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한기택
한기택을 기억하는 사람들 엮음 / 궁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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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천주교 미리내 성지 옆 실버타운 '유무상통' 마을 옆에 '하늘문'이라고 이름붙여진 작은 봉안당이 있다. 그 봉안당 안의 오른쪽 벽 한 귀퉁이에 한기택이 있다. 앞에서 평면으로 보면 보통의 책만 한 크기다. 그 속에는 타서 재가 되어버린 한기택의 한 줌 뼛가루가 있고, 바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한기택(크리스토폴)

1959.2.17 ~ 2005.7.24

그것 뿐이다. 차관급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어울릴만한 봉분도 선배,동료,후배 판사들이 가장 존경했던 판사를 추모하는 추모비도 없다.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한기택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추천에 의해 판사의 꿈을 키우던 한기택은 "나의 꿈은 절대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라든지 "나는 나같은 놈들과 싸우고 싶다."라고 일기에 적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유심히 관찰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살필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이미 짐승으로서의 본능적 요소와 짐승과는 구별되는 인간의 이성적 요소를 동시에 갖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고등학생때부터 박정희 정권의 부당성을 인식했으며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판사가 되기 위한 내적인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과연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깊이 천착하였고, 결국 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음을 고백하였다.

  판사로서 피고인과 원고인의 소장을 철저하게 검토하였으며, 그들의 이면의 마음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던 판사였다. 그의 치밀하고 지극한 하지만 말없는 노력에 선,후배 판사들은 많은 감동을 느꼈으며, 그의 말은 비록 낮은 음성이었지만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의 판결에는 사회적 약자와 국민의 기본권에 충실한 판결들로 언론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 중 두가지만 살펴보자.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이 위헌이라는 원고측 변론에 대해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규정한 헌법에 따른 것이며 국가가 시각장애인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제도가 부당하다고 불 수는 없다."고 밝히면서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각장애인의 생존권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또 하나는 고위공직자들의 존비속이 재산고지를 거부할 경우 그 사유를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로서, 2002년 3월 1급이상의 고위공무원의 재산공개때 고위 공직자 36명이 부모나 자녀 등 직계존비속 1명 이상의 재산에 대한 고지를 거부하자 "고지거부 조항이 공직자들의 재산은닉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고지거부 사유의 공개를 요구했다. 이때 해당된 공직자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 전윤철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이종남 감사원장, 이기준 당시 서울대 총장,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 임인택 건설교통부 장관, 김승규 당시 대검 차장, 전철환 당시 한국은행 총장 등 모두 36명이었다. 이 재판으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으며 그는 목숨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불려지게 되었다.

  물론 그는 작은 재판 하나하나에도 그의 혼신을 기울여 재판하는 판사였다. 그런 그가 가정에서는 어떠했을까? 그가 가정을 이루는 연애과정과 결혼 후를 보더라도 그는 단지 직업에만 매달려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려했던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가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 한기택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는 이상연이라는 이화여대 수학과를 다니던 학생을 대학 2년때 만나 영혼의 동반자처럼 사랑한다. 그의 식을줄 모르면서 지속되는 사랑과 그 기록물들이 그가 정성들여 쓴 편지로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다정하지만 옳고 그름이 분명했던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기억된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그가 보내는 생의 매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삶의 깨달음을 가졌던 것일까? 두번째 장에서는 그가 일기로서 남겼던 학생시절의 기록과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통해 그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그의 신앙생활의 기록과 판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최근의 그의 마음의 기록들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그의 기록물을 보면서 많은 인간적 고뇌와 방황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질책하며 성찰을 길을 걸어갔던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글을 읽더라도 그와 함께 생활하고 그를 대면했던 사람들이 느꼈던 마음만큼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매 순간 매 장소에서 순간을 충실하며 살았던 인간 한기택에게 가슴 한 켠을 시큼하게끔 하는 조용한 감동과 더불어 깊은 연민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서재지인의 페이퍼에서 유심히 보았다가 구한 책에서 나는 아쉽지만 좋은 사람 한 명을 만났다. 법률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우선 처남에게 추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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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21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권하며 좋겠지요? 보관함에 넣습닏. ^^

달팽이 2006-08-2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는 고시공부하는 처남에게 권하려고 하는데요...
녀석 신림동에서 진땀 꽤나 흘렸을 터인데...

파란여우 2006-08-2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밀알같은 사람을 만나 밀알의 삶을 보고 배우는 일,
황공하지요.

달팽이 2006-08-2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일 화개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차를 만드는 시인 한 분을 새로이 만났습니다.
밀알같은 하지만 색다른 삶을 사는 기인 한 분을 또 만난 것 같습니다.
온갖 차들을 배터지도록 마셔보았습니다.
하루 열두번도 더 변하는 날씨와 물소리 섬진강의 넉넉함...
그리고 사람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답글이 늦었다는 변명입니다.

어둔이 2006-08-2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深藏若虛, 깊이 감추어 마치 없는듯 살면서 제삶을 모두사는 사람, 안개속에서 더 잘보이는 그런 꽃과같은 사람이 있어 우리사는 세상이 한결 행복해집니다. 그런 사람에게 머리숙여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