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水巖 > 오규원 - 비가와도 젖는 자는 -순례1

                          
                            비가와도 젖는 자는
                 
                        -순례1

                                                   - 오    규    원 -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멈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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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아래 누워

잎새에 달린 하늘을 보다

문득 매미 울음 소리를 듣다

환한 햇살도 부서지고

파란 하늘도 부서진다

맴 맴 맴

7년을 기다려

7일을 울고 간다

맴 맴 맴

내 존재를 확인하기위해

나도 속으로 익어야 한다

7년을 익어야

아니 전생애를 익어야

존재의 빈탕 그 곳에서

아무 걸리는 것 없는

울음 한 번 울어볼까 

맴 맴 맴

매미가 운다

맴 맴 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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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사색사화집
김춘수 지음 / 현대문학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시는 쓰여진 이의 상상력이지만 그것이 독자에게 읽힐 땐 또 다른 세상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읽는 이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되는 새로운 시가 되기도 한다. 김춘수 시인은 왜 자기 생에 있어 자신의 주관으로 이러한 사색사화집을 내고 싶어했을까? 시단의 원로로서 우리 나라 시의 100년사를 한 번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시의 범주와 그 속에서의 시에 대한 평가를 시단에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그가 분류한 네가지 범주의 시, 서정적인 시와 피지컬한 시 그리고 메세지가 담긴 시와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시는 내가 예전에 모르고 음미할 수 없었던 시들에 대한 이해(물론 아직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은 시도 수두룩하지만...)를 갖게 해주었다. 특히 피지컬한 시를 음미하는 방법과 실험적인 시를 보는 눈이 전혀 없었던 나는 이 책으로 인해 그 영역에 대한 첫경험은 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서정성이 깃든 시가 마음에 와닿는다. 내겐 익숙해서일수도 있지만 나의 정서가 그쪽으로 좀 뻗어있나 보다. 메세지가 강한 계열의 시는 우리 시대가 요구할 당시, 내가 학창시절에는 가슴을 울리는 바가 있었지만, 시대의 조명이 꺼져버려서 그런지 요즘 읽기엔 그렇게 썩 마음에 다가오지를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색사화집에 삶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의 시 또는 선시를 넣지 않았다는 것은 좀 실망스럽다. 물론 그가 선시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부족에 있었겠지만 또한 우리의 근대사에 있어 우리들에게 알려진 선시나 그런 류의 시가 많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시는 언어의 사원이 아닌가? 시를 읽고 우리들의 의식을 탁 틔워주고 가슴을 확 열리게 해주는 내적 체험이 없다면 시는 어떤 소용이 또한 있을까? 그런 면에서 선시 한편 실리지 않은 이 사화집이 그래도 좀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물론 김춘수 시인이 우리나라에서 이런 작업을 처음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으니 앞으로 좀 더 다양한 형태의 분류와 그에 따른 사화집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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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틱낫한 지음, 오강남 옮김 / 모색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틱낫한 스님의 책을 오랫만에 들었다. 일생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전쟁 종식을 위해 노력하신 분, 전쟁이 끝나자 전후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은 두려움과 공포를 사랑과 자비로서 감싸안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종교인 불교를 사람들에게 심어놓기 위한 승려만은 아니었다. 유럽과 미국과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세계의 인류가 자신이 자리한 위치에서 자신의 믿는 종교의 뿌리로 돌아감으로써 모든 종교가 반목과 적대감에서 벗어나 상호간의 이해와 사랑을 높임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것을 원했다.

  프랑스의 보르도지방에서 플럼빌리지를 운영하고 계신 스님은 우리들의 참된 존재는 지금의 드러난 세상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불국토와 서방정토는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숨쉬며 살아가는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기쁘고 행복한 바로 이곳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부처님과 만나는 법은 '마음 다함'이라고 한다. 숨쉴때는 온전히 숨쉬는 것을 느끼고, 걸을 때는 온전히 발걸음에 온 마음을 집중하고, 먹을 때는 음식에 모든 마음을 집중하는 것, 바로 현재에 온 마음을 기울여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마음 다함은 마음 없음이 된다. 온마음을 모르는 마음으로 만들고 생각과 관념을 떠나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묻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본래 모습과 더욱 가까워진다. 그 곳이 바로 우리의 참된 고향이다.

  우리가 보는 작은 생명체 하나에 들어있는 온 우주를 보는 것, 그래서 나와 그 작은 생명체 하나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보는 것, 모든 생명체의 육신은 사라져도 그것의 본체는 사라지지도 없어지지도 그리고 생겨나지도 않음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내 눈 앞에 있는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통찰을 필요로 한다. 내 눈앞에서 느티나무 작은 잎들이 바람에 일렁인다. 그 잎새사이로 언뜻 비쳐지는 하늘, 이 모든 것이 신비롭기만 한다. 나무아래로 시원한 바람은 그치지 않고 불어오고 나는 그 바람 속에서 틱낫한 스님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듣는다. 내 속에 있는 진정한 내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스님은 지구에 사는 온 인류가 타인과 타종교에 대한 배제와 억압을 버리고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기를 원한다. 그래야만 지구인이 보다 성숙한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테니까.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남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의 뿌리로 돌아갈 것을 강조한다. 어떤 종교든지 그 원래 뿌리는 순수하고 인간 존재의 본래모습과 닿아 있으니까. 그 종교의 뿌리에서 멀어지면서 우리는 서로가 다르고 독립된 개체인 것처럼 생각한다. 원래 나무를 보라. 그 뿌리는 대지 흙으로 서로 같은 영양분과 에너지를 받으며 자라지 않는가?

  자신의 존재 밑바탕까지 보아야 그 많은 종교가 바로 그 밑바탕에 이르는 하나의 길일 뿐,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대지 흙으로서 서로를 만날 수 있게 되고 서로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줄기를 타고 가지로 갈수록 잎으로 갈수록 우리는 자신이 독립된 개체인양 생각하고 자신의 물질적 삶이 전부인양 생각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위해 타인을 짓밟고 희생시키면서 정작 중요한 자신의 밑바탕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삶은 늘 역설적이다. 물질적 삶에 치우칠수록 자신의 정신적 삶은 황폐해지고 자신을 버릴수록 오히려 더욱 자신의 본래모습을 되찾는다. 원래 참된 진리는 역설적이지 않은가? 길 없는 길, 문 없는 문을 지나 우리 본래의 모습으로 가는 여정은 세상 모든 곳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으나 그 세상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오늘 나는 내 몸 담은 이곳에서 대도로 가는 길을 모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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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들으니 내 속 번뇌 녹아나고

차분한 마음 느긋한 몸

미소 머금은 입술

종소리 따라 선정의 섬으로 들어가니

내 마음 뜰에 아름답게 피는 평화의 꽃송이들.

 

                                       - 틱낫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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