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교실
야마와키 유키코 지음, 김현희 옮김, 엄효용 사진 / 웅진주니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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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아이들은 끝없는 지옥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의 눈을 섬세하게 가져 살피지 않는다면 내 아이가 하루하루 얼마나 지탱하기 힘든 삶을 버텨나가는지 모르게 된다. 정말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에게 눈물로서 추천할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고 가장 잔혹한 비밀이야기, 바로 집단따돌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돌림에는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

 

  따돌림을 당할 때에는 그 피해자가 그럴만한 성격적 결함이나 행동상의 문제를 갖고 있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호히 말한다. 그렇지 않다. 집단따돌림은 아주 우연적이고 아무런 이유와 근거없이 가해자의 심리에 의해 집단적으로 하는 행위다. 거기에는 뚜렷한 이유도 원인도 시작도 없다. 다만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이 왜 이렇게 우리 아이들의 성격을 비뚤어지고 악마의 얼굴로 만들어가는지에 대해 교육체제와 학교현실을 놓고 깊이 반성해보아야 할 일이다. 어쩌면 성적위상주의라는 과제에 직면한 아이들이 갖는 스트레스와 진학과 진로에 대한 압박과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학교와 교실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 학교에 만연한 노스페이스 계급현상도 학교의 주류사회에 편승하고자 하는 고달프고도 절박한 아이들의 노력과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무작정 개입하여 가해자를 처벌하면 해결된다?

 

  그럼 내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여 식욕도 없고 구토증세도 있고 자다가 식은 땀을 흘리고 깨던지 갑자기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하던지...학교의 통신문을 가져오지 않고 숙제노트나 과제노트를 보여주지 않던지...물건이 자주 파손되던지...할 경우 당장 학교에 찾아가 담임교사에게 따지고 학교를 뒤집어 놓고 교실에서 큰소리치며 협박을 하고 오면 될까? 그렇다면 일종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암묵적인 계약을 위반한 배반감에 더욱 지독한 따돌림에 시달리기 쉽다. 우선 이 문제의 접근법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의 의사에 반해서 학교를 찾아가지 않기, 학교를 찾아가 불평과 협박을 하기보다는 건설적인 방법에서 그 해결책을 찾기, 해결책 찾기와 별도로 학교배상책임에 대해 제 3자를 통하여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 등이다.

 

 일단 아이가 집단따돌림을 당한다면 전학보내는 것이 제일 좋다?

 

  아이가 집단따돌림을 당한다면 우선 아이의 심리적인 상처와 그 흔적은 평생을 두고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선 그 장면을 회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태에서 학교와 학부모 교사 학생이 유기적으로 협동하여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그 해결과정에서 집단따돌림을 극복하면서 배운 의지가 그 아이에게 집단따돌림으로 인한 상처를 거의 아물게 해준다. 그러나 상황파악을 잘못하여 극도의 절망과 위험 속에 빠진 아이에게 정신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근거없는 용기나 희망을 불어넣는 것은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미 피폐해져 삶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는 학교를 쉬게 하면서 가정에서 최대한 안정감과 사랑을 통해 아이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아이가 학교에 가야한다고 말해도 그 아이는 이미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부모가 나서서 아이를 설득시켜 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집에 있을 때도 외출시에는 반드시 동행하여 따돌리는 학생들과의 접촉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상담전문기관을 통해서 아이를 치유하는 한편 학교와는 이에 책임을 가진 교장 교감과 생활지도부장 담임과 함께 이 문제를 맞대고 토론하면서 학교에 이 사실을 분명히 알려서 이후에 있을 더 극단적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식시켜서 학교적 차원의 노력을 촉구하고 될 수 있으면 자신의 감정을 자제시켜서 이성적으로 학생이 다시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그 상황을 이겨내도록 건설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 우리 어른들은 자신의 자녀가 혹시 집단따돌림을 당하지 않는지 마음의 눈으로 세심하게 관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분명히 아이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다. 다만 말을 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 응급구호의 메세지를 우리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일은 더욱 극단적으로 치달을 수 있다. 다음은 책에서 정리한 구조신호이다.

