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졌으면 하는 몇가지.... 2004/06/22 12:14

하나.

 

머리 속에서만 가지고 있던 것이었으나, 어제 신문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와 있었다. 종교단체가 세운 학교에서는 일률적으로 그 종교에 대해서만 일정한 교육과 평가, 그에 따른 제한이나 혜택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생각을 가진 한 고3학생의 얘기다.

 

난, 종교가 없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상할 지도 모르지만, 종교는 삶을 살아가는 데 그리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단서를 붙이게 되는 데는 좋은 분들도 있기 때문이지, 그런 이유를 빼고 일반론으로 말하면 종교는 글쎄올시다..쩝..특히, 막나가는 부시같은 말종같은 종교인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종교 그 자체부터 그 걸 믿는 사람들까지 암튼 그렇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 종교를 믿지 않거나 또는 종교를 갖지 않으려는 이들에게까지 단지 그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종교 관련 수업을 받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덧붙여, 난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나 그런데 다니지 말았으면 한다. 놀러 가는 거라면 몰라도 아이에게 그 종교를 믿게끔 하는 행동과 말을 부모가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지 못한 부모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 부모야 그 종교가 지상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겠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아이들더러 당신이 믿는 종교를 무조건 받아들이게끔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옳고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때 서로 대화를 하면서 그가 선택하도록 하였으면 한다.

 

둘.

 

오늘 보니 사법개혁안이라는 것이 나왔다. 꼭 그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대략 관련이 되는 것이기도 하긴 하겠다. 이미 정부도 문제점을 인정하면서 대책을 내놓았던 것이기도 한데, 왜 사법연수원생들의 월급을 세금으로 주냐 하는 것이다. 그들의 연봉은 대략 1800만원 정도라고 들었다. 그들은 대개 다 변호사로 나간다. 결국 그들은 직업을 얻기 위한 자격증을 얻기 위한 시험을 본 것 뿐이며, 또한 그것을 위해 교육을 받고 있는 것 뿐이다. 

 

근데, 왜 그들에게 국가가 돈을 주면서 교육까지 시키는가 ? 다른 자격증은 그렇다면 왜 국가에서 돈을 주지 않는가 ? 각종 공인 자격증은 국가의 정책적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 다른 공인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한테는 왜 그런 혜택을 주지 않는가 ? 변호사는 다르니까 ? 아! 변호사는 신분 상승을 위한 자격증이라서, 아님 아! 아주 공인된 라이어라서 ? 공공성이 있는 업무라고 ? 아! 그렇구나. 맞나요 ? 그럼 뭐야 ? 대체 합리적인 근거가 없잖아.

 

그렇게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말이다. 그러나, 보라. 그것이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헌법에 위반하는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는 변호사를 본 적이 있는가 ? (있소 ? 있구나..미안하오..진작 말할 것이지..) 지금도 그들에게 돈이 나가고 있다. 그것을 막으려고 법무부, 대법원, 변협, 심지어 진보적 법조 집단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않았다. 에고, 연수원생들도 나서지 않는구나. 그들이 바로 정의와 평등을 말하는 법조인들이다.

 

덧붙여, 2006년도부터 사법시험의 외국어과목을 영어 하나로 통일된다고 한다. 즉, 토익 등 공인된 시험의 점수표를 내야만 사법시험을 볼 수 있다는 거다. 이런, 우라질~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공부하려면 독어, 불어, 일어가 영어보다 더 필요하지 않나 ? 자기 나라에 없는 책은 일본가서 찾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은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런 생각으로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헐~~ 집어 치우라고 한다. 이런, 우라질이 있나. 쩝..

 

셋.

 

국공립대 등록금은 왜 싼가 ? 국공립대니까 ? 그럼 사립대는 왜 비싸지 ? 아! 사립대니까 ? 사립대나 국공립대 구분되는 게 있나 ? 시험봐서 들어가는 것 똑같지 않나 ? 근데, 왜 국공립대는 국가에서 돈들여주지 ?

