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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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대표하는 시가 문학 중 하이쿠는 5.7.5의 구조로 된 계절을 상징하는 노래이다. 비슷한 것으로 센류가 있는데 인간의 행동에 대한 풍자와 해학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하이쿠는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하이쿠는 계절을 노래한 것 이외에 '기레지'가 꼭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짧은 시 형태이지만 한번에 읽어내지 말고 쉬어서 읽어라는 의미의 끊임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하이쿠가 계절을 노래한 것이니만큼 계절을 상징하는 시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진달래나 미나리, 개구리, 종달새, 수국, 백일홍, 두견새, 기우제, 모내기, 장마, 무지개, 소나기 밤, 포도, 고추잠자리, 기러기, 은하수, 수선화, 고드름 등의 계절적 용어들을 사용한다. 기레지는 어느 한 단락에서 끊어줌으로써 강한 영탄이나 충분한 여운을 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여', '로다', '구나'같은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우키요에는 주로 에도 시절에 유행했던 미술양식이었는데 다색 목판화를 연상시키지만, 흑백 목판화뿐만 아니라 붓으로 그린 그림들도 모두 우키요에에 해당한다. 처음 등장한 시기는 1657년 3월에 발생한 메이레키 대화재부터 호우레키 연간인 1750년대였다. 처음에는 그림책이나 풍속과 생활상을 주제로 한 대중소설에 삽화를 넣은 것이었다가 나중에는 더욱 발전되어 감상회화의 수준으로 상승된다. 그렇지만 우키요에의 대표는 다색판화라고 볼 수 있다.

  바쇼의 이 하이쿠를 처음 보았을 때 그 느낌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젖은 물소리"

모든 것이 정지된 세계가 나의 눈 앞에 펼쳐졌고 그것은 세상을 모두 빨아들이는 공간같았다. 만물이 시작되는 현묘한 공간이요. 태허와 공의 영역이었다. 그런 태초에 무언가 생명체가 하나 생긴 것이다. 이 하이쿠는 바로 그런 느낌을 준다. 정적의 연못에 개구리 한 마리 '풍덩'하고 뛰어들면서 그 정적은 파괴된다. 갑자기 개구리의 동작과 수면에 급작스럽게 번져가는 동심원은 이제 펼쳐진 세상이 된다. 나는 오래된 연못이란 말에서 공의 세계를 본 듯한 착각에 빠진 것이다.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봄의 향연이자 우주의 묘기가 펼쳐지는 생명의 계절 봄에 꽃들이 만발한 그늘 아래서 우리들은 자아를 잃고 봄의 기운을 타고 논다. 그 흥겨운 마음에 우리 모두는 친구가 된다. 떨어지는 꽃잎도 날아가는 나비도 지나가는 나그네도 모두 친구가 된다.

 "떨어진 꽃잎 가지로 돌아가네, 아, 나비였구나"

꽃잎이 떨어지는 듯, 아니 그런데 이게 왠 걸! 꽃잎이 다시 올라가잖아, 다시 보니 그것은 나비였네.

하하 나비...

"흰 팔꿈치 괴고 선승이 조는구나, 초저녁 봄날"

흰 팔꿈치 드러내면서 선승이 졸고 있다. 무슨 꿈을 꾸는 것일까? 꿈 속의 꿈의 풍경은 어떠한가? 초저녁 봄날의 나른한 단잠에 빠져 그는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것일까? 삶의 단잠을 꿈속에서도 맛보는 것인가? 친구여! 나 왔네. 이제 그만 잠을 깨게나...

"두 사람의 생애, 그 가운데서 피어난 벚꽃이런가"

오늘 내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 이 녀석이야말로 두 사람의 생애 가운데서 태어난 벚꽃이 아닌가?

"여름 소낙비에 홀로 밖을 바라보는 여인이로구나"

떠난 님을 그리는가? 다시 오지 못할 님을 생각하는가? 빗줄기는 자꾸만 굵어져만 가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 먼 곳을 향하는지 살며시 내려깔고 있구나. 빗줄기 내리는 소리 쓸쓸하고 사물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더욱 쓸쓸하고 저물어가는 오후의 어스름깔릴 무렵의 풍경은 또한 더더욱 쓸쓸한지고..

"여름 소나기 잉어의 이마를 두드리누나"

캬아~ 달리 할 말이 없다. 내 이마를 두드리누나..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가을이 두 개"

내가 떠나는가? 그대가 떠나는가? 떠나는 나에게도 쓸쓸한 가을, 남는 그대에게도 쓸쓸한 가을, 이 쓸쓸한 가을은 다시 두 개의 쓸쓸한 가을로 남고...

"도둑이 남겨두고 갔구나, 창에 걸린 달"

달밝은 밤, 밤늦도록 친구들과 노닐다가 집으로 돌아와보니 도둑이 다녀갔나, 이리 저리 물건은 어지러져 있고, 보여야 할 물건들 보이지 않네, 가만 이것은 무엇인가? 창밖에 걸린 저 둥근달, 아하 이놈의 도둑이 저 달은 그래도 남겨두고 갔구나..아, 그놈의 달 참 운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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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3-3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쿠야말로 정형시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문학이라 할 수 있죠.
한국은 문학의 연결고리를 다 잃어버린 것이 참 아쉽기만 합니다.

혜덕화 2006-03-3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의 생애 사이에 피어난 벚꽃, 아름답네요.
두 사람 사이의 꽃이지만 만인에게 기쁨을 주는 생명이기도 하지요. 아름다운 계절에 태어난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기원합니다._()()()_

달팽이 2006-03-3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공감입니다.
혜덕화님, 이 녀석이 신생아실에서도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자꾸만 울더군요.
자유로운 영혼이 몸받아 갇히니 답답한지...
우렁차게 울어댑니다.

파란여우 2006-03-3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시윤이가 아우를 봤군요.
3월 봄 날에 두 사랑으로 한 송이 꽃으로 태어난 아가에게 축복의 기도를 보냅니다.

달팽이 2006-03-3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캭, 감사합니다.
파란 여우님의 봄의 단상을 저는 둘째녀석에게서 느끼고 있답니다.
병원 라운지에서 댓글 다는 맛도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