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인류의 미래와 운명과 존재론에 관한 성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작품인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Space Odyssey}는 너무나도 유명한 전설적인 대걸작이다. 영화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세계 걸작영화 리스트의 10위권안에 늘상 손꼽히는 유일한 SF영화로 알고 있으며, 심오한 내용을 철학적으로 성찰한 고난도 테크닉의 걸작이다. 이 영화는 영국 출신에 세계적인 SF문학의 거장이자 과학자인 '빅 3' 아더 C.클라크의 단편 소설인 "파수 The Sentinel"(1951년)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우주 영화에 대한 구상을 하고 아더 C. 클라크를 만나 우주와 인류의 운명, 외계의 존재에 관하여 진지한 토론을 벌인 끝에 이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쓰도록 하였다. 물론 이 소설은 탈고 후에 각본으로 만든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이리하여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토대가 형성된 것이었다. 이 영화는 극적인 구성이나 스토리 없이 인류와 우주와 외계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변을, 상징성을 띤 고도의 영상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고 있는데, 전부 네 개의 막으로 구성된 우주 서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네 개의 막으로 나뉘어진 부분들은 모두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 사건들은 인류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거나 인류의 진화 역사에 있어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큰 사건들이 중심이 된다. 아울러서 이들은 서로 유기적인 연결 관계를 이루고 있다.

먼저 1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첫번째 부분을 살펴보자. 1막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성찰이라고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수백만년전의 시대에 황량한 벌판에 유인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아직 사람의 조상이라고 하기도 힘든 모습의 동물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들앞에 커다랗고 검은 빛의 물체인 모노리스monolith가 나타난다. 외계에서 어떤 존재들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물체는 유인원들에게 곧 어떤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인원 비슷한 생물이 어떻게 인간으로 진화되었는가 하는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이다. 모노리스가 출현한 이후, 어떤 한 유인원은 동물의 뼈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도구의 발견이 이루어진 것이다. 바야흐로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인류의 기원이다.

그 다음 2막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으로 넘어간다. 2막으로 카메라는 순식간에 옮겨져, 유인원이 하늘로 높이 던진 뼈가 내려오면서 어느덧 장면은 순식간에 21세기의 우주 왕복선으로 바뀐다. 엄청난 시간과 공간의 점프로서 수백만년을 단숨에 뛰어넘어 버린다.

이미 수백만년전에 유인원들 앞에 나타났던 모노리스가 이번엔 달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지구의 달 탐사대가 강력한 자기장에 휩싸여 있는 달의 어느 지역에서 이 모노리스를 발견했던 것이다. 탐사대는 모노리스의 구성 물질을 밝혀보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그저 모노리스가 땅에 묻힌 시점만을 알아내는데 그친다. 그리고 그 시기는 무려 400만년 전이었다는 결과가 나온다. 모노리스는 외계 문명의 존재가 세운 것인가? 사람들이 모노리스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려는 순간 모노리스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오면서 강력한 전퐈가 발사된다.

이제 영화는 제 3막으로 넘어간다. 시기는 달에서의 사건이 벌어진지 18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이 부분에서는 유명한 인공 지능 컴퓨터인 할 9000이 나온다. HAL에서 각각의 알파벳을 하나씩 뒤로 해보면 IBM이 되는데,IBM사를 은근히 상징하기 위해서 만든 단어라는 말도 있지만 우연의 일치일 뿐인 듯하다. 목성을 향해서 순항중인 디스커버리호가 세번째 부분의 스토리를 이루고 있는 중심 장소이다. 다섯 명의 승무원들 중에서 세 명은 동면 상태이고, 보먼 선장과 폴이라는 승무원만이 깨어 있다. 이들은 목성에 도착해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데, 정작 그들이 해야할 임무는 따로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진짜 임무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 진짜 임무란 달에서 발견된 모노리스가 발사한 전파의 수신지를 알아내는 것으로 수신지는 목성의 어느 한 지점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디스커버리호내에서 오직 할 9000뿐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할 9000은 비밀을 지켜야한다는 본부의 명령과 승무원들에게 정직해야한다는 프로그램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킨다. 결국 할 9000은 승무원들을 죽이게 되고 보먼 선장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컴퓨터의 신경칩을 뽑아 정지시킨다.

