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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세기 ㅣ 이후 오퍼스 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제 2의 로자 룩셈부르크라고 불리우는 20세기의 여성 맑시스트이자 비판적 이론가인 그녀와의 만남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유대인이었던 그가 나찌에 의해 유태인 학살정책이 이루어질 때에는 유태인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에 전념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인류의 폭력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보적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다. 그런 그녀에게 팔레스타인에서의 유태인의 폭력과 무력이 아랍인의 무고한 생명을 짓밟게 되는 오늘은 그리 유쾌한 뉴스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우선 첫 장에서 진보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세상이 진보의 급격한 변화속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진보는 생명과 삶에 대한 진정한 진보이기보다는 과학과 물질문명이 만들어낸 도구적인 진보일 뿐이라고 한다. 결국 그 도구적 진보는 삶의 퇴보와 맞물려 있을런지도 모른다는 성찰과 비판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참된 삶을 묻게 될 것이다.
권력과 폭력을 사람들은 많이 혼동한다. 권력에 수반되는 것이 폭력이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은 서로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그것은 상반된 것이라고 말한다. 권력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폭력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권력이 지배적인 사회는 그 정당성을 사회의 초기부터 가지고 있는 곳이고, 그 정당성이 결여된 정부가 들어서면, 대부분 그런 정부는 폭력이라는 도구로 정권을 쥐게 되고, 정당화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폭력이 사용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폭력의 본질에 대해 사람들은 그것을 주로 비합리적인 것이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많이 취급하였다. 하지만 아렌트는 그것을 합리적인 인간의 행동이라고 보았다. 뭔가 직접적이고 급박한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을 때 사람들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폭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폭력은 사회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을 주목하게 만들기도 하고, 빠른 시간 내에 사회적 개혁을 이루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폭력은 권력을 급속히 파괴시키지만 그것은 권력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한다.
총구로부터 정당성은 사라진다. 권력도 그와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총구로부터 우리는 권력을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다. 20세기가 낳았던 인류사의 수많은 폭력과 학살은 권력이 사라진 공백을 메꾸는 수단이었다. 인간의 행동능력은 그러한 관료주의, 전체주의의 국가적 폭력을 막을 수 있는 책임있는 시민의 행동능력이다. 베트남전, 미국에서의 흑백차별, 전체주의와 관료주의 그리고 이것이 낳은 인류사의 거대한 폭력을 마주한 그녀는 치밀하고도 깊이 파고드는 사유의 힘으로 이것의 본질을 파헤친다. 그녀가 내놓은 결코 읽기 쉽지는 않지만 하지만 매력있는 이 책을 들고서 한참을 사색에 잠겼다.
글이 쉽지 않아 책이 나를 흠뻑 젖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뛰어난 관찰과 분석력이 나를 느슨하게 만들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