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느낌보다 시간에 밀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질 때,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풀이 자라는 속도로 천천히 자라나, 마침내 무성해지는 걸 느낀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혜화경찰서에서」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하라고 일갈하는 시인의 앞모습부터,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며 교각 아래 서서 8분을 기다리는 시인의 뒷모습까지, 사랑한다.




이바나 / 배수아 


뭐니뭐니해도 배수아다. 수많은 배수아 중에 나는 <이바나>의 배수아를 제일 좋아한다.




남자의 자리 / 아니 에르노


감정을 억누르고 곤충을 관찰하듯 아버지의 일생을 해부한다. 읽고 나면 내 아버지가 거기 있다.




이민자들 / 제발트


네 개의 단편,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문장이 없고, 네 명의 이민자, 어느 누구 고독하지 않은 자 없다. 





독일 비애극의 원천 / 발터 벤야민


힘들면 이 두꺼운 책을 굳이 다 읽을 필요는 없다. 첫글 「인식비판적 서설」만 읽어도 충분하다. 아니, 그 글 앞머리에 인용된 괴테의 문장 중 “지식에는 속이 없고 반성에는 겉이 없어서”까지만 읽어도 된다.




추천인 : 권여선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 『레가토』가 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권여선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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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농 2015-02-10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가님 팬이라 추천 책 다 읽고 있어요 ^^ 제발트는 현기증.감정들로 먼저 만났는데 빨리 다 읽고 싶네요.
 


영장류(靈長類)에 속한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를 지구 탄생 이후 가장 지적인 도구인 문장과 서사를 통해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함께 호흡하며 조상과 역사를 이해하고 민주주의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고 스스로의 정신영역을 우주적인 것으로 확장하는 것.  


공부논쟁 / 김대식, 김두식 


스펙 쌓기와 취업을 위한 게 아닌, 공부와 학문이 이 세상과 현실, 우리 각자에게 중요한 이유를 입증하는 흥미진진한 대화록.





신은 위대하지 않다 / 크리스토퍼 히친스


무신론자인 저자가 종교와 신에 대해 비판하는 논지보다는 종교의 탄생과 발달 과정, 내부의 규율과 교리며 그것이 야기하는 세계적, 역사적인 희비극이 세세하게 그려지고 있는 게 더 관심이 간다. 결론에 찬성하든 하지 않든 인류와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이 흥미롭다.


“학문적 표절을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았을 때 아이작 뉴턴은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이점을 누렸다’고 조심스레 죄를 시인했다. 그런데 그 구절도 표절이었다.”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소비의 진실 /  마틴 린드스트롬 저


명품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값이 절대로 아깝지 않을 책.  





초조한 마음 / 슈테판 츠바이크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 평전>처럼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귀신. 그런데 허구적인 이야기에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까지 도저히 손을 뗄 수 없었다.

  



마술 라디오 / 정혜윤 


이른바 ‘이야기 채집자’의 포충망에 걸릴 만한 매미, 아니 이야기라면 그것은 어쨌든 들어볼 만한 것.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은 시절’, 짐승이 사람의 말을 하는 시절에 그나마 경청할 진짜 사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지개처럼 걸렸다.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 / 폴 존슨


저자는 극우인사에서 보수파들에게는 관대하고 진보적 인사나 자유주의자에게는 신랄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심술궂기도 하고 스캔들에 민감하며 뒷공론을 서슴없이 터뜨린다. 어쨌든 사람을 보는 일관된, 단정적인 관점을 볼 수 있다. 



‘나는 다이애너비야말로 내가 만난 사람 사람들 중에 가장 직관적인 사람, 상대가 누구든 즉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거의 기묘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작 뉴턴의) 특별한 재능은 순전히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그것을 꿰뚫어볼 수 있을 때까지 절대로 머릿속에서 내려놓지 않는 능력이었다. 그러한 탁월함은 다른 어느 누구도 가져본 적 없는 가장 강력하고 내구성 강한 직관의 근육 덕분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천인 : 성석제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내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단편 소설집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조동관 약전』 『호랑이를 봤다』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참말로 좋은 날』 『지금 행복해』 『이 인간이 정말』 등과 짧은 소설을 모은 『재미나는 인생』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을 펴냈다. 장편소설에는 『왕을 찾아서』 『아름다운 날들』 『도망자 이치도』 『인간의 힘』 『위풍당당』 『단 한번의 연애』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서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성석제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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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을 읽으면 1을 쓸 수 있다고 변명하며 마음껏 읽고 있습니다. 이 변명이 널리 통하는지, 제가 관찰해본 결과 글을 쓰는 사람일수록 더 탐욕스럽게 책을 읽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작가의, 손꼽아 기다리는 다음 책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면 그 작가는 다른 작가의 책을 누에 벌레처럼 삼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 사이는 종이옷을 입고 하는 포옹처럼 긴밀하며 그보다는 자주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다 같이 좁게 누워 길고 진한 욕망에 빠져 있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종류의 탐욕인 것 같습니다. 




