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 가만히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과연 이 아이들은 누구인가?

저마다의 표정으로 저마다의 몸짓으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저 몸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

인간의 욕망과 욕망 끝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지만...

그 욕망의 끝에서 올려다본 그 곳엔 의지가 있다.

종의 존재를 이어가려고 하는 존재의 의지....

그 끝에 자리한 것은....

또 무엇일까?

한 아이의 정체성을 가져다주는 것은 그 아이의 몸 어디에 있는가?

그 아이는 무엇인가?

나는 또 누구인가?

그렇다.

그와 나는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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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4-10-0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화한 최초의 의지랄까 아니면 의지화한 최초의 욕망이랄까..이 두가지가 개념적인 분리가 되기 이전에 세상 처음에 '부끄러움'이 있었다고 카발리즘에서는 말합니다. 하나되어서 근원으로부터 아무런 노력없이 받아먹기만하는 '부끄러움'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자신만의 빵을 찾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른바 '부끄러움의 빵'을 먹고난뒤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었고 자신만의 욕망..자신만의 의지를 가지게 되었지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부끄러움의 빵'의 산물입니다. 내가 내 될려고 하는 일도 부끄러운 일이며 네가 네답게 살아야한다고 가르치는 일도 사실 알고보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노자에 보면 부그러움의 빵을 먹지 말고 '어머니 먹는 것을 귀히 여긴다'라고 했습니다. 근원먹기에 힘쓰라는 말입니다. 욕망의 시작은 욕망이 아니고 의지의 끝은 의지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욕망 우리들의 의지로 우리들이 나누어지고 다투어질 때 나를 너에게로 보낼 수 없고 너는 나에게 다가올 수 없습니다.욕망이 아닌 욕망의 근원 의지가 아닌 의지의 마루에서 근원을 먹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자리가 어디인지는 '그 아니가 누구인지 또 나는 누구인지'를 묻는 바로 그자리에서 마음하나 돌이키면 됩니다.

햇살속에서 티끌처럼 빛나는 아이들과 바람속에서 깃발처럼 휘날리는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이들은 가만히 조불고 선생은 목청이 터져라 가르칩니다. 그래도 사랑하나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궁즉통이고 반자지동이며 결국에는 조탁의 인연입니다. 반드시 그가 내게로 와 하나될 필요는 없지요. 그는 그대로 이미 하나입니다.......

물만두 2004-10-0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뇌하는 샘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님 생각이 난 아이콘입니다. 받아주시와요^^



달팽이 2004-10-05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물만두님...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