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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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정치적 열망을 뿜어내며 동원되었던 많은 국민들은 곧이어 현실정치판의 추한 모습에 절망을 하는 일정한 사이클을 한국 국민은 오랜 시간 보아왔다. 그래서인지 올해 대선은 웬지 다이나믹하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이것이 나도 이제 나이들어 정치적 열패감을 느끼는 개인적인 문제인지 진정 정치가 잘못된 사회적인 문제인지 혼동될 때가 많다.

참여정부 들어 부쩍 늘어난 것은 대통령을 아주 쉽게 욕해대는 것이 아닌가싶다. 대학시절에 헐리웃 영화를 보면서 아무리 영화라지만 대통령을 희화하고 비판해대는 것이 저리도 자유로울까 싶어 한편으로 놀라웠고 한편으로 부러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역시 대한민국은 속도가 너무 빨라 넌픽션이 아닌 현실에서의 비판도 이젠 아주 자유로운 듯해 또 한번 놀랄 때가 많다.

갈등을 확인하고 표출시키며 통합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정치라고 전제하면 참여정부는 절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름대로의 정책적 열의와 성과에 대해서조차 딴지걸고 폄하하고 시비걸고 색깔 덧씌우는 것에 답답함을 느낄만하다는 것에도 동의하는 바가 있다. 욕해대는 그들이 정권 쥐고 있을 때 했던 짓들을 가슴에 손을 얹고 뒤돌아봐 좀 조용해졌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그 때 니놈들은 어땠는데?라고 욕해대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큰 정치는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이미 역사의 몫이다.

대통령과 의회가 다른 당에 의해 지배되어 '상호견제와 균형'이라는 분권의 취지와 다르게 정치적 교착상태를 빈번하게 만들어내고 이 과정에서 정치는 쇠퇴하고 언론의 역할은 급격하게 증대되는 현상을 '분할정부(divided gorvernment)'라고 한다. 미국정치에서 일반화된 이 현상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정치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희망과 비젼을 주지 못하는 정치는 식상해지고, 참여와 책임의 민주주의는 쇠퇴하며, 언론은 판을 친다.

저자 유시민도 참여정부와 한국판 분할정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들어앉았다. 보건복지부 장관시절 입안한 정책과 정책수립의 배경을 중심으로 단 25일만에 써내려간 <대한민국 개조론>에서 그는 못다한 말들을 쏟아내고, 판을 치는 언론과의 대립각을 내려 놓으려하지 않았다. 이유는 국민이 왕인 민주공화국 시대에 신하로서 성심껏 봉사한 것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왕인 국민이 제발 제대로 알아주었으면 하는 진정성에 있지않나 싶다. 다양한 경제지표와 데이터를 토대로 주무부처의 현실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입안한 정책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돕고자 함과 동시에 야당과 언론을 통해 간편하게 재단된 '잘못된 정책', '실패한 참여정부'라는 것을 정책사안별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지루한 정책홍보용 책도 아니고 흔히들 정치인들이 대필하여 발간하는 회고록도 아닌 현실정치인의 현재진행형인 사안에 대한 글들이다.

과대한 힘을 가진 언론의 왜곡과 전문성 부족, 책임없고 일관성 없는 좌우 야당의 정책비판, 이로 인한 본질적인 담론의 분열을 안타까워하는 저자를 보며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참여정부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말한대로 권언유착을 폐하고, 부패를 척결하며,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기한 공로에 비해 사회적 합의와 분쟁을 조절하지 못한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것에 스스로 양보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행정부처의 정책과 수립과정을 이해하고 저자 유시민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캐쥬얼 차림으로 국회에 입성하던 삐딱함과 글을 펼치는 논리의 날카로움은 살아있고 썩은내만 나는 정치인들 사이에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사람도 있음을 느낄 수 있지않겠나 싶다.


*** 그러나, 그가 즐겨하던 시사평론이나 정치경제평론이 아니라 대부분이 보건복지부에서 추진 중이거나 추진했던 사회복지와 관련된 정책적인 글들이라 '유시민이 제시하는 국가발전전략 아젠다'라는 표지의 거창함이 무색하며 주제가 사뭇 제한적이다. 또한 글 초반에 '성공한 개발독재정권'으로 박정희 시대를 정리하고 이 시기를 통해 주어진 대한민국의 운명이 수출주도형 통상국가라는 논리는 FTA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그답지 않은 논리비약들이 다수 제기된다. 나름대로 좌우의 의견을 수용하고 객관화하려는 노력들은 느껴지나 기본적인 논리구조는 강고한 듯하여 별점을 넉넉히 주기에는 회가 동하지 않는다. 단지 그 이유에 별 셋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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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잘 읽었습니다 :)

추천해요~

dalpan 2007-09-27 17:57   좋아요 0 | URL
체셔님.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추천하시니 품앗이가 생각나누만요. ㅎㅎㅎ

2007-10-09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grk55 2007-12-3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은 추천인가요! 지향점을 견지하되 우리의 정치적특수성과 제도권의 한계를 이해해주는 자세도 필요하다고봅니다.
 

