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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오면서 한 번도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에 옮겨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니 죽기 위해 마음이라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삶이 늘 나에게 순탄하거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깊은 좌절과 사랑의 아픈 상처 속에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날들도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누구나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행복을 바라보며 산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도 그러한 행복이라고 자기 암시나 자기 최면을 통해 내면화하며 산다. 그래서 남들이 인정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삶의 이상이나 꿈을 간직한 사람들은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된다. 세상과의 단절감은 이렇게 시작된다.
베로니카라고 하는 한 젊은 여성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젊고 예쁘고 능력있고 앞으로의 행복한 꿈 하나는 간직하고 살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는 꿈이 없다. 미래가 없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어제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오늘, 그래서 마치 기계처럼 주어진 톱니바퀴같은 삶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숨막히는 오늘을 그녀는 살아갈 용기가 없다. 과다한 약물을 털어넣고 그녀는 다시 깨어난 세상이 이 세상이 아니길 바란다.
눈을 떴다. 그녀에게 죽음이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전의 생활 속에 그녀가 놓인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환경. 그곳은 자신만의 세계를 간직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세상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이 세상을 이해시키지도 못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와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않아도 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세상이 그 개인성으로 이해되고 인정되는 다양한 사회. 그것을 사람들은 정신병동이라고 부른다. 이 곳에서 그녀는 삶의 희망을 조금씩 키워간다.
순간 순간 맞닥뜨리는 죽음의 운명 속에서 그녀는 조금씩 삶의 희망을 되찾는다. 그녀는 죽음을 이제 다른 환경에서 접하게 되었으니까.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고 누구에게나 잘 일어날 수 있는 일로서의 죽음의 환경이 이젠 죽음에 대한 헛된 희망을 갖지 않게 한다. 그리고 누구나에게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정신병동의 사람들. 변호사였던 자신의 성공한 삶을 빼앗겨버린 상실감과 남편으로부터의 버림감으로 미칠 수 밖에 없었던 사람, 그림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며 살고 싶었던 한 순수한 소년의 가족으로부터의 버림, 자신의 세계가 세상으로부터 간섭받기 싫었던 모든 사람들은 이 곳에서 건드려지지 않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살고 있다.
때로는 각 각의 고유한 꿈들이지만 만나는 적도 있는 법이다. 베로니카가 어릴 적 잃어버렸던 피아니스트의 꿈은 정신병동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고 그녀의 잃어버린 꿈의 선율이 다시 한 순수한 청년의 꿈을 되찾아주게 된다. 사랑은 겉으로는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지만 영혼의 관점에서 본다면 내게 아주 익숙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을 찾게 하는 영혼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들은 서로에게서 서로를 본다. 비로소 그들의 자신들만의 고유한 세계는 서로에게서 이해받는다. 이제 그들이 내면세계는 공유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게 된 자신의 또 다른 세상의 영역이 이제 점점 더 넓혀져 가고 그에 따라 삶의 의미도 커진다. 자신의 삶이 이젠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한 사랑이 꽃처럼 피어난다. 이젠 그들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꿈과 이상으로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결국 삶이란 세상을 수용하고 그 세상 속에서 꿈꾸는 자들 내면에서 만들어내는 것에 다름아니니까. 그들이 부딪히는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런 형상과 색깔도 없이 주어진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돌아온 세상은 예전의 세상이 아니다. 이젠 그 세상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지고 자신의 할 일이 보다 절실해진다. 삶은 이런 것이 아닐까? 자신만의 내면적인 여행을 떠나서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 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보는 세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의미있어지는 것. 그러기 위해선 우리들도 여행을 떠나야 하리라.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여행. 꼭 죽음 앞에 서지 않더라도 혹 죽음을 우리의 일상 속으로 가져와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본래 모습을 찾아야 하리라.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세상이 하나되는 자리를 발견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