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모두 다’라고 봅니다. 정보와 지식의 제공자이기도 하고 조언자이기도 하며 토론의 상대자가 되기도 하고,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시공간 속에서 수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 인간은 유한해도 너무나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책은 인간보다 수명은 훨씬 길면서 거리상의 제약을 뛰어넘습니다. 책은 우리의 ‘개체성’이 지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줍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 미하일 불가코프

어떤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사는 도시를 한 번 거꾸로 봐야 바르게 볼 수 있다.” 1930년대 소련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기본 구도는 바로 이와 같은 ‘거꾸로 보기’입니다. 악하면서도 변증법적으로 선(善)을 행하게 돼 있는 악마가 모스크바를 방문해, 경직된 관료사회에서 숨 쉴 수 없게 된 외로운 작가인 ‘거장’을 돕는다는 설정입니다. ‘악마의 힘에 의한 구출’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고발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사회화를 거부하는 창조적 개인의 의미가 다시 한 번 강조됩니다.


 

꽃 속에 피가 흐른다 / 김남주

‘1980년대’는 이제 누구나 쉽게 비판할 수 있는 ‘먼 과거’가 됐지만 당시 비판받아 마땅한 획일주의와 거대담론의 폭력성, 민족주의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혁명적 열정이 있었고, 지식인 중 일부는 자본주의적 ‘자기 판매’, 시장적 거래를 거부하며 민중 속에서 유기화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인의 세계관과는 별개로, 모든 게 상품화된 이 시대에 그의 열정과 민중에 대한 사랑은 진한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박헌영 평전 / 안재성

박헌영은 단순한 개인은 아니었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의 약 5분의 1을 일제치하의 고문실과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전향을 거부하며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그는 일본강점기 조선 민중들의 숙원을 담은 공산주의 운동, 즉 민족해방운동의 가장 양심적이고 급진적인 면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분단된 조국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남한에서는 지하생활을 전전하는 수배자가 되었고 북조선에서는 끝내 처형당하고 맙니다. 이 책에서 이러한 비극의 근원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 프란츠 파농

폭력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주의자이기보다 변증법적 사고를 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자 한다면 폭력의 양면성․양가성도 인정해야 합니다. 폭력은 물론 본질상 악이지만 악이 만연한 식민지적 상황에서는 반체제 폭력이 불가피하고 선한 기능이 있는 ‘차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폭력의 변증법일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파농에게 배웠습니다.



 

민중의 세계사 / 크리스 하먼

한국 민중 운동사의 가장 큰 결점 중의 하나는 국제 연대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병영 국가의 폐쇄성 탓이기도 하지만 민중 운동은 타자를 인식하는 데 서툴렀으며, 폐쇄적 민족주의의 함정을 피하지 못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이 함정을 피해 일국 차원의 민중 운동을 전 세계적 민중 운동의 일부분으로 만들자면 이 《민중의 세계사》와 같은 책을 꼭 독파해야 합니다.




추천인 : 박노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영화 <춘향전>을 보고 품은 막연한 동경 때문에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국립 레닌그라드대학교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국립 모스크바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국립 모스크바대학교와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 경희대학교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거쳐, 2001년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했다.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인 아내와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함께 오슬로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애정과 약자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가지고 더 나은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자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불교 사상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이다. 이미 2,500년 전 붓다가 말한 가르침에서 근대 철학으로는 닿을 수 없었던 ‘사상의 영혼’을 발견하고 깊은 감동 받은 바 있는 그는, 사회과학과 불교의 진리가 결국 통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그가 한국 불교에 던지는 통렬한 문제의식은 초기 불교의 경전에 대한 ‘해방적 시각’을 바탕으로 시간과 세대를 초월한 가르침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박노자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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