 

 - 최근에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 공책과 교과서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 부모님 앞에서 숙제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 요즘 들어 부쩍 돈을 달라고 떼를 쓴다. 부모님 지갑에서 몰래 돈을 훔친 적이 있다.

 - 학교에서 행사가 열릴 때는, 부모님에게 오지 말라고 부탁한다.

 - 잘못했을 때는 곧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

 - 학교에서 유인물이나 안내물을 받아왔으면서도 부모님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 자꾸만 멍하니 있고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다.

 - 억지로 밝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 요즘 학교생활이 어떤지 물어보면 "별로에요", "그냥 그래요"라고 얼버무린다.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물어보면 벌컥 화를 낸다.

 - 친구들 이름이 화제에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 학교에 관한 푸념이나 불만 사항을 말하지 않는다.

 - 학부모 모임이나 담임선생님과 개인 면담에서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 잠을 잘 못잔다. 악몽을 꾸고, 한밤중에 자주 깬다.

 - 권태감, 피로, 의욕 저하를 보인다.

 - 원인 불명의 두통, 복통, 구역질, 식욕 저하, 체중 감소 등의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 무슨 일을 해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한다.

 - 예전에는 열중하면서 즐기던 게임이나 놀이를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

 - 이유없이 짜증을 낸다.

 -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진다.

 - 신체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부모님하고는 절대로 같이 목욕하지 않는다.

 - 부모님 몰래 옷이나 체육복, 신발 등을 직접 빨 때가 있다.

 -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친구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비행을 저지른다.

 - 집밖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외출할 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신경을 쓴다.

 - 돈 씀씀이가 커졌다.

 - 성적이 떨어진다.

 - 건망증이 심해졌다.

 - 자해 행위를 한다.

 - 메모 또는 일기장에 '죽음'을 암시하는 문구가 있다.

 

이런 증상이 보여 집단따돌림으로 판단되면 다음과 같은 방법도 숙지해야 한다.

 

 - 당분간 학교를 쉬게 한다.

 - 부모로서 메세지를 전달하라.

 - 아이 혼자서 외출시키지 말라.

 - 따돌림에 대해서 억지로 질문하지 말라.

 - 집 안에서는 밝고 즐겁게,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자.

 - 아이의 말은 전부 진실로 받아들여라.

 -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한테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 따돌림에 맞서게 하지 말라. 무조건 참으라고 말하지 말라.

 - 아이의 허락없이, 무조건 학교에 상담을 청하지 말라.

 

  가장 순수하고 자신의 꿈을 키워야 할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런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도 절망적인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교실에서 아이들을 더욱 자세히 세심하게 쳐다보고 카톡으로 더욱 많이 소통하여 적어도 내 교실에서만이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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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포노포노의 비밀 - 부와 건강, 평화를 부르는 하와이인들의 지혜
조 바이텔.이하레아카라 휴 렌 지음, 황소연 옮김, 박인재 감수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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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를 한 번도 만나보지 않고 환자를 치유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온전한 책임으로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중증환자를 고친다는 신비한 치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고대 하와이인들의 지혜를 현대에 맞게 서술한 것이고 그 이름은 '호오포노포노'이다. 우리가 생각한 모든 이해를 넘어선 곳에서 신성과의 만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의 고통과 문제는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의 영적인 면과 관련되어 있음을 파악하고 그를 정화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시키는 방법이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고맙습니다.