이제 영화는 네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홀로 살아 남아 우주선을 타고 목성으로 접근하던 보먼은 드디어 거대한 모노리스와 조우한다. 그는 꿈꾸듯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시간과 공간이 현란한 빛과 함께 소용돌이 치는 거대한 구멍을 지나고 수많은 별들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보먼이 들어선 곳은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상태에서 우주를 관통하는 일종의 문과 같은 곳이다. 수백만년전에 유인원을 인간으로 진화시켜 놓았던 외계의 존재자들은 인간을 더 진화된 존재로 진화시키기 위해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보먼에게 보여준다. 보먼은 어느 호텔의 방에 도착하고 어느덧 늙어 버린 그는 죽음같은 잠에 빠져들고 인간보다 진화된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 영화는 무대 세팅과 우주선 모형등의 묘사가 현재 보아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으며, 영화 후반부의 스타 게이트 통과 장면을 비롯해 전체적인 영상미가 1980년대 이후의 영화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나 주제는 현대의 SF영화보다도 오히려 더욱 심오하며 참신하다.

1973년도 작품인 {제 4상태 Phase IV}라는 영화도 역시 걸작으로 국내의 SF영화 애호가들에게 평가를 받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초지능적인 존재로 변해버린 개미들이 인간을 공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1975년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열린 세계 SF영화제에서 그랑프리상을 수상하였다. 영화는 자연과 공생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해 경고하면서, 자연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이며 인간은 그 속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자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영화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알 수 없는 천체 현상으로 초지능적인 존재로 변모한 개미들은 서로간의 싸움을 그만두고 급속도로 불어나며 서서히 자연계는 생태계의 균형을 잃어간다. 생물학자인 허브 박사와 곤충과의 의사 소통 및 암호 해독 전문가인 레스코박사는 아리조나의 사막에서 개미 문제 해결을 위한 실험을 한다. 허브는 개미를 모두 몰살시키려고 하지만 레스코는 그들과 대화를 하려고 한다. 그들은 인근에서 개미로부터 피해를 입은 농가의 딸인 켄드라를 실험실로 데려오는데 어느날 개미로부터 메세지가 도착한다. 레스코가 그것을 해독하고 켄드라는 개미들이 자신을 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개미들의 서식지로 향한다. 허브 박사는 참호에 빠져 개미들의 공격을 받고는 죽게 되고, 레스코는 개미의 서식지에 가서 켄드라를 만나고 영화는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시간은 끊임 없이 흘러가고 거대한 우주가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철학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듯하다.

이 영화가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매우 그럴듯한 상황의 설정과 정교하게 촬영된 개미의 생태와 활동, 긴장감이 감돌게 묘사한 인간과 개미들간의 신경전, 인간과 개미의 의사 소통의 묘사, '공진화'를 추구하는 극적인 결말부분등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매우 정교하며, 과학적이라는(부분적으로 과학적인 측면에서의 허점들이 있지만) 인상을 주는데, 무엇보다도 정교하게 촬영된 개미의 생태 활동이 압권인 셈이다. 세밀한 개미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 카메라에 다큐멘타리에서도 쉽사리 보기 힘든 여왕 개미의 산란 장면과 개미들이 먹이를 운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모호한데, 결말의 의미는 해답이 없이 열려진채 관객들의 지적인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있다. 이 영화는 인간과 자연과의 공진화를 주장하고 있다. 켄드라와 레스코만이 살아남아 서로 만나는 결말은 자연의 모든 생명체와 인간이 공진화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주제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공진화나 공생이 아마도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제 4상태'인듯 하다.

