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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평점 :
뜻하지 않게 너무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준 작품이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아 봉인해 놓은 기억들이 파편이 되어 저도 모르게 되새김질하고 있다.
여고시절 소년과도 같은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리카와는 반대로 내 경우엔 소년과도 같은 아이들이 나를 좋아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고 귀여운 이미지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것 같지만, 그 당시 어린 우리로서는 그 감정의 차이를 알 수가 없었다. 몹시 아렸던 기억도 있고, 지금도 털이 곤두 서는 기분나쁜 기억도 있다.
나는 자아가 강하고 용감했기에 그 감정들을 그냥 흘려 보내지 않고, 나의 정체성을 찾기로 했다.
그 시절 이반분들이 운영하는 고민상담소로 전화를 했고, 때마침 이반들의 모임이 열린다하여 나 또한 참석했었다.
그 결과.... 언니가 잘 못 했다..... 상담자 언니는 21살이었고, 나랑 고작 2살 터울이었으니,
진지한 상담이 되었을리 만무하다. 경매가 10원부터 실시한 노예경매는 남녀 통틀어 내가 가장 비싼 가격 2000원에 낙찰되었다. 나는 2000원이었고, 그 곳에서 가장 무서운 언니 옆에 앉게되었다. 어쩌겠는가......
당장 그자리를 박차고 나와야지.
그렇게 나의 정체성 찾기는 중단되었다.
혹여, 고민하고 있을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있다.
나의 십대시절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 너는 그러지 않았음 한다.
그 감정은 결코 쉽게도, 많이도 찾아오지 않는다.
어쩜 단발성으로 그칠 수도 있다.
그냥 받아들여라.
그리고 감사하고 행복을 즐겨라.
2000원은 졸업하고, 이제 직장인이 되었다.
작품 속 리카가 경험한 일들이 내게도 펼쳐졌다.
군대식 빡빡한 위계질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주관적인 지적질 ,개성있게 다닐땐 화려하다고 지적질, 청바지에 티하나만 입고 다니면 예쁘게 안하고 다닌다고 그거대로 지적질.
제 2의 일에 연장인 회식.
나쁜 손들, 싸우고, 사과받고, 십원자리 욕설과 오가는 고성
(초등 학교 때부터 양야치들과의 전쟁과도 같은 대치로 나는 깡이 제법 세다.)
있지도 않은 나를 향한 소문들
진정 파란만장한 몇년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지 않는 여성분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거나 한 자라면
... 결코 당신 잘못이 아니다.
혼자 마음에만 담고 있으면 절대 안된다. 당황해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한다.
그리고 있지도 않은 소문에 상처 받지 마라. 얼마 못 가 다른 가십거리가 대신한다.
나는 그들을 다 용서했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나의 소중한 동료들이 되어있다.
......당신은 괜찮다.
버터는 여성들의 욕망이자 어쩜 평생 안고가야하는 시선을 의미한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좀처럼 먹질 못해서 39kg을 찍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내가 46kg을 찍은적이 있는데, 그당시 남자 상사한테 '돼지'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꽃뱀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평범한 옷차림에 100kg 넘는 꽃뱀의 이미지가 아닌 그녀의 사진으로 당시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고 한다.
2017년에 사형선고를 받은 기지마 가나에는 현재 옥중 생활을 하고 있고, 옥중에서 세번이나 결혼을 했으며, 세 번째 남편은<슈칸분슌>의 편집자라고 한다. 인터뷰를 하다 사랑에 빠졌다고 이 책의 옮긴이가 말한다.
자극적인 소재 만큼이나 정말 재밌고, 가독성이 좋다.
나는 리카가 겪은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소설을 읽는 기간 동안 나의 지난 과거가 떠올라 화가 복받쳐 에어컨을 켠 상태로 자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진실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리카의 인생을 보며 그녀를 열심히 응원했다.
- 이런 굴욕을 당했어도 태연하게 다시 일어서야만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다. p546
- 괴로운 감정이나 굴욕도, 두려움도 앞으로 실컷 맛보겠지만, 그것 역시 그리 실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모든 맛을 알고 최악의 상황을 헤쳐나온 뒤이기 때문일까. p569
그녀와 함께 하면서 묻어 두었던 흉터 와도 같은 아픔을 더듬었다.
간혹 상처가 덧 나기도 해서 아프기도 했지만, 그녀 덕에 상처는 더욱 단단하게 아물었다.
태풍이 지나간다더니
잠시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비가 장관이다.
숲이 흔들리고 이내 짙은 안개가 내려,
우리집 창 너머로 서 있는 나의 모교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배란다에 앉아 글을 쓰고 있던 나는 왠지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곧이어 날이 개고, 나의 중학교가 밝게 빛나고 있다.
....... 그래 오늘도 맑음이다!!!!!
끝으로 이자리를 빌어 59800원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성장과 타인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