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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의 황금시대
오경웅 지음 / 천지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의 내용을 아직 마음으로 다 소화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토를 다는 것이 사족이 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인간 존재의 깊은 본질에 대한 깨우침을 가졌던 대 선사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주와 같은 그들의 마음을 내 마음 속에서 찾게 해주기도 하지만 늘 나를 겸손하게 하고 모르는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내 마음의 그릇으로밖에 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저자인 존 우와 홈즈 대법관의 선학에 대한 언어적 정리는 그들이 마음 속에서 체험하고 증득한 사실들을 될 수 있는 한 흩어지지 않게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나는 가없는 존경을 감출 수 없다.
사실 선이란 내가 나됨이다. 선의 나침반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참된 나됨의 과정을 밟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한바퀴를 완전히 돌게 되면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이며 세상도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된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꿀단지를 본 벙어리가 되어버린 나는 그저 갈 뿐이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선의 나침반 속에 한 걸음을 디디고 섰고, 꿀 맛도 보지 못하고 꿀단지만 본 벙어리처럼 세상이 오직 꿀단지로만 보이는 경험이 나에게서 일어나고 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랴! 마치 세상도 모르고 꿀맛만 쫓는 철부지 아이처럼 나는 그렇게 나도 잊고 세상도 잊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디딤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 과정이 없이는 나는 나도 아니기 때문이다. 삶을 온전하게 사는 것은,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목적은 바로 나 자신을 바로 보고 나 자신으로 온전히 살기 위함이다. 따라서 나 스스로가 전도되고 없어지고 뒤틀리고 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그것이 나를 진리의 길로 인도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그것을 보고 내가 오랜 나그네의 방황을 마치고 고향집에 돌아가게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세상도 없고, 마음도 없고, 나도 없는 그 문을 지나 나무닭이 울고, 돌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길을 지나 비로소 차가워진 겨울날 다 떨어져버린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싹이 쭈삣쭈삣 올라오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리라. 온전한 내가 아님으로써 가져야 하는 마음 속의 의문덩어리가 해소되어 걸림없고 자유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는 그 날까지 오직 갈 뿐이다. 그래서 먼 훗날 태양이 솟아오르고 사위가 밝아오는 그 날에 세상을 날려버리는 큰 웃음 한 번 지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