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Before & After

건방진 꼬마는 닥치는대로 책을 읽으면서 의아해 했다. 이 무수한 책들이 먼저 살아간 과거의 인간이 범한 오류를, 시행착오에서 도출한 교훈을 친절히 정리해주고 있는데, 어째서 어른들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왜 세계는 더 빨리 나아지지 않는 거지? 도대체 그들은 책을 읽지 않은 걸까?  한 권씩 덮을 때마다 인생을 낭비하거나 어지럽힐 위험을 하나씩 소거해 나가면 정결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시간이 쌓여갔다. 책 위로, 책 사이로.  어른이 된 예전의 건방진 꼬마는, 책에 관해 반대의 의견을 갖게 되었다. 책은 생의 한 줄기 지름길을 지시하는 지도가 아니라 끝없이 길 바깥으로 이탈하고, 피로를 무릅쓰고 배회하도록 이끄는 사이렌의 노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책이 내게 준 것은 체념과 실망인가?  아니다.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치고 성가실지언정  새로운 모순과 기꺼이 마주치고 흔쾌히 한눈을 파는 일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안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 로베르 브레송

사제같은 엄격함으로 연극과 영화 사이의 간극을 선포하고 배우를 ‘모델’이라 부르는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신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메모가 갖는 가치는 어차피 영화예술에 대한 균형 잡힌 통찰이 아니라 그 비타협적인 순수성에 있다. <공산당 선언>이 그렇듯이.  가치있는 종합은 어슷비슷한 절충론의 나열이 아니라 뜨거운 극단들의 충돌에서 나오는 법이다.


사유 속의 영화 / 이윤영 엮고 옮김

영화예술은 젊은 데다가 복잡한 천성을 지닌 탓에, 영화 매체의 본질을 정면에서 치열하게 파고든 훌륭한 글들은 쉽사리 ‘무슨 주의’라는 배너 아래 분류하기 어렵다. 이는 빠른 시간 내에 영화이론을 정리하려는 독자에게 갑갑한 노릇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보면 고전적 명편 에세이들이 21세기 영화의 이해에도 현재진행형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에르빈 파노프스키, 발터 벤야민, 앙드레 바쟁 등의 중요한 글을 모은 이 책이 대의명분을 실현하는 힘은 정확하고 사려깊은 번역에서 나온다.


키친 컨피덴셜 / 앤서니 보뎅 

블랙 코미디가, 슬픈 스릴러가, 깊은 포옹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멜로드라마가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소재와 형식의 미스매치가 내는 까끌한 매력이다. 이 책이 퇴창으로 들여다 본 뉴욕 레스토랑의 부엌 풍경은 식도락이라는 유유한 단어와는 전혀 무관한 스릴과 냉소, 음모(?)로 긴박하다. (필자가 다닌 요리학교의 약자도 무려 CIA 다!)  이 책이 누설하는 요리와 레스토랑에 관련된 비화도 흥미진진하지만, 섹시한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에게도 좋은 참고서다. 
 
동물해방 / 피터 싱어
 
때로는 논리의 부축없이는 지켜나가기 힘든 사랑이 있다. 인간 아닌 동물이 겪는 부당한 고통에 대한 분노가 그저 측은지심이 아니라 인간이 겸손하게 만들어 나가야하는 더 좋은 세계와 불가피하게 관련돼 있음을 확인할 때 사랑은 오래 지속된다. 피터 싱어는 콘라드 로렌츠와 더불어 동물의 생명권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의 훌륭한 조력자다. 

도시와 인간 / 마크 기로워드 지음

서양사를 전공하고도 영화잡지 기자가 되고 말았다. 열 아홉살에 역사를 지망하며 마음 속에 그렸던 그림이 알고보니 영화의 그것에 가깝다는 사실 학부 생활 도중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10대 시절 내가 막연히 그렸던 역사의 로맨틱한 청사진을 닮았다. 중세와 근대 도시의 공기가, 그것을 호흡하던 인간의 흥분이 전달된다. 세심한 도판이 몰입을 돕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추천인 : 김혜리

서울에서 태어나 역사를 공부하고 영화잡지 기자가 되었다. 다른 일은 한 적이 없다. 『씨네21』을 만드는 과정에서 쌓인 글을 묶어 리뷰집 『영화야 미안해』, 인터뷰집 『그녀에게 말하다』 『진심의 탐닉』을 책으로 냈다. 영화 속 한 컷을 관찰한 짧은 에세이를 모은 책 『영화를 멈추다』가 『그림과 그림자』와 사촌에 가깝다.

유치원 시절, 동물원으로 야외사생을 나가면 예외 없이 기린을 그렸다. 반한 것은 코끼리였지만 넓은 면적에 회색 크레파스만 칠할 생각을 하면 지루해서 기린만 그렸다. 초등학교 1학년 첫 번째 미술 시간에는 다들 엄마 얼굴을 그리는데 혼자 담임선생님 얼굴을 그려 ‘아부쟁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아마 눈앞에 없는 대상을 그릴 만한 상상력이 없었던 것 같다. 우연히 예술중학교에 진학했지만 3년 동안 미술에 자질이 없음을 착실히 확인했다. 그래도 물러 터진 정물용 과일과 테레빈유의 냄새를 사랑하게 됐다.

학교 수돗가 그늘에 이젤을 펴고 앉았던 어느 여름날, 남자아이들과 공을 차다 흙투성이가 되어 달려온 선생님이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달라고 두 팔을 내밀던 순간이 오래오래 잊히지 않았다. 내가 그를 좋아했나 보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졸업만 고대하던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문득 화구통을 뒤져 유화로 자화상을 그렸다. 매일 밤 지우고 덧칠하는 동안 화폭 속의 나는 탁하고 두꺼워졌다. 아마도, 내가 그린 마지막 그림이었다.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앞에 있으면 불쑥 그들을 그리고 싶어진다. 그리지는 않는다. 보나르의 핑크, 뷔야르의 반다이크 브라운, 티에폴로의 세룰리언블루, 코로의 올리브그린을 사랑한다. 


김혜리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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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타인 2012-05-0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