버글 싫어하는데 여름별장 걸러야겠네요 감사합니다

AgalmA 2020-11-28 17:14   좋아요 0 | URL
ㅜㅜ 저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연호. 나는 조연호의 두 번째 시집 『저녁의 기원』(랜덤하우스, 2007)이 황병승『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 2005), 김경주『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2006)와 함께 놓여야 할 시집이라고 생각한다. 랜덤하우스에서 절판된 황병승과 김경주의 이 시집들이 문학과 지성 시인선 R로 재출간된 것에 반해 조연호의 『저녁의 기원』은 고려되지 않는 것 같아 매우 유감이다. 절판되었던 신영배 『기억이동장치』(문학판, 2006), 이민하 『환상수족』(문학판, 2005)도 재출간하면서 조연호 『저녁의 기원』은 왜 재출간되지 않는지? 단지 대중성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나는 또 한 번 문단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장삿속으로 변질되긴 했지만, 이 시집의 가치를 아는 알라딘 중고샵의 어느 판매자는 십일만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책정하고 있다.

 

조연호 시가 사람들이 공감하기 쉬운 접근점을 제시하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장르도 그런 경우가 왕왕 있지만 시는 특히나 "뭐 이렇게 어렵게 썼지.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 하며 쉽게 말하고 던져 버린다. 언어의 특수성으로 인해 철학이 모호하듯이, 시 언어는 하나의 창조로서 더 어려운 지점에 있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편하게 쉬어가는 의자나 따뜻한 아랫목 정도로 시의 영역을 축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옥타비오 파스가 말했듯이 시인은 "언어에 대한 위반", "일상적 언어의 획일적인 세계와 결별시키며, 말을 원초적 상태로 복귀"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론처럼 나 또한, 시는 독자를 이해시키려거나 동조를 바라며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듯이. 세속의 온갖 잡다한 것을 시에게까지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런 사회에 살고 싶지 않은 것처럼. 하나의 시를 내보내기 위해 산통을 겪은 시인을 위해, 울면서 태어난 시를 위해, 독자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내 짧은 글이, 조연호의 시와 마법사가 사라진 이 사회에 작은 친교 역할이 되길 바라며...

 

 

 ㅡAgalma

 

 

※ 16 페이지에 달하는 '근친의 집'은 시집이란 형태로 꼭 봐야 한다.

 

 

 

 

 

 단 한 계단

 

 

 

 거울은 나에게로 떠난다. 물에서 물로, 내가 숨기듯 조금씩 떼어 모았던 방. 그 방에서 나는 여러 개의 칫솔모를 닳게 하고 헬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제 지평선과 수평선으로 가득 찬 눈알을 아무에게도 안 보여줘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헬마, 술래잡기는 그늘이 없어서 따분했고, 지금쯤이면 얼음땡이 더 즐거울까? 작은 것과 함께하는 산책이면 8월은 충분하다. 난 헬마의 하루가 긴 다리라고 생각한다. 전생보다 더 깨끗해지고, 더 많은 식물로 달이 우거지고, 껌 한 통을 다 씹을 때까지 헬마의 긴 다리는 아직도 달을 향해 길게 펼쳐지고 있었다.

 

 

 

 UFO를 찾으러 가자, 마당엔 콩이 우거졌고 우리의 목소리는 우리의 말투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7월이 맞다. 8월은 너무 짧았고 6월은 사위들이 들이닥치면 도망쳤으니까. 달의 분화구까지 단 한 번 여행한 적은 있지만 거긴 빈 뼛속의 음악만 행복한 곳이었다. 처음 장난감을 대하던 마음으로, 죽은 새를 대한다.

 

 

 

 헬마의 긴 다리는 아직 자신의 길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쁜 날씨는 아니지만, 물 밖으로 걸어나온 태양은 끌어안고 잠들기에는 너무 더러웠다. 고작해야 7, 8월에 수많은 영혼들을 담기 위해 묘지는 얼마나 깊이 땅밑을 걸어갈 수 있었겠니? 물소와 사슴은 모른 척 얼마나 많이 포식자 앞을 걸었겠니?

 

 

 

 내 눈은 사라져야 한다.

 

 

 

 휘파람 같은 헬마, 부서져 내리는 붉은 산에는 단지 아름다우니까 가는 것이다. 신세 지는 건 아니지만, 다음엔 좀 더 가까이에서 손발이 많은 바람을 즐기고 싶다. 안 그러니? 태어나 단 한 번만 허락되는 여행을 난 길고 긴 아홉 살로만 배웅할 거니까.

 

 

 

조연호 『저녁의 기원』 p56~57

 

 

 

 

 

 

 

 

  변신 이야기

 

 

 

 서로를 향하는 동안만 구름에겐 이별이 생긴다. 사랑한 후에는 작은 꺾쇠로. 차별받은 후에는 농담의 사전으로. 넌 제비를 뽑았다.

