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영혼은 다쳐버린 것이란 생각이 때가 있다. 아주 자주 영혼은 이미 상해버렸다는 절망과 만난다. 어디선가 상한 냄새가 진동해서 코를 킁킁거리는데, 번번이 영혼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착각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책들을 꺼내어 읽었다. 읽었던 페이지를 다시 펴서 읽고 쳐놓은 밑줄들을 다시 찾아 읽었다. 멋진 후각을 지닌 자들이 킁킁거리며 추스려놓은 세계 속에 코를 담그고 콧구멍을 벌름거렸다책을 읽는다는 것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가는 일이다. 영혼을 지키거나 살리는 일이 아니라 영혼의 진가를 방해하는 서툰 판단력들을 거두어내기 위해서 후각에 나를 맡기는 . 그럴 때마다 나는 알게 된다. 영혼은 생각보다 멀쩡하고 영혼은 이미 내자신보다 강건해져 있단 것을. 다쳤거나 상한 것은 영혼이 아니라 내가 사는 방식이었고 그런 방식을 이끄는 시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봉인된 시간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김창우 옮김 / 분도출판사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문화와 진실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를 구별 짓는 다음 구절 :


그럼 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가장 슬픈 특징 중의 하나는 오늘날 평범한 보통사람이 아름다운 것과 영원한 것에 대한 반응과 관계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현대의 대중문화 - 의수, 의족, 의안의 문명 - 영혼을 기형화시키며, 인간들이 자신의 존재에 관한 근본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점점 차단하고, 정신력을 소유하는 존재의 하나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도 점점 가로막는다. 그러나 예술가는 유일무이하게 자신의 창조적 의지를 결정해 있고 제어할 있는 진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있어야 하며, 이를 외면해서도 안된다.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만이 예술가는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믿음이 없는 예술가는 마치 장님으로 태어난 화가와 같다.

 

인간의 조건 / 한나 아렌트 / 이진우 태정호 옮김 / 한길사

 

내가 의심하던 것을 함께 의심해주고, 내가 추구하는 것을 함께 추구해주어서 언제고 뻗을 있는 곳에 두는 . 어머니 같은 .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같다. 얘야, 정도의 의심과 회의는 비관이 아니란다. 얘야, 네가 원하는 세상은 이미 목전에 있단다.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손을 잡기만 하면 되는 거란다. 그녀가 제시하는 자비(카리타스 caritas) 감각이 육체에 온전히 스며들 때까지는 살아보고 싶다.

 

미니마 모랄리아 / 테오도르 아도르노 / 김유동 옮김 /

 

아마도 인간이라는 수치심에서 쓰여졌을, 153개의 조각글.


삶이 생산 과정 종속되는 상황은 모든 사람을 일종의 고독과 고립에 굴복하도록 강요하며, 이러한 고립을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선택한 최선의 결정으로 간주하게끔 유혹받는다. 개개인이 자신의 파편적 이해 속에서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모든 고객의 총합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해묵은 시민적 이데올로기의 부분이다. 예전의 시민 계급이 실각한 이후 관념은 지식인의 정신 속에 살아남아 있는데 이들은 시민의 적이면서 동시에 최후의 시민인 것이다. 어쨌든 인간 실존의 적나라한 재생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허락된 그들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다. 사유 속에서조차 모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그들은 지식인의 특권이란 아무것도 아니라고 선언한다. 인간다운 실존에 가까워지려고 갈망하는 그들의 사적 실존은 인간다운 실존을 배반하게 되는데, 이유는 그렇게 가까워지려는 것이 보편적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현실 전체를 인식하는 것은 어느 떄보다 독립적 사유를 필요로 하지만 지식인 또한 세상에 매여 있는 상태에서 그런 출구 없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책임지워야 유일한 것은 자신의 실존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남용을 삼가고 사적인 생활에서도 뻐기고 젠체하지 않는 겸손함일 것이다. 이런 태도는 좋은 교육을 받은 덕분이 아니라 지옥 속에서도 그에게는 아직 숨쉴 공기가 남아 있다는 대한 수치심에서 나온다.