어제는 정말이지 푹 잤다.

눈을 뜨고나서 남겨진 시간이 얼마되지 않아, 눈뜨고 기껏 한 일이라고는 밥 한끼 챙겨먹고, 세탁소에서 드라이 맡긴 옷과 등산화 찾아오고, 블로그에 글 몇 자 긁적거리고, 롯데 경기결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그런 놈팽이 같은 하루를 보냈는데 롯데가 이겼다니 무척이나 알찬 하루를 보낸 느낌이다. 어제는 롯데가 홈구장인 부산 사직구장에서 한화를 상대로 무려 12연패의 늪에서 벗어난 날이다. 내가 다시 프로야구를 보면서, 지역적 연고와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냥 평범한 야구를 보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러고나서는 야구보는 재미가 훨씬 늘었다. 만년 꼴찌라도 봐줄만한데, 그래도 요즘 잘하는 편이다. 특히 젊은친구들이 잘한다.

"느그가 응원해라, 우리가 야구하께"라는 골수 갈매기들의 자극적이고 험악한 현수막이 아직까지 사직구장에 걸리지 않은 것만해도 올해는 성공이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요즘의 관전포인트는 롯데가 가을야구잔치에 초대를 받느냐다. 4위는 해야하는데, 지금부터 남은 경기에서 거의 7할 이상의 승수를 가져야 가능한 일이니 사실상 버거운 현실이기는 하다. 그래도! 목표를 가지고 도전해보는 것도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니까... 가을에 야구하게 열라 응원해 볼란다.

    

요즘 내가 의도하는 이기는 야구말고 즐기는 야구에 대한 생각처럼 열심히 뛰는 선수가 있다. 참 보기가 좋다. 정수근. 한때 FA대박 이후 먹튀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부진했지만 요즘 잘 한다. 부상도 부상이고, 얼마 전 이혼했으니 그 과정에서 잘할리가 있었나 싶다. 툴툴 털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기좋다. 기껏해야 치고 달리기로 승부하던 단타선수가 홈런을 날렸으니 얼매나 좋았을꼬? 사진은 홈런 친 후의 팬을 즐겁게 해주는 포즈. 아무리 봐도 MC몽과 형제같다.

그에 반해 노장진. 풍운아다. 롯데 뒷문을 지키는 마무리 투수인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매번 사고를 쳤다. 무단이탈하고, 시즌중에 잠적하고, 결국 올해 재계약을 구단이 포기했다. 부부싸움에 손지검 얘기까지 나오더니 결국 아내가 자살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노장진을 보면 더 안타까웠다. 다시 그라운드에서 돌직구를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롯데가 아니면 어떤가? 어떤 팀에서든 다시 그라운드에 올라다오.

야튼.... 그래서 선수들도 열심히 하고, 팬들도 열심히 하는 차원에서, 롯데가 가을야구잔치에서 승승장구하여 잠실에 오는 날이면 기꺼이 '부산갈매기' 연습하여 잠실로 갈테다. 같이 보고픈 알라디너들가 있다면 가을잔치 티켓도 돌리겠다!!! (미리 신청하고 열라 응원해 주는 알라디너면 더 좋아요. 알라딘 적립금으로 야구표 좀 사게 해줘요~ 운영자님)

*** 사실 제일 먼저 줘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우리집 1층 경비실에 있는 직원. 로비에서 퇴근하는 나와 눈만 마주쳐도 그날 롯데의 승패를 알 수 있다. 내가 지나가면서 몇대몇? 하면 바로 대답해준다. 같이 씨~익 웃거나, 같이 바보같은 놈들이라고 욕도 한다. 아무래도 이 친구는 꼭 같이 가을잔치에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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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6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 페이퍼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가을에 잠실에서 만나죠 달팡님!:)

dalpan 2007-08-26 20:23   좋아요 0 | URL
전 달팡이가 아니오. 무슨 곰팡이 친구도 아니고...ㅎㅎㅎ
접수번호 1번! ^^

dalpan 2007-08-28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때 분명 박여사님이 써 놓은 똑같은 글이 두개나 올라와 하나를 지웠는데, 지금 와서 보니 하나도 없네요? 어찌 되었든 정말로 미안하외다.