 향기 많은 꽃들이 네 머리만큼 자라 벌들을 통에서 꺼내기 시작하면 주방 아줌마는 물이 가득한 욕조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렸다. 첨벙거리며 후회 없이 바닥을 다 훑고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동물로 숲이 가득 채워지는 날. 여름은 당근의 붉은 뿌리처럼 하나씩 뽑히며 사라지고 있었다. 구석에 서서 작은 귀를 흔드는 것으로 나의 은신술은 완성된다. 여기까지는 내 몸이 기생식물이었을 때의 길. 이제부터의 길은 내가 숙주(宿主)일 때를 향해 열린 곳.

 아이들은 분말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렸다. 색종이접기를 가르쳐주었지만 그애들은 이제야 겨우 시든 튤립을 접기 시작한다. 8자놀이하는 아이들의 7시, 술래는 강을 건너지 못한다. 여자애는 흡혈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자기 피를 빠는 단꿈을 꾸었다.

 하지만 우리는 너를 잊고 싶지 않아. 나 혼자서 바람에게 그렇게 말해본다. 그날은 왼손잡이용 글러브처럼 오른쪽으로 날아오는 것들과 마주하던 일요일. 우월의 표시로, 연대의 표시로 너는 모자를 벗고 세계관이 없는 제비를 하나 뽑았다. 겨울의 지하에서 여름의 지상으로. 수레처럼.

 

 

 

 

 

 

 

조연호 『저녁의 기원』 p58~59

 

 

 

 

 

 

 

  행복한 난청

 

 

 

 

 엄마가 누나에게 죽을 떠먹일 때, 11월이 왔을 때, 누나의 쌍둥이 딸년들보다 아름다운 책은 없었다. 푸른 단풍나무 붉은 가지가 시린 혈청의 구름을 부른다. 오늘 내가 버린 수첩의 가장 가까운 미래부터 인과가 하나 둘 사라졌다. 왜 별자리 이름엔 식물이 없을까, 중얼거리며 단풍의 붉은가지좌(座)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태양이 지기 전까진 부끄러움도 숨기 좋은 방이었다. 이곳에 도착하지 않은 많은 것 때문에 아이들의 주사위는 기뻤다. 붉은 물을 토하고 누나가 쌍둥이 딸년의 운명선에 머리를 베고 손금처럼 얇게 잠든다. 모두 먼 길을 걸어왔을 때, 11월이 왔을 때, 오지 않은 12월보다 완벽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조연호 『저녁의 기원』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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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3 0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궐 2015-03-13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뭐랄까... 뭔 얘긴지는 모르겠는데 시어들의 조합이 관념과 이미지와 리듬이 뒤섞인 모습이랄까요.
시에서 꼭 의미나 줄거리를 찾을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AgalmA 2015-03-14 05:52   좋아요 0 | URL
돌궐님은 무심히 알고 계시는 게 많아 멋지십니다~

에르고숨 2015-03-13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옮겨주신 부분만 봐도 매우 집중하여 읽게 되네요. 글에 긴장하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한 후에는 작은 꺾쇠로. 차별받은 후에는 농담의 사전으로.`에 눈이 한참 머물렀습니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R이 `호명`되어 뜨끔하겠네요, 저도 함께 재출간을 기다려봅니다. `근친의 집`도 무척 궁금하고요. (오랜만에 댓글 달려고 하니 알라딘 서버가 투 비지... 제대로 올라갈지;)

AgalmA 2015-03-14 05:54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볼 땐 그리 인상깊게 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에르고숨님 말씀하신 부분을 오래 반복해 보게 되더군요. 알라딘 서재와서 제가 참 별거별거 다 한다 싶어요ㅎㅎ
 

 

 

 

 

 

 

 

 

 

 

 

 

 

 

 

 

 

 

§

펭귄 출판사는 조르주 페렉 『사물들』(2015.3)을 또 출판? 하늘색 심플한 표지 완전 맘에 듦! 진작 이렇게 내시지! 하지만 나는 사지 않을 것임-_-)~ 예전 거 이미 샀단 말이야ㅜㅜ

 

 

 

 

 

 

 

p64~65   전망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누구도 원망 없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회 초년병인 이 젊은이는 말할 것이다. 뭐라고? 꽃이 만발한 들판을 거니는 대신 창 딸린 사무실 책상 뒤에서 좋은 시절을 다 보내라고? 승진 발표 전날 희망에 들떠 가슴 졸이라고? 계산적이 되어 술책을 부리고, 화를 꾹 참아내라고? 시를 꿈꾸고, 야간 열차와 따뜻한 모래사장을 상상하는 내가? 젊은이는 마음을 달래며 할부 판매의 덫에 걸려든다. 그 이후로 그는 제대로 걸려들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에게는 인내로 무장하는 일만 남는다. 아, 마침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이면, 청년은 더 이상 젊지 않고 불행에 가득 차서, 인생이 저 멀리 사라져버렸음을 느낄 것이다. 그에게 삶은 목적이 아닌 고생일 뿐이다. 느린 승진이 가르쳐준 값진 경험으로, 몸을 사릴 만큼 현명해지고 신중해져서 더 이상 이러저러한 발언을 삼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남는 것은 마흔 줄에 들어섰다는 것과 노동에 할애하지 않는 알량한 시간을 채워줄 집과 별장, 아이들 교육뿐이리라‥‥‥.

