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마다 전 책을 손에 듭니다. 가장 편한 시간에 내키는 대로 가장 홀가분하게 손쉽게 떠날 수 있는데다 오랜 시간 진지하게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까지 함께 하니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여행이기 때문이죠. 일상의 위안이자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힘 그 모든 것을 얻어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저의 세계가 깊고 넓게 확장됨을 느낍니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늘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아직까지 이 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여전히 최고의 작품이기도 하구요. 이 작품은 ‘신이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었는가?’에 대해 성경의 욥기를 비롯 그 어떤 변신론 보다 더 탁월한 해답을 들려줍니다. 지금처럼 고통이 점증하는 시대에 혹 그 고통의 의미에 대해 알고 싶다면 꼭 읽어볼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 무덤의 침묵

아이슬란드의 작가 인드리다손은 타인의 비극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작품의 주요한 바탕으로 삼았던 조르주 심농의 적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 역시도 범죄 자체 보다는 인간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다 나이가 많으며 범죄 또한 수십 년 묵은 오래된 것들 뿐 입니다. 그에게 범죄란 그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왔을 애환과 질곡의 지층을 지닌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기 위한 계기이고 수사란 바로 그 삶을 복원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 한 인간이 걸어온 묵직한 삶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하는 동안 우리네 삶도 얼마나 어마어마한 무게와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폴 오스터 / 보이지 않는

작가의 자전적 고백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911 테러를 일종의 미국의 정신적 공황에서 비롯되어진 산물로 바라보고 그 원인을 시간을 거슬러 찾아가는 작품입니다. 작가와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학교를 다니는 주인공을 통해 그는 1967년에 겪었던 미국 정신의 위기와 현재 미국 정신의 위기가 다르지 않음을 보고 그 원인과 극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내고 있습니다. 필립 로스의 최근 작품과 더불어 시대가 겪고 있는 아픔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형상화하고 극복해 나가는지 잘 음미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트리베니언 / 메인

트리베니언의 ‘메인’은 너무 늦게 번역되었지만 오히려 시의적절하게 우리 앞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많은 곳에서 아픔이 넘쳐나고 날로 삶이 핍박해지는 요즘 같은 때에 더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메인’은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무관심속에 버려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거리의 이름입니다. 홀로 이 구역을 순찰하는 주인공 라프왕트는 그렇게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보호자를 자처하지요. 그가 그러는 것은 그 오랜 세월 그 거리를 순찰하면서 보게 된 아프고 비루한 삶을 이어가는 타인들에 대한 깊은 연민 때문입니다. 요즘 같이 점점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어가고 타인의 아픔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때에 이 소설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놓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 / 시차적 관점

지젝의 책을 읽을 때 마다 놀라는 것은 그가 인용한 작품들을 독해해내는 능력입니다. 아무리 익숙한 작품이라도 그의 해석을 듣고 있으면 새롭고 그 풍부한 의미에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매체와 장르를 오가면서 그만의 거대한 맥락을 발견해내는 그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게 또 이 책이 아닌가 합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지젝이 마치 필립 말로우 같아 보입니다. 그렇게 그는 사립탐정이 되고 그가 대면하는 수많은 매체와 작품들이 저마다 목격자이자 참고인이 되어서 내놓는 단서와 증거들을 가지고 거대한 그림을 그려가는 것이죠. 진정 동참해 볼만한 흥미로운 수사와 추적의 여정이 아닐까 합니다.


추천인 : 이창준 (헤르메스, 알라딘 제 1회 물만두 리뷰대회 1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 ‘1973년의 핀볼’을 가장 좋아합니다. 처음 읽었을 때 주인공이 만들어 놓은 그 자기완결적인 우주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런 세계를 꿈꾸었고 현재는 그와 비슷한 세계를 이루고는 그 속에서 조용히 책을 벗 삼아 유영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쌍둥이 자매랑 같이 사는 것만 빼고 말이죠.

헤르메스 님의 알라딘 서재http://blog.aladin.co.kr/748481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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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 사 년 전부터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추 내 방황이 시작된 시기가 그때이고 따져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부터이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지 못하면서 다음의 계절을 기다렸고 막상 계절이 시작되면 이전의 시간에 미련을 두었다. 매 계절마다 이유를 찾아 서러움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계절을 이기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을 즈음 바지춤을 잡아채는 어린 아이마냥 책을 집어 들었다. 어린 아이는 고집을 피웠고 누군가 달래줄 때까지 떼를 쓰며 울어보기로 작정한 듯했다. 아이는 계절의 고아가 되었고 울어도 울어도 엄마의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듯 부끄럽게 책을 펼쳤다. 봄이 스쳐가고 여름이 흘러가고 가을이 통과했다. 무언가 겨울에 쌓인 것이 눈처럼 흩날릴 때 슬몃, 웃음이 비어졌다. 나를 관통한 건 책이 아니라 내가 책들을 걸어 나온 것이었다. 얼어죽을 뻔 한 나에게도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 이쪽으로 였다.  
   