잭 아놀드 감독이 1957년에 만든 작품인 {줄어드는 사나이 The Incredible Shrinking Man}은 리차드 매터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SF영화팬들사이에서 뛰어난 고전 걸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흑백 영화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로버트 스콧 캐리가 자신에게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일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캐리는 자신의 아내와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정체 불명의 구름에 휩싸이는데, 온몸에 이상한 반짝이들이 무수히 달라 붙는다. 그 후 6개월 뒤, 캐리는 셔츠와 양복이 커진 것을 발견하는데 이러한 일이 게속 반복되어 그는 의사를 찾아 간다. 엑스 레이 촬영 결과, 캐리의 몸이 오그라들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캐리는 캘리포니아 의학 연구소에서 진단을 받지만, 이곳에서도 의사들은 두 손을 다 들고 만다. 잭 아놀드 감독은 정체 불명의 구름으로 상징되는 '원자 폭탄'을 문제의 발단으로 삼으면서 이 원자력이 가져올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인간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미래라는 것은 과학 기술이 무한한 진보를 가져다 주며,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주의의 믿음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의사와 현대 의학은 캐리의 몸이 줄어드는 이유와 해결책을 알아내지 못한다. 일시적인 미봉책을 주기는 하나 곧 효과가 없어지고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과학과 과학자는 인간에게 장미빛 미래만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며, 인류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영화는 SF영화의 중요 요소인 경이감을 관객들에게 주면서, 이것이 우리에게 닥칠 예상치 못한 미래들중의 하나란 점을 인식하게 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제기한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이 점에서 가장 클 듯하다. 고양이에게 쫓겨서 지하실이라는 '소우주'로 떨어진 캐리는 처절한 생존 투쟁을 벌인다. 캐리는 마지막 부분에서 절규하며 외친다. " 도대체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나? 나는 무엇을 향해 줄어들고 있는가? 무한소? ..." 이러한 물음에는 과학 기술이 빚어내는 예기치 못한 인류의 미래와 과학 기술의 무력함이 그 배후에 깔려 있다. 캐리는 무한소를 향해 점점 줄어가는 상황에서 깊은 통찰을 얻게 된다. 그는 밖으로 걸어 나와 하늘과 우주를 바라보며 자신이 무한대를 향해 작아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무한소에 가까워지면서도 캐리는 스스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신에게는 제로(0)인 존재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점차 녹아 사라지면서 우주의 창조의 힘과 하나가 되어간다. 그는 그 순간에 자신이 지금껏 인간이라는 아주 좁은 차원 속에 국한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의 존재와 미래가 예상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고 우리의 존재는 곧 구속을 의미한다는 사실에서 존재의 한계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심오한 메세지를 전달한다.

1968년작인 {찰리 Charly}는 다니엘 키이즈의 소설인 "알게논을 위한 꽃다발 Flowers for Algenon"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원작 소설은 다니엘 키이즈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크게 높여준 작품으로 영화는 오리지날 소설을 장편으로 개작한 것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찰리로 분했던 배우 클리프 로버트슨은 이 영화로 1968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낮은 지능을 가진 주인공 찰리가 '바보를 천재로 만드는'두뇌 수술을 받고 지능이 높아졌다가 다시 과거의 그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천재가 되어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저능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자각하게 되고 다시 퇴화하기 시작하는 자신을 바라보아야 하는 찰리의 고통에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구성의 탄탄함과 그 당시 대부분 물리학이나 우주 공간을 소재로 다루던 SF영화와는 다르게 '분자 생물학'혹은'신경 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다룬 점이 이 영화가 명작으로 손꼽히게 된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는 SF평론가들이 뽑은 세계 명작 SF영화 86편중 6위에 공동으로 올라있다. 과학 기술은 역시 '인간의 문제'라는 진리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출처:장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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