 

제롬과 실비의 생각에 조바심이야말로 20세기의 특징인 것 같았다. 나이 스물에, 삶이란 감춰진 행복들의 총합, 삶이 허락하는 한 끝없이 계속될 성취라는 것을 보았을 때, 아니 봤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들에게 기다릴 힘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달된 상태만을 원했다.

 

§§

일요일이었다. 귤을 사러 갔다가 새로 오픈한 마트를 발견한다. 할인 행사 품목인 오렌지를 집어 든다. 탐스러운 딸기는 내게 아직도 비싸므로 사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이 입구 가득 쌓여 있는 딸기 박스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판매원이 딸기 박스에 랩을 씌우는 포장을 쉴 새 없이 하고 있다. 매장 안은 어떤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은, 막 도착한 상품의 환상섬(島)에 사러 온 목적을 잃고 어리둥절한 채 방황하는 듯이 보인다. 상품들은 모두 새 것이며, 호감가는 빛을 낸다. 그들은 계속 두리번거리며 생각지 않았던 상품을 향해 급하게 손을 뻗는다. 아이들은 더 빠르게 다가가고, 소리를 지르며 맹렬하게 탐을 낸다. 서로 의논을 하고 만류하고 해도 그들이 이곳을 나갈 땐 어떤 상품이든 선택하고야 말 것이다. 계산대는, 할인 품목이 아닌 상품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항의를 하거나 물건을 다시 가지러 가거나 하는 통에 물건들은 계산이 되지 못한 채 쌓여 있다. 계산이 끝났더라도 아직 끝이 아니다. 뒷사람의 계산이 끝나기 전에, 계산을 치르고 이제 자신의 물건이 된 것들을 쓰레기 치우듯 어서 챙겨 담아야 한다. 장바구니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지 않고 나온 나는 여분의 쇼핑거리가 더 생긴 채 계산대에 도착한다. 봉투값이 아까워 양손에 꾸러미를 든다. 시장에 오면 늘 이런 자잘한 치사함을 목도하고 감수하게 된다. 밖으로 나오는데 누군가 딸기를 도로 갖다 놓고 있다. 내 손에도 정작 귤은 없다. 그런 것이다.

 

1+1 해서 산 물을 마신다. 20년 전에는 없던 상품이었다. 50년 전에는 조르주 페렉 『사물들』(1965)이 등장했다. 24년 전에는 신해철이 《 Myself 》(2집, 1991.03.20)를 발매해서 "50년 후의 내 모습"이란 곡을 선보였다. 우리 현재의 곤궁함과 우리 미래의 곤궁함을 동시에 말했던 이들,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생각하고 해나가야 하는지 각각 글로, 음악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을 수집했던 이들, 이제 그들은 없다.

 

나도 당신들 만큼 잘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게 주어진 이 삶만큼이라도.

당신들의 글과 음악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읽고 듣는다.

분명한 것은 50년 후에 나도 이곳에 없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어떤 (신)상품에 열광하고 예속될까.

 

 

§§§

한강 작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소설 속의 사물들은 발화점(진실)을 향해 누워있다고.
게오르그 짐멜은 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과 사물이 함께 있는 삶의 풍부함은, 서로에게 속하는 방식의 다양성과 서로의 내부와 외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즉 인간과 사물은 결합과 융합, 분리를 거듭하며 서로를 대비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다른 상대와 다른 사물들과 또다시 접촉한다. 인간과 사물은 끊임없이 서로를 설명하며 서로에게 귀속된다.

 

조르주 페렉의 이 책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 앙리 르페브르의 저서들을 찔끔찔끔 읽다가 만 것이 아쉽다. 10년 전에『사물들』(세계사, 1996)을 읽었으면 관련 공부 좀 열심히 했었어야지!!! 별수 없이 나를 닦달;;

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도 읽다가 말았고; 다행히 이 책은 얇으니까 그리 무리는 없다.

장 보드리야르 『사물의 체계』(1968)부터 읽었으면 좋겠지만 이 책은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소비의 사회』(1970)부터 읽어보기로 한다.

조르주 페렉 『사물들』 읽고 이런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죽겠군;

어쨌거나 이 책이 말하고 내포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할 때 이 소설 하나만을 가지고 리뷰를 쓰는 건 아쉬운 일이기에.

 

 

하지만 읽는 내내 내가 생각한 것은 발터 벤야민 ... 프랑스, 사물과 공간 속 황홀경에 빠져 있던 인간 군상을 가장 먼저이자 심층적으로 탐지한 이 였으니까.

 

 

 

ㅡAgalma

 

 

 

 

 

 

 

 

 

 

 

 

 

 

 

 

 

 

 

 

 

 

 

 

 

 

 

 

 

 

 

 

 

 

 

 

 

 

 

 

 

 

 

 

 

 

 

 

 

 

 

수단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일부이다. 진리의 추구는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한다. 진실한 추구란 각 단계가 결과로 수렴된 수단의 진실성을 의미한다
ㅡ카를 마르크스
《조르주 페렉 『사물들』에필로그 中》

