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아래
야쿠마루 가쿠 지음, 양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추리 소설을 좋아하다보니 상당히 많은 양의 추리소설을 구매하여 보는 편인데다 종종 헌책방을 들르면 예전에 나왔던 추리 소설들을 한권 두권씩 사모우는 것이 취미다 보니 좁은 방안에 책이 한 가득 있어 정말 주체하지 못하는 편이다.

추리소설과 과학 소설외에도 무협지등 이른바 B급 장르 소설외에도 인문서적,경제서적등등 잡다한 책을 많이 읽다보니 박스로 책을 보관하다 이사통에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지하실에 보관하다 장마에 침수되어 버리게 되는 불상사도 종종 겪게 된다.

그러다보니 책을 한번 구입하면 버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차라리 팔아 얼마간 살림에 보탬이나 되보자고 현재 알라딘 중고샵에서 책을 판매함에도 이른바 장르소설을 팔지 못하고 있다-ㅎㅎ 물론 잘 팔리지도 않지만……

 

어려서부터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헌책방에서 우연찮게 구한 동서추리문고를 처음 접하다보니 여러 종류의 추리소설중에서도 이른바 30~40년대 영미 추리소설의 황금기에 나온 본격 추리 소설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요즘 대세인 일본 추리소설들을 잘 읽지는 않는 편인데 뭐랄까 일본 작품이다보니 너무나 우리와 비슷한 배경이어서 그런지 너무 현실적인 느낌이 나서가 아닌가 싶다.그래선지 이른바 신본격 추리 소설계열의 책은 자주 읽지만 사회파 추리 소설을 잘 안읽는 것 같다.

사회파 추리소설을 일본 추리 소설계의 커다란 흐름중의 하나였는데 셜록홈즈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명탐정이 활약하는 본격 추리소설은 기발한 트릭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재미를 주었지만 그러다보니 현실과 괴리되고 기계적인 트릭을 양산하게 되어 영미에선 이후 하드 보일드,서스펜스,스릴러 계얼의 추리소설이 나오게 되고 일본에서도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의 본격 추리에 대한 반동으로 마스모토 세이치가 사건의 배경을 당대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시켰을뿐만 아니라, 현실사회나 정치의 흐름을 스토리와 밀접하게 연관된 추리 소설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의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은 본격 추리소설의 기묘한 트릭보다는 현실 사회에서 발생할수 있는 모순점을 파고들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나 동기에 집중함으로써 독자들의 현실적 공감을 얻게 되는데 사회파 추리소설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너도나도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다보니 질 낮은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고 국내에서도 이런류의 책들이 번역되고 나 역시도 헌책방에서 이런 책을 읽다보니 사회파 추리소설을 질 낮은 작품이란 편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도 질낮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범람에 대한 반동으로 시마다 소지,아야츠지 유키토, 아리스가와 아리스 같은 이른바 신 본격 추리소설가들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게 되면서 사회파 추리소설계에서도  미야베 미유키, 요코야마 히데오, 사사키 조와 같은 걸출한 작가들이 나오면서 서로 경쟁을 하면서 질적 향상을 도모하게 된다.

 

어둠 아래의 저자 쿠마루 가쿠의 어둠 아래 역시 현대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파 추리 소설가중의 한명인데 그는 <천사의 나이프>로 일본 추리작가 최고 등용문인 에도가와 란포 상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하는데 소년 범죄를 다룬 천사의 나이프를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기에 어둠 아래란 작품역시 과연 어떤 작품일까 상당히 기대를 하면서 읽었다.

 

 

일본의 ‘14세 이하인 자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의 맹점을 정면으로 파고들면서 소년범죄의 문제점을 다룬 것이 전작 천사의 나이프라고 한다면 어둠 아래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를 다른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미 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는 가장 악질적인 죄중의 하나로 실제 현실에서도 이와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 많은 이들의 공분을 일으켰기에 어둠 아래을 읽으면서 정말 마치 우리 이웃에서 일어난 사건마냥 집중해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둠 아래는 어린 소녀를 대상으로 성범죄가 일어나자 그 때마다 과거의 성범죄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시체의 복부에 S자를 새기면서 스스로 상송이라고 밝힌 범인은 아동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학살은 계속될 거라는 범행성명문을 경찰과 매스컴에 보낸다.이에 경찰은 관내 성범죄자들의 신상을 파악하고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면서 상송을 추적하는데 이중에는 자신의 여동생을 범죄자에게 잃은, 경찰관이자 동시에 피해자 유족인 나가세도 포함된다.