 

아! 돈 없는 애들 공부시켜 주는 게 목적이니까 ? 그런가 ? 정말 그래 ? 국공립대 다니는 애들 돈 없어 ? 그런 애들만 뽑아 ? 아니잖아. 그럼, 사립대 다니는 애들은 돈이 있던 없던 상관없고 ? 

 

그렇다면, 사립대에도 국립대만큼 예산지원을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국공립대 다니는 애들이 사립대 다니는 애들보다 더 국가를 위해서 뭐라도 더하는 것 있어 ? 없잖아. 근데, 왜 국공립대만 예산 지원을 해 주는 거야 ?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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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6-22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생각이신 거죠? 퍼온 게 아니라...

1. 종교에 관해.
제가 미션스쿨만 10년을 다녔죠. 처음 6년은 추첨에 의해 간 거였습니다.
마지막 4년은 내가 원해서 간 곳이었으니, 일주일에 한 번 채플, 기꺼운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목사님이랑 참 많이 싸웠습니다.
제가 원해서 온 학교 아니다, 그러니 난 예배시간에 들어가기 싫다 했더니, 교목선생님, 하나님이 널 뽑으신 거라고... 하시더군요. 하여튼 중학교 땐 사사건건 싸웠는데, 같은 재단의 학교 고등학교에 또 가게 되었죠.
집에서 장장 1시간 거리. 서울로 따지면 강남에서 강북 가는 거리였죠. 집에서 제일 먼 학교.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안 싸웠습니다. 벌받았나 싶어서...ㅠㅠ 그냥 성경 양 맞았습니다. 이 과목, 성적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양, 가를 맞으면 우등상 못받습니다. 제 발목을 끝까지 잡더만요 ㅠㅠ

2. 사법연수원 급여
저 역시 주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비싼 학비를 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수원 시설 유지비며 교수들, 직원들 급여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돈 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처음 1년은 모두 돈 내고 배우고, 그 다음에 갈 곳이 정해지면, 공무원에 임용될 사람은 돈을 내지 않더라도, 변호사할 사람은 역시 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명 시대인 지금, 변호사는 이미 공익을 위해 활동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지요.

3. 국공립대 등록금과 사립대에 관하여.
이점은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을 안해본 문제로군요. 사립대도 국립대만큼 예산지원을 해 주든지, 국립대도 사립대만큼 돈을 내든지...해야겠군요.ㅠㅠ
최소한 국립대 도서관은 지역사회에도 개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호랑녀 2004-06-22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남편이 쓰신 글이로군요...
참, 남편되시는 분... 똑똑하시네요 ^^

숨은아이 2004-06-22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하신 말씀, 전해줘야겠어요. ^^; 대학에 대해선, 저나 남편이나 몽땅 국공립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돈 때문에 대학 못 가는 사람 없게, 프랑스나 독일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선인 2004-06-22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학이 미션스쿨이었습니다.
단 한학기도 채플학점을 못 따 졸업못할 뻔 했죠. ㅋㅋㅋ

숨은아이 2004-06-2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채플 학점을 못 땄는데 용케 졸업하셨군요.

조선인 2004-06-24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학점당 겨울방학 동안 예배 1번, 책 3권의 독후감을 내야 하는데(저의 경우 예배 8번, 책 24권 -.-;;) 교목과에 가서 협상을 해서 예배 1번, 책 12권으로 타협을 봤지요. 그나마도 막상 다 못써서(기독교 관련 서적만 12권을 보라고 하네요. 헉) 9권의 독후감만 제출했다지요. 게다가 지정된 책이 아닌, 엉뚱한 걸 써낸 것도 2개. ㅋㅋㅋ 교목과에서도 넌 작정한 애같다 하며 봐줘서 무사히 졸업했답니다. ㅎㅎㅎ
 

울 남편이 다음에서 쓰는 별명이다. 다음에는 "칼럼"이라는 개인용 게시판(블로그랑 비슷...)이 있는데, 이 사람이 여기다 가끔 쓸 만한 글을 올린다. 특히 내 마음이 끌리는 글을 따로 보관해둔다는 생각으로 여기 옮기기로 한다. 원 글이 있는 다음 칼럼 주소는  http://ncolumn.daum.net/cyseok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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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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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9. 27.에 쓴 글을 지금 시점에 맞게 손본 것.