 

  휴렌 박사는 말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스스로를 돌아보세요. 그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될 때에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누군가가 여러분의 인생에 끼어들어 여러분을 괴롭힌다면 여러분 안의 무엇이 여러분을 괴롭히도록 만드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문제의 시작도 나이며 그 귀결도 나인 것이다. 인생의 문제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회피하지만 성숙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와서 해소시켜야 한다. 백성욱 선생님의 가르침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생각한다.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자신의 눈 앞에 가져와서 '미륵존 여래불'하면서 정화시키는 길은 모든 일체의 생각을 끊고 자신의 마음 속의 신성을 만나서 답을 구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결국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나의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며 구원받는 자와 구원하는 자는 결국 일치한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는 내 마음 속의 어떤 면을 정화시키게 되면 그 사람으로 인한 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리라. 그러면 그로 인해 왜곡되는 우주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켜간다면 결국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이 병들었을 때 그 사람을 병들게 하는 나의 영적인 원인을 찾아낸다는 말의 의미를 아직 모르지만 그 마음이 나의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정화시켜나가는 것과 상관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결국 호오포노포노가 가리키는 것은 내 마음을 닦아나가는 것과 같다. 그것을 언어적으로 표현한 방식과 이 가르침이 내 마음 속에 어떤 파장을 일으켜서 인연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인연되는 인생의 길과 배움의 길이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손쉽고 특정 종교의 형식을 빌리지 않으면서 삶을 배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는데 믿어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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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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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정신문화는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활동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그리고 생존을 위한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변해가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사상이 드러난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인 의식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일까? 어쩌면 이 책은 인간의식의 기원을 다룬 책이기도 하지 않을까? 선사시대의 원시인이 땅에다 돌을 갖고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면 그 행위로부터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도출할 수 있을까? 나아가 물질이 우선인가 의식이 우선인가 하는 철학의 근본문제에까지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구석기시대의 미술

  구석기시대의 미술은 자연주의적 특징을 가졌다. 직접적이고 순수하고 어떠한 이지적인 작용이나 제약도 없는 상태로 인간이 보고 느꼈던 시각적인 인상을 재현했다. 실용적이고 생존을 위한 목적으로 수렵을 하는 원시인이 직접 그린 것이다. 그는 그림을 통해 사물을 소유한다고 믿었고 사물을 지배하는 힘을 얻는다고 믿었을 것이다. 활이나 창에 관통당한 동물의 모습을 통해 그는 사냥이 잘 되길 바랬고 자신의 생존을 보다 풍요롭게 가꾸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이 때의 미술은 마법이자 주문이었을 것이고 주술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신석기시대의 미술

  이 시대는 애니미즘과 기하학적 형식을 가진다. 예술은 사물의 이념이나 개념 또는 본질을 포착하려하고 대상의 묘사보다 상징의 창조에 주력하였다. 이 때에 와서 비로소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생산물과 생산수단에 대한 지배관계에 따른 계급이 생기고 드디어 생산활동으로부터 독립된 계층이 생겼다. 종교적 의식과 예배행위가 생겼고 이는 농경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농경사회는 이동생활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부터 그 본성에 보수성이 내재되어 있다. 사회의 지배계층은 보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어 더욱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기하학주의는 통일적 조직을 만들려고 하는 경향과 영속적인 질서 그리고 대체로 현세의 피안을 지향하는 세계관을 갖추게 된다.

 

  한 예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덤을 장식하며 종교적 색채를 띠는 예술과 순전히 장식적인 요소만을 기술적으로 발전시킨 세속적 예술로 분화되게 된다. 고대 오리엔트에서는 인체묘사의 법칙으로서 인간이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있건 간에 가슴의 표현만은 그 전부가 감상자쪽을 향하도록 묘사하는 '정면성의 원리'에 입각하는 모습을 가진다. 이는 명확하고 간소한 인상을 띠게 되고 그것을 감상하는 귀족이나 궁중계급에 봉사하는 성격을 가진다. 고대 그리스로 이어지면서 왕과 궁정을 찬미하는 형식으로 나온 아케이즘고 서정시적 양식 등 문학에서 주관주의적 양식이 대두된다. 그리고 자연경제적 생산에서 교육과 화폐경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형식의 자율화와 예술을 위한 예술이 등장하여 새로운 사회의 자유로운 계층을 대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아직 문학과 예술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의 영향을 고스란히 가지면서 발전하고 변화해갔다. 아직 문학과 예술이 자신 스스로의 독립적인 영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서도 그런 맹아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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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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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트겐슈타인은 왜 부지깽이를 들었을까? 라는 의문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비트겐슈타인과 캠브리지 학파에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관계에서부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사상의 전개와 그의 천재성과 카리스마가 캠브리지에 새로운 철학사조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계가 유대인으로 자라서 성공한 빈의 재벌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부지깽이 사건이 물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으로 세상의 조명을 받았다면 이제 부지깽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물 속에 잠긴 거대한 빙산덩어리를 이해하기 위해 빈과 시대와 나치즘의 형성과정을 이야기한다.