그러던 중 나가세는 경찰 본부의 계략으로 자신의 여동생을 살해한 성범죄자의 보호를 하게 되면서 매스컴에 노출되는데 시민-비록 전과자라고 할지라도-을 지켜야 한다는 경찰이라는 직분보다는 피해자의 가족이란 입장에서 상송의 범행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게 되고 수사에서 한발 벗어게 된다.

 

트릭보다는 범죄의 내면에 좀더 방점을 두는 사회파 추리 소설이지만 어둠 아래는 독자들에게 과연 상송은 누구인가하는 범인을 찾는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과연 범인인 상송은 누구인지-사실 현실에서 이런 자경단원은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무척 궁금할 수밖에 없는데 주요 인물들이 경찰이다보니 그 대상이 나가세의 부친으로 한정될수 밖에 없지만 작가는 마지막에 독자들이 놀랄수 밖에 없는 대 반전을 준비해 놓고 있다.

 

어둠 아래는 비록 범인의 정체가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반전의 묘미는 있지만 책 내용은 단순 명쾌하기에 독자들이 퍼즐 미스터리처럼 머리를 싸매고 읽은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책을 읽어가다보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 분노하고 나가세의 인간적 갈등에 함께 고민하다보면 어느새 책 마지막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수 있다.

책의 두께도 그닥 많지 않아서 독자들이 쉽게 읽을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 결말이 사실 그렇게 홀가분만하지는 않다.

 

흔히 추리 소설은 독자들과 작가와의 두뇌 싸움을 다루는 엔터네이너적인 요소가 많지만 대부분의 결말은 권선징악이다.독자들은 셜록 홈즈와 같은 명탐정이 논리적인 추리를 통해서 완전범죄를 노린 범인을 찾는데서 상당한 쾌감을 얻게 된다.

이 작품에서도 결말에 범죄자 상송은 결국 살해되지만 상송은 결코 죽지 않는데 이런 결말은 기존의 추리소설과 다른 결말이게 어떤 면에서는 씁쓸한 뒷맛을 주고 있다..

 

어둠 아래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가족을 죽인 원수에게 복수할 기회가 있다면 과연 당신은 과연 어떻할 것인가?

인간은 과거에 눈에는 눈,이에는 이라는 함부라비 법전의 내용처럼 사적 복수를 자행했었다.하지만 근대화가 되면서 사적 복수보다는 법의 테두리안에서 범죄를 단죄하게 되는데 피해자의 가족입장에서 본다면 법적 단죄가 결코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 복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상당히 강할거란 생각이 들지만 그것을 막는 것은 복수에 대한 법적인 제재 때문에 못할뿐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법적인 제재를 할 수 없는 완전 범죄의 상황이 된다면 당신은 가족을 살해한 범인에게 사적인 복수를 할 수 있을거냐는 근원적인 물음을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만약 어둠 아래의 범죄자처럼 나에게 뼈속같이 깊은 슬픔을 준 범인에게 사적으로 복수할수 있을 기회를 있다면, 범인이 이미 법적인 처분을 다 받고 사회에 복귀했더라도 내가 범인에게 휘두른 복수의 칼날이 과연 정의의 칼날인지 잘 알수가 없다.

경찰인 나가세 마저도 복수의 칼날을 휘들렀는데 일반인들은 아마 더 하지 않을지…….

 

언뜻보면 매우 간단한 질문이지만 누구도 그 답변을 쉽게 하지 못할 묵직한 질문을 이 책은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는데 아마 그 대답은 책속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내 안에도 상송이 있습니다."

아마 누구의 마음속에나 상송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연약한 인간의 본성이 아닐지 싶다.

 

퍼즐 미스터리에 비해서 사회파 추리 소설은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한번 읽으면 쉽게 버려지는 퍼즐 미스터리에 비해서 사회파 추리소설을 독자들로 하여금 몇번씩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만드는 사회파 추리소설은 개인적으로 너무 읽는 재미를 가라앉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본격 추리 소설에 다소 지루해 질 때 아주 가끔씩 사회파 추리 소설을 읽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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