폴 오스터Paul Auster 지음, 김석희 옮김,
<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열린책들, 2000

 

폴 오스터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최승자 시인의 일기집 <어떤 나무들은>(세계사, 1995)에서였어요. <어떤 나무들은>은 최승자 시인이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열린, 세계 여러 나라의 작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쓴 일기를 묶은 책이지요.

이 책에서 최승자 시인은 폴 오스터라는 미국 작가의 소설을 주목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인가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1995년에 이미 열린책들에서 <미스터 버티고>라는 폴 오스터의 소설을 번역 출간했더군요. 그 전에도 문학사상사와 호암 출판사에서 그의 책을 한 권씩 출간했고요. 그 책들은 다 절판되었습니다.

하지만 폴 오스터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00년 무렵, 열린책들에서 기존에 자기네가 펴냈던 소설들을 몽땅 아담한 양장본으로 재출간하면서부터였을 거예요. 이때부터 열린책들에서는 기존에 출간했던 작품들뿐 아니라 나머지, 폴 오스터의 전작을 줄줄이 내놓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교보문고 소설 매장에 가면 폴 오스터 소설만을 모아 놓은 책꽂이도 따로 있습니다.(그런데 책꽂이 위 표지판에는 '폴 오스트'라 쓰여 있어요. 작가 이름을 버젓이 잘못 걸어 놓은 서점도 서점이지만 출판사 영업자들은 왜 그걸 바로잡지 못하는지? 아, 지금은 바로잡았으려나...)

하지만 2003년 초까지도 전 폴 오스터의 책들을 사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루었어요. 요 몇 년 사이 제가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거든요. 한때는 소설만 읽었는데, 뭐랄까, 왠지 '땡기는' 소설이 없었어요. 그러다 <빵굽는 타자기>를 처음 읽어보자 싶었지요. 우선 제목이 흥미롭잖아요?

원제는 Hand to Mouth.
느낌이 딱 오지 않습니까?
읽기 전에는 흥미롭게만 보였던 <빵굽는 타자기>란 번역 제목이, 다 읽고 나서는 정말 원제를 절묘하게 '승화'시켰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설이 '땡기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라고 붙인 부제와 같이, 어린 시절부터 30대 초반 첫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기까지, 먹고살기 위해 그의 손이 어떤 일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글입니다.

폴 오스터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돈'과 어떤 관계였는지, 가치관이 변하면서 스스로 '돈'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작가가 되리라 결심한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돈' 대신 세상의 밑바닥을 만나는 경험과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을 선택해 겪은 시간을 들려 주고, 그러고 나서 그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경이를 겪으면서 결국 '돈'에 판정패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작가는 돈을 벌기 위해 쓴 첫 책(열린책들에서 번역 출간한 <스퀴즈 플레이>)으로 손에 쥔 푼돈을 씁쓸하게 내려다보지만, 전 작가가 되려면 이 사람처럼 청년기를 보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이 만난 사람들, 이 사람이 읽은 책들,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거예요. 본인은 무지하게 힘들었겠지만.

소설이 출간되기 전 처음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았던(그러나 당시에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던) 희곡 세 편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돈을 벌기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이 개발한 카드로 야구하는 게임(일명 "액션 베이스볼")을 장난감 회사에 팔아 보려고 나섰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책의 뒤편에 그 희곡 세 편이 있어요. 그 중 가장 긴 <로렐과 하디, 천국에 가다>는  2003년 가을 인켈아트홀에서 상연했네요. 교육극단 달팽이란 데서 무대에 올렸대요. 나머지 두 편 <정전>과 <숨바꼭질>까지 해서, 세 희곡은...  반복적인 보통 사람의 일상, 그 의미 있는 반복을 말하려는 것 같았어요.

