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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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 사건에 의해 세계무역기구 건물이 지상에서 사라진 지 6년 째가 되는 해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더이상 입에 오르지 않는 아팠던 역사의 상처를 말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 주위에는 있다. 아물지 않은 상처로 늘 반복되는 같은 하루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며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역사란 과거가 아니며 오늘이라는 현재로서 살아있다. 이 책은 9.11사건이 남겼던 역사적 흔적이 고스란히 한 아이의 가슴 속에서 살아있는 모습을 아이의 섬세한 감정과 생각들 그리고 아버지를 찾으려는 깊은 그리움과 두려움의 이야기로서 보여준다. 소통을 원하는 간절한 욕망과 단절된 세계와 바로 옆에 있지만 그 사이에 놓여진 벽 때문에 괴로워하는 한 아이의 성장기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 그토록 가까이 존재하면서도 한번도 그 사람의 진정한 마음과 소통해본 적이 없는 삶은 아직 우리에게 남겨진 인간의 비극의 골자이며 무거운 과제이다.

  베트남 전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신문보도와 뉴스보도도 베트남 전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진 못했다. 사람들의 마음 속 어딘가를 건드려야만 그들의 억눌렀던 감정을 분출시키고 그들이 마음 속에서 하고 싶었던 내면의 말들이 두려움과 공포를 걷어내고서 양심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비밀의 열쇠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한 사진기자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졌다. 네이팜탄을 맞고서 절규하는 한 베트남 소녀의 울부짖음이 담긴 사진 한 장을 통해서였다. 그것을 통해 미국사회에서 반전여론이 거세게 몰아치게 되었고 그 폭풍과도 같은 양심의 소리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똑같은 한 점을 자극하여 같은 목소리를 지구상 곳곳에서 울려나오게 하였다. 이 책도 바로 그러하다. 미국의 세계지배구조라든지, 아랍과 이스라엘의 민족분쟁이라든지, 미국과 이라크의 대립이라든지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무거우면서도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때로는 그런 역사적 사건은 그와 동떨어진 개인의 삶에 아무런 침투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를 추억하는 과정을 따라 솔직하고 감동적으로 써내려가면서 보여주는 그 상처를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우리 마음의 작동기제 한 점이 꼼짝없이 눌러진 것처럼 테러와 전쟁의 비극과 그 씻을 수 없는 상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세계무역기구 빌딩이 무너지는 그 순간 오스카의 아파트로 전화가 걸려온다. 오스카는 얼어붙은 채 전화를 받지 못한다.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열한번이나...)하는 아버지의 전화를 그는 절대로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아이의 정신적인 상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보다 그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두려움이 바로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삶의 시작을 만들어낸다. 대중교통수단에 대한 공포증이 생기고 고층 아파트의 윗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 론이라는 아저씨를 사귀는 엄마와의 소통도 단절되고 그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가슴 속 황폐한 한 곳으로 갇힌다. 그 곳에서 그는 움직일 수도 움직일 의지도 잃게 된다. 그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뉴욕의 여섯번 째 구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그의 상처는 할아버지의 상처와 닮은 데가 있다. 드레스덴의 한 마을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이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을 들은 다음 날 자신을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을 그 도시에 무수하게 쏟아져내린 짧은 폭격으로 잃어버린다. 우리들의 삶은 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한 기반 위에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가 영속적으로 지속되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를 잃었고 자신의 육체의 일부를 잃었다. 하지만 그가 잃었던 가장 큰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 자체를 잃어버렸다. 그는 단지 오른손에 '예'와 왼손의 '아니오'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늙은 할아버지의 쭈굴쭈굴한 손에 적힌 두 글자는 오스카의 모습을 달리 보여주는 거울이다.