한번 시험삼아 지상의 온갖 행복을 인간의 머리 위에다가 한꺼번에 퍼부어 행복 속에 풍덩 가라앉아버리게 하여, 그 행복의 표면에 물거품 같은 것이 꾸럭꾸럭 떠오르도록 해보라. 아니면, 인간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경제적 만족을 주어 실컷 잠이나 자고 꿀떡이나 먹고 세계사의 영속이나 걱정하는 따위의 일밖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처지에 놓아보라.
ㅡ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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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09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의 결과...하는데 왜..나는 수단 ㅡ 이라는 나라의 지명을 생각하며 웃는지..
얼마전..IT...하는 책이 나왔을 때도..
그르치~^^;울 나라가..아이티 (IT)강국이긴 하지..(응?!) 이럼서...(해외에선 핸드폰을 통칭 아이폰이라 한단다.삼성폰은 통칭 갤럭시이고..우리나라만 스마트폰이다.아이폰은 애플것만 아이폰으로 구분 되는데..이번 삼성의 신품이 아이폰 디자인과 매우 흡사함은..꽤나 흥미로운 ..재미를 나에게 주었더랬다)
말놀이..일 뿐이다..
유치하여 죄송하다.
Agalma 님의 글은 늘 이렇듯 부족한 자의 생각없는 자의 책읽기를 콕 쑤시는 뭔가가
있다. 더많이 읽고 써야 한다.


AgalmA 2015-03-09 03:05   좋아요 1 | URL
페렉도 본문에서 밝힌 바대로 `조바심`이란 것이 많은 기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또한 제 사유가 우물 안 같아 한계를 거듭 느끼고 있답니다. 더불어 일요일 하루 쉬는데, 너무 많은 것을 못했다 아쉬워 하고 있어요ㅜㅜ 그럼에도 자책 보다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좋은 책과 사유 놓지 않는 것, 그런 다짐에서 또 출발하는 거지요. 이미 그러시고 있잖습니까 :)

수이 2015-03-09 10:46   좋아요 1 | URL
아갈마님 말씀대로 여유를 갖고 다시 사유_ 다시 읽기 :) 힘내자구요 그장소님 :)

[그장소] 2015-03-09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책보다는..에 밑줄을 그으며..^^♥

수이 2015-03-09 10:46   좋아요 1 | URL
찌찌뽕~~~

수이 2015-03-09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렉 아주 좋았어요. 아 그러니까 사물들_ 읽고 막 좋아서 미친듯 팔딱팔딱 뛰어다녔는데_ 옛날 펭클 버전으로 읽었을 때요. 지금 읽고 있는 이재룡 교수 책에도 때마침 페렉 이야기가 나와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했더니 아갈마님이 이렇게 리뷰를 써놓으셨을 줄이야 ^^ 하지만 딱 사물들_만 읽었네요, 그 이후 책은 한 권도 읽지 못했;; 쿨럭_

딸기는 저도 사지 못하겠더라구요. 킁킁_ 귤 살까 하니 귤은 이제 들어갈 때라서 다 시든 것뿐이고_ 아니면 하우스 탱탱한 귤이라고 해도 아놔 왜 이렇게 비싼지 킁킁_ 그래서 바나나 한 덩이 사들고 왔는데 바나나도 다 먹었고 음 과일 가게로 달려가고 싶게끔 만드는 글입니다(결론은 언제나 엉뚱하게;;)

AgalmA 2015-03-09 18:39   좋아요 1 | URL
페렉 재출간 봇물이 터져 정말 좋아했어요. 그간 절판된 책 찾느라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하나둘씩 모았는데 <임금 인상...>은 여유부리다가 또 품절...으흑. 저도 페렉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전작 완독을 못했어요 ㅎ; <인생사용법>은 반절밖에 못봤지만 이 책을 처음 읽던 충격을 생각하면 언제나 제 인생의 책에 넣을만큼 멋진 책이죠.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저는 별점 5개 만점입니다. 야나님과 제 찌찌뽕을 생각하건대ㅎ 이 책 읽고나서 야나님 분명 울걸요?ㅎ 제가 그랬거든요...
<잠자는 남자>는 읽다가 거의 잠 속으로-_- 이 책은 침실에서는 결코 읽어서는 안되는 책;
하여간 페렉 책도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사놓았으니 완독 좀 하자! 하면서ㅎㅎ;;
사회학도였던 조르주 페렉을 생각하면 <사물들>은 사회학 공부와 함께 보면 더 시너지가 생길 것 같았어요^^

귤 한창일 때 많이 먹어둘 걸 그랬어요ㅜ

[그장소] 2015-03-09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며칠 만에 좀 자는데 과일 차가 와서 딸기를 외치며 한참을 확성기에 대고 한 박스를 외치는데..잠과 딸기 사이에서 갈등하다..딸기를 포기..

AgalmA 2015-03-09 11:13   좋아요 1 | URL
잠과 딸기...뭔가 시가 나올듯도 한 제목~ 전 서정시 말고 초현실주의 시로다가 ㅎ

[그장소] 2015-03-0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현실주의 시로..한 수 부탁드려요.
이중 삼중의미가 복층 구조인 시.
너무 좋아하는데.
갈수록 단순화 되는것 같아요.
저는.. 머릿 속이 복잡해 그런지..