맨 끝에는 액션 베이스볼 게임의 설명서와 카드 96장의 디자인까지 실려 있습니다. 전 야구 규칙을 잘 몰라서 봐도 모르겠더군요.

이 책을 다 읽고, 폴 오스터의 다른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라는 그 사람의 소설보다 자전 수필을 먼저 읽은 게 잘한 일일까요, 잘못한 일일까요? 결론은 소설을 읽은 다음에 내려야겠지요. 어쨌거나 재치있는 문체가 꽤 재미있어 기대됩니다. 번역의 입김이 어느 선까지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더. 이 책의 저작권 발생 연도 표시가 꽤 복잡하던걸요.
(c) 1976, 1977, 1978, 1982, 1997.

세 희곡과 액션 베이스볼, 그리고 Hand to Mouth라는 본 수필이 각각 발표된 해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따로 출간된 <스퀴즈 플레이>의 판권을 보니까, 미국에서 출판된 원서 <Hand to Mouth>에는 이 <스퀴즈 플레이>까지 수록된 모양이에요. 그런데 열린책들에서 원서 그대로 한 권에 묶지 않고 따로 출간한 이유는? 한데 묶으면 책이 너무 두꺼워져서일 수도 있고, <스퀴즈 플레이> 자체가 본래 독립적인 소설 한 권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폴 오스터가 장사가 되니까, 따로따로 팔아 이윤을 더 남기려는 의도가 크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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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6-2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이 폴 오스터에 대해 열광하던데... 그래도 꾹 참고 있었는데... 이제 진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솟았습니다 ^^ 감사.

숨은아이 2004-06-2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서른 즈음에 돈에 "판정패"했던 그가, 액션베이스볼부터 시나리오 작품까지 다 책으로 묶어 내는 걸 보면, 이젠 폴 오스터가 만든 건 다 돈이 되는구나... 싶어요. 좋은 일이겠지요?

숨은아이 2004-06-2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글 수정하느라고 호랑녀님 댓글 써주신 걸 몰랐네요. 그런데 <빵굽는 타자기>에 대한 평가는 상반되더라구요. 전 재미있었는데. 호랑녀님의 리뷰를 기대하겠습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07-2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d to mouth를 빵굽는 타자기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돋보이네요.
님의 글을 보니 저도 정말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읽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인사도 없이 코멘트부터 날리네요... 님의 글을 읽으니 더운 날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

숨은아이 2004-07-2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 앗, 고맙습니다. 그렇게 느껴주시다니.
 
세계의 유사신화
J.F.비얼레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199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J. F. 비얼레인Bierlein 지음, 현준만 옮김, 1996, 8500원
원서 제목은 Parallel Myths.

전 이 책을 1996년에 샀는데, 지금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2000년 10월에 펴낸 새 판의 값은 1만 3000원이네요.

전부터 신화와 성서고고학 쪽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성서를 '진실'로 믿고 읽었지요.
그런데 읽으면서도, 특히 창세기에서,
서로 앞뒤가 다른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곤 했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사람이 없었다 신도 없었다>(안성림 조철수 지음, 서운관, 1995)란 책을 읽고,
오늘날의 창세기는 두 가지 판본이 결합되어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어요.
두 가지 서로 다른 판본을 짜깁기해 놓았으니, 앞뒤가 다를 수밖에요.
그 책에서는 성서의 많은 내용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신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도 했어요.
이리하여 신화란 무엇인지, 어떻게 생성 발전했는지,
성서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책인지 궁금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련된 책이 눈에 띄면 사 모았는데,
늘 그렇듯이 사서 쌓아만 놓고 읽지는 못했습니다. ^^;

그러다 처음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 <세계의 유사 신화>입니다.
신화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좀더 깊이 있는 책에 다가가기 전에,
처음 읽는 책으로 괜찮을 성싶습니다.

