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곽원갑
감독 : 우인태
주연 : 이연걸
"무술"이라는 소재를 갖고 동서양의 영화계가 갖는 시각은 천지차이다. 일단 서양의 시각을 살펴보면 무술은 지금까지는 흥미의 대상인 측면이 강하다. 총알과 같은 과학적 무기는 필요없이 오로지 사람의 손발로만 변화무쌍하게 펼치는 무용과 같은 퍼포먼스는 무기에 익숙한 서양 사람들이 보기엔 대단히 신기할 터, 그래서 아직까지는 이런 무술이 액션 영화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로만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무술의 본거지인 동양의 영화계는 확실히 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그 다른 태도의 대표적인 면이 이 영화 <무인 곽원갑>에 있다. 동양에서는 무술이 단순히 눈요깃거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정신이 깃든, 단순한 공격과 방어의 수단 그 이상의 것이다. 무술 속의 그 고유한 혼을 이 영화는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글쎄 그게 제대로 이야기가 되었을까?

우리의 주인공 곽원갑(이연걸)은 어렸을 때부터 승부욕이 유난히 강했다. 다 이긴 경기에서 상대방의 급소를 치는 걸 포기한 채 패배를 인정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일대일 결투에서 라이벌에게 처참하게 깨진 자신이 싫어서 그는 피나는 연습을 하고 결국 어른이 되어 그는 장안의 최고의 고수가 된다. 더 이상 자기를 건들 사람이 없다며 의기양양하던 곽원갑은 그러나 그 의기양양함 때문에 큰 것을 잃고 만다. 자신의 제자가 또 다른 어느 스승에 의해 크게 다치고 오자 이에 격분한 나머지 그 스승을 찾아 격투를 벌이고, 나아가 그의 목숨을 빼앗기까지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스승의 아들은 곽원갑의 일가족을 모두 죽이기에 이르고.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곽원갑은 절망한 채 은둔의 길을 떠나고, 그 길에서 참된 무술의 길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이연걸의 마지막 액션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마지막인데 확실하게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많이 하실 텐데,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될 듯하다. 다양한 장소, 다양한 시간에 펼쳐지는 격투 장면들은 우리의 눈을 휘어잡기에 충분하다.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이연걸의 몸짓 하나하나는 여전히 한 편의 무용 퍼포먼스를 보는 듯 유연하고 날렵하며, 카메라워크 또한 그의 그런 몸짓을 하나하나 이곳저곳에서 훑으며 자유자재로 스릴 넘치게 움직인다. 대결이 펼쳐지는 장소 또한 긴장감을 자아내어서, 공중에 높이 솟은 결투장이나 밀폐된 좁은 실내 등 다양한 곳에서 그 장소의 규격에 맞는 다양한 무술이 펼쳐진다. 적어도 이연걸의 마지막 무술 장면을 보는 것에 대한 기대에 있어서는 실망은 쉽사리 할 수 없을 만큼의 액션 퀄리티를 자랑한다.

그런데 참 아쉬운 것이, 영화의 구성이나 메시지 전달 방식은 이러한 무술 퍼포먼스에 많이 모자란다. 오랜 시간 홍콩영화에서 무협영화가 득세를 해오면서 카메라워크 등 기술적인 측면으로 이만큼 진보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는 보여준 반면, 영화의 전개나 메시지는 너무나 모범적이고 형식적으로만 흘러간다. 일단 스토리 전개를 살펴보면, 곽원갑이라는 사람이 맨 밑바닥에서부터 최고의 위치로 올라서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최고의 위치에 있다가 추락을 겪는다는 설정은 그래도 비교적 새로운데, 그 뒤부터는 지극히 뻔하고 때론 좀 비현실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전개로 흘러간다. 추락해서 누구도 구제하기 힘들 만큼 좌절의 길을 걷다가 어느 외딴 곳에서 구조되고, 그 곳에서 묘령의 여인의 도움을 받아 다시 재기에 성공한다. 단순히 실존인물의 전기 영화를 넘어서서 드라마틱한 전개를 위해 이런 걸 집어넣은 듯 싶은데, 솔직히 무술 대련 장면을 보면서는 연신 대단하다는 생각에 입을 벌리면서도 이런 형식적인 전개에 들어서면 다시금 10여년 전 홍콩무협영화를 보는 듯해 좀 생뚱맞은 감이 없지 않았다.

메시지 전달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때론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말이 절로 관객의 가슴에 전해질 때도 있는 법인데, 이 영화는 모든 메시지를 굳이 말로 해야만 될 것같은 인상을 풍긴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화 속 곽원갑의 마지막 적수인 일본의 다나카(나카무라 시도우, 알만한 분은 아시겠지만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남자주인공이다)와 곽원갑이 대결 전 정자에서 차를 마시는 장면인데, 곽원갑이 무술을 통해 얻은 여러 깨달음을 다나카한테 전해주는 듯한 구조로 흘러간다. 그런데 곽원갑이 하는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형식적이고 뻔하다. "저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제 자신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닭살까지 돋을 정도였으니. 그래서 다나카가 이러한 곽원갑의 모습에 동화되는 것도 덩달아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 게 사실이고. 또한 시종일관 "무술의 의미"를 직접 입으로 수차례 말하는 모습도 좀 경직되고 권위적으로 느껴진 점이 아쉬웠다.

<와호장룡>이 무협영화로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극찬을 받은 건 요란하게 무술이라는 것이 주는 가르침을 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무술이라는 아름답지만 위험한 것에 담긴 인간 개개인의 복잡한 감정들, 인생사가 서로 얽히고 어떻게 말로 할 수 없는 감정들이 어깨에 힘을 빼고 그저 하나씩 하나씩 조용히 꽃을 피워 장관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리무바이와 수련의 사랑은 구구절절 말이 하나도 필요없었는데도 가슴을 미어지게 했고, 용이 그 많은 난리를 겪은 뒤에 느끼는 허무함 또한 구구절절 대사 없이 허공에 몸을 던지는 것 하나만으로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무인 곽원갑>은 이렇게, 굳이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것 없이도 관객에게 깊은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기술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무술의 의미라는 큰 범위의 주제보다 인간 곽원갑이 겪어야 했던 개인적인 고뇌, 번민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해본다. 때론 거창하게 연설조로 나가는 것보다는 동작 하나, 표정 하나가 정서에 더 깊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영화 <무인 곽원갑>은 이연걸의 무술 퍼포먼스는 정말 전혀 아쉬움이 없는 데 반해, 그 무술을 수단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나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공간의 제한 없이 신기에 가깝게 펼치는 영화 속 곽원갑의 몸짓처럼 영화의 가르침 역시 유연했으면 좋았을 것을, 영화가 소탈한 "자서전"보다는 경직된 "교과서"의 길을 택했다는 점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