10년지기 친구가 야구 좋아하는지 몰랐네! 나도 김병현하면 환장하는데... 내가 미국을 그리 가기싫어해도 잭슨빌은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같이 야구도 보고 잭슨빌도 같이 함 갑시다!

jhwa 2007-08-2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저인줄 어떻게 아셨어요? 로그인도 안하고 글썼는데...익명성 보장이 안되는군요. 아! 너무 뻔한 아이디를 썼구나...역시 2% 아니 20%쯤 부족해..

dalpan 2007-08-28 12:24   좋아요 0 | URL
앗! 아줌마 노랑머리로 염색했네? 내가 줄게 있는데 괜찮을때 함 봅시다.

다락방 2007-08-2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비에서 퇴근하는 나와 눈만 마주쳐도 그날 롯데의 승패를 알 수 있다.

어쩐지 기분 좋아지는 문장이예요 :)

dalpan 2007-08-29 19:05   좋아요 0 | URL
하하..그런가요? 실제로 그 친구를 보시면 더 기분이 좋아질겁니다. 둥글둥글하게 생긴 얼굴에 인상도 서글서글한게 말이죠.

페르소나 2007-09-0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야구보고싶다.. 티비로 편하게 야구보던때가 언제적인지 -_-

dalpan 2007-09-10 23:48   좋아요 0 | URL
참아라.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돈다.

2007-10-14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dalpan 2007-10-14 02:18   좋아요 0 | URL
잘생긴 도령께서 이런 친절함까지! ㅎㅎ 꼭 들어보리다.

2007-10-14 0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dalpan 2007-10-14 20:0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하하하.. 아주 적절한 지적 감사합니다. 얼굴이 후끈후끈.. 흐흐. 반갑구요. 님 서재에도 놀러가겠습니다. 원체 저의 서재는 알려지지않은 아웃사이더 서재인데 여기까지 찾아오시고.. 감사해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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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현재의 식량생산은 전세계 인구의 두 배에 달하는 사람이 먹을 정도인데 말이다. 이 책의 화두는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연말에 불우이웃돕기하듯 돈 몇 푼 던져달라는 호소가 아니다. 현장을 뛰어다닌 전문적인 활동가로서 양심을 가진 학자로서 그에 관한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친 르뽀이다.

굶주림은 인간태초부터 지금까지의 문제이고, 생존의 문제, 말그대로 먹고사는 문제란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에는 그들이 자기 밥그릇 하나 채우지 못할 정도로 게으르거나, 잘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 못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너무 간편한 인정, 구조적으로 이해를 한답시고 멜서스처럼 '인구증가는 기하급수적, 식량증산은 산술급수적'을 머리속에 넣고 전세계적으로 식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저자 장 지글러는 이 모두가 다 거짓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전문적인 활동가답게 다양한 실증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아직도 유럽식민지 시대의 정책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프리카는 모노컬쳐(단일농산물생산)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정작 자신들의 먹을거리를 위해서는 농산물을 수입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헐값으로 배부른 유럽을 먹여살리는 전형적인 신식민지정책이라 고발한다. 시카고의 곡물시장을 주름잡는 미국, 프랑스, 스위스의 금융자본은 자본의 자기증식방식에 따라 먹고사는 것을 투기판으로 만드는 잔인함을 과시한다. 미국 CIA가 개입된 칠레 아옌데 민주정부의 전복은 다국적기업 네슬레의 독점적 지위를 위태롭게 한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10여년 전에 처음으로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들었다. 그 전에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리즘'처럼 한 시대 국한된 지역에서의 경제정책으로만 순진하게 생각하던 물결은 이미 내가 알아차렸을 때는 해일이 되어 온통 세상을 뒤집어 엎어놓은 뒤였을터다. 우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높은 파고에 뒤집어 엎어졌고, IMF의 가혹한 프로그램은 전국민을 미시, 거시를 넘나드는 경제학자로 만들어 놓았다. 온통 민영화하고, 자본시장 개방되고, 정부예산 삭감하고... 결국 남은 것은 2대8의 논리와 무한경쟁에 대한 무의식적 인정, 중산층 파괴와 빈부격차의 심화, 금전만능, 우리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점심을 굶는 학생들의 존재였다.