세계 곳곳의 신화 가운데
창조 신화, 인간의 초기 시대를 이야기하는 신화, 홍수 신화,
사랑 이야기, 신화에 나오는 도덕 이야기, 영웅 신화,
저승 세계에 다녀온 이야기, 종말 신화를 한데 모아 보여 주는데,
어린 시절부터 익히 알아 온 그리스 로마 신화뿐 아니라
인도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 노르웨이와 독일에 전해지는 북유럽의 신화,
이집트와 중국의 신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화까지
실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화는
쉽게 알기 어려운 이야기라
정말 반가웠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화 중에, '포니'라는 부족의 창조 신화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저녁별과 새벽별의 사랑 이야기예요.
'피마' 부족의 창조 신화는 놀랍습니다.
태초에 세상에는 어둠과 물뿐이었는데, 창조주가 하릴없이
물 위를 떠돌아다니다 마법의 지팡이 끝에 맺힌 나뭇진을 떼어
공 모양으로 둥글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작은 공을
굴리고 또 굴리어 지구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남부 캘리포니아의 '플라야노스(Playanos)'라는 부족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전능한 존재 노쿠마가 두 손으로 세상을 굴려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중심을 잡지
못하자 토사우트라는 검은 바위를 세상 속에 끼워 넣어
중심을 잡도록 했다는 거예요!
오늘날 지질학에서 지구의 중심에 '핵'이 있다고 말하는 걸 보세요.

인도의 고대 경전인 <리그베다>에서는
"태초에는 어둠이 어둠을 감추었으니,
이 모든 것이 아무런 표징도 없는 물이었도다.
공허로 싸여 있던 생명체,
그 유일자가 열의 힘을 통해 태어났도다."고 합니다.
중국 신화에서도 태초에는 혼돈의 물뿐이었는데,
번개의 힘을 받아
첫 생명이 태어났다고 한답니다.
오늘날의 물리학에서 하는 이야기와 비슷하지요.

창세 신화들을 보다 보면,
신화에는 인류가 현생 인류로 진화하기 전의 기억까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폴리네시아의 창조 신화는 음양 이론과 비슷합니다.
우주의 원리는 아오와 포라는 두 가지 본성을 띠는데,
아오는 밝음, 낮, 하늘, 남성적 원리를 뜻하고
포는 어둠, 밤, 땅, 여성적 원리를 뜻한다고 해요.
창조의 시작은 바로 아오와 포를 구별하는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성서에서도 하느님이 맨 처음 "빛이 있으라" 하여, 밤과 낮을 가르지요.
해가 지면 컴컴한 밤이 되고, 다시 다음날 날이 밝는 건
초기 인류에게 매우 놀라운 일이었던 모양이에요.
아니, 그게 바로 우주 질서의 기본이었겠죠.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세계를 인식하는 첫걸음이었겠죠.
그런데 폴리네시아의 아오와 포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죽음과 사후의 지하 세계를
꿈과 사랑의 장소, 어머니의 땅으로 표현한 점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게 마련 아닌가요?
우리도 죽으면 저승사자에게 끌려 염라대왕 앞으로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폴리네시아의 아오와 포 이야기에서는,
인간이 땅 위의 아오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건 첫 남자인 카네의 죄 때문이고,
죽은 뒤에야 어머니 땅 '히나'와 살러 갈 수 있다고 합니다.
포 세계는 밤이라는 창조의 세계로, 꿈과 사랑의 장소로 살아 있다고 하구요.

북유럽 신화를 읽으니,
<반지의 제왕>은 바로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더군요.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 인물들이 사는 곳을 '중간계'라고 하잖아요.
노르웨이와 독일에 전해지는 북유럽 신화에서
신 오딘이 인류에게 만들어 준 세계가 바로 미드가르드(Midgard=Middle Earth)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딘은 신들의 거처인 아스가르드(Asgard)도 만들었다고 해요.