AgalmA 2015-03-09 11:26   좋아요 1 | URL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의 괴리를 우린 늘 느끼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는 특히나 잘 쓰고 싶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타협없는 우라늄벽이 있죠...그래도 저는 거기 머리를 찧고 죽는 오스카 와일드의 참새가 되고 싶더라는...~_~;

[그장소] 2015-03-09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우라늄벽에서..뽱~^^ 터져 배를 흔들리게 웃었네요.
오늘 여러가지로 즐거워요.
시덥잖은 농담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괴리..라~
Agalma님 글이 좀 전체적으로 보면
긴 초현실주의 시 같은데.
그건 잘하는 거라고 봐요.
경제쪽 비교 해서 올려주실때도 물론 좋지만
이런 글도 좋거든요.
사실..이쪽이 더 좋아요.개인적으론 ..ㅎㅎㅎ

AgalmA 2015-03-10 03:24   좋아요 1 | URL
과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도 긴 세월이 걸린 걸 생각하면 과연 잘 하고 있는 걸까요....
분석 글이 공부로서는 좋지만, 저도 개인적으로는 자유로운 글을 더 좋아합니다.

돌궐 2015-03-09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독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체는 존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네요.
책을 읽으면 책이 따라오고, 목록은 쌓여만 가고... 깊이 공감하다가 갑니다. 말씀하신 책들은 알지 못한 채로 살고 싶네요.ㅋ

AgalmA 2015-03-09 23:06   좋아요 0 | URL
돌궐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존재의 태어남도 홀로이지 않듯이, 어떠한 선택도 홀로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보니까요.
돌궐님 서재 목록도 제겐 숙제입니다ㅎ
 
프랑켄슈타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2
메리 셸리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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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훌륭하나 번역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액자식 구성에, 세 명의 화자(월튼 선장, 프랑켄슈타인, 피조물)라 소설 작법(화법 전환)에 능숙하지 않은 번역자의 한계가 많이 보였다. 이 작품이 1818년도 번역본이고, 메리 셸리가 1931년 공을 들여 1부 도입부를 수정했다 해도 구성과 화법이 아닌 문체였단 걸 감안하면 초반 내용 전개가 덜그럭거리는 건 번역의 문제 같아 안타까웠다(가장 중요한 도입부인데 독서 승차감이 좋지 않다니ㅜ) 그래서 <프랑켄슈타인> 이 버전은 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시대가 좋아?져서 번역본이 꽤 많아졌으니 개정을 기다리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는...

 

 

 

 

 

 

 

 

 


메리 셸리가 여성인 관계로 페미니즘 문학으로 해석하는 노력이 많이 보이는데, 글쎄... 굳이 여성작가로서 해석해 나가기 보다 당시를 산 한 작가가 시대를 소설 속에 녹여낸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소위 여성주의 문학이라 표방하는 작품도 아닌데 페미니즘 해석을 하려 드는 것은, 작품을 오히려 가두는 과도한 비평주의 시각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성작가가, 그 시대에 과학소설을! 할 게 아니라, 만 20세에 이렇게 진지한 인간탐구가 엿보이는 작품을 썼다는 것에 놀라야 할 것이다. 과학은 작가가 이 소설을 표현해내기 위한 도구적 소재로 보는 편이... 과학을 남성의 전유물로 보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메리 셀리는 그것을 공격하기 위해 빅터라는 남성이 피조물을 창조하게 했고 결국 파멸을 블라블라~~ 이런 식이면 또 끝도 없는 논쟁이... 생각해보라. 남성 작가가 이 글을 썼다면 빅터-피조물의 상황과 그 주제에 대해 우리는 더 집중했을 것이다. 메리 셸리가 처음에 익명으로 이 글을 발표한 것도 어쩌면 그런 편견을 피하려 한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비평계에선 이미 그렇게도 보고 있다. 어쨌거나 최대한의 종합적 고찰을 담보한 결과들을 도출하길 바란다.

1818년에 발표된 이후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작품 속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빅터와 피조물을 통해) 인간의 로고스와 파토스의 스며듦과 결합 - 행위와 복수를 통해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닮은 쌍둥이가 된다. 괴물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으로 혼동할 만도...
(피조물을 통해) 인간의 태초성과 변화 - 자연을 만나고 언어를 익히며 인간 사회에 안정적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모습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괴물의 탄생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까지도!
(여성, 피조물을 통해)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양산되는 소수자들에 대한 우리의 통념 고찰 - 페미니즘 주요 관점이 여기 해당될 테지?
이었다.
최근에 본 대니 보일 연출 <프랑켄슈타인>은 이러한 나의 불만을 불식시킬 만큼 멋지게 재해석했다. 내가 위에서 말한 인간의 태초성과 변화 부분은 특히나. 대니 보일은 공포성과 페미니즘 해석 경향성을 덜어내고 메리 셸리 이 작품의 가장 골조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주제의식을 가장 잘 표현해냈다. 내가 죽기 전에 이보다 더 훌륭한 해석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연극이라는 장르 효과도 한몫했다. 거장은 장르 불문하고 멋진 창조를 보여주는구나, 또다시 절감! 대니 보일 씨, 언제나 팬입니다~

<프랑켄슈타인> 이 책은 작품 외에도 좋은 모범 하나를 더 담고 있다. 다른 출판사에도 수록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는데, 메리 셸리가 익명으로 발표했다가 1831년도에 정식 출간하며 쓴 저자 서문이 그것이다. 짧지만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서문 중 몇 문장을 밑줄긋기로 남긴다.

