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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유영모
유달영 외 / 무애 / 1993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근대사의 성인 다석 유영모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한 글모음이 이 책이다. 1993년 출간된 이 책은 지금 구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귀한 인연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또 책 속의 귀한 말씀을 통해 다석 선생님의 가늠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의문이 내 공부의 큰 힘이 되고 있어서 고마움의 글 몇 자를 남기고자 한다. 유영모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선생님의 글을 제대로 읽은 것은 최근의 일임을 먼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공부라고하기엔 부끄러운 나의 책읽기가 몇 년을 거쳐오면서 책의 가치를 조금은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는 것을 또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다석 선생님의 마음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가늠할 수 없이 깊은 글의 에너지가 읽는 나로 하여금 경건하고 마음을 바로세우게 한다. 한 치의 빈틈없이 아바디를 마음 속에 품었고 그래서 그 깊고 옹근 마음 한가운데에서 머무르며 순간도 마음을 놓지 않았던 다석 선생님의 진리는 " 一座食, 一言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일평생 선생님의 몸가짐 하나하나에 빈틈을 찾을 수 없었던 그 모습은 범인인 나로서는 그 알 수 없는 깊이의 마음에 대한 경외로움만을 가지게 할 뿐이다.
일평생을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으시고, 오직 진리의 한 길만을 걸어가신 선생님의 자취는 내 앞을 가로막는 태산이 되어 우뚝 선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신 자리에 현묘한 지혜의 샘이 끊임없이 솟아났던 것일까? 선생님의 도덕경의 풀이와 불교에 대한 해석 그리고 기독교의 해석은 새로우면서도 가슴떨리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살아있다. 깨달음의 빛으로 풀어쓴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해석도 다석 선생님 스스로의 깨달음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선생님의 글처럼 깨달은 이는 자신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양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결코 꺼지지 않을 다석 선생님의 정신적인 유산이 남아 있다. 아니 그들의 가슴을 통해 다석 선생님은 살아계신다. 촛불에서 옮겨 붙는 촛불 처럼 나누어도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양식을 우리는 먹고 살아야 한다. 내 빛이 밝지 못해 스스로 그런 양식을 만들어낼 수 없으면 적어도 그런 양식을 얻어 먹고서 소화는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인간노릇이라도 하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천상의 양식을 구하는 동안은 적어도 인생은 허무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석 선생님을 계기로 나는 온라인 상과 오프라인 상의 고마운 인연들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마음 속의 진리의 끈들로도 이어지고 있다. 진리의 길에서 만난 다석 선생님과 함석헌 선생님, 김흥호 선생님, 박영호 선생님의 길이 있었듯이 나에게도 이름을 달리한 모습을 달리한 만남들이 있다. 사람들로 만나는 것이나 책으로 만나는 것이나 그 길은 마음의 길로 나 있다. 스며듦이 깊을수록 나와의 인연도 깊은 것이다. 이 인연들이 영글어 봄날 따사로운 햇살아래 잎을 활짝 열고 피어나 온하늘을 누비며 날아다니는 꽃잎이 되고 꽃씨가 될 것이다. 마음으로 미리 맞는 꽃천지 세상을 준비하며 이 봄을 맞는다.
다시 책의 표지를 본다. 다석 선생님의 얼굴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한없이 고요하고 끝없이 깊은 저 눈이 응시하고 있는 곳이 어디일까? 봄날의 의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의문이 벚꽃눈처럼 온 하늘에 휘날리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