잉카 신화에서는,
창조주 콘 티키가 인간을 만들고 지상을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 주었는데,
인간들이 은혜를 잊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콘 티키는 인간에게 벌을 내려 고된 노동을 하게 했답니다.
이때 새로운 신 파차차마크가 나타나서 콘을 몰아내고
콘이 만든 인간들을 모두 원숭이로 만들어 버린 다음,
흙을 가져다 새로운 인간들의 조상을 만들었대요.
혹시 새로운 인간들이 바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고,
콘이 만들었다는 인류는 그 전에 멸종한 호모 에렉투스나 뭐...
그런 것 아닐까요?
(이 글을 쓰고 나서 한참 뒤, 곧 작년에 한국 신화 강좌를 들었는데,
아시아 여러 민족의 창세 신화 중에서,
처음 세상을 만든 신이 뒷전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신이 등장해
오늘날의 세계를 주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매우 많다더군요.
우리나라의 창세 신화도 그래요.)

아메리카 원주민 중
모하베 아파치 부족에 전해진다는 홍수 신화에서는
처녀 한 명만이 카누를 타고 홍수에서 살아남는데,
이 처녀가 산으로 올라가자
태양이 처녀를 비춰, 바위에서 처녀의 몸으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고 합니다. 이 마법의 물이 처녀를 잉태하게 했고,
처녀는 나중에 딸을 낳았으며, 그 딸은 어머니와 똑같은 방법으로
임신해 마침내 인류가 다시 번성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햇빛을 쬐어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물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자, 우리의 부여 동명 신화, 고구려 주몽 신화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 책엔 일본의 창세 신화(매우 괴기스럽고 에로틱하답니다.
일본의 에로 영화와 괴기 영화가 오늘날까지 강세인 이유를 알 듯.)
는 나오지만 우리나라의 신화는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아메리카 인디언 중 알공킨 부족에게 전해진다는,
알곤이라는 사냥꾼과 하늘처녀 이야기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점을,
이 책의 지은이는 모를 겁니다.
(역시 한국 신화 강좌를 듣고 알았는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중앙아시아부터 일본에까지 폭넓게 전해지는 백조처녀 이야기의 변형판이에요.
그 이야기가 인디언 신화 중에도 있는 거지요.)
 
어떤 이론이나 주장을 펼치는 책이 아니고,
신화에 관해 다양한 책을 읽어 온 지은이의 독서 공책을 주제별로
정리해 놓은 것 같은 책이에요.

책 뒷부분에는 여러 신화학자들이 신화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지,
비슷한 신화가 세계 여러 곳에서 전해지는 까닭을 어떻게들 해석하는지
인용해 놓았지요. 인용문만으로는 신화학자들의 주장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신화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누구누구가 유명하며,
학계의 쟁점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어 유익합니다. 

잘 읽다가 마지막 장에서는 좀 깼는데,
마지막 장은 지은이가 기독교 세계의 자기네 독자들에게
'신화'는 사탄의 도구가 아니고
기독교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지요.
헉, 이 장 바로 앞까지도, 이 사람이 보수적인 기독교인인 줄 전혀 몰랐거든요.

이 책의 단점은,
여러 나라와 민족의 신화를 골고루 맛뵈어 주다 보니,
모든 신화가 간략히 정리돼 있어,
원래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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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
이옥순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이란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외국 여행을 꿈꿀 때, 그것도 한 달 이상 흘러다니는 생활을 하고 싶을 때, 90년대 초반에는 유럽 여행이 그 꿈의 대상이었고, 그 후반에는 인도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유행처럼 그렇게 되었습니다.

유럽 여행을 꿈꿀 때는 그리스 로마의 찬란한 고대 문명과 함께 세계의 명화들이 가득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떠올리겠지요. 그리고 숙박 시설이 청결하고 안락하리란 것을 의심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인도를 생각하면? 고대 문명의 찬란한 유적을 기대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뭔가 신비로운 정신적인 상태를 기대하고, 도시 문명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은 끝에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가난한 성자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겠지요.

