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어여쁜 풀여치 있어 풀여치와 놀았습니다

분홍빛 몽돌 어여뻐 몽돌과 놀았습니다

보랏빛 잘디잔 꽃마리 어여뻐

사랑한다 말했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흰사슴 마시고 숨결 흘려놓은 샘물 마셨습니다

샘물 달고 달아 낮별 뜨며 놀았습니다

새 뿔 올린 사향노루 너무 예뻐서

슬퍼진 내가 비파를 탔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잡아주고 싶은 새들의 가녀린 발목 종종거리고 뛰고

하늬바람 채집하는 나비떼 외로워서

멍석을 펴고 함께 놀았습니다 껍질 벗는 자작나무

진물 환한 상처가 뜨거워서

가락을 함께 놀았습니다 회화나무 명자나무와 놀고

해당화 패랭이꽃 도라지 작약과 놀고

꽃아그배 아래 낮달과 놀았습니다

달과 꽃의 숨구멍에서 흘러나온 빛들 어여뻐

아주 잊듯 한참을 놀았습니다 그대 잃은 지 오래인

그대 만나러 가는 길

내가 만나 논 것들 모두 그대였습니다

 

내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그대여, 나 괜찮습니다

 

                                                      - 김선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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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4-0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 동갑내기인 시인 김선우.
이 시 하나만 봐도 그녀가 참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연 2007-04-0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군요...^^ 담아갈께요~

짱꿀라 2007-04-05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을 탄 시인 것 같습니다. 읽어 내려가는 동안 아름다운 문장에 도치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네요. 오랫만에 들어와 글 남기고 갑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달팽이 2007-04-05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멋진 시입니다. 그리고 멋진 봄날입니다.
산타님/그대만이 주어진 목적이 아니라 가는 과정 하나 하나 그대임을 말해주는 시..
입니다. 그 삶의 어떤 상처에도 나는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