 

  한편으로 칼 포퍼의 이야기도 시작된다. 새끼줄을 꼬는 또 하나의 매듭처럼 러셀과 포퍼와의 만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같은 유대인으로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유년기를 보낸 포퍼의 삶을 들여다본다. 성공한 변호사 아버지와 많은 장서를 보유한 아버지의 서재로부터 성장한 포퍼가 오스트리아의 독일통합과 인플레이션으로 전 재산을 날려버리고 생존문제에 직면해야했던 사실에서부터 같은 뿌리를 가진 비트겐슈타인으로 향한 부러움과 분노는 동시에 발생하였던 것일까? 나치의 칼바람 속에서도 부를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태인 탄압의 폭풍도 피해갔던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태생적인 열등감에서부터 자신이 열망하는 학문의 중심인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교수직을 원했던 희망에서도 차순위일 수 밖에 없었고 캠브리지가 인정하고 그의 카리스마의 영향을 받았던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가졌던 이중적인 감정은 부지깽이사건의 한 층 밑에 자리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정확히 부지깽이 사건을 향해 간다.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이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각도로 세세하게 파헤쳐가는 기술적 방법이 놀랍다. 그들의 태생에서부터 유년시절 성년이 되면서 겪었던 삶의 체험들과 처지들, 그리고 그들의 성격과 기질 그리고 학문적 입장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이며 수많은 가능성과 확률의 미로속을 통과해서 결국에는 부지깽이 사건에서 만나야 할 것이다.

 

  철학적 문제에 대해 '포퍼라면 이것에 대해 뭐라 말할까?'라는 물음에 어떤 답도 얻을 수 없다. 그는 한번에 하나의 특수한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어떻게 말했을까?'라고 묻는다면 반드시 어떤 답과 마주치게 된다. 그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보편적인 접근법을 그의 제자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비트겐슈타인에 있어서 언어의 의미는 대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제가 되고 언어적의미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는 말할 수 없어 침묵한다는 입장이었고 이에 비해 포퍼는 철학이 역사와 사회에 책임을 가지고 인간의 이성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보았다.

 

  물론 이 둘의 입장을 어느 한편의 입장에서 다른 편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우열성을 가리는 것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다만 이 부지깽이 사건의 후면과 그 철학적 의미는 독자들의 개인에게 남겨진 숙제가 될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적 문제에 대해 어떤 이는 만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천재성과 카리스마로 또 한사람은 성실성과 합리성으로 한 시대의 세상을 보는 방식을 제공했던 그들을 통해 오늘날을 보는 창 하나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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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위로
앤터니 스토 지음, 이순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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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관계의 힘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다. 전 대통령이셨던 노무현님도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라고. 이렇듯 사람들은 누구나 인간관계를 맺고 산다. 그 인간관계가 어떻느냐에 따라 삶의 행복이 좌우되기도 한다고 믿는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인간관계를 부모와 가정에서 습득해가면서 친밀감과 애착을 형성해가고 유아기 때의 인간관계의 문제나 욕구충족의 문제가 성인기의 그 사람의 성격형성을 결정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세상의 모든 눈은 인간관계를 향해 있고 그 인간관계의 성격과 질에 따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 사람의 행복감도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인간관계는 우리들의 삶의 행복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자신을 알아주는 좋은 벗의 가치는 세상 그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의 시선이 모두 인간관계와 그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쏠리게 되면서 우리에게 또 한편의 조명받지 못한 영역이 애절히 시선을 기다린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늘에서 있어서 어쩌면 관계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영역, 바로 '고독'의 영역이다. 이 고독의 영역은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공간이다. 또한 인간관계의 그물이 자신을 더욱 힘들게하고 인생의 짐으로 드리워질때 이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진정한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공간이다.

