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놀라운 책이다. 릴리 프랭크의 자서전적인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세살때부터 아버지와 별거에 들어간 어머니와의 동거를 통해 성장한 그가 아무런 가족관계의 결핍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지극하면서도 애틋한 사랑때문었다. A를 투입하면 B를 꼭 산출하고야 마는 솔직하고 단순한 기계처럼, 이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감동과 눈물을 산출해낸다. 한번도 자식에게 힘들다는 소리도 못하고 자신을 위한 것에 한 치의 마음도 쓰지 않았던 어머니의 헌신적이고도 순교자적이기까지 한 사랑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진다. 그런 어머니 아래서 자란 아이가 잘못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 중 마음에 찍었던 하나의 별이 바로 지구를 향해 돌진해서 폭파되는 확률보다도 적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밤하늘에 보이는 수많은 별들이 시원하게 보인다. 그가 올려보는 도쿄타워 주위에 넓게 분포된 별들 사이로 어머니의 시선이 따뜻하게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왜 이 책이 감동적일까? 왜 첫 장을 넘긴 손이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내어야만 마음이 해소되듯한 급속한 블랙홀 속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였던 것일까? 지독하게 어려워서 수시로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녀야 했던 유년시절에도, 서로 미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아보이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살지 못하고 떨어져 살면서 결손가정이라는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이 모든 약점을 없이보이게 만들었던 어머니의 말이 없으나 뜨거웠던 그 사랑이 이야기의  전 공간을 따스하게 덥혀주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객관적이고 감정을 배제한 묘사를 해내려고 노력하더라도 이미 그와 엄마 사이에 놓여진 끊을 수 없는 질기고도 튼튼한 하지만 헌신적이면서도 애틋한 사랑 속에 모든 것은 이미 빨려들어가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가까이서 우리 인생을 나누는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진정으로 한 걸음이라도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이 감동적인 두번째 이유는 이 책을 덮고 나서 나의 가족관계를 둘러보게 되기 때문이다. 좀 더 친절하고 배려있는 말을 나누지 못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좀 더 어머니의 마음에 가까이 가보려 노력하게 한다. 그 희생적인 삶만을 살아오면서도 한번도 자신의 것을 가지려 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더욱 따듯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더욱 깊이 주위 사람을 배려하게 만드는 책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 앞에서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 자신을 잃어버린 마음에서는 상대방의 마음만이 투명하게 비치기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라는 존재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기만 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진정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물질적인 것은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으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동거 생활의 공간이었던 도쿄에서의 삶. 어머니는 오로지 자식의 뒷바라지만으로 자신의 작은 몸 누일 곳 하나 장만하지 못하고도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동경행을 선택한다. 자신의 마지막 삶을 가장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도쿄에서 나는 다시 일상의 무관심한 자식으로 돌아가버리고 짧았던 어머니의 행복은 잠시 그렇게 지나가고 되돌릴 수 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 비로소 나는 묻혀져 있던 어머니의 삶을 조금씩 보게 되고 그 이면에 숨겨졌던 어머니의 끝없는 희생과 사랑을 보게 된다. 이제야 비로소 어머니의 사랑을 조금씩 알게 되는데 이젠 더 이상 어머니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없게 된다. 정말 살아생전에 고쳐하지 못할 일을 두고 나는 샘물처럼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을 위해 마음을 쓰는 어머니의 사랑 앞에 서러워진 나는 다시 울고 다시 울고....그러다 육체의 극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팔에서 주사를 뽑고는 '이제는 고만 죽고 싶다.'고 말하는 어머니 앞에서 나의 미어진 가슴은 내려 앉는다.

  어머니는 죽기 전에 가본 적이 없는 도쿄 타워에서 세상을 내려보았다고 했다. 그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름다웠을 것이라 생각된다. 프랭키는 어머니가 죽은 몇 년 후 도쿄타워에 오른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도쿄는 의외로 죽음의 공간이었다. 수많은 도시의 삶 사이로 곳곳에서 눈에 띄는 묘지와 주검들이 죽음 앞에서 삶을 쳐다보게 한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삶과 죽음은 빙글빙글 돈다. 삶은 삶대로 빙글빙글 돌고 죽음은 죽음대로 빙글빙글 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빙글빙글 돈다. 우리는 이미 우리 관계 속에 있는 행복의 파랑새를 외면하고서 밖으로 허황된 꿈을 쫓고 있는 어리석은 멍청이일런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메세지이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에서 인연을 갖고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하나되고 공유하는 마음없이 우리가 어찌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어찌 삶의 진정한 행복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어머니가 죽은 후 벚꽃이 피고 지고 다시 벚꽃이 피고 졌다. 수많은 봄의 기억 속으로 어머니의 죽음의 기억들도 희미해져간다. 하지만 어머니가 프랭크에게 남기고 간 그 사랑은 아직도 그의 가슴 속에 남아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맞는다. 꽃의 삶과 죽음 사이에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가지와 줄기가 있고 또 그것의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뿌리가 있다. 피어난 것은 피어난 대로 소중한 인연이고 지는 것은 지는 대로 소중한 인연임을 우리는 뿌리 속에서 느껴야 한다. 늘 밑에서 우리들을 받쳐주고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그 영혼의 뿌리 속에 어머니가 영원히 살고 있다. 그 영원을 향한 동경의 이야기가 그의 남겨진 이야기이다.  

 

P.S :  처가 무척 좋아하는 오다기리 조에 의해 영화화된 작품이 4월에 개봉된다고 한다. 이 작품을 영화가 어떻게 그려내었는지가 궁금하다. 아니 이 작품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혀졌으면 한다. 삶에 대한 깨달음이 존재한다면 바로 프랭키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짱꿀라 2007-02-09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기사를 보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달팽이님 서평보니까 더욱 읽고 싶어집니다. 거의 일본 소설은 잘 안 읽는 편인데 요것은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달팽이 2007-02-0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같은 역사학도의 관심을 끄는 이 책은 괜찮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제 서평이야 뭐 무턱대고 갈겨 쓴 것이라...
님의 안목이 있음입니다. ㅎㅎ

프레이야 2007-02-12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에 오다기리 조가 나올 예정인가 보죠? 그 영화 봐야겠네요^^
책만큼이나 감동을 제대로 그려내야할텐데요.
달팽이님의 리뷰가 가슴을 적십니다..

달팽이 2007-02-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좋아하는 혜경님.
보시고 페이퍼를 남겨주세요.
님의 영화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