(한가롭지 않아 원래 200자 평만 쓸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또 길어졌군... 흠)

 

ㅡAgalma

 

 

 

...여가이면 소일거리로 `이야기를 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즐거웠던 일은 허공에 성을 짓는 것, 즉 백일몽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주제에 따라 이어지는 일련의 상상 속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곤 했다. 그렇게 꿈꾼 상상들이 내가 쓴 글보다 더 환상적이고 그럴듯했다. 글 쓸 때 나는 거의 모방자에 가까웠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온전히 그대로 옮겨 적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모방했던 것이다. 내가 썼던 글은 적어도 다른 한 사람 ㅡ 내 어린 시절의 단짝 친구ㅡ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상상들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 누구를 위해 생각해낸 것이 아니었다. 내게 그 상상들은 내가 속이 상할 때는 도피처였고 한가로울 때는 더없이 큰 즐거움이었다.

산초(돈키호테의 그 산초)가 말한 대로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앞서 존재했던 무언가와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 힌두교도들은 세상을 코끼리가 떠받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그 코끼리는 거북이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발명이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혼돈에서 창조된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물질은 처음부터 있어야 한다. 발명은 어둡고 형체가 없는 재료에 형체를 부여할 수 있지만 재료 그 자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발견과 발명에 관한 한, 심지어 그것이 상상력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콜럼버스와 그의 달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발명은 대상의 잠재력을 포착하는 능력과 그 대상에서 연상되는 아이디어를 빚어 형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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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3-07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직 못 읽었는데, 언젠가는 <드라큘라>와 함께 원서로 도전해보고 싶어요. 물론 시간은 열 배가 걸리겠죠.ㅋ

AgalmA 2015-03-07 13:08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완벽한 <프랑켄슈타인>을 봤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싶은 저로선 돌궐님 입장이 부러운데요ㅎ 원서까지?! 저는 다른 번역본 마저 언제 보게 될 지 알 수 없네요; 책 사령관이 빨리빨리 도촉중이라;

돌궐 2015-03-07 14:40   좋아요 1 | URL
그저 희망할 뿐 언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이제 겨우 리딩레벨 5~6점대 책 읽는 수준인데 프랑켄슈타인은 10점이 넘어가요. 읽다가 사리 나올 겁니다. 실력을 좀더 쌓은 다음에 읽으려구요.ㅎㅎ
찾아봤는데 12.4 라네요.

AgalmA 2015-03-07 15:50   좋아요 0 | URL
프랑켄슈타인이 리딩레벨이 그리 높은가요@@ 번역물로 본 걸 운이 좋다고 해야 되나요ㅎ 괴테 <파우스트>는 한 30레벨 나오겠네요; 파우스트도 읽을 타이밍을 놓쳐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는데;

만병통치약 2015-03-0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이 여성작가였네요. 이래서 어릴때 명작을 읽어야 되나 회의가 듭니다. 어릴때 아동용으로 읽고 ˝읽었다는˝ 착각에 빠져 제대로 읽지 않네요 ^^;;;; 우리 선생님들은 이 책을 19세기의 암울한 상황을 보여준다고 하더군요.

AgalmA 2015-03-08 01:34   좋아요 0 | URL
셸리라는 성 때문에 아마 남성으로 생각하셨을 듯. 그녀의 남편 퍼시 비쉬 셸리가 유명한 시인이였으니까요.
어렸을 때 명작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요; 기억이 안나요-_-; 그래서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정말 헷갈릴 때가 많아요... <적과 흑> <좁은 문> 그런 작품...단 한 문장도 안 남아 있다는ㅜ...어렸을 때부터 독서일기를 썼더라면 좋았을걸 많이 아쉬운 일...
19세기 후반에 마르크스가 혁명하자 할 정도였으니 서민들의 삶이 이만저만 했겠습니까마는,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트 심리학 등 학문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다이나믹했던 거 같아요.

cyrus 2015-03-07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프랑켄슈타인>이 1818년 판본을 개정해서 나온 1831년 판본, 이렇게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문학동네의 <프랑켄슈타인>도 1818년 판본을 번역한 것이라고 책 정보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에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1831년 판본을 주 텍스트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저는 황금가지 출판사의 <프랑켄슈타인>을 가지고 있는데 초판 서문과 1831년 서문을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AgalmA 2015-03-07 23:53   좋아요 0 | URL
오, cyrus님, 도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읽은 문예출판사 판본도 1818년 판본이더군요. 서문도 앞에는 남편 셸리 시인의 것, 뒤에는 메리 셸리의 것 이렇게요. 황금가지가 1831년도 번역본이면 비교해보기 좋겠군요

에르고숨 2015-03-07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본 영화로는 그냥 `공포`였는데 문학으로 접한 작품은 웬걸, `우울`이더군요. 저는 황금가지 판으로 읽었는데 저자 서문이 31년, 17년 것이 다 실려 있어요. 발췌문만 보아도 황금가지 판과 꽤 다르네요. 3별은 `덜그럭`거리는 번역 때문이지요? 흙, 위로를- 대니 보일 연출 연극을 보셨다니 부럽습니다.

