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책이란 ‘잘 읽지 않는’ 것이다. 사실 난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내가 즐겨 보는 건 책이 아니라 ‘영화’ 같은 영상물이 대부분이다. 내게 책 읽는 ‘습관’은 없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를 유혹하는 책만 챙겨 본다. 그건 사람들의 평 때문일 경우도 있고, 그 책을  추천한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강렬한 제목 때문일 수도 있다. 그처럼 내게 책은 책 그 자체라기보다는 책을 둘러싼 어떤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고, 그럴 때 유의미한 것이 된다. 아마도 1차적으로는 내가 책 한 권을 정독하기보다는 발췌독 하기를 선호하는 게으른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2차적으로는 책만이 아니라 어떤 창작물이든 그걸 ‘나’와 연계시켜서 받아들이고 내 나름대로의 스토리로 소화해내기를 즐겨서가 아닌가 싶다. 바로 그럴 때 책은 가장 강렬하게 내 머릿속을 자극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책을 지식 ‘습득’의 도구라기보다는 지적 ‘자극’의 도구로 활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조지 레이코프

지식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지식이 내 머릿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만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판단해서 소화해낼 수 있다. 내 생각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스틱 / 칩 히스, 댄 히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 세트로 보면 좋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통해 ‘내 머릿속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면 <스틱>은 ‘타인의 머릿속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이에게 내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당연히 타인이 어떻게 생각을 받아들이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고민을 매우 쉽고 자세하게 알려준다.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의 자전적 에세이인 동시에, 그의 글쓰기 방식을 알려주는 일종의 글쓰기 지침서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매우 좋아한다. 보이는 글 뒤편에 있는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서 작가는 ‘이야기’란 자신이 일방적으로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마치 공룡 화석을 발굴하듯 그저 발굴해내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 아주 인상 깊은 대목이다. <지식채널e>를 제작할 때 아이템을 일방적으로 규정짓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가려 했던 것도 스티븐 킹의 작법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글’이란 걸 쓰려는 분이라면 한번 쯤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대중들에게 휴머니즘을 ‘소설’로 가장 잘 표현해주는 이가 바로 ‘박민규’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내용도 하나하나 흥미롭고 감동적이지만 책 전반에 깔려 있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야말로 이 책이 ‘가볍다’는 일부 평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무거운’ 소설보다 더 가슴속 깊이 들어오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니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할 것 같다.

백년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보면서 상당히 놀랐던 책. 말로 설명하기 힘든 아주 독특한 문체와 구성은 그동안 내가 소설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너무나 ‘좁게’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했다. 또한 그 안에 담겨 있는 ‘삶’에 대한 관조적 시선은 책을 본 이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만큼 강렬했다. 매우 강력한 ‘지적 자극’을 준 책 중에 한 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유혹하는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작가가 자신의 글쓰기 대해 쓴 자전적 에세이다. 개인적으로 대중성과 의미, 두 가지 모두를 잘 조합해내는 작가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이 책 역시 그러한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읽은 책이다. 가장 감각적인 글쓰기를 하는 하루키가 가장 규칙적인 삶의 패턴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과 마라토너로서 일상을 유지하는 모습은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이었다. ‘행간’을 많이 읽은 책.


추천인 : 김진혁



EBS(한국교육방송) 피디. 1974년에 태어났다. 중학교 때 방송부에서 처음으로 캠코더를 접하고는 영상에 관한 일을 꿈꾸었다. 뷰파인더 속 세상은 내 마음대로 선택하고 잘라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다.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EBS에 입사했다. <직업 탐구>라는 프로그램으로 피디로 데뷔한 뒤 <효도우미 0700> <미래의 조건> 등을 연출했다. 특히 <효도우미 0700>을 연출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저소득층 노인들의 삶을 접하며 기존에 알고 있던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었고, ‘소외’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5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지식채널e>의 연출을 맡아 270여 편의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지식채널e>는 한국PD대상 교양정보부문상(2008), 제9회 여성부 남녀평등상 최우수 작품상(2007) 등 다양한 부문의 상을 받으며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았다


* 김진혁 대표 저서










* 지식e 관련 도서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인 2010-08-0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은 모르겠고...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하서 출판사)>은 내가 대학 1학년 때 미친 듯이 심취해서 몇 번을...이라고 해봤자 서 너 번 정도 ^^::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 수령을 짐작하기 힘든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와 한 몸처럼 묶인 거인 같은 남자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그의 눈동자...
지금도 그 책은 갈색으로 빛이 바랜 채로 내 책꽂이에 꽂혀 있고, 가끔 꺼내 펼쳐지는 대로 읽어 보다 또 계속 읽게 되고... 이런 지경이다...^^::
내가 뛰어 넘기 힘든 통찰력과 해박함을 지닌 김진혁님도 이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것을 느끼셨다니... 반갑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으쓱~~ ㅎㅎ
하지만...역시 아쉬운 건.... 내 안에 그 시절의 진지함과 집요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현실..ㅡㅡ;;

명사추천도서 2010-08-23 18:32   좋아요 0 | URL
갈색으로 빛이 바랜 <백년동안의 고독>이라니, 생각만으로도 근사합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 앞으로도 명사추천도서 코너에서, 으쓱~하실 일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책이좋아^^ 2011-04-01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래쪽 세권 동감이네요.. 위쪽 두권은 안 읽어봤고..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에세이는 참 좋아합니다. ^^취향의 문제니까요.. 읽으면서 저도 같은 생각 했었습니다. 글속에서 느껴지는 작가와는 달리 마라토너로서의 하루키의 모습은 정말 의외였고 색달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