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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기술 - 인류학자가 바라본 만남과 헤어짐의 열 가지 풍경
프랑코 라 세클라 지음, 임왕준 옮김, 조영 그림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상대방을 자신의 이상형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상대방이 가진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좋게 본다. 그 이면에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함이 상대방에게 부여되고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자신에게도 특별함이 부여된다. 사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랑의 사건이 자신에게만은 아주 특별하고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의 머리칼 하나, 그의 미소 한 점, 그의 표정 하나도 나에겐 특별해진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일반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해서 사랑은 시작되고 관계의 망은 점점 더 촘촘해져간다. 그들의 관계로부터 시작된 파생된 관계들의 구조가 쌓아올려지고 그것은 이제 둘만으로서는 허물 수 없는 또 다른 관계망으로 이어져간다. 이렇게 우리에게 있어 사랑의 시작은 너무나도 큰 의미를 가지고 중요한 인생사로서 자리매김되어진다. 만난지 백일을 기억하고 생일에는 이벤트를 만들어내고 보다 발전해가는 관계에서 서로에게 심리적인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등 누군가가 늘 내 곁에 있다는 생각에 편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특별함과 편안함과 그 모든 사랑의 기억도 두 사람의 이별 앞에서는 갑자기 무시되어지고 만다. 그만이 가졌던 특별한 미소와 행동은 속물적인 어느 남자의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어지고 그 특별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던 나의 내면의 빛은 퇴색되어버리고 그런 감정과 그런 마음을 가진 나조차도 부정되어버린다. 이미 복잡하게 짜여졌던 여러 가지의 관계망들이 커다란 가위에 의해서 싹둑 잘리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 특별하고 아름답고 길었던 만남의 과정과는 정반대로 일순간에 모든 것이 과거 속으로 던져지게 되고 사랑의 기억은 증오와 미움으로 급속하게 변화된다.
우리들은 왜 이런 이별을 하는 것일까? 문화 인류학자로서 그는 이별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이별에도 사회적 관계망을 훼손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둘의 관계에 대해서 서로가 돌아보고 멀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그들과 그들을 둘러싼 공동체가 모두 체험하도록 하는 문화도 존재함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이별의 상실감을 두려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기고 돌아서서 남이 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이별의 방식이다. 이별이 자신에게 상처만 남겼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사랑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가졌던 자신의 삶의 행복과 성숙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좋은 기억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어디 있는가? 내가 조금이라도 스쳐지나갔던 내 사랑했던 사람들, 남자와 여자 그 모든 사람들이 비록 좋지 않은 기억으로 멀어져갔다 하더라도 그 모든 사람들은 나를 성숙케했다.
이 책은 목차를 보고는 좋은 책이라는 느낌에 기대감이 있었지만 막상 책을 들고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별 특별한 내용없이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번역에 문제가 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떠나보내는 나의 이별의 방식마저 나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만남과 이별의 너무 상이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는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