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값은... | 혼자 중얼중얼
2005.08.29


학교 졸업하고 군대 갔다 와서 두어달 있다가 직장을 잡았지. 뒤에서 세는 게 빠른 학점인 날 부르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잠깐, 난 왜 학점이 좋지 않았을까 ? 학과 공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그런 수업에는 그런대로 좋은 점수가 나온 걸 보면, 대체로 듣고 외우고 시험보는 것에 대한 반감도 컸던 것 같다. 게다가 당시 학과 공부 내용은 당장 세상 돌아가는 일에 침묵을 지키거나 반동적이라는 생각도 함께 한 것 같다. 물론, 할 거 다하면서 학점 좋은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나만의 게으름도 큰 이유 중에 하나일 테지만, 당시에는 나를 합리화할 것들이 상당히 많은 때였다는 생각도 든다. 암튼, 그랬다.

내가 직장에 다니기 시작할 때(1995년), 첫 해 받을 수 있는 임금이 대략 1800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급여가 어떻게 계산되는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부서에 있었으면서도 정작 내가 얼마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니..참...그게 꼭 10년 전인데, 그 때 당시로는 적지 않는 금액으로 기억한다. 2년 반을 다니고 그만 다녔지만...

그리고 꼭 10년이 흘렀다...직장을 그만두고 공부한답시고 각시 고생시키고 뜻한 바 ? 있어 하고 싶은 일 한답시고 한달에 20만원, 30만원 챙겨오던 때가 4년 전이다...그 후로 좀 나아졌지만....그 때 다니던 직장에서 알던 사람들을 작년 겨울에 만났을 때, 내 또래가 대충 한해 받는 임금이 4000만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난 지금....1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첫 직장에 다닐 때, 그리고 지금도 가끔 고민하는 것은, 과연 내가 받고 있는 임금만큼 제대로 일하고 있는 걸까 ?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게, 그리고 되돌아보면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내 통장에는 월급여가 매달 꼬박꼬박 이체되니, 난 제대로 일하면서 떳떳하게 임금을 받고 있나 ?!! 하는 생각 말이다...첫 직장 다닐 때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보았다. 그 때는 첫 해 임금 정도면 될 것 같다는 것...지금은 좀 많아졌다...한달에 200만원 정도 ? 내 나이 30대 중반, 그래도 날 필요로 하는 곳이 한두군데는 있을 법한 내 나름의 전문성 ? ㅎㅎ ....그럼 그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 넘 많은가 ?

그래도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분들, 그리고 그것을 열심히 팔러 다니는 분들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나같은 사람들보다는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 정도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임금 지급의 중요한 기준이고(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그래서 뒤바꿔야한다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 이 정도는 받아도 돼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임금이었으면 하는데...글쎄...

내 노동력을 싸게 팔지는 않을 거야 !!! 라고 큰 소리 치지만, 정말 내 노동력의 값은 얼마가 되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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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8-3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의 첫 직장은 보험회사였다. 본사에서 내근을 했다. 보험 같은 금융권 회사 직원들의 급여는 일반 제조업체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때 나는 옆지기에게, 거리 곳곳에서 발품 팔며 때로는 수모도 당해가며 보험설계사들이 모아 오는 보험료 가지고서 편히 앉아서 높은 월급 받는 거 아니냐고 했다.

옆지기는 내가 일하는 거 보면서, 대기업에서 그 정도로 열심히 일하면 지금 내가 받는 것보다 두세 배는 많이 받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잘 때 말고는 거의 언제나 일만 해야 했기에, 요즘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일하는 걸 보면 그래도 되느냐고 불안스러워한다. (사실 요새 좀 불안하기는 하다. ㅠ.ㅠ) 하여튼 그래서 그동안, 내 노동은 수고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얼마 전, 로드무비님 글에서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는, 이 역시 시건방진 생각이구나 싶다. 그래도 90년대보다는 많이 나아졌으니까. 90년대엔, 출판 일을 하고 싶다는 후배에게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으면 하지 말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릴케 현상 2005-08-31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엔리꼬 2005-08-3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님이 저랑 비슷하시네요.. 학점 안좋은 것도 비슷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때도 비슷하고, 월급 받다가 때려치우고 공부한 것도 비슷하고, 그때 월급이나 지금 월급이나 별 차이 없는 것도 비슷하고... 그리고, 숨은아이님의 보험설계사 분들 챙기시는 그런 생각, 아무나 못하는 겁니다.. 내 몸값 챙기기 바쁘지 사실 다른 분들 몫과 비교하면서 내 월급이 많은거 아니냐, 하고 말하기는 쉬운거 아니지요... 쩝

숨은아이 2005-08-3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ㅎㅎㅎ
서림님/흐음, 비슷하시군요... 옆지기가 회사 그만두고 나서 얼마 뒤, 저의 엄마가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셨답니다. 그래서 남 같지 않아요...

마태우스 2005-08-3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전 언제나 죄송할 따름입니다...

숨은아이 2005-08-3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몸값을 전 알지 못하지만, 죄송하다 느껴주셔서 참 감사하다 여겨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