...원인을 찾아서

나는 성격적으로 분석에 강하다. 문제에 대한 결과를 내놓지 못할지언정 언제나 원인만은 찾아내어 알고 넘어가려 한다. 세상에 상처받고 사람에 배신당하고 나이에 굴복당했을 때 나는 늘 그래왔듯이 지독하게도 그 원인을 찾아 헤매었다. 


한낮의 우울 / 앤드류 솔로몬

일년 간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었다. 그런데 분명 시간상으론 취침이었지만 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면제를 끊는데 다시 반년이 걸렸다. 끊고 나서도 불면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아무런 도움없이 혼자서 잠들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용기이자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 책은 우울증에 관한 백서이자 다양한 진단서이다. 원인을 안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안다는 것이 어떤 위로가 되는지 얼마나한 용기가 되는지 확실하게 증명한다. 내가 아는 우울문학의 최고였다. 나는 이 책이 꽂혀있는 것만으로도 시작이 즐겁다. 

사람 풍경 / 김형경

김형경의 에세이 중 가장 편안하게 그러나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이 책은 사람으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과 그것을 세심하게 다루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분노, 질투, 시기로부터 자기애, 자존감, 자기실현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정의하고 자신의 경험과 중첩시킨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가 아니면서 소설가가 어떻게 사람을 말하고 위로하는지를 보여주는 정신분석 문학이다. 내가 만약 들끓는 청춘의 시기에 김형경을 만났더라면 나는 최소한 한 두 번의 이별은 덜 하였을 것이다. 

생의 절반에서 융을 만나다 / 대릴 샤프

나는 이 책으로 불혹의 유혹을 떨쳐냈다.(고 생각한다) 삼심대 후반에 접어든 평범한 가장 노만의 이야기는 꼭 같은 시기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중년이라는 말이 심하게 거부감이 일었는데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할 때 이 책은 그 이유부터 조곤조곤 알려주며 자신과의 대화를 유도해 내는 은밀한 매력이 있다. 융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눈높이가 높지 않아 어디가서 심리학용어를 못알아 들어 당황해 할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중년의 위기‘라는 말이 드라마에나 나오는 현상인 줄 믿고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이 책이 꼭 필요한 중년이 맞지 않을지.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2011

무엇보다 이 책은 쉽고 빠르다. 내가 모르는 철학자보다는 아는 철학자가 많이 등장한 것도 좋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들 철학자들이 한 말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에 교훈이 되는지 선생님처럼 타일러 준다는 것이다. 많이 알고 있다고 그것을 다 학생들에게 전해줄 수 없을뿐더러 전해주었다고 그들이 모두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 책은 어느 유명하고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중요한 요점만 정리하여 작정하고 열등생을 불러 모아 머리에 쏙쏙 들어오도록 특강을 해주는 느낌이 든다. 철학을 안다고 철학책을 읽었다고 내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유익하고도 개운한 답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덮은 후에 지금이 내게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기억을 찾아서

계절이 지나가고 다음이 시작될 때 마음을 흔드는 것은 내 모든 과거지사이다. 그런데 부모님을 견뎌내고 청춘을 부여잡다보면 어느덧 한 계절이 마무리되고 있다. 사계절 내내 나는 기억을 찾고 기억을 위로하고 그러다가 결국 그날을 소중하게 기억하기로 타협한다. 

빈집 / 김주영

이 책을 읽고 나는 부모님이 서로를 견뎌낸 방식이 그들 간의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다.
소설에서 딱 한번 많지도 않은 세 식구가 불을 켜놓고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쯤 되었을까. 겨울방학이라 아버지와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그날 아침, 날씨가 춥다며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목에까지 두르며 꾹꾹 눌러주시던 그 손길. 미역국이나 되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좁은 밥상에 둘러 앉아 먹었던 그날 아침이 생각이나 나는 한참동안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마음짐승 / 헤르타 뮐러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와 <저지대>도 좋았지만 나는 그녀의 ‘청춘일기’라는 이 책이 더욱 사무치게 느껴졌다. 그녀는 시로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그녀가 문학하는 방식은 진실을 증언하는 일이었고 그녀의 언어는 먼저 간 영혼에게 바치는 문학의 조가(弔歌)였다. 이 책에서 청춘이 노래한 시는 심문을 받았고 시인은 노래하지 못해 죽어갔다. 시인의 핏줄을 가진 그녀가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채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서슬퍼런 독재와 비극의 청춘을 살아내온 그녀의 일기를 확인하는 일은 우리네 청춘의 짐승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의 예의였음을 깨우친다. 청춘을 말하려고 청춘을 잃어버린 그녀를 잊고 싶지 않도록 만든 책이었다. 

