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을 안 것은 처의 오래된 그의 책 한 권에서부터였다. 사랑에 접근하는 그의 평이하고도 쉬운 글들을 음미하면서 하지만 그리 녹록치 않은 그의 사고와 만나면서 이 사람 '보통' 사람아닌 '보통'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이 책은 그의 에세이적 글쓰기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만의 깊은 철학적 사유과정을 거쳐서 나온 생활의 언어들은 마치 똑같은 재료의 채소와 고기로써 정말 맛있고 독창적으로 우리 앞에 나온 요리같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인터넷을 찾아 먼저 본다. 누드의 자세로 창밖을 내다보는 여자. 어느 낯선 도시의 호텔 바의 침침한 듯 하면서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침대에 앉아 조그마한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여자 등 그의 그림은 도시의 복잡하고 정신없는 일상에서 벗어난 세계이다. 또한 일상의 중력상태로부터 벗어나 무중력의 공간을 응시하는 눈빛이 뭔가 내면으로 향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마 낯선 환경속으로 자신을 던져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 속에서 새로운 모습과 빛깔을 발견한다는 것이리라. 그 낯섬이 끌리고 그 내면의 마음의 세밀하게 변하는 상태가 매력적인 그림이다.

  '공항에 가기'는 그의 일상에 대한 포착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지구로 떨어지는 별같다."는 표현과 "그 영원한 이동성은 정체와 속박으로 답답해진 마음에 상상의 평형추를 제공한다." "새로운 시점은 풍경에 질서와 논리를 부여한다." '진정성'에서는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들이 하는 기만의 행위가 실은 아무것도 이루어내는 것이 없음을 풍자적으로 느낄만큼 보여준다. 인연은 기적같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시작되고 나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낯선 손님처럼 그 일을 맞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아무런 마음의 장애가 없어야 그 결실을 취하지 않겠는가?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가장 위대한 결실과 가장 위대한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태롭게 사는 것이다! 너의 도시들을 베수비오 산기슭에다 세우라!" 일과 행복에서는 우리가 일을 행복으로 할 수 있는 조건이 역사적으로 변해왔다는 사실을 나열한다. 그 끝에서 행복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결국 조건없이 주어진 행복으로 나아간다. 어떤 가치와 의미 그리고 기대를 부여하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을 발견해낸 것이다. 그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평범하면서도 삶의 깊은 통찰을 통해 어떤 목표에 닿으려고 하는 것, 그것이 그의 글쓰기에 그대로 나타나있다.

  세상 사람들은 당분간 그의 글쓰기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의 글쓰기가 부르주아적인 낭만과 관념의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황폐해져버린 도시의 정신적 뒤뜰 어딘가에 우리들을 끌어당기는 빛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호퍼의 그림을 통해서 예전에 우리에게 없었던 생각과 의미가 생기듯 그의 글들도 그가 언어에 불어넣은 그의 내면의 힘이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미를 발견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책이 다른 책으로 나가는 입구도 되지만 그의 책이 정말 우리 삶의 자리로 현실로 되돌아와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문도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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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1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보통의 책들을 얼마전 사두고 아직 못 읽고 있어요. 이 책이랑 다른 것 세권 더요. 아마 님이 처음 보통의 책으로 만났다는 그 책도요.
위태롭게 살기! 고수해야겠어요.^^

달팽이 2007-04-18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장있게 살기! 겠지요.
저도 배우고 싶군요..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더 봐야겠군요...

2007-04-18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짱꿀라 2007-04-1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주 일요일에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이 책 사가지고 왔답니다. 여기에서 달팽이님의 리뷰를 보게 됩니다.

달팽이 2007-04-18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ㅖ ㄱ ㅕ ㅇ ㄴ ㅣ ㅁ . 서재로 가지요..

산타님/일상의 묘한 인연들이 이야기거리가 됩니다.
저는 님의 페이퍼를 보다가 문득 집에서 책을 뒤적이기도 합니다.ㅎㅎ

프레이야 2007-04-18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일 도착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