기아가 게으름의 문제도, 불공평의 문제도, 국제기구의 무능력에 대한 문제도 아닌 것은 그 이면에 숨은 잔인한 금융자본의 논리가 숨어있음과 동시에 인간들에게 보여지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화려함 때문이다. 일상화되어 분노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세상을 절반이나 굶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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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1:36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Jade 2007-08-2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라면 적절한 때 적절한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알아야 할텐데 우리는 쓸데없는 것에 분노의 화살을 돌리나 봅니다.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문구가 오래도록 머리를 맴도네요.

dalpan 2007-08-28 00:56   좋아요 0 | URL
이데올로기란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가려진 것들의 진실을 보는 것.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 쉽지만은 않겠지만, 알아차리는 순간 행동해야한다 생각해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구판절판


잘사는 서구 사람들에게 그런 끔찍한 장면은 별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아. 서서히 죽어가는 소말리아인들의 참상은 우리에게 그냥 평범한 일이 되고 말았어. (중략) 그리고 너는 이런 희생자들을 좀처럼 볼 수가 없어. 왜냐면 스위스의 TF1, RA1, 독일의 ZDF, 영국의 BBC 같은 서방 언론의 카메라들은 이런 현장에서 몇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에티오피아의 오가덴에 세워져 있거든. 그러니까 네가 텔레비젼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나마 국경을 넘어 오가덴의 난민 캠프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지.-27쪽

너 혹시 전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중략) 하지만 미국은 아주 달라. 소들이 먹어치우는 곡물이 연간 50만 톤에 달한단다. 물론 소들은 움직일 수가 없지. 정해진 공간 내에서 그저 질서정연하게 서 있을 뿐이야. 프랑스의 르네 두몽이라는 농학자가 연구한 바로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피드 롯의 절반에서 연간 소비되는 옥수수의 양이,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면서도 만성적인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잠비아 같은 나라의 연간 필요량보다 더 많다는 계산이 나왔어.-72쪽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는 거의 모든 농산품 가격이 투기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니? 미국 시카고의 미시간 호숫가에는 위압적인 건물이 솟아 있어. 바로 시카고 곡물거래소야. 세계의 주요 농산물이 거래되는 곳이지. 이곳에서는 몇몇 금융자본가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어. 사실 거래는 몇 안 되는 거물급 곡물상의 손에서 결정돼. 그들은 몇 사람 안 되지만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 앙드레 S.A.(스위스), 컨티넨털 그레인(미국), 카길 인터내셔널(미국), 루이 드레퓌스(프랑스) 등이야. 그들의 상업함대가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전세계 곡물의 매매가를 결정하고 있단다.-73쪽

유럽은 식량을 폐기처분하고 있는거야. 남반구에서는 식량이 없어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말이야. 유럽연합은 나름의 논리를 따르고 있어. 자국의 농민들을 살려야 하고, 그 때문에 농산물가격을 높게 유지해야 해.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것은 FAO나 WFP의 과제일 따름이지. (중략) 식량의 가격이나 생산량의 결정, 그리고 식량의 공평한 분배 등에 대해 FAO나 WFP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야. 세계시장만이 힘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그 시장은 아주 잔인하단다.-80쪽

아옌데는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이라서 유아기의 비타민 및 단백질 부족, 소년소녀들의 건강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 그래서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내건 공약이 분유의 무상 배급이었던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분유와 유아식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기업 네슬레가 당시 이 지역의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지. 네슬레는 우유공장을 경영하며 목축업자들과 독점계약을 맺고 판매망도 장악하고 있었어. 그래서 아이들에게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기 위해서는 네슬레와의 원활한 관계가 필요했지. 아옌데는 결코 네슬레에 분유를 공짜로 달라고 하지 않았어. 제값을 주고 사려했지.
그러나 1971년 스위스 베베이의 네슬레 본사는 칠레 민주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했어.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그 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적 개혁정책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이지.-100쪽

강력한 무기를 지닌 이런 약탈자들이 들이닥치기 전만해도 아프리카의 농민이나 목축민들은 현지의 권력자에게 상납하고 자신들이 소비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했어. 하지만 유럽인들이 도착하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고 말았지. 유럽에서는 공업이 발달하여, 대량의 농산물을 사들일 구매자들이 있었어.

그래서 식민지의 권력자들은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유럽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즉 유럽 시장에서 소비될 수 있는 작물을 경작하도록 했어. (중략)

세네갈은 프랑스 식민지였는데, 오로지 땅콩 농사에만 매달리도록 강요받았어.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런 수출만을 위한 단일경작(모노컬쳐)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정부의 수출가격에 비해서 농민들은 너무나 헐값으로 농산물을 넘긴단다. 기생적인 관료들과 지배계급은 이렇게 농민들의 피땀 어린 노동을 착취하여 얻은 차액으로 엄청난 사치를 누리고 있어. (중략)