AgalmA 2015-03-08 01:5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영화나 어린이용 공포물로 접한 작품들이 실제 원작으로 접하면 대개 우울의 정조가 강하더군요. 작가가 1831년 정식 출간 시 1818년 판본의 문체만 거의 수정했다고 밝혔으니 이 화법 전환의 덜그럭거림은 명확히 번역의 문제라고 봅니다.
아, 대니 보일 연극 좋았어요. 전 컴버배치-피조물 버전(분장도 분장이지만, 생김이나 몸짓 싱크로율이 완벽!)봤는데, 진심 멋지더라능! 음...대니 보일 <프랑켄슈타인> 자막까지 어둠의 경로로 돌아다니고 있다고는 합니다...(쿨럭;)
 

 

1.  소 · 통 · 이 · 란 ·  ·  ·  · 없 · 다

 

입을 여는 순간 '상대'는 사라진다. 오로지 자신에 취한 입들.   

그에 따라오는 코멘트에 답할 수밖에 없는 我 비련이여.

소통이란 너와 나 대화의 조율을 통한 긍정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의 간극과 침묵을 수긍하는 평행에서 실현된다.  

입을 여는 나와 너의 추함을 견디는 것 자체가 삶이다.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을 사랑에 올인시키는 통속 또한 인간의 환상에 지나지 않다

내 발화에 즉각 발생할 어떠한 부정도, 긍정도 나는 말릴 생각도, 수도 없다

자신의 환상에 이렇게 끝없는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생물체가 또 있을까.

생존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

 

 

 

 

『죽음의 선고』의 방 안에서 그와 그녀는 다가가면서 멀어지는 무한함이 된다. 조르주 바타유가 사망했을 때 모리스 블랑쇼는 「우정」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한 모든 말들은 단 하나를 긍정하는 데로 나아간다. 즉 모든 것이 지워져야 한다는 것. 우리 안에 있으면서 모든 기억을 거부하는 어떤 것이 이미 따라가고 있는 이 움직임에, 지워져 가는 이 움직임에 주목함으로써만 우리가 충실한 자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워짐으로써만 남을 수 있는 사태, 그것이 나다.

NADA(스페인어 : 無)

 

그녀는 하나의 생각처럼 자유롭게 내 앞에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있었으나 이 세상에서 내가 여전히 그녀를 만나는 것은 그녀가 나의 생각이기 때문일 뿐이었다.

 

 

​- 모리스 블랑쇼『죽음의 선고』 

 

 

 

 

 

2.   3 · 월 · 이 ·  ·  ·  · 온 · 다

 

2012년 2월에 나는 소 · 통 · 이 · 란 ·  ·  ·  · 없 · 다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도 그랬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3월이 왔다. 머리카락이 길어졌다 짧아졌고, 여러 해가 바뀌고, 그래서 소통은 어찌 되었더라,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오늘은 ​데라야마 슈지의 詩를 다시 찾아 읽으며 사라지려는 자의 기억을 본다.

「하라다 요시오의 노래」는  데라야마 슈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육필 원고다. 그는 3월에 죽었다. 수많은 그, 그녀가 3월에 죽었다. 4월에도 죽었다. 5월에는 더많이 죽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내일은 2015년의 3월이 시작된다.  사라진 그들은 더더 말이 없고 아름답고 나만 혼자 남은 기분, 유감이다. 유감이다. 유감이다.

 

 

 

 

 

 

 

 

 

 

하라다 요시오의 노래

 

세상에는 두 가지 인간이 있다

묘를 파는 사람과 묻히는 사람
누가 말했는지 잊었지만 그런 영화의 대사가 있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빙긋이 웃었다.
하라다 요시오는 ‘묘를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묘를 판다는 건 이미지로는 어둡다. 허무하다.
그러나 노동임에는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웃통을 벗어젖힌 가슴에 땀이 배어나고,
맨발로 묘를 팔 때의 하라다는 제법 섹시하다.
그럴 때 하라다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

 

땅끝까지 자고 다닌 남자.
잠이 깨면 그곳은 ‘슬픈 열대’다.

 

게으름과 성실, 지골로와 무정부주의자,
일꾼과 가난뱅이 시인, …다양한 대립을 하나의
인격 안에서 대립한 채 방치해 둘 때, 하라다는 배우가 된다.
정체를 감춘 ‘군중 속의 한 얼굴’.
그러나 감출 수 없는 살아 있는 하라다를 나는 사랑한다.
존 포드의 ‘남자의 적’ ‘끝없는 항로’ ‘분노의 포도’와 같은,
기막힌 남자의 영화를 연출하는 것은
하라다밖에 없지 않을까.

 

하라다를 위해 쓴 시가 있다
하라다가 콘서트에서 불러준 노래다.

 

이제는 노래하지 마,
그 노래는
이제 잊어줘
가을바람에

 

그래도 때로는 생각난다
같은 날 형무소를 나온 녀석
지금은 어쩌고 있을까
여동생을 찾아가고는 뚝

 

‘사과 가르기’를 좋아했다
언제나 혼자서 노래했다
그러다가 나도 외웠다
아직 보지 못한 즈가루를
동경하며
동경하며

 

이제는 노래하지 마
그 노래는
이제 잊어줘
그런 녀석

 

하라다의 ‘사과 가르기’는 절품이다. 세상에는 역시 두 가지 인간이 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그 시를 쓰는 사람.

