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장 행복한 공부 - 청화스님 말씀
청화스님 지음 / 시공사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청화스님은 이 길을 가장 행복한 공부라 했을까? 스님의 앞에 놓인 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눈빛에 마음이 머문다. 그 눈빛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보살님들이 스님에게 건네는 인사에 스님도 고개숙여 합장한다. 그들이 나누는 것은 무엇일까? 스님을 눈 앞에 두고 나도 합장하여 인사를 해본다. 내 안에 있는 부처님하는 그 마음에 대고 절한다. 그렇다. 산사에서 선승들과 주고받는 인사는 자신의 안에 내재한 불성을 향해 절하는 것이다. 그 공경심 그 환희심 그 자비심 그 지혜심에 대고 우리는 고개를 숙인다.
선지식이란 무엇인가? 삶의 스승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들이 가야 할 인간의 길을 안내해주시는 분들이다. 바른 법을 일러주고 그 바른 법에 닿기 위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를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엄하게 알려주시는 분이다. 마음은 무상대도의 반야의 지혜에 두고 몸도 마음도 일상도 한 점 한 점 그 마음을 세워가면 된다고 한다. 조급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게을러져서도 안되며 그저 이런 저런 마음없이 중용의 도에서 마음을 맞추고 그것이 지금 이 순간 있나 없나를 점검해가며 끊이지 않고 이어가는 공부를 강조한다.
오온이 개공하다는데 이렇게 멀쩡히 느껴지는 오온이 왜 개공하다고 했을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했는데 왜 색즉공이고 공즉색일까? 여기서는 사량분별을 세워서는 안된다. 말로써 설명을 붙여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즉'이 바로 그런 말이다. 색 그 자체로 공임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까지는 모른다는 의문을 화두처럼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화두란 말 그대로 말의 머리이다. 즉 말이 떨어지기 전(온갖 설명과 언어의 해석이 이루어지기 전의)의 뜻이 떨어지는 곳을 단박에 알아야 비로소 제대로 아는 것이란 말이다.
늦은 시각에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읽어보았다. 아직까지 금강경이 인연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 한권 보고서 여태 준비가 안되어서 들지 못했던 책이다. "약견 제상 비상 즉견여래" 마찬가지다. 제상 즉 비상이다. 하지만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대자비불성으로 가득하다고 하셨다. 부처님이 말하고 모든 조사가 다 말했으니 거짓말이 아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인가? 바른 의문은 바른 신심이 갖추어져야 하고 바른 신심이란 바른 행동가짐이 생활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일상은 온갖 오온에 빠져 외부로 치닫는 감각에 허우적대다가 참선한답시고 저녁에 자리에 앉아 명상하는 척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삶과 죽음을 해결하는 문제에 어찌 설렁 설렁 자기의 욕심을 채워가면서 이룰 수 있겠는가? 뭔가 삶에서 허전하고 무상한 것은 있는데 그 바른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청화스님은 지면의 후반부를 할당하고 계신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말씀부터 바로 알고 바로 보면 세상에서 진리를 향해 가는 이 길이 가장 행복한 공부이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세상을 위하고 향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문제삼는다. 사회운동도 종교개혁운동도....하지만 자신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세상에 나아가 오히려 해만 끼치는 경우를 조심하라고 하신다. 산문을 나가지 않고도 많은 정치지도자와 속세인들의 삶을 변화시켰던 성철 스님, 청화 스님, 서암 스님 등 무수한 선지식들의 말씀도 한 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바른 의문과 화두는 들려고 해서 그냥 들리는 것이 아니란 말을 알게 되었다. 함께 공부하는 알라딘 지인들의 마음도 큰 도움과 위로가 된다. 무엇이든 진실한 공부는 자신의 내면을 밝히는 공부라는 말씀을 지도삼아 외부에서 오는 조언도 글도 모두 마음으로 모으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