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때는 만화책에 빠져 동네 만화방에 앉아 있었습니다. 13살에는 문학사상이란 잡지에 실리는 나보코프, 헨리 밀러 같은 성인소설(?)에 빠져 잠을 설쳤습니다. 20살에는 문학비평에 빠져 파리한 얼굴을 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도서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39살에는 온라인 게임에 빠져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47살에는 제임스 조이스와 D. 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에 빠져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책에 빠지고, 책에 몰입하면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이 보입니다. 책을 읽을수록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자기 본위로 살아가야 합니다. 관계로 이루어지는 생활, 타인과 스펙을 비교하고 월급봉투를 비교하는 생활이라는 것은 영원히 속악하고 비참한 것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 / 마츠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편집


추리소설을 강건한 리얼리즘 문학으로 승화시켰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출발점에 있는 단편들. 특히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어떤 고쿠라 일기전>은 지금 읽어도 감동이 퇴색하지 않는 명작이다. 같은 소설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완전히 취재한, 제3자의 객관적인 소재를 놀랍도록 정밀하게 파고들어간다. 소재를 처리하는 방식, 소재에 작가 자신이 인생에서 발견한 새로운 것, 독특한 것을 결합시켜 발전시키는 방식은 정말 일류의 솜씨이다. 전혀 관계 없는 타인의 삶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지금까지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미지의 불안과 희망을 탐구한다. 소설가라는 고도로 전문화된 사색가가 소설이라는 창조적 임무가 수행된 후에야 사회는 비로소 스스로가 처한 위험과 모순을 깨닫게 된다. 문학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

라스트 차일드 / 존 하트


스릴러 소설에 문학성을 가미해서 너무나 잔혹하고 아름다운 성장소설을 빚어낸 작품.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갑내기 미국작가라는 점이 더욱 끌린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우리는 너무 불안정하고 경쟁적인 사회를 살고 있다. 납치, 연쇄살인사건, 성폭력 등 잔인한 사회가 만들어내는 인격의 기형화와 그런 악몽 같은 시대를 이기고 피어나는 꽃과 같은 새로운 인간의 이상을 그리고 있다.


결혼을 향하여 / 존 버거


삶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삶으로부터 삶 자체 외에 아무 것도 얻고자 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음속에서 사회를 내려놓은 사람들에게는 삶이 세잔이 그린 사과처럼 모든 효용성을 배제한 존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에이즈에 감염된 스물네 살의 신부, 그녀에게 청혼하는 신랑, 늙고 다 떨어지고 이혼까지 한 상태로 살다가 대륙의 양끝에서 딸의 결혼식을 위해 오고 있는 신부의 부모, 아들과 결혼하려는 여자를 죽여 버리려는 신랑의 아버지. 이런 아웃사이더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결혼 이야기를 앞을 못 보는 한 장님의 화법으로 풀어낸다. 존 버거처럼 사회를 버리고 사회적 무(無) 위에 우뚝 선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연애소설.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 레오니드 치프킨


구제불능의 도박 폐인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와 그를 사랑해서 고통받는 나이어린 더할 수 없이 고귀한 연인이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보낸 휴가를 그린 소설. 본격소설이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원칙이란 원칙은 모두 무시했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고 감동적인 소설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의 지옥과 천국을 이보다 더 핍진하게 묘사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자아라고 하는, 에고라고 하는 살아있는 지옥을 일부러 열어젖혀야 하는 예술의 추악함이 읽는 자람을 괴롭히는 소설.


색계 / 장아이링


단편소설이라는 이야기 예술의 핵심이 아이러니라면 장아이링의 단편만큼 단단한 작품들은 드물다. 그녀의 소설들은 문체와 묘사, 이미지의 장식을 일체 배제하고 스토리의 아이러니 하나를 강건하게 직조한다. 자신이 암살하려던 남자를 '이 사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순간의 생각 때문에 살려주고 그 남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여자. 가장 용렬하고 천박한 것 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고귀한 것의 모순된 형상들이 일급의 스토리를 주조해낸다. 단편소설이 스토리의 힘을 어디까지 관철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들.

 


추천인 : 소설가 이인화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계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하여 89편의 문학평론을 발표했다. 1992년 제1회 작가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시작으로 『영원한 제국』『인간의 길』『초원의 향기』『시인의 별』『하늘꽃』『하비로』등 18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한국적 팩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영원한 제국』은 미국, 프랑스, 스페인, 일본, 중국, 대만, 몽골 등에 번역되었고 영화화되기도 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추리소설 독자상, 중한청년학술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창작 발레 <신시21> 설치미술 <아슈켈론의 개> 오페라 <눈물 많은 초인> 영화 <청연> 등의 시나리오를 썼고 온라인 게임(MMORPG) <쉔무> <길드워> 등의 스토리 작업에 참여했다. 웹전략 게임(MMORTS) <인페르노 나인>을 개발했으며 영화?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저작도구인 ‘스토리헬퍼’를 개발 중이다.

연구서에 『이문열 연구』(공저)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디지털 콘텐츠 스토리 모티프 DB 연구』(공저),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등이 있고, 역서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연구논문에 「서사계열체이론」「한국 온라인 게임 스토리의 창작방법 연구」「가상 세계의 디지털 스토리텔링」외 51편이 있다. 2012년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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