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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김선우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책 제목과 표지를 보고 나는 젊은 날의 잃어버렸던 사랑의 열정을 떠올렸던가? 얼굴만 봐도 싱그러웠고 그림자만 봐도 가슴이 뛰었던 그녀를 생각했던가? 검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가오던 그녀에게 바람 한 줄기가 만들어놓은 머릿결의 풍경을 보면서 나는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었지. 모든 경물이 흑백처럼 빛을 잃어버렸을 때 오로지 천연의 빛으로 밝은 햇살로 내 눈에 들어온 그녀를 보고 있었다. 이 책의 첫 느낌이 그랬다면 첫 장부터 그 강렬함은 더욱 거세어질지나 그 방향은 불현듯 뒤바뀌어 있다.
파블로 네루다의 '젊음'에 보이는 입에 들어온 설탕같은 키스들...빗속에서 뒤집어 엎은 램프처럼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 때...아! 그 때...마냥 하루 하루가 즐겁고 새로웠던 날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이런 열정의 화려한 원색으로만 채워져있지는 않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그녀의 사랑은 변해간다. "봄날은 간다" 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니? 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은 당연히 변하는 것이다. 사랑의 대상도 사랑의 빛깔도 변한다. 사랑이라는 욕망구조의 본래모습을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그 에너지는 변하지 않을런지 몰라도 그것이 입는 옷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그녀는 니체에게로 그리고 장자에게로 먼저 달려갔던 것일까? 극한 절망을 늪을 지나서 사랑의 절망마저도 수용하게 되는 도의 경지로 먼저 닿고 싶었던 것일까?
"살다보면 그렇다네 내 혼이
다른 육체에 머물고 있는 느낌
그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네"
그녀가 장자의 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잘 모르지만 그녀는 재빨리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삶의 한가운데는 바로 사랑의 자리이다 라고 말한다. 그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인 에로스와 생명적 존재 모든 것에 대한 아가페의 사이 어느 지점엔가 놓인 것은 분명하리라. 김소월의 초혼 처럼 처절하고 깊은 사랑과 디킨슨의 삶 이전과 삶 이후의 본래적 에너지에 대한 회귀적 욕망을 거쳐서 그녀는 계속 여정을 이어간다. 만해처럼 절대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의 빛에 물드는가 하면 릴케처럼 예이츠처럼 낭만적이고 봄같은 사랑의 햇살 속에 알몸으로 드러눕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새 사랑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 인생의 지혜에 묻은 사랑의 흔적을 찾아 신비주의로 들어서기도 한다. 루미를 만난 그녀는 이제 사랑의 대상이 곳곳에 현존하고 그것을 통해 신의 현전을 알아차리게 된다.
삶의 한쪽 끝에는 어떤 사랑의 고통과 상처도 보듬어낼 수 있는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불교적인 사랑과 종교적 사랑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녀의 다른 한쪽의 이상에선 체게바라의 삶처럼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현실적인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더욱 성숙해진 마음의 자리에서 다시 꽃으로 피어난 사랑의 미세하고도 깊은 감정들을 그대로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사랑의 기쁨,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적 접촉과 그 어머니의 품음에 대한 안도감과 보호본능에서 느끼는 편안함, 세상의 모든 이념과 신념을 넘어서 오로지 진실하고도 진정성이 담긴 대상과의 사랑에 올인하는 태도...
김종삼의 목포항에서 보이는 그녀의 사랑은 "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바라는 사랑이다. 사랑이 남기는 그 배면의 슬픔과 아픔이 생기고 사라지는 자리에 대한 깊은 응시를 통해서 바라본 사랑의 본체가 다시 그녀를 세상의 드러난 사랑으로 이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쏟아내는 감성적이고 육감적인 시어들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으며 그리 음란하지만은 않다. 이미 40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젊은 방황이 헛되지 않았고 그 치열한 방황이 지금의 꽃물든 가을의 단풍같으면서도 활짝 그 생명의 씨앗을 틔워내는 봄의 생명력도 전달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사랑의 진실 앞에서 인생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랑의 진정성 앞에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내 입 속에 들어온 설탕같은 키스들이 더욱 달콤해지고
봄 날같이 지나가버린 내 사랑에 무너지듯 가슴 아파도
더욱 쓸쓸해져만 가는 나의 사랑의 뒷모습도 말없이 아름다워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