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추리작가협회보 5호에 있는 글로 저자는 '강형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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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살인
강형원(추리작가, 변호사)
한참 습작을 하던 무렵, 국내 추리작품을 한 편 읽게 됐다.
호텔 방에 두 남녀가 벌거벗은 채 피살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는데 출입문 고리가 안에서 채워진 이른바 밀실 살인이었다.
도대체 범인은 방을 어떻게 빠져나갔을까?
나는 처음부터 이 ‘어떻게’에 사로잡혀 그 작품을 결말까지 단숨에 독파하고 말았다. 결말은 애초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말았지만, 여하튼 밀실 살인은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강하다.
사실 밀실 살인은 불가능하다.
밀실 살인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데 불과하다. 바로 여기에 트릭이 있다.
에드거 앨런 포우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사건’이래로 무수히 많은 추리작가들이 밀실 살인이라는 소품에 매달려 한 번쯤 여기에 도전하고 있다. 도대체 왜?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추리소설이란 수수께끼를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담고 있어야 하는데 밀실 살인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창고 같은 것이다. 밀실을 소품으로 등장시키면 아무리 짧은 단편이더라도 수수께끼를 담뿍 담게 된다. 추리작가들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밀실 살인은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첫째, 트릭의 고갈이다.
선배 작가들이 밀실 살인에 사용될 수 있는 트릭은 깡그리 사용해 버렸다. 우리가 간혹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떠올릴 때마다 누군가가 이미 써먹은 수법이기 일쑤다.
둘째는 진부한 수법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밀실 살인 작품이 수없이 쏟아지면서, “밀실… 이젠 지겹다. 밀실 살인은 그만”하고 지겨움을 호소하는 작가나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셋째는 내용이 자칫 지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수수께끼 풀이에 치우치다 보면 독자는 한 편의 논문을 읽는 것처럼 딱딱한 소설에 마주치게 된다. 오늘날 말초적인 자극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은 서두 몇 페이지를 읽다가 팽개쳐 버리기 딱 알맞다.
넷째는 밀실 살인만큼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껏 트릭을 떠올렸다 하더라도 밀실 살인으로 나가게 된 동기(보통은 자살로 위장하기 위하여)라든가 탐정으로 하여금 복잡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게 하는 과정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밀실 살인치고 결말이 싱겁지 않은 것이 없다는 점이다. 작위성이 강할수록 더 그렇다.
이와 같은 난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작가들은 밀실 살인 언저리를 기웃거린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만큼 수수께끼로 가득 찬 소품을 구경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여하튼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밀실 살인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각오와 고도의 테크닉을 갈고 닦아야 한다.
선배들이 트릭을 다 써먹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미처 줍지 못한 이삭이 아직은 남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덤 속에 들어간 작가들이 깜짝 놀라 뛰쳐나올 만큼 뛰어난 트릭이 분명히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설사 이삭조차 남겨 놓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이미 써먹은 트릭이라도 오늘의 실정에 맞게 변형을 시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가미되고 기존의 작품 수준을 뛰어넘을 만큼 고도의 테크닉이 구사되어야 할 것이다.
밀실 살인, 어쨌든 한 번 시도하고 볼 일이다.
(추리작가협회보 제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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