 

시사평론 - 알베르 카뮈 전집 20 / 김화영 옮김 / 책세상

 

23 동안 이루어진 알베르 카뮈의 글에 대한 한국어 번역 마지막 .


왜냐하면 논쟁과 위협과 요란한 폭력의 한가운데서도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닌 선의이기 때문이다. 몇몇 협잡꾼들을 제외하고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진리는 인간의 행복을 이룩하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의들을 서로 합쳐놓으면, 사람들이 여전히 죽임을 당하고 위협당하고 강제 수용소로 추방되는 세상, 전쟁이 준비되고 있고, 어떤 말을 밖으로 내면 당장에 모욕당하고 배단당하는 지옥 같은 세상에 이르게 된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 / 데오도르 젤딘 / 김태우 옮김 /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소설도 읽고 싶고 역사책도 읽고 싶고 철학서도 읽고 싶고 에세이도 읽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 읽는다. 내가 모든 글들은 책이 던져주는 챕터 아래에서 세부 항목을 만드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약간이라도 세상을 친절하고 인간답게 만들겠다고 노력하는 일은 조금만 용기를 내면 누구나 있다. 그러나 그런 과거의 노력들이 실패한 이유와 인간의 행동이란 확실히 예언할 없다는 사실을 잊고 그렇게 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역사는 사람들의 한없이 행렬로 가득 있지만 그들의 만남 대부분은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었고 지금까지 쓸데없이 능력만 허비해온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사람이 만난다면 결과는 다를 있다. 만남은 걱정과 근심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또한 희망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리고 희망은 바로 인간다움의 원천이기도 하다.

 

표현된 불행 / 황현산 / 문예중앙

 

실패라는 말을, 실패 불행을, 실패의 불행 대한 긍지를 생각하고 싶어질 때에 읽는 . 비평가는 실패에 긍지를 지녔던 자들의 편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역사를 믿는다면, 아니 최소한의 변화라도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면, 폐쇄된 자율성이 문학의 목표일 수는 없다. 자율성은 목표의 원칙이 아니라 방법의 원칙이다. 최초의 의도에 따른 문학의 자율성은 낡고 억압적인 관념을 전도하는 방법이며,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방법이며, 우리 존재의 집인 언어에 대해 가장 거룩한 개념을 돌출하려는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실을 말하기 위한 비범한 방법이다. 내가 어떤 것을 진실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렇게 말하기로 결정하는 이유에 대해 내가 자유로워야 한다. 무엇에 대한 진실은 무엇에 대한 자유이다. 문학은 자율성으로 자유롤 확보한다. 그래서 문학의 자율성은 이름으로가 아니라 실천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실천한 것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실천하려는 것에 의해서도, 실천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에 의해서도 평가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고립과 증오에 의해서가 아니라 긍지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곳에서 이야기들 / / 이지원 옮김 / 사계절

 

타르코프스키와 한나 아렌트와 아도르노와 카뮈가 평생에 걸쳐서 하려던 이야기들, 데오도르 젤딘이 보여준 인물들, 황현산이 인용해준 시들, 모든 것들이 속에선 어린이 버전으로 담겨 있다.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린이를 잃어버리기 직전의 어른들을 위한 .  

 

 

추천인 : 김소연


시인. 아무도 내게 시를 써보라고 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시집 읽는 걸 지독하게 좋아하다가, 순도 100퍼센트 내 마음에 드는 시는 직접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했던 도서관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바쁜 걸음들 속에서 혼자 정지한 듯한 시간이 좋다. 혼자가 아닌 곳에서 혼자가 되기 위하여, 어디론가 외출하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곳에서,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보다 내 마음에 드는 시를 꼭 쓰고 싶다는 소망을 꺼내놓는다. 소망을 자주 만나기 위해서 내겐 심심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노력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심심하기 위해서라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심심함이 윤기 나는 고독이 되어갈 때 나는 씩씩해진다. 조금 더 심심해지고 조금 더 씩씩해지기 위하여, 오직 그렇게 되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1967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가톨릭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93년 『현대시사상』에 시 「우리는 찬양한다」 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극에 달하다』(1996)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와 산문집 『마음사전』(2008) 『시옷의 세계』(2012) 등이 있다.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외 6편으로 제57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소연 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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