암고양이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난세기에 쓰여진 책이 여전히 우리를 날카롭게 웃게 한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콜레트에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여자만의,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통찰력과 위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민해 보이지만 흥미로운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 비슷한 것이 읽는 내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 이탈로 칼비노 


누구도 이탈로 칼비노처럼 쓸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아주 독특한 호흡과 압축률로 쓰였기에 하루에 많은 페이지를 읽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몇 페이지에 온 마음을 빼앗기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실은 너무나 선연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오래 읽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영원한 귓속말 / 최승호 외 49인 


이를테면 별자리나 탄생석이나 태어난 날 만개한 꽃보다도,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인가가 훨씬 한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 시인이 없다면 이 책에서 만나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가짜 경감 듀 / 피터 러브시 


읽은 지 한참 되었는데도 아주 자주 생각나는 추리 소설입니다.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도, 해답을 알고 있어도 계속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매번 생각나는 부분도 다릅니다. 조금씩 전형적인 것에서 비껴나 있는 요소들에서 이야기의 가지가지가 뻗어나가는 생동감이 비롯된 게 아닌가 합니다. 



나의 핀란드 여행 / 가타기리 하이리 


배우는 역할마다 매번 다른 사람이 되면서도, 결국 자기 안의 어떤 것을 꺼내는 직업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가타기리 하이리는 멋진 배우인데 멋진 작가일 줄은 또 몰랐습니다. <카모메 식당> 촬영이 끝난 후 핀란드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핀란드와 가타기리 하이리에게 동시에 반할 것 같습니다. 크게 웃고 조용하게 따뜻해지는 책입니다.



추천인 : 정세랑 (소설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로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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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ie 2015-06-0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세랑씨 소설 정말 좋아합니다. 추천 소설도 꼭 읽어볼게요!

초코머핀 2014-07-0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만큼 가까이..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 암고양이. 나의 핀란드 여행이 재미있을 것 같아요 ~!!

명준 2014-10-26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다 읽어야 겠어요 :)
 


내 경우 독서는 일단 물적 경험의 단계로 시작된다. 

수많은 책 가운데 하필 눈이 가서 손이 가는 물적 형태가 있어야 하고 그걸 쥐고 펼치고 가끔은(하고 적어두고 꽤 자주, 라고 고백함) 코를 묻고 냄새도 맡아야 하므로 내게 책이란 일단 사물이어야 하는 것이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쥐어서 무게를 감각하고 펼쳐서 질감을 확인하고 종이는 몇 그램짜리를 사용했는지 흐음, 하고 페이지를 넘기며 가늠해보고 텍스트 정열 상태를 확인하고 잉크는 신선한 것을 사용했는지 냄새도 맡아보고 인쇄 상태가 짙은지 옅은지…… 까지 확인한다고 말하고 보니 약간 변태 같네 거기다 언제 책장에 손을 베일지 모른다는 긴장감에 짜릿짜릿, 까지 말한다면 정말 변태 같지만 변태라도 상관없으니 짜릿짜릿, 소름이 돋는데 그게 싫지 않고 그게 있어야 진정 읽기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겠어요. 하여간 여기까지가 시작이고 보니 다소간 야단스럽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희한하고도 다행인 것은 그렇게 만져서 고른 책 중에 실패한 책이 별로 없다는 거. 

본래는 그러므로 <그 책, 읽기에 좋고 만지기에도 좋다>로 콘셉트를 잡아보려고 했으나 책장 앞에 서서 책을 고르는 동안 무슨 영문인지, 겨울밤에 읽기 좋은 책을 추천하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덧붙이자면, 겨울밤에 읽기 좋은 섹시한 책. 

소설로 범위를 좁혔음을 한 번 더 덧붙여둔다. 

 


정키, 퀴어 / 윌리엄 버로스


<정키>를 다 읽고, 더 읽고 싶어 부족해, 라는 마음이 들 때는 <퀴어>를. 

조금 더 혼란스럽고 더 어둡고 더 고독하고 덜 위트 있지만 그런 이유로 <퀴어>까지 읽기를 권함. 



책 속에서 : 

“어른이 되면 아편을 피울래.”



사요나라 갱들이여 / 다카하시 겐이치로


다카하시 겐이치로인데요 뭐, 더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책 속에서 :

“나는 무엇일까요?”

<영문을 모르는 것>이 말했다. 

그래서 왔을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이런 종류들은 반드시 “나는 무엇일까요?”라고 묻는 법이다. 당사자도 모르는 것을 어째서 내가 안다는 말인가? 

“원칙적으로 자신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비단 / 알레산드로 바리코

 

저는 2006년 8월에 출간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라색이 감도는 텍스트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네. 

이 책은 겉표지를 벗겨내고 읽기를 권합니다. 




책 속에서 : 

에르베 종쿠르는 그 후 23년을 더 살았다. 



리플리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총 다섯 권 시리즈에 네 번째 권까지 출간되었습니다. 

다섯 번째를 기다리고 있지만 세 번째나 네 번째보다는 꼼꼼한 교정을 부탁드려요. 