울분 / 필립 로스

나는 지난 몇 년간 생의 억울함으로 쌓여진 울분을 양분삼아 버텨왔다. 어떻게든 나를 사로잡고 있는 울분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앞으로 내 살길이라 여길 정도로 울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왜 인생은 잘못하지 않아도 벌을 받을 수 있는지, 열심히 살지 않고 대충사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이 소설은 일축한다. 이 책의 울분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면 내 인생은 지금 살아있음이 행복한 것이었음을 절로 알게 된다. 누구나 자기만의 울분에 탐색시간을 가질 수 있고 그로인해 몰핀같은 치유의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청춘이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아니어도 다행인 작품, 이 책은 아주 영특한 소설이었다.


…문장을 찾아서

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이제 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하면 좀 더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를 고민한다. 내 장점과 단점을 알고 있다. 어떻든, 어떤 글이든 사람들의 가슴을 관통하는 화살이 되고 싶다. 

병신과 머저리 / 이청준

나는 절대 이렇게는 쓸 수 없겠구나, 식의 절망감을 안겨주는 작가의 주옥같은 단편집이다.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어 이 책을 읽었고 이 책으로 소설을 써볼까 하는 마음을 접게 되었다. 나에게 이 책은 <무진기행>과 함께 단편의 트라우마를 남겨주었다. 흔히들 이청준을 ‘장인정신’을 지닌 소설가라고 하는데 이 책의 표제작인 <병신과 머저리>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바느질한, 그 한 자 한 자의 완성도가 완벽한 소설이었달까. 살면서 몰래 어떻게든 비슷하게라도 끄적여 보고 싶은 이야기이자 꼭 한번은 흉내내어 보고픈 문체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는 왜 쓰는 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써야한다면 이렇게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게 되었다. 조지 오웰의 작가생활 전반에 걸친 스무 편의 에세이는 일개 서평자인 내게 글쓰기에 대한 강도높은 자기검열의 시간을 제공했다. 영국이라는 위선과 전쟁이라는 과실과 작가라는 책임속에서 평생 양심과 죄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을 평가해온 작가의 고집은 존경을 지나쳐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하였다. 왜 쓰는지 보다 왜 작가로 살아가야 하는지, 이 책은 그 당연한 질문에 만만치 않은 답을 줄 것이다. 

거장처럼 써라 / 윌리엄 케인

이 책을 읽었다고 물론 거장처럼 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글을 써왔으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 있다. 나는 발자크와 헤밍웨이의 문학적 특징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이 책은 작가의 작법이나 기교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작가로 살아가는 방식을 작가별로 정리해 알려준다. 학창시절 참고서를 들쳐보았다고 꼭 시험을 잘보는 것이 아니듯 작가의 방식을 읽었다고 내 글이 발전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지금보다 글을 더 잘 써보기 위해 더 나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법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나만의 법칙도 발견할 날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추천인 : 한정은 (韓貞銀, 알라딘 닉네임 한사람, 2010 알라딘 리뷰대회 1등)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나 일곱 살까지 살았다. 이화여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했고 10여년 동안 전시기획을 했다. 전국의 박물관, 과학관 공모에 기계처럼 참여해 수백 페이지의 제안서를 써온 것이 오늘날 다소 길고 지루한 서평의 뿌리가 되었다. 뚜렷한 목적없이 작년부터 모든 걸 접고 책만 읽고 글만 쓰는 일을 해오고 있다. 분명한건 서평을 통해 내 글이 발전했고 서평으로 글쓰는 성취감을 한껏 누리고 있다는 것일 테다. 자만하지 않고 누군가 내 글에 대한 서평이 쓰고 싶어질 그날을 기다린다. 그때의 평가가 부디, 지금과는 달라지길 기대한다.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서평을 쓴다. 

한사람 님의 알라딘 서재 : http://blog.aladin.co.kr/7236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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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라 2011-04-0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한사람 님!! 추천도서들 무척 솔깃합니다.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