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스터리 하우스에 실린 글로 저자는 '노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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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이렇게 써라 - 추리소설의 십계 4
노 원(한국추리작가협회 고문)
9.
트릭은 독창성이 있어야 하며, 또한 납득할 수 있는 합리성과 과학성이 있어야 한다. 기존 트릭을 원용함에 있어서도 그 원용에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하워드 헤이크래프트, 서덜랜드 스콧, 반 다인, 로널드 녹스, E.M.롱, 리처드 헐, 시릴 헤어).
1. 포우 이래 추리소설은 범인의 풀기 어려운 범죄의 위장, 즉 트릭을 간파하는 데 포인트를 두어 왔으므로 그 트릭은 기발한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이 점은 독자의 가장 날카로운 비평을 받는 요소이다. 매저리 니콜슨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현명한 독자들은 결코 10년 전의 명확한 트릭에는 속지 않는다. 독자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적은 트릭밖에 알지 못하면서 독자들을 위해 추리소설을 쓰려는 아마추어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경멸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독창적이며 납득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하지 않는 이상 트릭의 살인 방책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한때 유행했던 일이 있는 책략도 기분 좋게 장사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휴지통에 버려져 돌아보지 않게 된 트릭을 작가가 잘못해서 다시 사용하게 되면 독자는 경의는 둘째 치고 호의도 보여주지 않게 된다.
2. 다음에 열거하는 이미 지겹도록 사용된 수법을 재탕하게 되면, 무능하고 독창력이 결여되고 자존심이 없는 추리작가로 지탄받게 될 것이다.
* 반 다인이 예시한 수법
1) 범행 현장에 남겨진 담배꽁초로, 혹은 치열의 불균형으로 범인의 신원을 가려내는 방법
2) 엉터리 강령술이나 유령을 사용해서 범인을 자백시키는 방법
3) 지문의 위조
4) 동물에 의한 살인
5) 총기 또는 그 외의 발사기에 의한 단검의 발사
6) 대역의 사용, 전축의 사용, 인형의 사용으로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방법
7) 개가 짖지 않았다는 이유로 침입자를 면식자로 판정하는 방법
8) 쌍둥이 또는 근친자를 진범으로 결말짓는 행위
9) 피하 주사기와 맹독의 사용
10) 경찰이 실제로 뛰어 들어간 직후의 밀실에서의 살인
11) 유죄 판결을 위한 심리학적 말의 연상반응 테스트
12) 최종적으로 탐정에 의해 해독되도록 되어 있는 암호나 약호의 사용
*체스터튼이 예시한 수법
1) 거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적인 비밀결사 조직의 도입
2) 외교정책과 관련된 범죄로 윤색하는 처사
3) 결말에 갑자기 얼굴이 닮은 형제를 등장시키는 처사
4) 독자가 기억도 못하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인물을 결말에서 갑자기 범인으로 제사 지내는 일
5) 주인공이나 악한의 하인의 힘을 빌어 난관을 넘기는 안이한 착상
6) 직업적인 범죄자를 등장시키는 행위
7) 한 사람을 살해하는 데 5, 6명의 인간을 등장시켜 조금씩 분담시키는 처사
8) 아무도 죽일 생각을 지닌 사람이 없었으며, 그것은 과실이었다는 식의 독자를 실망시키는 결말
3. 도로시 세이어즈 여사는 그녀의 추리소설에 관한 가장 뛰어난 분석적 논문 [범죄 옴니버스]에서 기발한 트릭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10가지만을 추려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1) 독을 바른 치과 충전재(充塡材)나 우표
2) 무서운 병균이 묻은 머리 브러시
3) 손톱에 독을 바른 고양이
4) 전화기를 이용한 감전 살인
5) 동맥에 주사한 기포(氣泡)
6) 공기총을 사용한 피하주사
7) 카메라 속에 감춘 권총
8) 독을 넣은 삶은 계란
9) 천정 너머로 떨어지는 칼
10) 실내온도가 일정한 높이로 올라갔을 때 폭탄을 점화시키는 장치가 된 온도계
그러나 이 트릭도 알고 보면 반세기 전에 발표된 트릭이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4. 독창적인 트릭이라고 해서 신기해하기만 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그럴듯하게 진실에 와 닿는 것이 아니면 완벽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추리소설의 독자가 강조하는 수많은 약속 사항의 하나는 신뢰성이 필수적인 조건이다. 가령 독약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과학적으로 해명이 끝난 독약이 아니면 안 된다. 독약의 효능도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흔히 상식처럼 알려진 인체에 주사기로 공기를 주입하면 사람이 죽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적어도 자전거펌프를 정맥과 연결시킬 수가 있어야 그 결과를 확신할 수가 있으며 소음기가 달린 권총은 총성이 들린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어느 정도 소리를 억제할 수는 있으나 그것도 리볼버(회전권총)에는 효과가 없다.
5. 트릭은 상식을 앞지르면 안 된다. 살인 광선이나 일정하지 않은 최면 상태를 만드는 약품이라든가 4차원이라고 하는 일종의 유토피아적인 장치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추리작가라고 하는 것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거의 전부가 다른 작가의 아이디어를 차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어떤 트릭도 어디에선가 힌트를 얻고 있는데 교묘한 조립과 구성에 묘미가 있으므로 선례를 문제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일응 타당한 것이다).