어쨌거나 겨울밤, 따뜻한 털양말 같은 것을 신고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 리플리를 냉소하는 사람을 경계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위의 내용을 다 지우고 유승호가 리플리를 연기하는 영상을 보고 싶다, 라고 적을까 망설임)

 

책 속에서 : 

그는 자기의 소유물을 좋아했다. 모두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지 않을 소수의 것을 좋아했다. 그런 소유물은 자존감을 준다. 단순한 물건이 아닌 품질 그리고 그 품질을 소중하게 여기는 애정을 준다. 



이 책들을 이미 읽었거나 앞으로 읽고 말 독자들에게 어디가 섹시하냐! 라는 항의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책들이 

내게 정말 섹시했다고 우길 작정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덧붙이겠어요. 

건강하시기를. 

 

추천인 : 황정은 (소설가)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파씨의 입문』,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황정은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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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제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제 정신 차리고 사는 것이 너무 피곤해서 가끔은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싶다. 책은 자신을 잊어버리게 하는 가장 좋은 상대다. 잘 만든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 나는 나의 모든 것을 한 곳으로 모으되 그 나는 잊어버릴 수 있다. 나라는 분심을 이겨내는 힘을 모으고 그 힘이 나를 만들고 밀고 가는 것이 독서다. 요컨대 독서란 나를 망각하는 몰아의 과정이자 흩어진 나의 마음을 모아가는 정제의 과정이다.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 김상봉 


서구의 고독한 주체철학을 ‘만남’을 통해 극복하려는 철학자 김상봉이 그리스 비극을 통해 “자유와 숭고 그리고 슬픔이 어떻게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난 가지일 수밖에 없는지”를 해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 스스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논증하려는 다른 저작과는 달리 보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세상에 넘치는 슬픔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밝히고 있다. 고통과 슬픔을 통해 우리는 서로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을 통해 보편성을 향해 나아가며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고 ‘즐겨라!’가 지상명령이 된 시대에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 /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 시대에 삶이 왜 더 이상 예측할 수 없고 기획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있는지를 다룬 책이다. 복지국가는 개인의 위험을 사회화하여 시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으로 폭력을 독점하였고 국민은 국가에 복종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국가는 시장을 시민으로부터 보호한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해진 사람들은 잉여/쓰레기로 취급받는다. 쓰레기는 권력에 의해 체계적으로 생산되지만 그 원인과 책임은 거꾸로 개인의 무능에서 찾는다. 그가 ‘액체근대’라고 부르는 유동하는 근대에서 우리 삶의 형태가 어떻게 불안정해지고 일회용이 되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노자 도덕경


아무것도 모르던 청소년 시절에 읽었다가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뭔가 경이로운 세계로 나를 인도했던 책.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신비한 책이지만 말에 매몰되지 않고 말 너머의 무엇에 대해 시선을 둘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11장의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라는 문구는 있음과 없음이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기댐의 관계라는 혁명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했다.



정치의 약속 / 한나 아렌트 


이 책의 뒷면에서 마가릿 케너번이 말한 것처럼 인간의 복수성에 아렌트가 얼마나 몰입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조차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하나-가운데-둘’이라는 복수적 존재이다. 이런 복수성에 의해 ‘세계가 출현하며, 모든 인간사가 일어나는 곳은 바로 이러한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정치도 바로 이런 복수성에 의해 일어난다. 우정, 정치, 공동체, 평등 등 아렌트의 핵심적인 개념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책.


장인 / 리처드 세넷 지음


이 시대의 능력이란 오래된 숙련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재빨리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에서부터 학교에 이르기까지, 경험과 경험을 통한 축적은 귀찮고 쓸모없기까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세넷은 손이야말로 생각하는 기관이라고 주장한다. 손과 머리는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기술을 적용할 때 생각이 배제된 채 순전히 기계적으로 되는 일이 없듯이, 기능을 닦을 때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손이란 인간의 맨손과 도구가 하나 되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경이로운 기관이다. 이런 손에 대해 우리는 경이를 느낀다. 능력주의와 나란히 노동이 미학화되는 시대에 장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이 책이야말로 장인 정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추천인 : 엄기호 (사회학자) 

울산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폭력적이고 부패한 교사를 만나 교육과 학교에 대한 문제의식에 눈떴다. 전교협 해직교사들의 편지글 모음인 《내가 두고 떠나온 아이들에게》를 중학교 때 읽으며 다른 교육의 가능성을 갈망하게 되었다. 

사회학과에 진학하였지만 학부 시절에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고 가톨릭학생회 동아리 활동에 푹 빠져 있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하고서야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곧 국제단체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국제가톨릭학생운동 아시아?태평양 사무국에 나갔다. 당시 한창 달아오른 반세계화 현장에 참가하며 주로 대학생들의 사회의식을 고양하는 양성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했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하자센터에서 글로벌학교 팀장을 하고 늦은 공부를 마무리하기 위해 문화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가 신자유주의와 청년 하위문화를 주로 연구하였다. 돌아보면 늘 교육의 언저리에서 살아온 셈이다.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페다고지를 만드는 것을 삶의 화두로 삼고 있다. 2013년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덕성여대 겸임교수,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간하는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을 하고 있다. 



엄기호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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