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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비트겐슈타인은 왜 부지깽이를 들었을까? 라는 의문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비트겐슈타인과 캠브리지 학파에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관계에서부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사상의 전개와 그의 천재성과 카리스마가 캠브리지에 새로운 철학사조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계가 유대인으로 자라서 성공한 빈의 재벌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부지깽이 사건이 물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으로 세상의 조명을 받았다면 이제 부지깽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물 속에 잠긴 거대한 빙산덩어리를 이해하기 위해 빈과 시대와 나치즘의 형성과정을 이야기한다.
한편으로 칼 포퍼의 이야기도 시작된다. 새끼줄을 꼬는 또 하나의 매듭처럼 러셀과 포퍼와의 만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같은 유대인으로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유년기를 보낸 포퍼의 삶을 들여다본다. 성공한 변호사 아버지와 많은 장서를 보유한 아버지의 서재로부터 성장한 포퍼가 오스트리아의 독일통합과 인플레이션으로 전 재산을 날려버리고 생존문제에 직면해야했던 사실에서부터 같은 뿌리를 가진 비트겐슈타인으로 향한 부러움과 분노는 동시에 발생하였던 것일까? 나치의 칼바람 속에서도 부를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태인 탄압의 폭풍도 피해갔던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태생적인 열등감에서부터 자신이 열망하는 학문의 중심인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교수직을 원했던 희망에서도 차순위일 수 밖에 없었고 캠브리지가 인정하고 그의 카리스마의 영향을 받았던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가졌던 이중적인 감정은 부지깽이사건의 한 층 밑에 자리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정확히 부지깽이 사건을 향해 간다.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이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각도로 세세하게 파헤쳐가는 기술적 방법이 놀랍다. 그들의 태생에서부터 유년시절 성년이 되면서 겪었던 삶의 체험들과 처지들, 그리고 그들의 성격과 기질 그리고 학문적 입장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이며 수많은 가능성과 확률의 미로속을 통과해서 결국에는 부지깽이 사건에서 만나야 할 것이다.
철학적 문제에 대해 '포퍼라면 이것에 대해 뭐라 말할까?'라는 물음에 어떤 답도 얻을 수 없다. 그는 한번에 하나의 특수한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어떻게 말했을까?'라고 묻는다면 반드시 어떤 답과 마주치게 된다. 그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보편적인 접근법을 그의 제자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비트겐슈타인에 있어서 언어의 의미는 대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제가 되고 언어적의미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는 말할 수 없어 침묵한다는 입장이었고 이에 비해 포퍼는 철학이 역사와 사회에 책임을 가지고 인간의 이성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보았다.
물론 이 둘의 입장을 어느 한편의 입장에서 다른 편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우열성을 가리는 것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다만 이 부지깽이 사건의 후면과 그 철학적 의미는 독자들의 개인에게 남겨진 숙제가 될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적 문제에 대해 어떤 이는 만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천재성과 카리스마로 또 한사람은 성실성과 합리성으로 한 시대의 세상을 보는 방식을 제공했던 그들을 통해 오늘날을 보는 창 하나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