  아버지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아버지와의 추억만이 자신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왔던 것이라고 믿고 있던 한 아이에게서 세상은 훌쩍 아버지를 앗아가버렸다. 그는 저 세상으로 갈라진 틈새에다 대고 자꾸만 아버지를 불러댔을 것이다. 순간 늘 그대로 있던 그의 모든 공간이 이젠 그저 껍질만 남은 채로 그에게 주어졌다. 그에게 있어 오로지 의미있었던 것은 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이었고 그 아버지에게 깊이 다가가지 못했던, 그래서 하지못했던 숙제를 마치는 것이었으리라. 파란 병 속에 든 열쇠의 자물쇠를 찾아가는 과정은 바로 그 과정이었고 그는 그것을 통해서 아버지에게 다가가려고 하였다. 또한 그것은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오스카의 이런 생각과 일상 그리고 감정들을 대할 때마다 그 작고 다른 아이들과 조금밖에 다르지 않은 생각들과 행동에서 전쟁과 테러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 조그마하고 손톱만큼 이상한 행동과 세밀하면서도 감수성깊은 심리 묘사. 그것이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그 인류의 비극이 한 가정의 분위기를 어떻게 구성해가고 있는지 오스카와 엄마와의 관계, 그 누구보다도 오스카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바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할머니(아들의 죽음이후 자신의 삶의 연속이 오로지 손자에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잃고 말을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손바닥을 통해 볼 수 있다. 그 손바닥의 주인공이 아들에게 보내지 못한 그리고 썼던 글씨도 없는 무수한 편지들...이 가족을 지배하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이해되지 못하는 이들의 행동 속에 깊은 영혼의 상처와 절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주는 유일한 낙관이 있다면 상처받은 영혼을 가진 가족구성원들 간의 동병상련적인 배려와 보살핌이다. 한 아이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길었던 여정에 엄마도 론 아저씨도 그의 친구들도 할머니도 블랙할아버지도 그리고 쪼글한 두 손 위에 '예'와 '아니오'를 쓴 채 말을 잃어버린 할아버지도 꼭 필요한 존재였다. 즉 오스카 하나의 존재를 이 세상에 있게 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이 다 필요했던 것이다.(드레스덴의 폭격도 세계무역기구의 테러도...) 할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시체도 없는 관을 파헤치던 날 할아버지와 오스카는 비로소 부재한 아버지를 통해 자신들의 인생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일부를 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마음에 든다.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 실제로 그의 마음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거슬러간다. 아버지가 세계무역기구 건물의 바닥에서 다시 떨어졌던 장소로 올라가고 건물에서 거꾸로 스텝을 밟으며 나온다. 집으로 들어와서는 나이프와 포크가 입에서 음식을 꺼집어내고 면도기가 아버지의 수염을 갖다붙인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침대에서 뉴욕의 여섯번째 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오스카는 아버지에 대한 정신적 상처를 씻어내었음을 보여준다. 어떤 역사적 상처와 비극 앞에서도 우리들의 영혼이 상처받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메세지는 아니었을까? 티베트의 비극에서는 달라이라마가 있었고, 캄보디아에선 마하 고사난다가 있었고 베트남엔 틱낫한 선사가 있어 전쟁의 상흔과 상처를 보듬어준다. 보이지 않는 곳의 영혼의 상처를 감싸안고 어루만져주는 많은 부처님들. 그들은 우리들의 곁에 우주라는 이름으로 늘 존재한다. 문득 마음이 환해진다.

  이렇게 일상적이고 조그만 이야기들을 통해 전쟁과 인류의 비극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깊이 천착할 수 있다니...소설가 김연수의 다음 말이 이해가 된다. "지난 5년간 나온 소설 중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존 업다이크란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이 책에 대한 그의 소감은 마음에 든다. "드높은 독창성과 감정의 집요한 묘사." 어떤 찬사도 아깝지 않다. 그러니 사람들이여, 이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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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28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명하고 감동적인 리뷰에 보관함으로 직행입니다.^^

달팽이 2007-03-0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은 제쳐두고 제 마음은 전달되었나요?^^

짱꿀라 2007-03-04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잠자고 있는 책인데 역시 달팽이님의 서재실에서 다시 리뷰를 읽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명쾌한 리뷰 명리뷰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