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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류영모의 얼의 노래 - 다석 묵상록
류영모 지음, 박영호 풀이 / 두레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하루의 끝과 시작을 영원한 진리를 구하는데 힘을 쓰게 되면 하루가 조금은 순일해진다. 잠들기 전에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어지러운 꿈이 없이 순일하게 눈을 뜨면 이어지게 되면 공부가 조금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밤은 저녁에서부터 시작한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주위의 사물이 그 빛을 잃어 사라지고 밤하늘의 먼 곳에서 오는 별빛들은 살아나기 시작하게 된다. 저 은하수의 많은 별들을 보면 선생님은 마음이 밝아진다고 했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들에게 보내는 얼의 폭포수라고 하였다. 하루의 시작되는 얼을 향한 마음으로 낮시간동안 마음을 비추며 살고 밤이 되면 다시 하늘에 계신 님을 생각하며 삶을 살았던 선생님은 그 어둠이 깔릴 시간의 가물가물한 夕자에 없이 계신 한울님을 보았고 그래서 그 저녁은 텅 빈 하지만 생명의 얼로 충만한 빈탕이었을 것이다.
12800. 이것이 내가 태어나서 오늘까지 산 날의 수이다. 선생님이 생전에 그러했듯이 이제부터 하루하루의 삶을 세어가며 마음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비록 선생님처럼 철저하게 빈틈없이 오로지 한울님의 생각으로 살았던 그 삶을 살아가지 못해도 마음으로 좇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공부가 되겠다는 생각이다. 한울님에게 다가가기 위해 일체의 개인적인 삶을 생략하시었던 선생님은 쉰 살이 되어서 부부관계를 청산하는 해혼식을 가지고 오누이로서 살 았다. 비록 재가수행자로서 진리를 찾았지만 진리를 찾는 길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가족관계를 나름의 방법으로 정리하셨던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정을 버리고 진리의 길을 구하였듯이, 예수님이 가정을 꾸리지 않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셨듯이..
늘 공부하는데 머리가 앞서고 근기가 적은 내가 이즈음 다석 선생님의 공부하시는 자세를 통해서 마음으로 배워야 할 바가 컸다. 또한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기 위해 마음을 쓰시고 삶을 실천하셨던 선생님께서 얼나를 깨우쳐서 그 곳에서 솟아나는 진리의 말씀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자신의 삶을 사셨다. 또한 한글에 불어넣은 얼의 뜻 또한 우리 한글이 가진 힘을 새로이 보게 하신다. 나아가 유,불,선의 동양의 고전사상들을 얼나의 깨달음에서 풀어내신 점들은 20세기에 와서 종교 간의 반목과 대립을 넘어서 모든 깨달음이 하나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모자란 생각에 박영호 선생님이나 다석 선생님도 불교의 큰스님들에 대한 평가가 적은 것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간디나 톨스토이 말고도 이 세상을 살다 갔던 그리고 살고 있는 많은 깨달은 이에 대한 평가가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서운하였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를 읽어가면서 선생님의 삶이 지향했던 그곳이 중요한 것이지 다른 것은 깨달음의 문화적 또는 지역적인 특성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평생 닿고자 했던 진리와 빈탕 한울님을 위해 제나를 기꺼이 버렸던 그 삶을 제대로 이해하면 되었지 더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가온’이라고 하는 선생님의 공부법이 있다. 한울님, 즉 진리인 빈탕을 가슴 한 곳에 없는 점을 찍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간디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일상에서도 그것을 놓치지 않고 진리파지하듯이 늘 지니고 계셨다. 불교에서는 화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공부가 익어갈수록 마음 속의 한 점을 순일하게 가지게 된다. 그 가온찍기를 통해서 제나의 삶에서 얼나의 삶으로 가는 여정은 시작된다. 가슴 속에 없는 한 점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수많은 밤을 맞았을 다석 선생님 앞에 놓여진 한울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빈탕이 오늘 밤에도 역시 가득하다. 이제 앞으로 얼마의 밤을 맞을런지 모르는 이 생에서 그토록 철저하고 정성스럽게 절대자를 대접했던 선생님의 밤을 초대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