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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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9. 27.에 쓴 글을 지금 시점에 맞게 손본 것.

폴 오스터Paul Auster 지음, 김석희 옮김,
<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열린책들, 2000

 

폴 오스터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최승자 시인의 일기집 <어떤 나무들은>(세계사, 1995)에서였어요. <어떤 나무들은>은 최승자 시인이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열린, 세계 여러 나라의 작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쓴 일기를 묶은 책이지요.

이 책에서 최승자 시인은 폴 오스터라는 미국 작가의 소설을 주목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인가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1995년에 이미 열린책들에서 <미스터 버티고>라는 폴 오스터의 소설을 번역 출간했더군요. 그 전에도 문학사상사와 호암 출판사에서 그의 책을 한 권씩 출간했고요. 그 책들은 다 절판되었습니다.

하지만 폴 오스터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00년 무렵, 열린책들에서 기존에 자기네가 펴냈던 소설들을 몽땅 아담한 양장본으로 재출간하면서부터였을 거예요. 이때부터 열린책들에서는 기존에 출간했던 작품들뿐 아니라 나머지, 폴 오스터의 전작을 줄줄이 내놓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교보문고 소설 매장에 가면 폴 오스터 소설만을 모아 놓은 책꽂이도 따로 있습니다.(그런데 책꽂이 위 표지판에는 '폴 오스트'라 쓰여 있어요. 작가 이름을 버젓이 잘못 걸어 놓은 서점도 서점이지만 출판사 영업자들은 왜 그걸 바로잡지 못하는지? 아, 지금은 바로잡았으려나...)

하지만 2003년 초까지도 전 폴 오스터의 책들을 사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루었어요. 요 몇 년 사이 제가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거든요. 한때는 소설만 읽었는데, 뭐랄까, 왠지 '땡기는' 소설이 없었어요. 그러다 <빵굽는 타자기>를 처음 읽어보자 싶었지요. 우선 제목이 흥미롭잖아요?

원제는 Hand to Mouth.
느낌이 딱 오지 않습니까?
읽기 전에는 흥미롭게만 보였던 <빵굽는 타자기>란 번역 제목이, 다 읽고 나서는 정말 원제를 절묘하게 '승화'시켰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설이 '땡기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라고 붙인 부제와 같이, 어린 시절부터 30대 초반 첫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기까지, 먹고살기 위해 그의 손이 어떤 일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글입니다.

폴 오스터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돈'과 어떤 관계였는지, 가치관이 변하면서 스스로 '돈'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작가가 되리라 결심한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돈' 대신 세상의 밑바닥을 만나는 경험과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을 선택해 겪은 시간을 들려 주고, 그러고 나서 그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경이를 겪으면서 결국 '돈'에 판정패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작가는 돈을 벌기 위해 쓴 첫 책(열린책들에서 번역 출간한 <스퀴즈 플레이>)으로 손에 쥔 푼돈을 씁쓸하게 내려다보지만, 전 작가가 되려면 이 사람처럼 청년기를 보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이 만난 사람들, 이 사람이 읽은 책들,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거예요. 본인은 무지하게 힘들었겠지만.

소설이 출간되기 전 처음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았던(그러나 당시에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던) 희곡 세 편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돈을 벌기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이 개발한 카드로 야구하는 게임(일명 "액션 베이스볼")을 장난감 회사에 팔아 보려고 나섰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책의 뒤편에 그 희곡 세 편이 있어요. 그 중 가장 긴 <로렐과 하디, 천국에 가다>는  2003년 가을 인켈아트홀에서 상연했네요. 교육극단 달팽이란 데서 무대에 올렸대요. 나머지 두 편 <정전>과 <숨바꼭질>까지 해서, 세 희곡은...  반복적인 보통 사람의 일상, 그 의미 있는 반복을 말하려는 것 같았어요.

맨 끝에는 액션 베이스볼 게임의 설명서와 카드 96장의 디자인까지 실려 있습니다. 전 야구 규칙을 잘 몰라서 봐도 모르겠더군요.

이 책을 다 읽고, 폴 오스터의 다른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라는 그 사람의 소설보다 자전 수필을 먼저 읽은 게 잘한 일일까요, 잘못한 일일까요? 결론은 소설을 읽은 다음에 내려야겠지요. 어쨌거나 재치있는 문체가 꽤 재미있어 기대됩니다. 번역의 입김이 어느 선까지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더. 이 책의 저작권 발생 연도 표시가 꽤 복잡하던걸요.
(c) 1976, 1977, 1978, 1982, 1997.

세 희곡과 액션 베이스볼, 그리고 Hand to Mouth라는 본 수필이 각각 발표된 해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따로 출간된 <스퀴즈 플레이>의 판권을 보니까, 미국에서 출판된 원서 <Hand to Mouth>에는 이 <스퀴즈 플레이>까지 수록된 모양이에요. 그런데 열린책들에서 원서 그대로 한 권에 묶지 않고 따로 출간한 이유는? 한데 묶으면 책이 너무 두꺼워져서일 수도 있고, <스퀴즈 플레이> 자체가 본래 독립적인 소설 한 권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폴 오스터가 장사가 되니까, 따로따로 팔아 이윤을 더 남기려는 의도가 크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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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6-2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이 폴 오스터에 대해 열광하던데... 그래도 꾹 참고 있었는데... 이제 진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솟았습니다 ^^ 감사.

숨은아이 2004-06-2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서른 즈음에 돈에 "판정패"했던 그가, 액션베이스볼부터 시나리오 작품까지 다 책으로 묶어 내는 걸 보면, 이젠 폴 오스터가 만든 건 다 돈이 되는구나... 싶어요. 좋은 일이겠지요?

숨은아이 2004-06-2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글 수정하느라고 호랑녀님 댓글 써주신 걸 몰랐네요. 그런데 <빵굽는 타자기>에 대한 평가는 상반되더라구요. 전 재미있었는데. 호랑녀님의 리뷰를 기대하겠습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07-2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d to mouth를 빵굽는 타자기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돋보이네요.
님의 글을 보니 저도 정말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읽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인사도 없이 코멘트부터 날리네요... 님의 글을 읽으니 더운 날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

숨은아이 2004-07-2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 앗, 고맙습니다. 그렇게 느껴주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