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본 소감을 세 마디로 표현하면, 하! 하! 하!
책을 아직 읽지 않았기에, 원작을 잘 표현했는가는 판단할 수 없다. 틀림없이 대폭 축약했을 테니 원작을 읽은 뒤에 보았다면 아쉬운 점도 많을 것이다. 으레 그러니까. 전에는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먼저 읽으려 애썼지만, 지금은 반대로 하려고 애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상상’이고, 자본과 산업 기술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원작을 읽으며 내가 상상하고 꿈꾸었던 것과는 거리가 있다. 원작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면 실망하곤 하지만,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서 원작을 읽으면 영화에는 담지 못했던 요소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나는 배우가 바보스런 표정을 지으며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코미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 그러는 건 그래도 볼만한데 미국 배우들이 그러는 건 (미안하지만) 보기가 싫다. 그런 장면에 으레 누군가를 때리고 부수는 내용이 따라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배우가 직접 머리를 박거나, 다른 사람이나 동물을 때려눕히거나 하는... (만화영화 <톰과 제리>도 같은 이유로 싫어한다. 주인공들이 납작 뭉개지는 장면을 보면 내가 다 아픈 것 같다.) 이 영국 영화에도 그런 부분이 조금 나오지만, 대체로 통쾌해서 용서가 된다. 특히 “생각”이란 걸 하기만 하면 한 대 후려치는 보거 행성의 시스템이!
번역이 조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끊임없이 다다다다 떠드는 배우들의 대사를 한 장면에 달랑 두 줄로 옮기면서 그네들 언어의 말장난마저 흉내 내야 하니, 우리나라 유행어까지 끌어들이기 십상. 그래도 유행어에 기대지 말고 말 자체로서 재미있게 하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모토인 “Don't panic.”을 “쫄지 마라.”로 옮긴 것도 약간 지나치다 싶고. 그래도 그게 가장 적당한 표현 같다. ^^; 살짝 의역한다면 “주눅 들지 마라” “가슴을 펴라” 정도 되겠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하얗고 가운데 구멍이 난, 볼링공처럼 생긴 우주선. 우주선이 순간 이동할 때 변신하는 장면도 아주 재미있다. 그리고 지구가 순간 폭파되는 장면은,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저렇게 순간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지구는. 인간이란 참 재수 없는 생물이겠지만, 그래도 가만 들여다보면 저마다 귀여운 사연이 있고 눈물 나는 역사가 있는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2005 | 미국, 영국 | 110 분 | 감독 가스 제닝스 Garth Jennings
주연
마틴 프리맨 Martin Freeman : 아서 덴트
모스 데프 Mos Def : 포드 프리펙트
주이 데샤넬 Zooey Deschanel : 트리시아 맥밀란 / 트릴리언
워윅 데이비스 Warwick Davis : 우울증 걸린 로봇, 마빈
빌 나이 BILL NIGHY : 행성 건축가 슬라티바패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