10.
결말에서는 예측도 할 수 없는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합리적으로 납득될 수 있어야 하며 증명이 되어야 한다(서덜랜드 스콧, 리처드 헐, 도로시 세이어즈, 필립 스턴, 시릴 헤어).
1. 결말의 의외성, 주로 범인의 의외성은 추리소설의 최고 최후의 기본적인 요건이다. 산만한 결말은 맹렬한 비난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최후의 클라이맥스는 성찬처럼 준비되어야 하며, 폭탄 같은 해결에 접할 때만이 즐거운 것이다.
2. 살인사건이 실은 살인이 아니고 사고나 자살이라는 결말로 얼버무리게 되면, 분개한 독자로부터 항의 편지의 홍수 속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살인만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공포의 감정을 동반하는 유일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결말에서는 ‘누가?’ ‘어떻게?’ ‘왜?’가 선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가 훌륭하게 해결되었을 경우, 그 해결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이상을 말하면 그것이 필연의 결과가 아니면 안 된다. 또한 이것만이 유일의 논리적인 설명이라고 보여질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4. 결말에서 제시하는 증거는 죄과를 입증하는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12명의 배심원들을 만족시킬 정도의 강력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사건의 폭로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며, 유죄의 판결이 가능한 증거의 제시가 요구된다.
위에 열거한 추리소설의 10계는 본격 추리소설 혹은 순수(pure) 추리소설에 주로 해당하는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우가 1841년에 추리소설을 창시한 이래 본격 추리소설은 1915년경에서 1935년경까지의 약 20년간의 황금시대가 있었는데 계율은 그 시기에 주로 만들어졌다.
추리소설의 흐름에 따라 이와 같은 계율도 많은 변화를 보였고 전혀 무시되는 경우도 생겼다.
여기에서 추리소설의 변천을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30년대에 이르러 더실 해미트나 레이먼드 챈들러와 같은 소위 비정파 추리작가에 의해 행동파 추리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바로 하드보일드파가 탄생한 것이다. 추리소설은 로맨티시즘에서 리얼리즘으로 이행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있어서 추리소설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었다. 추리소설은 리얼리즘의 의미에 있어서는 문학적으로는 향상되었지만 한편으로 꿈과 환상을 상실하게 되었다. 1959년 레이먼드 챈들러의 죽음으로 인해 하드보일드파는 그 운명을 다하여 회복할 가망이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아직 의문이다.
한편 심리적인 드릴러 혹은 서스펜스파도 1930년대에 등장했다.
1931년에 발표한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殺意)]는 심리소설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보여진다. 그는 낡은 범죄 퍼즐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했다. 부알로와 나르스자크는 심리적 드릴러 분야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팀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서스펜스파는 구미(歐美)에 공통되는 새로운 경향이다.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걸쳐 하드보일드파와 서스펜스파의 전성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작가 니콜라스 블레이크는 추리소설의 장래가 추측컨대 범죄소설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의 유행 현상은 탐정소설이 아닌 범죄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줄리언 시몬즈가 그의 추리소설사 [피투성이의 살인]에서 지적했듯이 추리소설(mystery story)은 탐정소설(detective story)에서 범죄소설(crime novel)로 변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범죄소설이야말로 새로운 미스터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오늘날의 미스터리는 브루스 캐시디가 지적한 것처럼 그 모습이 많이 변모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저한 것은 개개인에서 집단으로 역점이 많이 옮겨졌다는 점이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던 셜록 홈즈나 필립 말로우의 시대는 사라지고 지금은 경찰이나 정보기관의 집단적인 활약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미스터리 세계는 현실의 생활이 그러한 것처럼 경찰관도 스파이도 악한도 모두가 그룹의 일원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추리소설의 테마도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고 대량 살인이 테마가 되고 있다. 또한 단순한 추리가 아닌 현대과학이 뒤얽힌 이야기가 되었으며 도난당하는 것은 보석이 아니고 핵탄두의 제조법이다. 추리소설이야말로 현대의 혼란된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인 것이다.
그렇다면 추리소설의 계율은 이런 추리소설의 변천과 관련해서 어떻게 될 것인가?
추리소설이 그 어떤 형태로 변모하더라도 추리소설의 핵은 남아 있고 그 형식을 비는 까닭에 기본적인 룰은 지켜져야 한다.
1976년 애거서 크리스티의 죽음과 함께 본격 추리소설은 막을 내렸다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최근의 경향은 단순한 폭력이나 추적에 대해 추리에의 회귀(回歸)라는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자크 버전). 말하자면 영국 스타일의 추리물이 리바이벌되고 있으며 어떤 형태의 수수께끼를 푸는 본격 추리소설이 부활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전통적인 순수 추리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추리소설의 룰은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충실하게 지켜지면 질수록 작품의 수준도 높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의 미국 추리작가협회(Mystery Writers of America)의 회원들은 추리소설의 룰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고 MWA 수상작가이며 협회장을 지낸 로렌스 트리트는 역설하고 있으나, 이것은 지금에 와서는 어디까지나 소수파의 의견이다.
리 라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추리소설을 초기의 엄밀하게 제약된 형태로 놓아두고 싶어 하는 완고한 사람도 물론 소수이지만 존재하고 있다. 현재는 그들을 실망시키고 미래는 그들을 전율시킬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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