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스테리 하우스의 추리 관련 글로 저자는 '이가형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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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가 더쉴 해미트의 전설
- 이 가 형 (전 추리작가협회 회장)
탐정 작가로서 세계적인 문학적 명성을 올린 작가에 새뮤얼 더쉴 해미트(Samuel Dashiell Hammett, 1894-1961)가 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해미트를 헤밍웨이, 포크너, 피처랄드와 같은 미국의 위대한 작가들과 동열에 속하는 작가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그의 독특한, 참으로 매혹적인 비정의 문체로 불의와 폭력이 판치는 암흑의 세계를 드라마틱하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장․단편이 <黑假面 Black Mask>이라는 저속하고 저렴한 대중 잡지에 발표되었다는 건 아이러니컬한 이야기이다.
새뮤얼 더쉴 해미트는 미국 메릴런드주 센트 메리이즈 랜드에서 출생하여 고교를 중퇴한 후 온갖 직업을 전전하다가, 1912년 '핑커튼 탐정사' 볼티모어 지국에 입사했다.
1918년 그는 육군에 입대했으나 1919년 폐병에 감염되어 입원생활 후 제대하고 핑커튼 탐정사로 복직했다.그러나 폐병이 재발하여 그는 1921년 사임하고 직업을 문필로 바꾸었다.
1922년 28세때 <黑假面>지에 단편을 발표함으로써 작가생활로 들어갔다. 첫 네 장편 - <붉은 수확 Red Harvest, 1929>, <데인 가의 저주 The Dane Curse, 1929>, <말타 섬의 매 The Maltese Falcon, 1930>, <유리 열쇠 The Glass Key, 1931> - 은 <黑假面>지에 연재된 후에 출판되었다.
<붉은 수확>은 앙드레 지드가 '잔학과 시니시즘의 세계를 묘사한 걸작' 이라고 말했듯이 유혈이 낭자한 악의 세계를 누비고다니는 탐정은 자기 이름을 교묘하게 밝히지 않는 컨티넨틀 오프 Continental Op 이다. 그는 1백 80파운드의 체중과 갱의 소굴 속으로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들어가는 배짱을 가지고 있는 '터프가이'이다. 그는 <데인 가의 저주>에서도 등장한다.
<말타 섬의 매>에 등장하는 사립 탐정 새뮤얼 스페이드는 '컨티넨틀 오프'처럼 뚱뚱하지는 않으나(해미트 자신처럼 호리호리하다) '터프 가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이 <말타 섬의 매>는 미국의 추리소설의 왕이라는 엘러리 쿠인이 가장 미국적인 최고의 걸작이라고 극찬을 했고 <오락을 위한 살인 Murder for Pleasure>의 저자 헤이크라프트는 '더쉴 해미트는 현실적이고 비정적인 탐정 소설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고 말하고 있다. 해미트는 이 작품으로 '비정파 탐정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탐정 소설을 완성한 셈이다.
<유리의 열쇠>는 작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며 이 작품에서 시정의 암흑에 도전하는 탐정역으로 등장하는 도박사 네드 보우먼트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몸집, 술꾼이고 폐병을 앓았다는 점은 작가 자신을 방불케 한다. 그는 '가난하고 시니컬하고 양심적이고 동작이 기민한 자'이므로 어쩌면 <유리의 열쇠> 집필 당시의 해미트 자신일지도 모른다.
추리소설은 게임을 위한 탐정 소설로부터 범죄를 다루는 범죄 소설로 변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영국의 줄리언 시몬즈는 해미트의 <유리의 열쇠>를 그의 주장에 들어맞는 가장 뛰어난 범죄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해미트의 제 5 장편 <홀쭉한 사나이 The Thin Man, 1934>는 해미트의 위 네 장편과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비정의 정도가 줄어든 대신에 유머가 늘어나 있다. 은퇴한 전직 탐정이 아내와 함께 부득이 탐정 역을 맡고 나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탐정 부부가 등장하는 이 장편은 영화로 팔리어 가난했던 더쉴 해미트에게 상당한 돈을 안겨 주었지만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건 도대체 영문모를 일이다.
1936년 스페인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해미트는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공산주의자와 관련을 맺게 되었지만 늘 시니컬했던 그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2차대전 때에 그는 한낱 병사로 참전했고 전후에 반미 활동 사문회에 소환됐을 때 증언을 거부한 결과로 6개월간 징역을 살았다. 그는 알콜 중독과 부채와 가난 속에서 묵묵히 죽었다.
그의 절필 이후의 생활은 수수께끼의 베일에 덮여 있어 해미트 전설을 이룩하고 있다.
최근에 <정체불명의 사나이>라는 해미트의 전기가 나왔으나 그의 생애의 수수께끼의 부분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아마 추리 작가 해미트는 자기의 인생의 자취를 교묘하게 감추었을지도 모른다.
(小說文學 19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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