세네갈 정부는 땅콩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로 태국이나 캄보디아, 혹은 그 밖의 나라에서 쌀을 대량으로 구입하지. (중략) 다시 말해서 세네갈은 해마다 식량의 외국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셈이야. 세네갈의 국민들은 무척 부지런해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 -132쪽

글로벌화한 금융자본의 힘은 막강하다. 그 기동성을 꾸준히 강화하여 투자의 결정과정을 단축하는 한편,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수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금융자본은 결코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중략) 1919년에 막스 베버는 "부란 일하는 사람들이 산출한 가치가 이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오늘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160쪽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고 썼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법칙은 사회정의를 보장한다. 세계시장은 규범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의 집단적인 의지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의 유일한 견인차는 이윤지상주의라는 입장,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허구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이 시대의 급박한 과제다.-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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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 왔다.
물건은 어제 왔으나, 너무너무 피곤한 탓에 오늘에서야 포장을 풀었다.
아...얼마나 기다리던 물건인가? 집안 구석구석에 현상된 롤 필름은 쌓여가고, 사진도 쌓여가고, 수습할 도리가 없어 방치되던 것들이 이제 빛을 보게 생겼다. 디지털카메라를 능가하는 필름카메라와 필름스캐너의 찰떡궁합!



                                                      [ EPSON PF V-700 ]

오늘 한번 쓱싹 돌려보고 대강의 성능을 테스트 해 보았는데, 아주아주 걸물이다. 당장이라도 다 스캔을 뜨고 싶을 정도지만, 매일 한다해도 어림잡아 족히 두어 달 이상은 걸릴 작업일 듯하여 눈에 보이는대로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던 차에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사진을 하나 발견했다. 보통은 필름을 맡기면 잘나오든 못나오든 모든 사진을 인화해 주는 것이 맞겠지만, 작업자에 따라 불필요하다 싶은 사진을 생략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딱 걸렸다. 아이고...내 새끼...하는 심정으로 한참을 들여다 봤다.
도대체 이 사진은 왜 인화해 주지 않았던 것인게야!!



                                        [ 늦은 오후 몽마르뜨 언덕에서 내려다 본 파리시내]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마 아주 기쁘게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은 사진 건지는 것보다, 시간을 되돌려 유쾌하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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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7-08-25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좋은 녀석으로 지르셨네요. 저도 중형 스캔하려고 평판 스캐너 하나 사볼까 생각 중이었어요. 이 녀석보다는 조금 급이 낮게 4490 정도로.. ^^;

dalpan 2007-08-25 23:34   좋아요 0 | URL
한 3개월동안 손가락 빨게 생겼습니다. ㅎㅎ 필름정리하는 시간도 3개월 정도 잡고 있으니 아마 참을만 할겁니다. 이놈 괜찮더라구요.

향기로운 2007-08-25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저도 스캐너 고르고 있었는데..^^

dalpan 2007-08-25 23:37   좋아요 0 | URL
필름 종류에 따라 스캔할 수 있는 홀더가 종류별로 다 들어 있더라구요. 35mm부터 8*10, 슬라이드 필름까지 다 돼요. 조금 비싸긴한데, 필카를 쓰는 저로서는 아주 만족스럽더군요.

마늘빵 2007-08-25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게 스캐너에요? 와... 참 요샌 별게 다 있어요. 난 스캐너는 대학 도서관 멀티미디어실에 있는 그런거 밖에 못봤는데.

dalpan 2007-08-25 23:39   좋아요 0 | URL
아프님 논문쓰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제가 다 긁어드릴께. 보내세요. ^^

twinpix 2007-08-25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멋지네요. 필름스캐너가 있군요. 'ㅁ'/

dalpan 2007-08-25 23:42   좋아요 0 | URL
동네 사진관 아자쒸가 자기 가게에 있는게 5천만원짜리라며 침을 튀기더라구요. 제가 몇십만원짜리 스캐너 얘기를 꺼내니 그건 우무짜(장난감)라고... 만원만 주면 36장 필름 2롤 스캔해준다고 사지말라더군요. 흐흐흐

다락방 2007-08-2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 사진 정말,정말,정말,정말 좋은데요!!

dalpan 2007-08-25 23:45   좋아요 0 | URL
괜찮지요? 오른쪽 버튼을 누르신 후 다른이름으로 저장해 가세요. 장당 카프리 한병. 괜찮지요? 하하하..

라로 2007-08-2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능력있으시구나~~^^;;
근데요,,,제가 디지틀 캠코더를 급히 구입해야 하는데
추천하실만한거 아심 알려주세요~~~.꾸벅

dalpan 2007-08-26 02:35   좋아요 0 | URL
캠코더는 만져보지도 못했다는...
죄송합니다, 꾸벅.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