인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서양인들이 동양에 대해 가지는 환상, 바로 그것이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우리와 같이 생동하는 사람이 사는 곳, 남루한 생존에 허덕이고, 그러나 수천년 외부 세계와 교통하면서 변화 발전해 온 곳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다고,

여행이란 낯선 곳을 만나고 받아들이는 것인데, 19세기 초 그곳을 여행한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이나 20세기 말 21세기 초 그곳을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나 인도의 과거만을 찾고 자기 속에서 만들어진 환상만을 찾다가 실망해서 그곳을 떠나온다고 합니다. 게다가 열대의 기후는 비교적 북방에 있는 한국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거의 더위지옥이겠지요. 비교적 북방에 있는 영국의 사람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내)가 인도(그리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를 인식하는 방식은 바로 서양제국주의가 인도, 아시아를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다, 서양제국주의의 박제 오리엔탈리즘을 복제한 오리엔탈리즘이다, 하고 이 책은 지적합니다.

박제 오리엔탈리즘과 복제 오리엔탈리즘은 모두 인도에게 두 가지 덫을 씌우는데, 하나는 "인도는 미개한 야만의 땅, 우리보다 후진적인 곳"이란 것이고(그래서 교화의 대상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나 "인도는 신비로운 정신의 땅, 따라서 선진적인 우리를 모방하고 기술적으로 개발된 인도(서양화한 인도)는 진짜 인도가 아니"라는 것(그래서 서구식 교육을 받고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인 이들은 진짜 인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많이 찔렸고, 그러니 읽는 이에게 어떤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미주까지 합해 231쪽밖에 안 되는 이 책의 문장이란 게 거의 인용문의 동어 반복이라니.
비판을 위해 영국 소설과 우리 작가들의 소설, 기행문, 신문 보도를 인용한 것은 원래 이 책의 서술 방식이지만, 그 외에 지은이의 논리를 전개하는 문장도 거의 선학들의 책에서 따온 것이라고 일일이 미주를 달아놓았습니다. 남의 생각을 슬쩍 갖다 쓰면서 자기 것인 양 시치미 떼는 것보다야 이렇게 인용 출처를 일일이 밝히는 것이 훨씬 훌륭한 태도이지만, 지은이는 이렇게 인용에 인용을 거듭하고, 게다가 앞에서 한 말 뒤에서 또 하는 식으로밖에 글을 쓸 수 없단 말인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생각까지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국 땅에 가면,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이 일본에 가든 미국에 가든 인도에 가든, 일단 낯선 땅에 간 사람은 낯선 환경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 반응은 일단, 그곳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주관적인 반응일 겝니다. 물론 책이나 신문 기사를 발표하는 데는 사회적인 책임이 따릅니다. 갑남을녀가 무책임하게 소견을 던지는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공공연한 영향을, 그것도 크게 미칠 수 있는 글에다가 겉핥기 여행 끝에 얻은 자기주관만을 나열하는 건 정말 무책임한 일이지요. 그래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엄격하게 자신을 성찰해야겠지요.
하지만 작가나 기자 역시 처음 경험하는 것에는 서투르고, 그 경험을 거듭하면서 변화 발전할 겁니다. 그런데 그 첫 반응을 일일이 문제 삼고, 더욱이 이 책에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문제 제기 수준인 책이니까 그 정도에서 의의를 둔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후에 지은이의 대안적인 글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한 가지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3장 "상상의 '동양'을 넘어서" 부분 211쪽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물론, 서양이 날조한 '사이비 동양'이나 영국이 조작한 '사이비 인도'를 모두 '사실'로 교정할 순 없을 것이다. 주술사가 악마를 쫓아내듯이 우리 안에서 서양을 완전히 쫓아내기란 불가능하다. 난디의 판단대로 '서양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우리 자아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고, 아마드의 표현을 돌려서 말하면, 그것은 일제시대에 건설되었다고 철도의 이용을 거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저는, "서양이 날조한 '사이비 동양'이나 영국이 조작한 '사이비 인도'를 모두 '사실'로 교정할 순 없을 것이다"란 말이 어떻게 "일제시대에 건설되었다고 철도의 이용을 거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로 연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상을 벗겨내려는 노력이 어떻게 일제가 지은 철도를 타지 않겠다는 아집과 같지요? 원래 의도는, "서양적인 것 역시 우리(인도)가 지금까지 오면서 받아들이고 융화해낸, 인도의 일부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문장의 전개가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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