 

그런데 나는 몸이 망가져 도박만 하고 있다
어차피 ‘묻히는 자’에게는 앞이 보인다
바닥 모르게 한없이 밝은 기분이지만
일주일에 닷새는 병상에서, 나머지 이틀에 할 수 있는 일은
선물할 꽃을 생각하는 정도다.
들으러 갈 수는 없지만, 정말로 유감이다,
유감이다, 유감이다
 

 

 

 

 

 

'분열'은 그의 형편없는 기억력이 궁색하게 숨기는 어떤 재난의 이름이다.

 

잠과 죽음을 서로 연결해 주는 것은, 둘 다 손님들에게 1인실만 갖춰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 율리 체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3.   더 · 멀 · 리 · · · · 가 · 줘

오 늘 은  잠 과  죽 음 을  분 간 할  수  없 을  정 도 로  내 내  졸 렸 고,  가 끔  살 아 있 다 는  신 호 로  농 담 을  했 다.  이  정 도 면  이  하 루 도  괜 찮 은  거  아 닌 가 요 ?  블 랑 쇼 씨 ?   슈 지 씨 ? 

우 · 리 · 는 ·  ·  ·  · 그 · 렇 · 게 ·  ·  평 · 행 · 하 · 게 ·  ·  ·  ·  서 · 로 · 에 · 게 ·  ·  점점 ·  ·  멀 · 어 · 지 · 면 · 서  ·  ·  ·  · 가 · 까 · 워 · 지 · 고 ·  ·  있 · 다 · 고 ·  ·  ·  · 더더  ·  · 다 · 가 · 가 · 고 ·  · 더더 ·  · 멀 · 어 · 지 · 고 ·  ·  싶 · 어 · 진 · 다 · 고 ·  ·  3 · 월 · 이 · 면 ·  ·  좀더 ·  ·  가 · 능 · 할 · 까  ·  ·  ·  · 이 · 것 · 은  ·   ·    ·  환 · 상 · 을 ·  ·  위 · 해 · 서 · 인 · 가 ·  ·  ·  실 · 재 · 를 ·  ·  위 · 해 · 서 · 인 · 가 ·  ·  ·  ·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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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2-2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감성이라니 4월도 기대하겠습니다. / 요즘만큼 소통 소통하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요?

AgalmA 2015-03-01 00:52   좋아요 0 | URL
으헉, 4월...또 금방이겠죠? 그러게요. 소통, 소통...저도 알라딘 와서 참 많이 외쳐댄 거 같은데, 왜 자꾸 한밤중의 숲속에 있는 기분이 드나 모르겠어요. 현실에서든, 어디든.
만병통치약님의 세상사 책 이야기가 내일도 있으려니 하며 또 잠을 청해야 겠네요ㅎ?
좋은 밤, 좋은 꿈 꾸세요.

수이 2015-03-01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정확히 딱 제 마음_ 그러고 보면 아갈마님께는 번번이 마음을 들켜버려요. 정확히는 아니 이건 내 마음이 아니라 아갈마님 마음이잖아! 근데 왜 내 마음을 들켜버렸다고 아뿔싸! 하는 걸까요_

AgalmA 2015-03-02 00:23   좋아요 0 | URL
같은 시대를 고민하고 살아가는 사람 마음이 대개 그런가 봅니다...한국의 특수성이란 거도 있고요. 저도 이웃분들 글 보며 그런 생각 종종 하니까요~_~

AgalmA 2015-03-02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 3일 사망한 조르주 페렉을 깜빡한 게 아쉽다...굳이 선택한 건 아니었겠지만, 치열한 배치로 유명한 그다운 날짜 아닌가...3월3일... 그의 첫소설 <사물들>(1965)을 다시 읽어보기로 하다. 절판된 세계사 버전과 펭귄클래식은 무엇이 다를까. 옮긴이도 다르고, 시대도 많이 달라졌으니 번역의 정서도 달라졌을 것이다. 첫 책이 <인생사용법>이 아니라 어찌나 고마운지ㅎ;;

에르고숨 2015-03-02 13:05   좋아요 1 | URL
ㅋㅋㅋ<인생사용법>은 좀 길...죠? 봄과, 댓글에서 페렉을 언급해주시니 3월에는 저도 <인생사용법>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이성과 감성이 팽팽하게 아름다운 글. 오. 감동이. `살아있다는 신호로 농담을` 이런 표현은 훔치고 싶을 정도로 막 좋습니다, 아갈마 님.

AgalmA 2015-03-02 16:27   좋아요 0 | URL
네, 도전 마구 부탁드립니다ㅎㅎ 페렉을 같이 읽는 친구를 아직 가져보지 못해서요.
전 인생사용법 몇번째 시도했지만 다 읽지 못해 매번 다시 시작요^^;;;
에르고숨님 자주 뵈니 좋아요. 봄볕같은 친구세요 :)
넉넉히 주신 과찬은 냠냠 할께요.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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