 

상실이 늘 비극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런 인간관계의 문제를 너무나도 크게 생각한다. 어릴 때 겪은 부모의 부재라든가 사랑하는 이의 이별과 사별은 그 사람의 인생에 지울수 없는 상처가 되고 성인기의 성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런 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상처는 때로는 성숙함의 발판이 되지도 않던가? 스티븐 스펜더는 부모의 상실이 때로는 홀가분함과 흥분으로 다가오는 사례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부부의 이혼이나 사별 또한 남은 한 사람에게 지울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주기보다는 새로운 삶과 행복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감옥이나 유배지에서 인생을 꽃피웠던 사람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 않은가? 다산 정약용 선생은 땅끝 마을로 유배가서 결국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고 5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써냈고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로 유배가서 결국 자신의 글씨체를 완성하지 않았는가? 멀리 역사를 거슬러갈 필요까지도 없다. 김지하 시인과 신영복 선생님을 비롯한 민주지사들의 삶을 보면 감옥에서의 생활이 단순히 외면적으로 보이는 것을 떠나 그 사람의 인격과 사상을 더욱 깊게 한 예이다. 심지어는 유태인 수용소에서조차 인생을 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삶을 다시 보게 되는 사례도 있다. 베토벤은 26살 때 귀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통해 창의력에 방해되는 피아노 기교를 배제하고 오직 작곡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그의 불후의 명곡들은 이후에 쏟아져나왔다. 결국은 인간관계의 상실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하는 삶의 선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실을 수용하는 두가지 길

 

  어떤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상실이나 욕구의 좌절을 겪어서 평생 지워지지 않는 인생을 짐을 지고 산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원인을 인간관계나 유아기의 욕구좌절로만 돌릴 수는 없지 않을까? 똑같은 환경에서 태어난 쌍동이도 서로 다른 인물이 되고 똑같은 경험을 통해서도 어떤 사람의 인생은 무너지지만 어떤 사람은 인생을 다시 새롭게 사는 계기도 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우리들이 터부시하고 불편하게 회피해왔던 고독의 영역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누리는가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감옥이란 공간에서 느끼는 가장 큰 괴로움은 대상이나 사물과의 감각 차단이라고 한다. 나아가서 어떤 인간관계의 상황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최고의 고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고독과 함께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불교의 선승들은 스스로 고독을 찾아 산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무문관 수행을 하기도 한다. 진정한 종교인들은 스스로 고독의 영역 속에서 신을 찾아 들어가기도 한다. 세상의 창의적이고 종교적이고 예술적인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때 그들은 고독과 사귀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또 그 고독 속에서 자신의 의미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기 두려워서 늘 외부의 관계에서 행복을 찾고 그 관계의 단절을 두려워해서 자꾸만 관계를 더 만들어가고 있지만 정작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관계가 주는 행복이라는 허상 속의 헛된 면들을 만날 수 밖에 없게 된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고독의 영역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기도 하다. 이 고독의 영역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이 책으로 그릴 수는 없다. 어쩌면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고독의 영역을 다룬 천재나 예술가나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자신 스스로에게 내재된 참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라고 말한다. 문제는 나의 선택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에게 주어진 고독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그 본래 얼굴을 찾을 수 있다면 힘겨운 인간관계에 매달리면서 낭비하는 시간들을 보다 의미있는 자신의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인생의 일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아야 하고 일상의 시시각각을 접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봐야 하리라.

 

P.S 저자는 해박한 지식으로 정신분석학에서부터 철학자 사상가 문학자 시인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례들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견해에 대해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치 소설처럼 줄줄 읽히는 문장이 부담스럽지 않고 편하다. 오랫만에 수작을 하나 만난 기분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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